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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케이팝, 실천하는 아포칼립스 : 드림캐쳐의 가사
드림캐쳐가 바꾸는 케이팝의 미래
말해야 할 것을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고, 노래하고 싶은 것을 노래할 수 있고, 작은 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곳에 미래가 있다. 비단 케이팝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2022.05.11)
케이팝 아이돌에게 어떤 사안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 표명은 대부분 금기다. 이들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꼼꼼하고 미끄럽게 논란이 될만한 상황을 빠져나간다. 정치나 종교, 젠더처럼 누가 말해도 민감할 수밖에 없는 주제는 당연히 언급해서는 안 될 1순위고, 선거 날 투표소 포토라인엔 혹시나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는 오해를 방지하기 위한 검은 복장과 주먹이 넘실댄다. 연애와 관련된 언급은 이제는 서로 간의 모든 이해관계가 정리된 농담으로 수렴하고, 어젯밤 읽은 책이나 어떤 뉴스를 봤는지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 드러내야 한다. 아이돌은 어디까지나 중립적이며, 인류 보편의 사랑과 평화의 한가운데 위치해야만 한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가수와 대중과 미디어가 함께 조성한, 뒷맛이 개운하지만은 않은 풍경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어쩔 수 없이 아이돌이 부르는 음악에도 영향을 끼쳤다. 음악 외적인 부분에 이렇게 조심할 일이 많을진대 가수의 명함인 노래, 특히 노랫말의 표면이 거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솔로가 아닌 그룹 활동이 많다 보니 더욱 그랬다. 절대적인 그룹 숫자가 늘어나고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세계관을 갖춘 그룹이 많아지면서 다루는 주제는 다양해졌지만, 표현 방식은 갈수록 추상적인 쪽으로 흘러갔다. 덕분에 타고난 것보다 더 크고 멋진 대의를 상징하는 응원가나 승전가가 된 곡도 많지만, 노래의 진짜 의미를 찾기 위해 대중이 들여야 하는 품도 그만큼 늘어났다. 케이팝 팬들이 즐기는 대표적인 2차 콘텐츠인 가사나 뮤직비디오 해석은 이러한 흐름의 갈래 속에 만들어진 유행이다.
2020년, 여성 그룹 드림캐쳐가 발표한 첫 정규 앨범 <Dystopia : The Tree of Language>는 ‘디스토피아(Dystopia)’라는 새로운 여정의 시작을 알렸다. 모든 것이 부서지고 무너진 피폐한 세계. 디스토피아는 해당 세계관이 가진 특유의 드라마틱하고 어두운 이미지 때문에 수많은 아이돌 그룹이 꾸준히 사랑해 온 세계관이다. 2017년 지금의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한 후 줄곧 ‘악몽’을 내세워 온 그룹 색과 잘 어울리는 선택이라고 쉽게 결론짓고 시선을 옮기려는 찰나, 한 인터뷰가 눈에 들어왔다. 이들이 택한 디스토피아라는 단지 자욱한 안개 사이로 비장하게 걸어오는 멤버들의 그림자 한 컷을 따기 위해 세운 설정이 아니었다. 앨범 <Dystopia : The Tree of Language>에는 악플과 사이버불링, 흑백논리, 이것만이 진리라는 틀에 갇혀 삭막해져 가는 사회 등 ‘말’로 인해 벌어지는 인간 사회의 부조리가 곳곳에 담겨 있었다. 메탈과 하드록을 기반으로 한 드림캐쳐만의 독보적인 스타일은 그대로 이어가면서도 팝적 요소를 더욱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한 음악적 변화 속 그룹 방향을 단단히 잡아주는 믿음직한 변화의 한 축이었다.
뒤이은 미니앨범 <Dystopia : Lose Myself>를 통해 언어폭력과 무책임한 말들을 ‘검게 물든 언어의 나무’로 한 번 더 구체화한 이들은 2022년, 멸망과 대재앙을 뜻하는 ‘아포칼립스(Apocalypse)’로 돌아왔다. 이들이 꺼내든 첫 카드는 ‘환경 파괴’였다. 앨범의 부제인 ‘Save us’는 ‘Save Earth’를 연상시키며, 프랑스어로 ‘집’을 뜻하는 타이틀 곡 ‘MASION’이 칭하는 집은 우리의 하나뿐인 별 지구를 뜻했다. 이미지만 차용한 것이 아니다. 곡 내내 반복되는 정글과 남극을 지켜달라는 메시지는 물론 ‘이상하게 덥지? / 이 행성의 법칙 / 마치 말라가는 / 네 양심과 똑같지’ 같은 직설적 노랫말은 이들이 해당 주제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는 기초적 증명이었다.
이들은 노래 외에도 앨범 발매 후 ‘불필요한 콘센트 플러그 뽑기’, ‘일회용 봉투 대신 장바구니 사용하기’ 등 팬들과 함께할 수 있는 ‘세이브 어스 챌린지’를 열거나, 환경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학교 울타리 숲 조성 프로젝트’에 5천만 원을 기부하는 선행을 이어갔다. 이러한 드림캐쳐의 움직임은 최근 케이팝 팬들 사이 꾸준히 세를 넓혀가고 있는 각종 기후 행동과 궤를 함께하며 팬덤 외부에서도 좋은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 적당히 숨기고 감추는 것이 쿨해 보이는 세상에서 이런 직접적인 말과 행동이 어쩌면 조금 촌스러워 보일지도 모르겠다. 스쳐 가는 콘셉트의 일환이나 일회성 이벤트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드림캐쳐의 이러한 목소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조심해서 나쁠 게 없다던 과거처럼, 말해야 할 것은 말해도 나쁘지 않다는 지금을 만들 수만 있다면, 그 중심에 무엇이 있든 무슨 상관일까 싶다. 말해야 할 것을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고, 노래하고 싶은 것을 노래할 수 있고, 작은 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곳에 미래가 있다. 비단 케이팝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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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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