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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의 창작과 독서] 얼렁뚱땅 논픽션 쓰기 (1)

<김초엽의 창작과 독서>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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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되기 전에 나는 논픽션 작가가 되고 싶었다. 언제부터 글을 썼는지 질문을 종종 받는데 답은 이렇다. “글은 아주 어릴 때부터 써왔고 소설은 쓴 지 얼마 안 됐어요.” (2022.05.18)


소설가가 되기 전에 나는 논픽션 작가가 되고 싶었다. 언제부터 글을 썼는지 질문을 종종 받는데 답은 이렇다. “글은 아주 어릴 때부터 써왔고 소설은 쓴 지 얼마 안 됐어요.” 소설가가 된 건 정말이지 생각해본 적 없었던 갑작스러운 경로 전환이었다. 하지만 그전에도 나는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글쓰기에 있어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여덟 살 때 공책에 또박또박 적어둔 「거울」이라는 제목의 짤막한 동시에 대한 것이다. 어떤 내용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 거울 시가 엄마와 아빠, 공부방 선생님, 그리고 엄마의 지인들에게 몹시 큰 감명을 주었던 건 기억한다. 우리 애가 천재라고 호들갑을 떠는 건 세상 부모님들이 다 그렇다지만, 그런 사실은 감쪽같이 몰랐던 나는 그저 칭찬을 계속 듣고 싶었을 뿐이다. 그게 나의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주로 그 나이에 일상에서 접하던 사물들, 포스트잇이니 연필이니 하는 것들이 소재였다. 사물을 들여다보다 낯선 특징을 발견하면 그걸로 시를 썼다. 이를테면 연필은 깎아서 쓰는 것이지만, 실제로 ‘쓰이는’ 부분은 흑연 심뿐이고 나무 테두리는 지지하는 역할만 하다가 떨어져 나간다든가 하는. 글쓰기는 즐거웠고 어른들의 칭찬과 관심은 계속 이어졌다. 인터넷 카페나 웹사이트의 ‘시 창작’ 게시판 같은 데에도 올려서 댓글을 받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글쓰기가 관심을 얻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굉장히 실용적인 기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초등학생 고학년 때부터인가, 갑자기 학교에서 열리던 양성평등 글짓기 대회니 통일 글짓기 대회니 하는 행사에서 부상으로 도서상품권을 주기 시작했다. 상장만 줄 때는 시큰둥했지만, 상품권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모든 글짓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겠다는 열의를 불태웠다. 받은 도서상품권으로는 게임 ‘바람의나라’ 정액제 이용권을 사고 ‘던전앤파이터’ 캐시를 충전했다. 뿌듯했다. 내 손으로 내가 쓸 돈을 벌다니, 어른이 된 기분이 이런 걸까.

마침 시대는 글쓰기가 훌륭한 학생의 덕목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툭하면 교내 글쓰기 대회가 열렸고, 논술이 중요하다며 서술형 답안을 강조하더니, 기어이 입시전형까지 바뀌고는 갑자기 자기소개서가 입시의 필수 서류로 등장했다. 나는 고3이 되자마자 자기소개서 쓰기에만 몰두한 끝에 자기소개서의 전문가로 거듭나서, 몇 달 뒤에는 같은 반 친구들의 자기소개서를 온종일 봐주게 되었다. 문장을 다듬고, 문단 순서를 바꾸고, ‘펀치라인’이 될 소제목을 붙이고, 이 질문에 어울리는 적당한 경험을 떠올려보라며 길게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어차피 입시철이 시작되며 공부는 뒷전이 된 터라, 책상 한편에 오픈한 상담소 운영은 게임만큼이나 재미있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실용 글쓰기의 덕을 톡톡히 봤다. 부족한 생활비를 보충하기 위해 온갖 공모전과 해외탐방 기획서, 장학지원 자기소개서 따위를 끊임없이 썼다. 하필이면 대학생들의 ‘스펙 경쟁’이 화두가 되던 시기여서 그랬는지, 자잘한 일거리는 계속 있었다. 대학생의 글을 실어주는 매체에 원고를 보내서 십만 원, 이십만 원씩 하는 원고료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글쓰기의 실용성을 체감하면서도, 한편으로 나는 늘 다른 글을 쓰고 싶다는 갈망을 품고 있었다. 나에게 실질적 이득을 가져다주는 글 말고도, 누구나 읽고 감탄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유용한 글이 아니라 좋은 글을 쓰고 싶었다. 마음을 움직이고, 충격을 주고, 새로운 세계로 발을 내딛게 하는 글을. 그중에서도 특히 과학 논픽션을 쓰고 싶었는데, 그에 앞서 청소년 시절의 나를 과학으로 이끌었던, 아득하고 아름답고 경이로운 글들이 있었다.

과학자들의 전기나 자서전에는 어릴 때부터 연못으로 나가 개구리와 벌레를 관찰했다든지, 아니면 화학실험에 한참 빠져 있었다든지 하는 이야기가 흔하지만 나는 그와 달리 매우 정적인 방법으로 과학에 입문했다. 바로 책이었다. 재미있게도 약속이라도 한 듯 대부분 검은색 하드커버를 입고 사백 페이지, 오백 페이지를 가뿐히 넘기는 과학책들. 『코스모스』『창백한 푸른 점』 같은 책들은 물론이고 지금은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는 『엘러건트 유니버스』『평행우주』『눈먼 시계공』『거의 모든 것의 역사』 같은 책을 통해 과학을 만났다.

그런 책들이 정말로 과학을 처음 만나는 적절한 방법인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있지만, 그럼에도 문자의 세계가 나를 물질의 세계로 데려다주었다는 사실을 늘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 같다. 나에게 읽고 쓰는 세계와 과학의 세계는 처음부터 분리 가능한 영역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과학에 관한 논픽션을 쓰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생각은 서서히 시험에 직면했는데, 논픽션 작가가 되는 현실적인 경로를 찾지 못해서였다.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과학 논픽션 작가로 이름을 알린 사람들을 대강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과학 전공자가 아니거나 연구자 출신이 아닌, 자신의 전문분야 바깥의 여러 소재를 취재와 문헌조사를 통해 다루는 작가들. 신문, 매거진, 방송 등으로 경력을 시작한 저널리스트 출신이 많지만 그 밖에도 배경은 다양한 편이다. 메리 로치, 다이앤 애커먼, 룰루 밀러 같은 작가들이다. 한편 좀 더 고전적인 경로로는, 연구자 출신이거나 현직 연구자로서 자신이 몸담아온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논픽션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칼 세이건이나 올리버 색스와 같은 잘 알려진 작가들을 포함해 과학자들이 연구분야에 대한 대중적인 책을 쓰는 경우는 많았고,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느슨한 분류여서 여기 맞지 않는 다른 사례들을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는데, 이를테면 해양생물학자로 일했던 레이첼 카슨은 자신의 전문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바다에 관한 논픽션 『우리를 둘러싼 바다』로 처음 명성을 얻었지만, 이후에는 훨씬 확장된 영역을 다루면서 화학물질이 지구 생태계와 생명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사 년 간의 치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침묵의 봄』을 썼다.

아무튼 이런 이야기를 한 이유는, 정리하면 과학 논픽션 작가가 되는 경로는 매우 다양하고 과학자만 과학 논픽션을 쓰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당연한 말인 것 같은데도 예전의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내 책장에 꽂힌 두툼한 책들, 내가 동경했던 그 책들은 대부분 과학자들이 쓴 책이었고, 심지어 연구와 학술적 업적으로도 이름을 알린 과학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과학 논픽션을 쓰기 위한 필요조건이 과학자가 되는 일인 줄로 알고 있었다. 현직이 아니어도 최소한 연구 경험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중대한 오해를 비롯해, 여러 가지 이유로 논픽션 작가가 되겠다는 결심은 흐지부지되어갔다. 일단 나는 훌륭한 과학자가 될 수 없었다. 연구에는 재능이 없었다. 탁월한 전문가로서 전문분야에 관한 멋진 글을 쓴다는 당초의 계획은 탈락. 그렇다면 훌륭하지는 않은 보통의 연구원이 되거나 전공과 크게 관련 없는 직업을 구해서 기회가 되면 겸업으로 글을 쓰는 방법이 있을 텐데, 그나마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기회를 기다리다 글쓰기를 손에서 놓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나중에는 방송이나 언론에서 일하며 과학을 다루는 사람들, 드물지만 전업 저술가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지만 기자로 일할 자신은 전혀 없었고, 전업 저술가로 살아남을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무엇보다 과학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복합적으로 변한 것도 있었다. 나를 이 세계로 초대한 과학책들은 열정과 호기심, 순수한 경이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실제 과학은 그렇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실험, 행정업무,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포함해 반복되는 잡다한 일들,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상황들. 그 안에도 즐거움과 기쁨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달랐다. 여전히 과학이 좋았지만,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 고민에 빠져 있던 시기, 새로운 길이 눈앞에 나타났다. SF 공모전에 냈던 두 편의 소설이 수상 소식을 가져왔다. 기사가 크게 나서 장르 독자들 사이에서 화제도 되었다. 대학원 졸업 학기, 진로를 결정해야 할 무렵이었다. 마땅한 길을 찾지 못했던 나는, 이왕 주목받는 행운을 누린 김에 딱 일 년만 전업 작가로 살아보자는 뜬금없는 결정을 내렸다. 소설 쓰기는 즐거움과 현실 도피를 위해 시작한 취미였고, 적성에 잘 맞는다고 느꼈지만 그게 내 직업이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 없었다. 하지만 다시 없을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얼떨결에 소설가로 데뷔한 이후, 기한이 정해진 전업 작가의 삶을 연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과정에서 종종 서평, 에세이, 칼럼을 쓸 기회가 생겼고, 즐거웠지만, 어디까지나 ‘본업’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논픽션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무의식 아래로 서서히 가라앉았다. 한 종류의 글을 써서 알려지면 다른 종류의 글에도 도전할 기회가 생길 테니, 언젠가 논픽션도 써볼 수 있겠지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게 아주 나중의 일이 될 거라고 여기면서.

2018년 12월, 한 통의 메일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메일은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의 김원영 저자로부터 온 것이었다. 그해 여름, 나는 그 책을 읽고 몹시 들뜬 나머지 평소 잘 가지도 않는 저자 북토크까지 찾아가고, 괜히 질문도 하고, 깜빡 놓고 온 책을 새로 사서 사인도 받으며, 지금까지의 점잖았던 독자 인생에서 최대치의 호들갑을 떨고 온 경험이 있었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은 장애 정체성과 평등, 존엄에 관한 논픽션으로, 그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기는 어렵지만 책을 덮고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 분명히 떠오른다. ‘와, 언젠가 이런 글을 꼭 써보고 싶다.’ 그런데 그 책을 쓴 작가에게 협업 제안을 받다니, 이게 성덕이라는 건가.

당장 카카오톡을 열어 오랜 친구이자 장애-기술 연구자이자 북토크에도 함께 갔던 K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직 같이하겠다고 메일 답장을 보내지도 않았으면서, 어떤 내용을 쓸 것인지, 어떻게 자료조사를 할 것인지 다음 달에 책이 나올 것처럼 수선을 떨었다. 신난 내 얘기를 들어주던 K는 한참 뒤에 물었다. “언니, 근데 정확히 제안 내용이 뭐야?” 어, 그러게. 제안이 뭐였더라…….

처음 김원영 저자에게서 온 제안은 “서로 다른 위치에 놓여 있지만 동시에 장애라는 소수성을 공유하는 두 사람의 시차를 드러내는” 글을 쓰자는 내용이었다. 성별과 연령, 전공, 직업이 모두 다르지만 장애라는 공통점이 있는, 그러나 그 역시도 청각장애와 지체장애라는 다른 경험으로 나뉘는 우리 두 사람의 관점 차이가 흥미로울 것이라는 이야기였는데, 다룰 주제는 아직 구체화되지 않아 여러 방향으로 열려 있었다.

하지만 다음 메일을 몇 차례 주고 받으면서 우리의 관심사는 ‘포스트휴먼과 장애’라는 주제로 빠르게 좁혀졌다. 마침 당시 나도 인지과학, 로봇공학과 신경공학, 유전학과 같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장애를 다루는 방식에 비판적인 관심이 있었고, 김원영 저자는 ‘만약 미래에 기술과 의학의 발전으로 장애가 소거되는 사회가 도래한다면, 장애 정체성과 장애의 경험이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라는 주제를 오래전부터 고민 중이었다. 포스트휴머니즘과 몸, 장애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사이보그-되기’라는 키워드로 모였고, 단행본 작업을 하기 전 주간지에 연재를 하며 이야기를 다듬어보자는 계획까지 막힘없이 진행되었다.

메일을 주고받다보니 감이 왔다. 이 책은 경험만으로는 결코 쓸 수 없을 것이라고. 책의 성격은 에세이보다 논픽션에 가까울 것이다. 각자의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바깥에서 가져와 채워야 할 부분이 훨씬 많았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 작가의 경험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례와 논증, 학술적 근거를 들어 이야기를 확장하는, 교양서와 학술서의 사이쯤 있는 책인 것처럼, 우리가 논의하던 책도 그런 특징을 지니게 될 수 있었다.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무척 들뜨기 시작했다. 이렇게 빨리 논픽션에 도전할 기회가 찾아오다니. 과학기술과 장애, 포스트휴먼, 사이보그, 미래의 장애 정체성…… 이런 낯선 주제들로 독자들에게 여러 감정과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물론 이 책은 과학기술을 직간접적으로 다룰 뿐 ‘과학책’은 아니지만, 동시에 이것 역시 내가 오래전부터 바라왔던 일이기도 했다. 독자들을 낯선 세계로 초청하고, 마음을 움직이고, 멈춰서게 만드는 글을 쓰는 것.

다만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내가 이 주제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거였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저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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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초엽

소설가. 1993년생. 포스텍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생화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쓴 책으로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원통 안의 소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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