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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정의 K열 19번] 광기가 아닌 사랑으로 그린 고양이의 세계 - <루이스 웨인>

윌 샤프의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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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광기’와 예술가의 천재성을 쉽게 연결하고, 그런 광기가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을 가능하게 한다고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영화는 루이스의 창작력의 원천이 된 건 광기라기보다는 에밀리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동생들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에밀리와 피터 덕분에 만나곤 했던 ‘전기가 번쩍이는 순간들’이었다는 점을 감각적으로 묘사해간다. (2022.04.14)



손희정의 K열 19번 : 코로나와 OTT의 시대에도 극장에 대한 사랑은 계속된다. 극장에서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즐거움과 시시함이 있다고 믿는다. 'K열 19번'은 우리가 언젠가 한 번 쯤은 앉아보았을 좌석이다. 극장 개봉 영화를 소개하는 지면에 딱 어울리는 제목 아닌가.


“그는 자신만의 고양이를 창조했습니다. 고양이 스타일, 고양이 사회, 고양이 세계 전체를 창조했죠. 루이스 웨인의 고양이처럼 생기고, 루이스 웨인의 고양이처럼 살지 않는 잉글랜드의 고양이들은 스스로를 부끄러워할 겁니다.”

<타임머신>의 작가 H.G 웰스는 루이스 웨인의 작품 세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세기 전환기, 루이스 웨인은 고양이 삽화가로 이름을 떨치면서 고양이에 대한 영국사회의 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상상했던 만큼 아름답고, 예상치 못하게 고통스러웠던 영화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2021) 역시 웰스의 이 유명한 말로 시작된다.


루이스 웨인의 전기가 번쩍이는 삶

1860년 런던, 루이스 웨인은 귀족 가문의 맏이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음악과 미술에 재능을 보였고, 남다른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이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루이스는 어머니와 다섯 여동생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된다. 때는 바야흐로 빅토리아 잉글랜드, 과학과 계몽의 시대가 열렸지만 여전히 고루하고 기이한 사회적 편견이 지배하던 때였다. 상류층 여성이 일을 하고 경제력을 가진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시대였으므로, 집안의 유일한 남자였던 루이스는 평생 가장으로서 경제적 부담을 어깨에 이고 살았다.

그런 루이스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고 있는 건 전기(electricity)였다. 모두가 전기의 발견에 열광하고 그걸 어떻게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시기, 그에게 전기란 인간의 언어로 충분히 포착할 수 없는 어떤 신묘한 에너지였다. 돈을 벌기 위해 뭐든 해야 했던 루이스는 스물세 살이 되던 해 전기가 번쩍이는 순간(electrical moment)을 만난다. 여동생들의 가정교사였던 에밀리 리처드슨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열 살 연상의 하층계급 여성으로, 지력과 생활력을 갖췄으되 비천한 존재로 여겨졌던 에밀리와의 결혼은 웨인 가문의 명성을 박살냈다. 덕분에 동생들의 ‘혼삿길’까지 막혀버린다.

어렵게 결혼을 했지만, 삶은 두 사람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결혼 6개월 후 에밀리가 유방암 진단을 받게 된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바로 그 날, 두 사람은 집 앞에서 길고양이 한 마리를 구조한다. 그리고 고양이에게 ‘피터’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루이스는 생명의 불꽃이 점점 사그라져 가던 에밀리를 위로하기 위해 피터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것이 루이스 웨인의 고양이 시대의 서막이었다. 그의 손끝에서 고양이들은 새로운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불길한 요물’ 아니면 ‘풍요의 신’ 둘 중 하나의 자리에 제멋대로 고양이를 가둬놓고 경멸하거나 숭배했던, 매우 인간적인 편견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루이스가 처음 에밀리를 만났을 때, 에밀리는 미술 수업을 준비하면서 고심하고 있었다. 그때 루이스는 에밀리에게 말한다. “그림에 대해서 가르쳐야 할 규칙은 단 한 가지에요. 그건 바로 보는 것(to look)이죠.” 다른 사람들은 무심하게 흘려보냈던 고양이들의 시간을 루이스가 포착할 수 있었던 건, 그가 고양이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이스는 고양이만을 보고 있지는 않았다. 그는 고양이를 자주 의인화하여 그렸는데, 결국 사람 역시 함께 보고 있었던 셈이다. 다만 사람 사이의 일이, 그에겐 언제나 어려웠다. 어쩌면 사람을 증오하면서 고양이만 사랑할 수는 없는 일인 지도 모른다.



그것은 광기가 아니라 사랑이었다

루이스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에밀리를 잃고 난 뒤, 고양이 그림으로 대단한 인기를 누리게 되었지만, 그는 저작권료를 한 푼도 챙기지 못했다. 쉴 새 없이 창작했음에도 루이스의 말년이 풍족하거나 편안하지 못했던 이유다. 특히 망상과 폭력성 때문에 말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내게 되는데, 사후에 사람들은 그가 조현병을 앓았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오해에 혁혁한 공을 세운 건 정신과 의사 월터 머클레이였다. 그는 루이스의 후기 작품을 보고 정신분열증 단계에 따라 그림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분석했다. 1939년 노팅힐의 한 고물상점에서 발견한 단 여덟 점의 그림을 보고서였다.

이후 전문가들은 머클레이가 분석한 순서대로 루이스가 그림을 그렸다는 증거가 어디에도 없으며, 그가 생전에 조현병 진단을 받은 적 역시 없다는 사실을 밝힌다. 무엇보다 생의 끝까지 그는 명민했고, 그림 스킬에 어떠한 퇴행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만나게 되는 ‘사이키델릭한 고양이들’의 이미지는 오히려 그가 끊임없이 색과 형태를 표현함에 있어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는 증거로 해석된다. 결국 머클레이의 주장은 조현병에 대한 편견으로부터 비롯되어 그것을 강화한 것일 뿐이었다. 1990년대 말, 트리니티 컬리지 소아정신과 교수인 마이클 피츠제럴드는 루이스의 편집증적 성향과 여러 행동 패턴들을 바탕으로 “아이작 뉴튼과 같은 아스퍼거 증후군”이었을 것으로 진단한다.

흔히들 ‘광기’와 예술가의 천재성을 쉽게 연결하고, 그런 광기가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을 가능하게 한다고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영화는 루이스의 창작력의 원천이 된 건 광기라기보다는 에밀리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동생들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에밀리와 피터 덕분에 만나곤 했던 ‘전기가 번쩍이는 순간들’이었다는 점을 감각적으로 묘사해간다. 루이스가 고양이를 극단적인 편견들로부터 구해냈듯이, 영화는 ‘광기’에 대한 만들어진 판타지와 편견들을 피해간다. 

몇 장의 그림으로만 알고 있었던 루이스 웨인의 삶을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 살아볼 수 있어서, 고통스럽고, 또 벅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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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손희정(문화평론가,『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저자)

문화평론가,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프로젝트38 연구원.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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