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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다정한 그림책] 다정한 격려 - 『다정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그림책 『다정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그림책 『다정한 사람들은 어디에나』는 앨리스 워커가 2013년 브라이언에게 써준 다정한 시를 스페인 작가 킴 토레스가 장면장면 숙고와 유머로써 펼쳐낸 2021년 출간 명작입니다. (2022.05.18)
매주 수요일, 김지은 아동청소년 문학평론가, 한미화 출판평론가, 이상희 시인, 최현미 기자가 ‘이토록 다정한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
예나 지금이나 후회하고 근심하는 일로 세월을 보내는 탓에 우리 모두는 대체로 시무룩합니다. 4대 성현이 남긴 통찰의 핵심인즉슨 어제를 후회하거나 내일을 근심하지 말고 ‘오늘을 힘써 살며 기뻐하라.’인데도 말이지요. ‘시무룩’을 방치하면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세상 첫 나들이를 한 아기한테도요!- 웃어줄 수 없는 심술쟁이로 전락하기 십상입니다.
올 한해 원주시민이 모두 함께 읽는 ‘한도시한책읽기’ 선정 도서 『순례 주택』은 철없는 부모와 언니를 감당하느라 자주 시무룩해지지만 감탄스러울 만큼 용기 있게 대처하며 서사를 끌고 가는 거북중학교 3학년 오수림이 내레이터입니다. 그 곁에는 적절히 거리를 유지하며 수림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순례씨, 할아버지의 여자 친구가 있고요. 수림이 어느 날 새삼 막대한 집안 문제를 홀로 떠안고 어찌할 바를 몰라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자, 순례씨는 무슨 일인지 얘기하라며 살그머니 손을 잡아줍니다. 얼핏 상투적이지만 더없이 곡진하게 여겨지는 이 장면에서 수림은 독자들에게 고백하지요. ‘손을 잡으니까 조금 용기가 났다. 나는 입을 열었다.’
70대 후반에 접어든 『컬러 퍼플』 작가이자 민권운동가 앨리스 워커도 어린 후배의 손을 잡아줍니다. 교회에서 복음성가를 연주하는 십대 소년 음악가 브라이언이 자기가 살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서부의 오클랜드를 떠나 생애 첫 해외여행을 앞두고 불안해한다는 소식에 시를 써서 건넨 겁니다.
“터키에 가면 다정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아프가니스탄에도 다정한 사람들이 있지./ 미국에도 다정한 사람들이 있어./ 캐나다에도 다정한 사람들이 많이 살아. 멕시코에 가도 다정한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어.//수단에 가도 마찬가지야./ 남아프리카 줄루족 마을도 그렇고, 수많은 언어를 쓰는 아프리카 구석구석 어디를 가도 다정한 사람들이 있어.”
시의 화자가 흑인 여성으로서 더없이 차갑고 잔혹한 삶을 경험하고 목격해온 앨리스 워커가 아니었다면 얼핏 대책 없는 낙관론자의 격려사로 읽힐 법도 합니다. 그러나 37개 나라를 차례차례 호명한 이후의 노래 후반부는 과연 백전노장의 사려 깊은 응원이 구구절절 뜨겁게 사무칩니다.
“가만히 보면,/ 이 세상 거의 모든 집마다/ 우리와 미소를 나눌 수 있는/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한 명씩은 꼭 있어.// 다정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다정한 사람들이 사라지면 안 돼./ 다정한 사람들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면/ 세상은 어둠에 휩싸일 거야.//네가 어디를 가건/ 무슨 일을 하러 가건/ 이 사실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해주겠니?”
그림책 『다정한 사람들은 어디에나』는 앨리스 워커가 2013년 브라이언에게 써준 다정한 시를 스페인 작가 킴 토레스가 장면장면 숙고와 유머로써 펼쳐낸 2021년 출간 명작입니다. 앨리스 워크가 브라이언을 향해 호명한 세계 곳곳의 공간과 사람들을 그 나라 고유의 풍경이며 복식과 몸짓과 표정으로 살려내는 솜씨가 만만치 않습니다. 바르셀로나 작업실에서 다양한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하는 한편 예술의 치유력과 자기 발견을 주제로 워크샵을 진행한다는 킴의 그림책 결과물을 보면서, 시를 선물 받았던 브라이언이 어떤 감흥을 느꼈을지도 무척 궁금합니다. 납작하게 압축되고 생략되어 눌려있던 시구의 단어와 맥락과 행간이 부풀고 부풀어서 장면장면 풍성한 이미지를 이룬 데 놀랐을 테지요. 무엇보다 이 그림책의 다정한 격려를 통해 어디에나 다정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시적 관념 이상으로 깨닫게 된 브라이언이 거뜬히 ‘시무룩’을 떨쳤으리라 믿습니다. 2013년 무렵에 주고받은 시 선물이니, 코로나19와 상관없이 생애 첫 해외여행도 무사히 잘 다녀왔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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