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브의 문화와 예술을 소개하는 책
『슬라브, 막이 오른다』 김주연 작가 인터뷰
광활한 대지의 여러 나라로 이루어진 슬라브 문화권에서 찾아낸 보석 같은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슬라브의 문화와 예술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2022.04.18)
우리는 ‘슬라브’를 잘 모른다. 슬라브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은 슬프게도 아우슈비츠 학살, 프라하의 봄, 체르노빌 참사, 보스니아 내전, 우크라이나 침공 등 모두 어두운 핏빛의 단어들이다. 저자 김주연은 이처럼 핏빛으로 얼룩진 역사를 보듬으며 그 속에서도 ‘수레국화’와 같은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슬라브인들의 문화에 관해 이야기해 준다. 오스만 제국, 히틀러의 독일, 그리고 소비에트와 현재의 러시아처럼 너무도 강력하고 전제적인 이웃을 둔 이유로 항상 신음해야 했던 민족의 경험이기에, 우리 독자들에게는 남의 이야기 같지 않게 다가올 것이다.
『페테르부르크, 막이 오른다』에서처럼 작가는 『슬라브, 막이 오른다』에서 역사를 문화, 예술과 함께 소개한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쇼팽, 드보르자크, 스메타나의 음악과, 알폰스 무하의 그림 이야기를 들려주고, 학살의 이야기 속에서도 정치와 예술을 아우르는 거인 바츨라프 하벨의 행보, 체코의 국민 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맥줏집, 미래를 내다본 선구적 극작가 카렐 차페크의 ‘로봇’을 전한다. 또한 갈등과 분쟁의 역사 속에서도 에밀 쿠스트리차의 ‘지하실 사람들’, 이보 안드리치의 ‘드리나강의 다리’를 이야기한다. 슬라브 문화권에서 찾아낸 보석 같은 이야기들이다. 이곳에서 피어난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그 어둠을 밝히고 위로하는 꽃송이고, 덕분에 우리도 위로받게 된다. 우리 앞에 그렇게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러나 우리를 닮은 세계의 ‘막이 오른다’.
작가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러시아 문학과 연극을 전공하고, 연극 기자와 연극평론가, 드라마터그 등 공연예술의 이론과 현장을 오가며 글을 쓰고 작품을 만들고 있는 김주연입니다. 러시아를 비롯한 슬라브 문화와 예술에 대한 글쓰기와 강의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페테르부르크, 막이 오른다』에 이어 ‘슬라브’ 지역에 관한 책을 쓰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직접적으로는 몇 년간 고려대 노문과에서 맡아 진행했던 <슬라브 사회와 문화>라는 수업 덕분에 본격적으로 슬라브 지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몰랐던 가슴 아픈 역사와 그 속에서 피어난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알게 될 때마다 보물을 발견하는 기분이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연극 기자와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정말 많은 동구권 연극을 봐 왔는데, 수업 준비를 하면서 다시 돌이켜 보니 그 경험들이 커다란 자양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생생한 공연 현장에서 느꼈던 감각이나 감정이 책이나 글을 넘어 그들의 정서를 이해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슬라브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유럽이라고 하셨는데, 여전히 심리적으로는 멀고 낯설게 느껴집니다. 왜 그럴까요?
사실 지리적으로 슬라브는 아시아와 가장 가까운 유럽에 위치해 있어요. 러시아 극동부인 블라디보스톡은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로 2시간밖에 걸리지 않으니 거의 이웃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럼에도 여전히 슬라브가 심리적으로 멀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무래도 이 지역이 오랜 세월 냉전의 반대편, 이른바 ‘철의 장막’이라 불린 공산주의 국가권에 속해 있어 문화적으로 교류가 적었던 이유가 큰 것 같아요. 러시아를 비롯해 슬라브 대부분의 나라와 우리나라가 정식 수교를 맺은 게 이제 겨우 30년이 넘어가고 있거든요. 수교 100년이 훌쩍 넘는 서유럽 국가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그 세월의 차이가 느껴지죠.
책에서 슬라브를 ‘피와 이야기의 땅’이라고 지칭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일단 슬라브 나라들은 지리적으로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보니 양쪽에서 수많은 침략을 받았고,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권의 경계에서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국경이 수도 없이 바뀌고, 몇몇 나라들은 아예 국가가 사라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요. 20세기의 굵직한 전쟁들은 거의 다 슬라브 지역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거 같아요.
하지만 이처럼 피와 눈물의 역사로 점철된 곳이면서도 슬라브는 또한 정말 이야기가 발달한 곳이기도 해요. 수많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와 연극, 영화의 거장들이 이 지역의 문화예술을 찬란하게 꽃피워 왔죠. 어쩌면 현실이 너무 잔인하고 비극적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이러한 이야기들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책의 전체 테마를 ‘피와 이야기의 땅’으로 잡았습니다.
이 책은 어떤 독자들이 읽으면 좋을까요?
이 책은 슬라브 국가들에 관한 전문적인 역사서나 학술서도 아니고, 동유럽/발칸으로 분류되는 이 지역 나라들에 대한 관광 안내서나 여행서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저 오랜 세월 피와 눈물의 역사 속에서 이들 슬라브 민족이 만들어 낸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통해, 이들의 문화와 예술, 그리고 정서에 한 걸음이나마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쓴 글이에요. 우리에게 여전히 다소 낯선 ‘슬라브’의 문화와 예술에 조금이나마 관심과 흥미가 있는 분들이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지난 책에 이어 ‘막이 오른다’라는 제목을 쓰신 이유가 있나요?
일단 출판사에서 세계의 각 도시와 문화를 연극, 영화 등 예술을 통해 바라보는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는데요, 그 시리즈의 일환으로 제목을 통일했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어 보시면 알겠지만 동슬라브, 서슬라브, 남슬라브로 이루어진 전체 21개의 챕터 모두 개별적인 한 나라 혹은 한 작품을 소개한다기보다는, 하나의 도시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과 그에 대한 기억할 만한 이야기들을 함께 엮어서 들려주려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이어져서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을 때 하나의 ‘막이 오르듯’ 슬라브 예술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경험을 하게 되셨으면 좋겠어요.
책에 소개된 슬라브 지역의 여러 도시들 중 꼭 가봐야 할 도시를 꼽는다면요?
동슬라브, 서슬라브, 남슬라브 모두 고유의 색과 분위기, 아름다운 자연과 예술의 정취가 서린 곳이라 어디를 가든 많은 것을 보고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다만, 이 책의 원고를 다 쓰고 편집을 마무리하던 중에 갑자기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정말 마음이 무겁고 가슴 아팠습니다. 부디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서 귀한 생명이 더 이상 죽거나 다치지 않기를,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아름다운 도시들이 다시 평화와 일상을 되찾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고 소망합니다.
*김주연 대학과 대학원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고, 공연예술전문지인 월간 『객석』에서 6년간 연극 기자로 일했다. 이후 연극학으로 박사학위를 마쳤고, 남산예술센터에서 국내 최초의 극장 드라마터그를 역임했다. 현재 연극평론가와 드라마터그, 그리고 연극연구자로 활동 중이며, 공연예술과 러시아, 슬라브 문화에 대한 다양한 글쓰기와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저서로 『페테르부르크, 막이 오른다』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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