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 전문의 반건호 “성인 ADHD는 양파 같은 질병”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하는가』
‘ADHD가 있으면 매사 집중하기가 힘들다’고 하는 오해가 있어요. 우리말로 ADHD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잖아요. 주의력결핍이라고 하니까 주의력이 없다고 오해하는 것 같아요. 사실은 주의력에는 문제가 없고, 주의력을 활용해야 될 때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거거든요. 실제로 집중을 잘해요. (2022.04.20)
긴 시간 동안 ADHD는 아동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최근 ‘성인 ADHD’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됐지만, 확인되지 않은 사실과 오해도 혼재되어 있다. 성인 ADHD의 증상과 진단, 치료 방법과 사례 등 믿을 수 있는 정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하는가』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오랜 진료,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성인 ADHD이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반건호 저자는 37년 동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일했으며, ADHD 전문가로서 한국형 ADHD 검사, 평가, 교육 도구를 개발했다. 국내 최초로 ‘성인 ADHD 교과서’를 발행했고, 2012년 ‘성인 ADHD 진료지침’을 발표했다. 현재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소아정신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최근 성인 ADHD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 것 같은데요.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도 드시나요?
그렇죠. 이론적으로는 성인 ADHD가 국내 전체 인구의 3~5% 정도거든요. 우리나라 성인 인구를 4천만 명이라고 가정하면 3%는 100만 명이 넘죠. 이론상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그러면 실제로 진료 받는 인구는 얼마나 되느냐 하면, 2020년에 성인 ADHD 진단 받은 사람이 6500명 정도였어요. 그나마 10년 전하고 비교하면 6배가 늘어난 거예요. 10년 전에는 1000명 정도 됐어요. 2016년에 성인 ADHD도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기 시작했는데, 보험 처리가 되니까 사람들이 진단을 받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진단 받은 사람의 숫자가 늘어난 건데, 어떻게 보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폭발적인 게 아니라 그동안은 몰랐다가 찾아내는 것뿐이죠.
처음 성인 ADHD 환자를 만나셨을 때의 이야기도 쓰셨어요. 30여년 전의 경험인데, 그때는 성인 ADHD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을 때였죠?
그렇죠. 이론들이 막 나올 때였고 구체적인 데이터가 없었거든요. 그리고 책에 쓴 것처럼, 그때 만났던 환자는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너무 많았어요. 고등학교 때는 학교에 안 가고 술 마시고 싸우고, 그게 문제가 돼서 입원했었고요. 성인이 되고 나서는 조현병 같은 증상이 나타나서 그걸 치료했었어요. 조현병이 그렇게 빨리 증상이 좋아지지 않는 병인데 많이 좋아졌어요.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죠. 조현병 치료하고, 알코올 중독 치료하고, 품행장애 치료하고, 우울증 치료하고, 그래도 문제가 계속 남으니까 그때 ADHD를 생각하게 됐어요.
환자의 학교생활기록부도 살펴보셨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쌓인 정보가 있어야 되는데 확인할 방법이 생활기록부 말고는 없었어요. 환자의 ‘궤적’을 보니까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로 갈수록 성적이 계속 떨어졌어요. 그런데 나중에 군대에 다녀와서 지방에 있는 2년제 대학을 갔다가 서울에 있는 좋은 4년제 대학으로 편입을 했거든요. 사람들이 처음에는 의심을 했어요. 이전에 거짓말도 하고 나쁜 짓도 했었으니까, 대학도 편법으로 간 거 아니냐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그 환자가 어렸을 때 지능 검사 했던 자료를 우리가 봤거든요. 지능이 굉장히 좋았어요. 그런데 왜 성적이 안 좋을까, 의아했죠. 그때는 성인 ADHD를 생각하지 않을 때라서 혹시 심한 우울증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 알코올 중독 때문일까, 어릴 때부터 술 담배를 해서 그런 걸까 생각했던 거예요. 그때 좋은 의사를 빨리 만났으면 조금 더 달라졌을지도 모르죠.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하는가』에서 성인 ADHD에 대한 오해, 편견, 거짓 정보들을 하나하나 짚어주셨는데요.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시는 건 무엇인가요?
‘ADHD는 평생 지속되는 병’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일부는 맞는 이야기예요. 환자의 절반 정도는 좋아져요. 그런데 책에서 소개한 ‘제이콥 클롬스트라’처럼 평생 지속되는 경우도 있어요. 제이콥은 58세에 ADHD 진단을 받았거든요. 그러니까 평생 지속되는 경우도 있는 게 사실인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환자와 가족 분들이 받아들이기 힘드시니까, 우리(의료진)가 하는 일에 방해가 되기도 해요. 제대로 일을 하기 어려워지거든요. 또 다른 걸로는 ‘ADHD가 있으면 매사 집중하기가 힘들다’고 하는 오해가 있어요. 우리말로 ADHD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잖아요. 주의력결핍이라고 하니까 주의력이 없다고 오해하는 것 같아요. 사실은 주의력에는 문제가 없고, 주의력을 활용해야 될 때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거거든요. 실제로 집중을 잘해요. 자신한테 필요한 일에는 집중을 잘하죠.
ADHD의 약물 치료 효과는 상당히 좋은 것 같아요.
좋죠, 효과가 뛰어납니다. 소아의 경우에는 이 말이 모든 환자한테 맞고, 성인은 그렇지 않은데요. 제가 책에서 ADHD는 ‘양파’ 같은 질병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치료가 잘 안 돼요. 알코올 중독이 있을 수도 있고, 우울증이 있을 수도 있고, 심한 경우는 조현병처럼 보이기도 하거든요. 소아는 양파 같지 않고 꺼풀이 하나밖에 없어서 약을 썼을 때 효과가 좋아요. 어른은 그게 안 되죠. 만약 우울증이 있으면 우울증 치료가 우선이에요. 그렇게 다른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성격적으로 굉장히 위축돼 있으면 치료가 어려운 것 같아요. (약물) 치료 효과가 좋은 건 틀림없어요.
63세에 성인 ADHD 진단을 받은 사례도 실려 있는데요. 이 분이 치료를 시작하신 뒤에 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었어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들리더라고요. 너무 놀라웠어요.”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환자들이 약물 치료에 대한 경험을 여러 가지로 이야기하는데, 흔히 아이들이 말하는 건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칭찬 받았어요’라는 거예요. ADHD 환자는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데, 공감이라는 건 말 그대로 뭔가를 공유한다는 거거든요. 엘리베이터를 탔다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떠들지 말아야 하고, 아는 사람이면 인사를 해야 하고, 혹시 저 사람이 나를 해치지는 않을까 경계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63세의 환자 분의 경우에는,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부터 ‘내리면 무엇을 할지’ 쫙 생각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전혀 공감이 될 수가 없죠. 옆 사람이 인사를 해도 못 알아들을 거예요. 그 상황에서의 주의력이 부족한 거죠. 자기 머릿속에 있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평생을 살아오신 거예요. 앞에서 제이콥 클롬스트라 이야기를 했는데, 그 사람이 쓴 책의 이름이 『불꽃놀이』예요. 계속 (머릿속에서) 불꽃이 터지는 거죠. 하고 싶은 거, 해야 되는 거, 그런 것들이 계속 생각나는 거예요. 다른 사람한테 전혀 집중이 안 되고요. 특히 공부할 때는 더 하겠죠.
책에 실린 다양한 사례들을 보면, 나의 자녀나 배우자가 ADHD라는 사실을 몰라서 오해가 깊어지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모르니까 이해해 주지도 못하는데요. 그렇다면, 자신이 ADHD라는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좋은 걸까요?
그건 사회의 분위기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요. 미국의 경우에는 ADHD 환자를 지원해주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어요. 예를 들면 SAT 시험을 볼 때 시간을 더 주고요. 진단서를 제출하면 시험 볼 때 교실을 따로 배정해주기도 해요. 그리고 100명 중에 5명이 ADHD라면 치료 받는 환자 수가 5명 가까이 돼요. 보장이 다 되니까요. 일본의 경우도 ADHD는 특수교육을 받게 해주고, 여러 가지 혜택을 줘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교육부에서 마련한 혜택은 없을 거예요. 그리고 일본은 성인 ADHD에 대한 책도 많고, 자신이 ADHD라는 사실을 알리라는 쪽이에요. 미국은 더할 나위 없죠.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ADHD의 속성 때문에 문제가 된다면 자신이 ADHD라는 걸 알리는 게 나을 것 같긴 해요. 내가 왜 이러는지 상대가 이해하지 못 하니까요. 그런데 우리 사회가 그런 분위기로 바뀔지는 잘 모르겠어요.
치료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모티베이션(motivation, 동기 부여)이 중요한 것 같아요. 모티베이션이 있는 사람이라면 치료가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자기가 진짜 (치료를) 원해서 온 거라면. 그런데 가족이 억지로 데리고 왔다든지, 그런 경우에는 일단 모티베이션이 없어서 치료가 잘 안 돼요. 저는 개인적으로 치료라는 말을 쓰기까지 오래 걸려요. 60일 가까이 걸리는데요. 섣불리 치료를 시작하면 병원에 대한 불신만 늘고 그러다가 병원에 안 오기 때문에, 처음에 많은 시간이 들더라도 계속 병원에 오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해요. 그런데 모티베이션이 좋은 사람은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고 바로 치료가 시작돼요.
책의 내용에 따르면, 성인 ADHD가 유전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아요.
굉장히 많죠. 사이언스지에 유전자 지도에 대한 내용이 실렸는데, 유전 성향 중에서 가장 강력한 요인이 ‘키’라고 해요. 그 다음으로 유전이 강한 요소가 ADHD예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가 있어요. 예를 들어서 유방암은 대개 유전되거든요. 그러면 유방암의 유전율이 더 높은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유전율을 계산할 때는 ‘그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를 따지는 거예요. 유방암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은 100% 유전이 되지만, 모든 여성이 그 유전자를 갖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전체 집단이 작은 거죠. 그런데 일반적으로 ADHD는 전체 아이들의 7~8% 정도니까 풀(pool)이 높은 거예요.
성인 ADHD 부모가 소아 ADHD 자녀를 양육할 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대개 부모들은 자녀가 자기의 약점을 닮는 걸 싫어해요. 그래서 자꾸 그걸 없애려고 하는데요. 그러다 보면 좋은 점을 볼 시간이 없어요. 아이가 ADHD 속성을 갖고 있다면, 그것 때문에 부모 자신이 실패했다고 생각해서 없애려고 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그 속성을 성공적으로 쓸 수 있는지 연구하시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양육과 치료를 분리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소아 당뇨가 있으면 치료는 병원에서 하잖아요. 부모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치료 행위를 병원에서 배워 와서 하고, 양육은 양육대로 하고요. 그렇게 치료와 양육이 분리가 되는데, ADHD는 잘 안 돼요. 어디까지가 병이고 어디부터가 양육의 소관인지, 불분명한 거죠. 아마 그 부분이 어려우실 거예요. 자녀가 ADHD인데 치료를 받지 않으면서 양육을 하신다면 잘 안 되실 거예요. 치료해야 될 부분까지 양육의 영역으로 넣으려고 하면 잘 안 되는 거죠. 병원과 나눠서 해야 돼요.
처음 성인 ADHD 진단을 받으면 대부분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그것도 모티베이션에 따라 달라요. 모티베이션이 있어서 찾아온 사람은 ‘그렇죠? 나 ADHD 맞죠?’ 하는 반응이고요. 모티베이션이 없이 다른 사람에 의해서 불려온 사람은 잘 수긍하지 않아요. 그러면 왜 그 사람이 수긍하지 않는지, 그것부터 찾아내야 돼요.
성인 ADHD 진단을 받은 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제가 진단을 한다면, 이 병을 받아들이든 아니든 우리는 언제든지 도와줄 거라고 말하겠죠. 원한다면 지금 당장 돕기 시작할 테고, 아니라면 나중에 생각이 바뀌면 그때 도와줄 수도 있다고요. 제 생각에는 ADHD는 어쨌든 병이거든요. 그런데 맹장 수술이나 결핵 같은 병과 달리 제가 적극적으로 끌고 갈 수 없어요. 예를 들어서 맹장이 터졌다거나 결핵균이 발견됐다면, 환자나 가족들이 바로 치료를 시작하는 데 동의하겠죠. 그런데 ADHD는 달라요. 왜 병인지 설명을 해야 되고 준비가 되면 치료를 시작하는 거예요. 환자가 도움을 받을 필요를 느끼고 준비가 되었을 때, 그때 시작하는 거죠.
*반건호 37년 동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일했으며, 그중 20년 이상을 자폐스펙트럼장애와 ADHD 등 신경발달장애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1997년부터 현재까지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소아정신과 교수로 있으며, ADHD 전문가로서 한국형 ADHD 검사, 평가, 교육 도구를 개발하였다. ADHD 영역이 아동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현장에서 절실히 느끼면서 성인 ADHD로 ADHD의 개념을 확장시켰다. 2009년 국내 최초 '성인 ADHD 교과서'를 발행한 책임저자이며 2012년 '성인 ADHD 진료지침'을 발표하여 성인에게 맞는 치료 기준을 마련하였다. 세계 ADHD협의회 회원으로서 해외 학술지에 ADHD 관련 논문을 30편 이상 발표하였으며 풍부한 진료경험과 깊이 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국내외 학회에서 성인 ADHD 연구의 신뢰성을 인정받은 국내를 대표하는 ADHD 전문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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