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쏟던 마음, 이제 당신을 위해 써라
『예민한 너를 위한 까칠한 심리학』 조우관 저자 인터뷰
『예민한 너를 위한 까칠한 심리학』의 저자는 “둔감한 사람이 둔감한 대로 행복하다면 예민한 사람은 예민한 대로 행복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2022.05.13)
예민한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받아도, 무례한 간섭과 평가를 받아도 괜찮은 척하며 웃어넘긴다. 게다가 자신을 억누르거나 바꾸려고 애쓴다. 이들은 타인과의 적정선을 함부로 넘지 않고 잘 지키며 사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는 타박을 받는다. 그래서 무작정 자신의 예민함만 탓하며 다스리려고 하다 보니 오히려 자신감이 떨어지고 인간관계에서도 상처받는 일이 많아진다.
『예민한 너를 위한 까칠한 심리학』의 저자는 “둔감한 사람이 둔감한 대로 행복하다면 예민한 사람은 예민한 대로 행복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저자 또한 한때 모든 문제의 원인이 예민한 자신의 탓인지 의심하며 상처받는 시간을 보냈지만 심리학을 통해 비로소 자신과 타인의 차이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한다. 심리학이 인생의 정답을 주지는 못해도 장애물을 넘게 해 줄 수 있다는 저자를 서면으로 만나 보았다.
제목에서 말하는 ‘까칠한 심리학’은 어떤 건가요?
저는 누구나 예민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예민한 이유와 대상 혹은 상황이 서로 다른 것뿐이지요. 그중 어떤 예민함은 소수이며, 어떤 예민함은 다수에 속할 때가 있죠. 그래서 예민하다고 평가받고 심지어 비난을 받는 사람들은 소수의 예민함을 가진 사람일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다수에 속하기 위해서 자신이 예민함을 숨길 때도 많습니다. 누군가가 이의를 제기하면 사실은 자기도 무척이나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욕구와 마음이 있으면서도 침묵하는 다수에 끼는 선택을 하죠. 다수로부터 예민한 네가 문제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은 자기 보호의 발로인 것이죠.
어쩌면 자신의 예민함을 기꺼이 노출하는 사람들은 용기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어요. 까칠한 심리학은 예민하지만 예민해서 상처받은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그를 꺼내든 사람들을 위한 연대의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까칠하고도 현실적인 심리학적 이야기들로 예민한 성향과 기질 때문에 상처받아 좌절하고 공격당하는 이들을 대신 방어해 주고 싶습니다.
10여년 간 직업 상담사로 일하시다가 심리 상담사로 새로운 경력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직업 상담사로 일하게 된 것도, 심리학을 비롯하여 상담학으로 이어진 공부를 하게 된 것도 모두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어요. 그리고 거기에는 제 자신의 어려움과 힘듦이 동시에 들어 있기도 한 것이었지요. 오랜 시간 고시 공부를 했었는데 제 자신의 직업의 세계에 존재하는 직업들이란 열 개가 채 넘지 않았었어요. 그 가운데에서 선택할 수 있는 직업도 한정적이었지만 그것을 저의 성향 및 적성과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도 애매모호했지요. 실제로 현장에서 여러 구직자와 만나면서 단순히 그들이 직업을 선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한계를 비롯하여 심리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어요.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심리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기 때문에 직업의 세계도 좁은 것이었지요. 어린 시절부터 부모를 비롯하여 몇몇 주요 어른들로부터 부여받아 왔던 진로 및 직업의 가치관이 인생의 가치관과 자기 자신의 가치관의 밑바탕을 이룬다는 것이죠. 이를 테면 의사나 변호사가 되는 것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라는 사명감과 메시지를 받은 아이들은 의사나 변호사가 된 자기 자신만을 진짜 자기로 받아들일 수 있을 거예요. 그 외의 직업들은 자신의 능력과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 없는 것이 돼버리죠. 학벌 신화도 결국은 이러한 주입된 직업에 근거한 것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그 직업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자살도 마다하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고시촌에서 해마다 고시에 낙방한 사람들 중 자살한 이들이 나온 것도 고시에 합격하지 못하고 그 직업을 타이틀로 달지 못한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할 가치조차 없다는 잘못된 신념의 결과물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상화된 자기와 현실의 자기 사이의 갭을 줄일 수 없어서 심리적 부적응에 이어 자신을 해치는 일까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많은 청년뿐만 아니라 기성세대도 직업에서의 실패를 인생의 실패로 여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어찌 보면 직업 상담 이전에 심리 상담이 필요한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담자들에게 직업 상담과 동시에 심리 상담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은 내담자들에게도 상당히 도움이 되는 상담의 접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심리학이 인생의 정답을 주지는 못해도 장애물을 넘게 해 줄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심리학은 어떤 위로가 될까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심리학자인 칼 로저스는 상담이란 내담자들 앞에 놓인 장애물을 치워 주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장애물만 치워 주면 내담자들은 이미 자기 안에 있는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문제가 생기기 이전부터 자기 안에 답이 있지만 답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장애물 뒤의 진짜 자신의 욕구,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리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장애물 너머에 해답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만으로도 상처받은 사람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요. 심리학이 던져 주는 도전과 직면을 통해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상담자들의 도움을 통해 나 혼자서는 도저히 치울 수 없었던 장애물을 치울 수 있다는 가능성은 충분히 희망이 되어 줄 것입니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저자 본인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제 과거, 저의 감정 등을 이야기하는 것에 주저하는 것이 많이 사라졌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강해져야 한다는 압박감과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이야기해 봐야 소용없는 것으로 여겼던 상처들이 사실은 나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그리고 도망치도록 내버려 두는 방법이 남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것도요. 내 이야기를 누군가가 경청해 준다는 것만으로도 정화가 되는데 공감받고 위로까지 받을 수 있는 기회까지 얻을 수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강력한 유익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무엇보다 심리학을 공부한 후 저는 저의 여러 모습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이러한 모습과 저러한 모습 사이에서 어떤 게 진짜 나의 모습인지 방황하기도 했고, 모자라 보이는 모습들은 숨기기도 했어요. 그런데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여러 자기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래서 더 이상 이러한 자기와 저러한 자기 사이에서도 오락가락하지 않게 되었고, 남들에게 들킬가 봐 염려하던 마음도 사라져 갔어요. 나의 어떤 모습도 소외시키지 않게 되면서 외로움에서도 많이 벗어나게 되었어요. 그것이 얼마나 큰 자유이며, 자기 자비인지요.
심리학을 배우면서 가장 도움이 되었던 심리 이론이 있을까요?
앞서 잠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칼 로저스와 그의 인간 중심 이론(치료)을 상담의 기본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저는 「로저스의 완전히 기능하는 사람에 대한 성경적 회복과 목회상담학적 적용」이라는 논문을 저술하기도 했습니다. 인간 중심 이론은 정신 분석과 행동 치료가 지배하던 1960년대에 심리 치료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지금까지도 상담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치료 이론 중 하나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성장과 자기 치유를 위한 충분한 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적절한 심리적 환경만 제공되면 언제든지 이러한 자원이 발현될 수 있다는 긍정적 인간관에 기초하며 치료의 핵심적 조건으로 진실성,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 공감적 이해를 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라면서 부모로부터, 교사로부터, 심지어 친구로부터 조건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좋은 성적을 받아야, 모범생이어야, 예뻐야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환경이 난무했고 그 과정에서 진짜 나는 적당히 숨기고, 다른 이의 반응에 반응해야 했고, 다른 이들의 욕구를 우선시해야 했죠. 그러다가 결국 어떤 모습이 진짜 자기의 모습인지조차 가물가물해져 버리고 맙니다. 로저스는 가치 조건화에서부터 이상적 자기와 현실적 자기의 괴리가 생기고 이것이 심리적 부적응의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생긴 그대로의 나로 사랑받는 삶, 그리하여 변형되지 않은 원형으로서의 나야말로 가장 존귀한 존재인 것이 아닐까요.
'인류가 만든 가장 최악의 말은 정상이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문득 우울한 자신의 모습을 활기찬 모습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내담자를 보면서 ‘인간이 우울하면 안 되는 것인가’라는 의문에 봉착했습니다. 왜 굳이 우울한 나를 활기차게 만들어야 할까. 물론 우울한 나보다는 활기찬 나가 에너지 넘치고 밝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환영받을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지요. 저는 이 우울이란 감정, 우리가 불편해 마지않는 좌절, 낙담 이러한 것들이 동물과 인간을 구별 짓는 그리하여 인간을 더 발달시키고 인류를 발전시킨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우울 증상을 가진 사람을 향해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며 평가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들의 무리로 끌어들이려는 각고의 겁박과 노력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마치 우울한 사람은 비정상적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에요.
정상이라는 말은 누구의 기준으로 만들어졌을까요? 우울과 불안의 수준이 어느 정도이면 정상과 비정상(이상)으로 나눌 수 있을까요? 물론 심리검사나 DSM-5상에서 심리적 부적응 상태가 병리적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개개인을 더 적응적으로 자신의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지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정상과 비정상의 잣대로 누군가를 낙인 찍고, 구별 짓고 심지어 무리에서 내쫓는 용도는 아니라는 거지요. ‘인류가 만든 최악의 말은 정상이다’라는 말은 아마도 이런 의미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한 인간 안에는 지극히 이해하기 힘든 비정상적인 부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쩡한 정상적인 부분이 동시에 있고, 어떤 누구도 한순간에 이상하다는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인간 모두가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굳이 정상과 이상을 구분하고자 한다면 그 사이는 그리 멀지 않다는 얘기이지요.
독자들께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많은 이가 예민한 자신을 바꾸고 싶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저는 사실 그러한 모습이 예민한 것보다 더 안타깝습니다. 저 역시도 예민한 모습을 바꾸려 애쓰고,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저는 전혀 자유롭지 않았고, 자꾸만 다른 사람으로 사는 것만 같았죠. 누가 예민하다고 말하면 펄쩍 뒷면서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말이에요. 자꾸 털털하게 나를 꾸미고 쿨하게 보이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어느새 저는 쉬운 사람이 되었더라고요. 속에서 상처만 자꾸 쌓여 가더군요. 그래서 그냥 예민한 나를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인정하고 났더니, 더 이상 다른 이와 저의 예민함에 대해 토론하지 않아도 되었죠.
예민하다는 것은 성격이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누군가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고, 주변의 사정들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내 눈과 귀에 다 담기는 지극히 인간적인 특성이지요. 이것부터 인정한다면 진정한 나의 모습으로 사는 데 거리낌이 없어지고 굳이 나를 바꾸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들지 않을 거예요. 저의 경험이니 한번 믿어 보셔도 밑져야 본전 아니겠습니까.
*조우관 더커리어스쿨(The Career School) 및 미인컴퍼니(Me-in Company) 대표. 금천구청, 특성화고등하교, 서울여자대학교 등에서 10여 년 간 진로 및 직업 상담사로 일했다. 이후 사람들의 심리를 깊이 이해하고 이를 상담에 적용하고자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공부했으며, HD행복연구소에서 감정을 주제로 수련 및 연구하고 있다. 현재 대학 진학을 앞둔 고등학생과 취업 준비생에게 자기소개서 작성, 진로 및 취업 상담과 컨설팅을 하는 진로 전문가이자 개개인이 자신의 감정을 직면함으로써 자신만의 강점을 발견하도록 돕는 감정 코칭 전문가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밖에 연구원을 양성하고 ‘작아진 나에게 날개 달아 주기’ 등의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큰 두 가지 동력은 일과 감정이라고 믿고 있으며, 이에 대한 집필과 강연을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소란한 감정에 대처하는 자세』, 『엄마 말고 나로 살기』, 『일 좀 하는 언니들』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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