이혜오 소설가 “납득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
『우리가 별을 볼 때』 이혜오 저자 인터뷰
스스로가 혼자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특히 퀴어 청소년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제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책이 제공할 수 있는 최선의 가치는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인 것 같아요. (2022.05.24)
1인출판사 ‘책나물’이 처음으로 펴내는 소설이자 작가의 데뷔작인 『우리가 별을 볼 때』. 출간되기도 전에 작가의 친구들이 트위터에서 활발하게 홍보하고, 담당 편집자는 읽을 때마다 좋았다고 찬사를 보내는 이 책은 애틋한 성장소설이자 탁월한 퀴어소설이다. 한국문학이 주목해야 할 새로운 작가 ‘이혜오’를 만났다.
첫 책을 낸 소감을 들려주세요.
와! 신기하다! 요새 가장 많이 하는 말입니다. 한글을 뗀 네 살 무렵부터 열렬한 독자로 살다가 저자 입장을 경험해 보니 백 스테이지를 구경하는 관객이 된 기분이에요. 신기하다 다음은 감사하다, 인 것 같습니다. 소설을 쓰는 동안 피드백을 준 친구들, 소설을 완성한 후 책을 낼 출판사를 찾는 긴 과정을 함께해준 친구들, 책이 나오자마자 몇 권씩 사준 친구들, 그리고 작가인 저만큼이나 이 소설을 아껴주시는 편집자님 모두에게 정말 고맙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마음을 보태주어서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결국 다시 ‘신기하다’로 돌아왔네요.
이 소설은 처음 어떻게 쓰기 시작했나요?
당시 전염병이 막 창궐하기 시작해서 갑자기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그러면서 소설을 써볼 마음이 들었습니다. 소설이어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소설을 많이 읽다 보니까 자연스레 저도 쓰고 싶어진 것 같습니다. 단편소설 습작을 몇 편 썼고 이 소설도 처음에는 단편으로 구상했어요. 설정이나 주제의식은 지금 버전과 거의 같았는데 소설 속 삽입된 팬픽인 ‘4월 이야기’ 부분이 아예 빠져 있었고요. 도입부만 썼는데도 원고지 60매 분량이 나와서 이건 최소한 중편이다, 싶었고 다 쓰고 나니 장편이 되었네요. 이전엔 첫 장면이 지금보다 훨씬 선언적이었어요. 무려 ‘다인’이 퀴어 퍼레이드에서 행진하다 여자친구와 키스하는 장면이었네요.
소설을 쓰면서 가장 괴로웠던 순간과 가장 기뻤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궁금합니다.
수업이나 워크샵 같은 데서 쓴 것도 아니고, 계약이 되어 있었던 것도 아니라서 마감도 없고 딱히 이루고자 하는 목표도 없이 그저 쓰고 싶어서 썼습니다. 사실 중반까지는 제가 뭘 쓰는지도 모르고 썼던 것 같아요. 그래서 괴로운 순간은 크게 없었고, 다만 너무 짧은 기간 내에 몰입해서 쓰다 보니 후반부에 내용이 어두워지면서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가장 기뻤던 순간은 ‘4월 이야기’를 쓸 때였던 것 같습니다.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한데 아무도 써줄 사람이 없으니 내가 쓴다, 하는 식으로 이야기에 푹 빠져서, 너무 재미있어 하면서 썼어요.
문학평론가 권희철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소설은 “‘팬픽’이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이해하고 견디며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어쩌면 소설 이상의 것일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합니다. 작가님도 실제 팬픽을 써본 적이 있는지, 팬픽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좀더 듣고 싶습니다.
물론 저도 팬픽을 써본 적이 있습니다. 팬픽 속의 세계에서는 동성애가 이성애보다 흔하고, 동성의 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게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독자는 이미 인물들을 사랑하는 상태로, 그들이 사랑에 빠질 것을 예상하고 기대하면서 이야기를 읽어요. 그런 점이 재미있고, 어떤 의미에서는 안전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실존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창작’을 하는 행위가 윤리적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존하는 사람과 가상의 캐릭터 사이의 구분이 희미해지면서 실존하는 사람의 존엄성이 일부 훼손된다고도 생각하고요. 그게 ‘사랑’이라는 말로 뭉뚱그려지면서 폭력적인 형태가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이 아닌 다른 소설도 쓰신 게 있는지, 단편소설도 쓰시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이미 썼거나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은 모두 단편입니다. 초안이라도 완성한 것은 세 편 정도 되는데 끝없이 수정 중이고, 다섯 편 정도는 그저 붙잡고 느릿느릿 쓰고 있습니다. 대부분 여성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장편도 아이디어는 있는데 쓰기를 시작할 만큼 구체화되지는 않았어요.
소설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나 장면이 있다면 말해주세요.
원래는 소설의 마지막 문단이었어요. 그 부분을 쓰기 위해, 또 납득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습니다.
“나는 유니버스로부터, J여신으로부터, J로부터 왔다. 허물어진 사랑으로써 나의 유니버스는 완성되었다. 나의 상식. 세상의 규칙. 사회적 관습. 그런 게 아니라 사랑이 곧 당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들에게서 배웠다. 오직 사랑을 동력으로 움직이는 빛나는 세계. 나는 그 안에서 살고 싶었다.”
그런데 최근에 바뀌었어요.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었는데, 그런 일이 벌어질지도 몰랐던 과거의 제가 쓴 문장으로부터 힘을 얻는 신기하고 이상한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제 운명을 결정해주는 존재는 없지만 저는 제가 만든 인물들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죠.”
이 책을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스스로가 혼자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특히 퀴어 청소년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제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책이 제공할 수 있는 최선의 가치는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인 것 같아요. 그런 연결감이 사람을 살게 한다고 생각하고요. 누군가 이 책을 읽고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는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이혜오 전염병 시국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가 별을 볼 때』가 처음으로 쓴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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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사랑을 동력으로 움직이는 빛나는 세계… 나는 그 안에서 살고 싶었다.” 애틋한 성장소설이자 탁월한 퀴어소설 1인출판사 ‘책나물’이 처음으로 출간하는 소설이자 이혜오의 첫 소설. 『우리가 별을 볼 때』에는 ‘팬픽’을 즐기는 10대 여중생들이 등장한다. 팬픽은 팬픽션(fan fiction)의 줄임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