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클래식] 세네카 『철학자의 위로』
<인문학 클래식> 2화
당신의 고통은, 그 고통에 뭔가 이유가 있다면, 당신 자신의 불행 때문인가요, 떠나간 아들의 불행 때문인가요? (2022.05.03)
<인문학 클래식>은 문학, 역사, 예술, 철학 분야 고전 중 필독서를 소개하는 시리즈입니다. 민음사의 노하우로 엄선한 고전들을 사전 연재로 만나 보세요. |
“위로는 위로하는 자의 의도가 아니라 위로받는 자의 마음으로부터 생겨난다.”
_이세운(서양고전학자)
이번에는 고대 로마 시대 철학자 세네카의 ‘위로3부작’ 가운데, 일부를 소개해 드립니다. 이 편지는 3년 전에 죽은 아들로 인해 슬픔에 빠진 마르키아라는 여인을 위로하는 글의 일부입니다.
당신의 고통은, 그 고통에 뭔가 이유가 있다면, 당신 자신의 불행 때문인가요, 떠나간 아들의 불행 때문인가요? 아들을 잃었다는 사실이 당신을 괴롭히는 건 아들로부터 아무런 즐거움도 얻지 못했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그가 오래 살았다면 더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인가요?
당신이 아무런 즐거움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 대답한다면, 당신은 자신의 상실을 더 견딜 만한 것으로 여길 수 있지요. 기쁨이든 행복이든 사람들은 얻지 못했던 것들을 그리워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런데 큰 즐거움을 얻었다 고백한다면, 그것을 빼앗겨서 슬퍼할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왔다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당신은 노동의 결실을 충분히 받았으니 말이에요.
새끼 동물들과 새들, 그리고 비슷한 작은 것들을 공들여 키우며 즐거움을 느끼는 이들이 보고 만지고 말 못하는 것들의 달콤한 애교에서 어떤 즐거움도 누리지 못한다면, 자식들을 양육하는 사람들에게 키움 자체가 키움의 결실이 되지는 못하겠지만요. 그러니 자식이 열심히 일해 당신에게 뭔가 가져오지 못했다 해도, 정성스럽게 당신을 보호해 주지 않았다 해도, 지혜롭게 조언해 주지 않았다 해도, 당신이 그를 가졌고 그를 사랑했다는 것 자체가 결실이지요.
“그래도 더 오래 살면서, 더 클 수 있었어요.” 하지만 아예 당신에게 오지 않은 것보다는 당신과 함께한 것이 낫잖아요. 오래 행복하지는 못한 경우와 아예 행복하지 못한 경우를 두고 더 만족스러운 쪽을 선택하라면, 떠나갈 행복이라도 아예 오지 않는 것보다 낫지요.
다음 두 경우는 어느 쪽이 나을까요? 순혈이 아니라서 그저 숫자로만 아들이라는 이름만 채울 자를 갖는 것과 당신 아들처럼 재능을 타고나 빨리 깨우치고 빨리 철이 들고, 빨리 결혼해서 빨리 아버지가 되고, 빨리 모든 직무에 헌신하여 빨리 제관이 되는 등 모든 것들을 그처럼 서둘러 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나을까요? 크면서 오래 지속되는 행복은 누구에게도 거의 오지 않아요. 천천히 오는 행운만이 오래 지속되고 끝까지 남는 법이지요. 불사의 신들은 당신에게 오랜 시간을 머무르는 아들을 준 것이 아니라, 오래 걸려야 만들어질 그런 아들을 즉각 준 것입니다.
당신이 절대로 이렇게 말할 수는 없어요. 신들이 당신을 아들의 기쁨을 누리도록 허락되지 않은 사람으로 골랐다고 말이지요.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들에게 눈을 돌려 보세요. 어디서든 더 큰 일을 겪은 이들을 만나게 될 거예요. 위대한 지도자들도 그런 일들을 겪었고, 왕들도 그랬습니다.
(…)
정말이지 눈물 흘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당신에게 보여 주면 당신이 자신의 일을 더 가볍게 지나갈 거라 생각할 정도로 당신 성품을 낮게 평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불행한 사람들이 많다며 위로하는 건 질 낮은 위로니까요. 그래도 몇몇 사람들 이야기를 할 텐데, 그런 일이 사람들에게 종종 일어난다는 것을 아시라는 것이 아니라—어차피 죽을 일을 예로 든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니까요.—가혹한 일들을 평온하게 견디며 가벼이 여긴 많은 이들이 있었음을 아시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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