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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정의 K열 19번] 엄마를 위로할 수 있을까 - <앵커>와 <엄마>

영화 <앵커>와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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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들은 그 과정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과거의 망령과 마주해야만 하는, 어머니들의 억울함에 대한 일종의 제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022.05.12)

영화 <앵커>의 한 장면


손희정의 K열 19번 : 코로나와 OTT의 시대에도 극장에 대한 사랑은 계속된다. 극장에서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즐거움과 시시함이 있다고 믿는다. 'K열 19번'은 우리가 언젠가 한 번 쯤은 앉아보았을 좌석이다. 극장 개봉 영화를 소개하는 지면에 딱 어울리는 제목 아닌가.


* 이 글은 정지연 감독의 <앵커>(2022)와 아이리스 심 감독의 <엄마>(2022)의 줄거리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엄마에게 사로잡힌 두 딸, 세라와 아만다

정세라(천우희)는 아홉시 뉴스를 진행하는 방송국 간판 앵커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생방을 준비하던 그에게 제보 전화가 한 통 걸려온다. 벌벌 떨며 자신이 살해당할 거라고 말하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 세라는 장난 전화로 치부하고 전화를 끊는다. 그날 밤, 세라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엄마 이소정(이혜영)은 “언제까지 남이 적어주는 기사나 읽고 있을 거냐, 직접 취재해서 진짜 앵커가 되라”며 세라의 등을 떠민다. 그렇게 찾아간 집에서 세라는 제보자 미소(박세현)와 어린 딸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이후로 세라의 눈앞에 자꾸만 미소의 유령이 등장하고, 세라는 정신적으로 불안해진다. 그렇게 기이한 일들이 생기면서 완벽했던 세라의 커리어에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딸의 성공만을 바라보며 평생을 헌신한 소정은 세라가 흔들리는 것을 견딜 수가 없다. 여전히 탯줄로 딸을 휘감고 있기라도 한 듯이 세라를 조정하려는 소정. 세라는 그런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한국 서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화 <앵커>의 이야기다. 이제 대서양 건너 편 미국의 외딴 시골 마을로 시선을 옮겨보자. 아만다(산드라 오)는 딸 크리스(피벨 스튜어트)와 양봉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벌꿀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모녀는 동네에서 소매업을 하는 대니(더모트 멀로니) 말고는 아무하고도 교류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둘만의 안온한 둥지에서 서로 끈끈하게 연결된 채로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만다의 삼촌이 시골집으로 찾아온다. “네 엄마는 죽기 전까지 너를 기다렸는데, 너는 네 아빠처럼 도망쳐서 돌아오지 않았지. 이제 엄마의 한이 너와 함께 할 거다.” 삼촌은 엄마의 유골함과 함께 저주의 말을 남기고 떠난다. 그리고 바로 그 날, 아만다는 크리스가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살면서 한 번도 떨어져 지내 본 적이 없는 딸이 떠나려한다니, 아만다는 복잡한 심경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때마침 엄마의 망령이 아만다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너처럼 배은망덕한 계집이 또 있구나. 저 애가 떠나지 못하게 막아야 해!” 엄마는 아만다에게 했던 것처럼 크리스 역시 가둬 두려고 한다. 그런데 크리스가 집을 떠나는 것 때문에 불안해진 것은 과연 누구일까? 정말로 엄마 박순이의 망령일까, 아니면 아만다 자신일까.


영화 <엄마>의 한 장면

삶이 고통스러웠던 두 엄마, 이소정과 박순이

<엄마>를 보면서 <앵커>가 떠올랐던 건 물론 두 영화가 모두 자식 위에 군림하면서 “내가 낳았으니 내가 거두겠다”며 달려드는 ‘지배하는 어머니’를 공포의 주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박순이와 이소정은 서로 닮았다. 둘 다 자신이 겪은 고통을 딸의 탓으로 돌리며, 바로 그 이유에서 딸을 소유하고 뜻대로 콘트롤 할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엔 물론 끔찍한 학대가 뒤따랐다. 하지만 이 외에도 두 영화가 공유하고 있는 어떤 공통된 감각이 있다. 그건 엄마와 딸 사이의 분리불안이다.

두 영화에 등장하는 엄마는 단순히 딸을 지배하기 때문에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딸의 정체성의 경계를 침범해 들어와 딸과 하나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공포스럽다. <앵커>의 반전은 이소정이 이미 죽은 지 오래라는 사실로부터 비롯된다. 자신 때문에 자살한 엄마를 떠나보낼 수 없었던 세라는 그를 자기 안으로 흡수해 버렸다. 그리고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겪으며 엄마와 딸 1인 2역을 하면서 사람들을 해친다. 그렇다면 아만다는 어떨까? 딸 크리스에 대한 집착을 생각했을 때 박순이의 망령은 오히려 아만다의 마음이 만들어낸 변명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작품은 이소정과 박순이의 ‘괴물스러운 모성’을 원초적인 것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그들에게도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이유가 있다. 이소정은 과거 성공한 앵커를 꿈꾸었던 야망 있는 여성이었다. 그러나 세라를 출산하고 ‘미혼모’가 되면서 그 꿈은 박살이 난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출산에는 끔찍한 낙인이 찍히던 시기. 그는 숨어 살면서 열성적으로 딸 세라를 키웠다. 하지만 뒤틀린 열정의 이면에는 깊은 좌절과 우울이 있었다. 박순이는 잘 나가던 한복 디자이너의 삶을 버리고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온 이민 1세대였다. 그러나 말도 통하지 않는 미국 땅에서 자신의 재능을 살릴 수 없었고, 소정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잃고 만다. 심지어 남편에게까지 버림받은 박순이에게 남은 건 어린 딸 아만다 뿐이었다.

여성으로부터 쉬이 공적 삶을 박탈하던 시대가 엄마의 폭력을 낳았고, 엄마의 폭력이 딸의 삶을 위협했다. 그리고 이제 중년으로 다가가고 있는 딸들은 엄마의 사정과 대면하게 된다. 다행히도 엄마의 위협에 ‘노’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을 다소간은 키운 상태로.


우리는 엄마를 위로할 수 있을까

영화의 끝, 세라와 아만다는 엄마의 폭력을 용서하진 않지만 엄마의 고통을 이해하고, 엄마의 뜻을 따르지는 않지만 엄마와 나름의 방식으로 화해한다. 한편으로 나에게 이 이야기들은 페미니즘 제 4물결의 시대를 살아가는 30-40대 여성들의 어떤 마음에 대한 알레고리로 다가오기도 했다. 우리는 역사에서 지워지고 폄하당했던 엄마의 시간, 엄마의 노동, 엄마의 이야기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에 존경과 감사를 표해왔지만, 다른 한편으로 엄마에게 강요되었던 희생하는 삶이란 우리를 이루고 있는 죄책감의 요체이기도 했다. 그에 대한 복잡한 인식이 호러의 양식으로 그려진다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영화들은 그 과정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과거의 망령과 마주해야만 하는, 어머니들의 억울함에 대한 일종의 제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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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손희정(문화평론가,『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저자)

문화평론가,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프로젝트38 연구원.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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