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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다솔의 적당한 실례] 얼굴과 이야기

<월간 채널예스> 2022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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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쓰고, 읽고, 듣고, 말한 문장은 결코 쉽게 잊을 수 없다는 걸 그들은 알까. 이 사람만의 슬픔과 비애, 쓸쓸함과 용기 그리고 사랑이 이 사람의 얼굴만큼이나 마음속 깊이 각인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보고, 잘 들은 것들은 잘 사라지지 않으니까. 돌아가는 마음속에 내가 아닌 얼굴들로 가득하다. (2022.05.03)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인가요?”는 나에게 가장 당황스러운 질문이다. 내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되묻는다. “그 작가는 처음 듣는 이름이네요. 무슨 책을 썼나요?”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은 유명하지 않다. 많은 독자층을 가지지도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책을 내지도 않았다. 그 작가는 나의 글방 동료다. 내 인생을 풍미한 작가는 도스토옙스키나 니체가 아니다. 십 대 시절 내내 매주 한 편씩 글을 들고 모여 앉았던 얼굴들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나를 키우고 채웠다. 그중 몇몇은 시간이 지나 책을 내고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으며 수만 명의 독자를 갖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렇지 않은 이들이 더 많다.

고백하자면 나는 얼굴을 모르는 작가를 깊이 사랑하지 못한다. 여전히 얼굴을 아는 사람의 글을 읽는 것이 가장 익숙하다. 책과 얼굴의 공통점은 마주 보아야 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닮았다. 그것을 함께 마주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특권이라는 사실을 훗날에야 알았다. 누군가의 습작과 초고를 가장 먼저 목격하고, 태어나는 모든 저작을 빠짐없이 읽을 기회가 흔치 않다는 것도 몰랐다. 그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하나도 모르고 겪었다. 일 년에 책 한 권 읽기는 어려웠지만 그들의 글을 읽기는 늘 쉬웠다. 사랑하는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처럼. 가만히 내리는 눈을 맞는 것처럼. 그것이 십 대 시절 나의 유일한 독서였다.

그러니까 내가 글방을 열게 된 것은 순전히 내 독서 부족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시금 나를 읽게 만들려는, 낯선 얼굴과 새로운 이야기에 빠져들려는 지극히 이기적인 욕망 말이다. 그런고로 글방의 조건은 단 한 가지, ‘글을 써 오는 것’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나는 말했다. “못 썼으면 안 오시면 됩니다.” 목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혹시 시간이 부족해서 글을 완성하지 못했다, 그럼 번거롭게 나올 필요 없이 집에 계시면 되겠습니다.” 말이 날아간 자리에는 묵직한 침묵이 자리했다. 사람들은 대답도 없이 짐을 챙겨 ‘스스삭삭’ 사라졌다. 마스크에 가려진 얼굴에 어떤 표정이 어렸을지 모를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했다. 아무도 안 오면 어떡하지…. 결국 계획에도 없던 편지를 써 내렸다. “당신의 이야기를, 몹시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 같은 시각,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살아남은 자들이었다.

사실 이것은 필시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곳에 오는 모두를 한 주 동안 가장 괴롭힌 일이 바로 그것이었을 테니까. 나는 그 얼굴들이 얼마나 반갑던지 한 명 한 명 얼싸안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다. 커다란 책상에 둘러앉은 얼굴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은 도대체 어느 우주를 떠돌다 이 시공간에 불시착한 걸까. 그 운명과도 같은 마법에 사유하는 것은 길지 않아야만 했다. 겉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서로의 글을 읽기 시작해야 했으니까.

누구에게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막상 마이크를 쥐어주면 할 말이 없는 사람은 없다. 살면서 깨달은 진리다. 조금 부끄럽고 서투를 뿐, 모두가 말할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어느 하나도 같은 이야기가 없었다. 누군가 말했다. 자신이 쓴 글에 이름을 달고 제목을 지은 것이 난생처음이었다고, 자기소개서나 리포트나 일기가 아닌 글은 써볼 생각도 못 했다고. 무슨 이야기든 좋으니 해보라는 말을 들어본 이는 드물었다. 난생처음 홀로 무대에 오른 기분이었다.

곧잘 숙연해졌다. 감히 내가 이런 소중한 이야기를 읽어도 될까. 이렇게 솔직하고 내밀한 마음에 대해 들어도 될까. 우리는 이제 막 만났을 뿐인데. 이렇게 귀여운 사람이 이런 위엄 있는 문장을 쓰다니. 이렇게 수줍은 사람이 이런 용기 있는 이야기를 쓰다니. 이렇게 당당한 사람이 이토록 쓸쓸한 장면을 말하다니. 이렇게 낯선 이의 삶 속에 나와 쏙 닮은 마음이 있다니. 밑줄 긋는 연필 소리, 종이를 넘기는 소리 사이로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온 웃음, 소리 없는 감탄, 애처로움의 탄성 같은 것들이 조그맣게 울렸다가 천장을 돌아 사라졌다.

이상한 일을 겪었다. 글을 한 편 읽었을 뿐인데 하루를 살다 문득 멈춰 섰다. 누군가의 글에 적혀 있던 새의 노랫소리나 케이크의 모양새, 지하철 너머로 본 풍경, 익숙한 이불 냄새, 찡그린 미간이 날아들었다. 문장이 일상 속에 넘실댔다.

어느새 문장만 읽고도 누구의 글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날이 갈수록 서로를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아졌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그렇게 가져온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른다는 듯 반짝였다. 글에 대해 말하는 시간에는 심장이 콩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장육부가 쫄깃, 조여드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말한다. “자려고 누워서 글에 대해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려보는 시간이 행복해요.”

이곳에서 쓰고, 읽고, 듣고, 말한 문장은 결코 쉽게 잊을 수 없다는 걸 그들은 알까. 이 사람만의 슬픔과 비애, 쓸쓸함과 용기 그리고 사랑이 이 사람의 얼굴만큼이나 마음속 깊이 각인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보고, 잘 들은 것들은 잘 사라지지 않으니까. 돌아가는 마음속에 내가 아닌 얼굴들로 가득하다.

농담처럼 말한다. 언제든 이야기를 가져갈 공간이 있다는 것은 누군가를 죽음에서 구할 수도 있을 것 같지 않으냐고. 그러니 나는 말한다. 어느 때보다도 신성한 마음으로, 마치 아주 쉬운 부탁을 하는 것처럼. “계속 이야기해 주세요.” 지치지 않고 까불거린다. “이곳에 오기 위해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한 가지, 바로 글을 쓰는 것이지요.” 이야기를 쓰는 자, 이야기를 읽을 수 있을 것이며 이야기에 대해 말할 수 있을지니. 참으로 공평하고 재미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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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양다솔(작가)

글쓰기 소상공인. 에세이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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