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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책 특집] 과학에도 해설위원이 필요합니다

<월간 채널예스> 2022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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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논문이 밭에서 막 캐 온 감자라면,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감자를 씻고 다져 요리하기 쉽도록 만들어준다. 직접 훌륭한 요리까지 만들어 내놓는 이들도 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세계를 들여다보았다. (2022.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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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경기 규칙은 물리학의 열역학 법칙만큼이나 복잡하고 어렵다. 그 복잡한 것을 많은 사람들이 즐긴다. 반면 과학은 복잡한 것은 매한가지인데 학생 10명의 눈길을 잡아두기도 쉽지 않다. 과학에는 있고, 스포츠에는 없는 것, ‘개념’과 ‘이론’ 때문일 것이다. 과학은 여러 현상을 묶어 한방에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을 만들어낸다. 수레를 끄는 것, 물이 끓는 것, 빛이 나는 것 등을 모두 에너지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에너지(E)와 질량(m)의 관계를 규명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E=mc²)처럼, 개념들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까지 등장한다.

과학이 과학자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시절, 개념과 이론은 앞뒤 수식어를 떼고 현상을 일거에 설명할 수 있는 유리한 도구였다. 하지만 과학이 일상으로 들어오면서부터 이야기가 달라졌다. 코로나19 백신은 안전한지, 오미크론은 델타변이와 어떻게 다른지, 지구 온난화로 인해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전기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인지 등 일상의 많은 의문에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스스로 과학을 이해할 필요가 생겼다. 하지만 오랜 시간 축적돼온 과학의 개념과 이론은 과학을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일상적 커뮤니케이션도 정확한 의미 전달이 어려워 서로 오해하기 십상인데, 커뮤니케이션 소재가 과학이라면 더욱 난감한 일이 되어버리기 일쑤다. 친절한 규정집을 가진 스포츠조차 해설위원이 필요한데, 과학에도 당연히 해설위원이 필요하다.


과학 해설위원, 과학 커뮤니케이터

다행히도 오늘날엔 과학을 해설해주는 직업이 있다. 바로 과학 커뮤니케이터다. 20세기 중반 환경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며 과학 기술계와 일반 사회의 소통을 도와줄 직업군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때쯤 미국의 대표 과학 학술 단체인 미국과학진흥협회(AAAS)는 ‘대중의 과학과 기술 이해 위원회’를 조직하여 관련 종사자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신문기자, 다큐멘터리 제작자, 과학관의 전시 기획자, 기업과 대학의 홍보 담당자 그리고 연구자들까지 직업군은 다양했다. 과학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대표 전문 학술지인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Science Communication)〉도 이즈음 발간을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 들어 그 중요성이 부각됐다.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던 우리나라에 그 중요성을 확인시켜준 사건이 있다. 바로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이다. 당시 언론사에는 전문성을 가지고 과학 이슈를 다룰 수 있는 기자가 적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학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우리나라’의 훌륭한 과학자가 ‘세계 최초’로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냈으며, 조만간 ‘불치병을 고칠 수도 있다.’는 기대에만 초점을 맞춘 보도가 이뤄졌다. 황우석 연구팀이 논문을 의도적으로 조작했음이 밝혀진 후, 이곳저곳에서는 부끄러움의 탄식을 내뱉었다. 국제적으로 수치스러운 상황이었지만 과학을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는지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 그리고 2008년에 ‘일반 대중의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풀어주는 전문가’라는 정의와 함께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직업군에 포함되기도 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어떤 일을 할까

대부분의 과학자들(특히 기초 과학 분야 연구자)은 가족이나 지인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일을 한다. 자신의 놀라운 발견을 설명하려다 실패하기도, 애초에 설명을 포기하고 “좋은 일 하고 있다.”며 얼버무리기도 했을 것이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이런 고독한 과학자들의 외로움을 해소해주는 동반자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를 논문이라는 글로 적어 국제 학술지에 게재한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외계어처럼 느껴지는 학술 논문을 청소년 신문 수준으로 해석해 대중에게 들려준다. 논문에 실린 발견뿐 아니라 연구의 배경 그리고 연구로 인해 펼쳐질 미래까지 담아 콘텐츠를 만든다. 학술 논문이 밭에서 막 캐 온 감자라면,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은 그 감자를 씻고 다져 요리하기 쉽도록 만드는 것이다. 직접 훌륭한 요리까지 만들어 내놓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들도 있다. 과학 기자, 다큐멘터리 제작자, 과학 유튜버, SF 작가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 중인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요리를 완성해낸다. 각자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은 과학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쳐왔고, 또 지금 진행되는 연구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읍소’만 잘한다면 누구나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될 수 있다

이런 과학 커뮤니케이션 행위에서 꼭 필요한 과정은 ‘읍소’다. 과학을 전공했다고 해도 모든 분야에 통달할 수 없기 때문에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야 정확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다행히도 ‘고독한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에 관심을 갖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꽤나 반긴다.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과학을 전공했다면 이 읍소에 필요한 시간이 줄어든다. 이정표를 보고 더듬더듬 모르는 길을 찾아나갈 수 있는 것처럼 최소한의 과학 지식은 과학자의 언어를 해석하는 시간을 줄여준다. 과학 커뮤니케이터에게 과학 전공이 필수는 아니지만, 살아남는 데 있어 꽤 유리한 무기인 것은 사실이다.

얼마 전 극장에서 영화 〈테넷〉을 보고 나온 뒤 머리가 멍해진 기억이 난다. 영화가 시작한지 한 10분이 지났을까. 엔트로피와 반물질 등 물리학 교과서에 등장할 이론들이 번갈아 나오며 필자를 괴롭혔다. 극장을 나와서 〈테넷 과학 해설〉 등의 유튜브 영상을 보고 난 후에야 어느 정도 감이 왔다. ‘석박사 관람가’라는 별명을 얻은 영화답게,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과학 지식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영화를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얻은 뒤 2차 관람에 나섰다.

영화의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은 영국 런던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문과생이다. 그럼에도 〈인셉션〉 〈인터스텔라〉 〈테넷〉 등의 영화를 통해 훌륭한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은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과학 이론을 찾아 공부했다. 영화를 도구로 대중의 과학에 대한 관심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것이다. 물론 영화이기에 허락되는 과학적 오류도 있었지만, 〈테넷〉은 2017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킵 손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교수의 자문을 통해 완성됐다. 놀란 감독처럼 과학에 흥미를 가지고 과학자에게 읍소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훌륭한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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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권예슬(과학 커뮤니케이터)

과학 커뮤니케이터. 한양대 분자시스템공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 일반대학원 과학커뮤니케이션 협동과정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 정책 분야 연구원, 〈동아일보〉의 데일리뉴스팀과 〈과학동아〉 기자를 거쳐 현재는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커뮤니케이션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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