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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재의 네덜란드 일기] 어떤 각도의 선선함

이제재의 네덜란드 일기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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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재가 생각하기에 그가 가려고 하는 나라는 한국 사람들이 기억하기엔 쉽지 않은 곳이었다. (2022.04.05)


첫 시집 『글라스드 아이즈』로 독자를 만났던 이제재 시인이 네덜란드에서의 일상을 에세이로 전합니다. 새로운 장소에서 시인은 자신을 3인칭으로 바라보며 ‘내’가 변화하는 순간들을 관찰합니다. 짧은 소설처럼 흘러가는 이 에세이는 격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2021년 11월 1일  

이제재가 생각하기에 그가 가려고 하는 나라는 한국 사람들이 기억하기엔 쉽지 않은 곳이었다. 그의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네덜란드가 동유럽, 혹은 북유럽에 있는 곳이냐고 물었다. 애초에 희미하게라도 무언가를 떠올리는 사람이 드물어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무엇이 유명한 곳이냐고 묻기도 했고, 뉴질랜드로 간다고 했죠? 하고 기억하는 사람도 적어도 셋 이상이었다.

서유럽에 있어요, 독일 옆에요. 튤립이랑 풍차가 유명하대요. 그러니까 네덜란드로 가는데요,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덴마크에 가는 거냐고도 들어봤거든요.

그가 하나하나 답하고 나면, 사람들은 대개 그곳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물었고, 그러면 안 그래도 느린 그의 말이 눈에 띄게 느려지곤 했다. 뭘 하려고 가는 건 아닌데…… 에세이를 써보려고요. 마음속에 생각해둔 바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입 밖으로 꺼내기에는 그 형태나 색채가 불분명한 것처럼 느껴졌다. 어쨌든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그의 여행을 이해했다. 부럽다고, 자신도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고도 말했고 역시 시인답다고, 시를 많이 쓰고 오라고도 말했다. 그러면 그는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먼 곳보다는 가까운 그 어중간한 지점을 바라보며, 그렇죠. 시도 많이 써야지요…… 했다. 잠깐의 만남이 끝나면 그들의 손에는 그해 발간된 그의 첫 시집이 들려 있었다.

그날의 모임은 합정의 어느 한 카페에서 있었다. 곧 그를 포함한 셋이 모일 것이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그는 아무도 없는 널찍한 카페에서 자리를 몇 번 옮겼는데, 첫 번째 자리는 셋이서 앉기에는 작아 보였고 두 번째 자리는 너무 구석이었다. 세 번째 자리는 예약석인데다가 지나치게 잘 보이는 자리 같아 망설였지만 직원이 앉아도 좋다고 해서 그는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옆으로 긴 나무 탁자를 중심으로 한쪽 측면에는 접시와 도자기 장식으로 들어찬 나무 진열장이 있었다. 다른 쪽 측면에는 창문이 크게 나 있어 가게 입구의 정원이 보였는데, 그 정원에는 대나무가 심겨 있어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렸다. 바깥은 구름이 많이 끼어 있었고 빗방울이 조금씩 내렸다가도 햇빛이 한 가닥씩 비쳐 보이곤 했다. 

그 풍경이 어쩐지 선선해 보여서 그는 핸드폰 카메라로 10초가량의 영상을 녹화해두었다. 생각과는 달리 구름 쪽은 너무 밝게, 대나무 쪽은 너무 어둡게 보이는 영상이었다. 선선한 느낌이 빠지니 다른 공간처럼 보이는 그 영상을 재생해 보면서, 그는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한 번씩 잡혀주었다가 빠져나왔다. 무엇을 할 것이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일은 그에게 점차 더 곤혹스러워지고 있었다. 대답을 하면 할수록 네덜란드에 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 그가 마음으로만 품었던 생각이 옅어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엔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표면에 물방울이 고이기 시작한 유리컵을 빨대로 휘저었다.

어쩌면 그냥 공부하러 간다고 대답하는 게 좋았을까요.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지요. 

어느새 약속 장소에 도착한 N시인이 대답했고 잠시 뒤 카페 안으로 들어온 J시인은 아참, 하며 그가 몰랐던 소식을 얘기해주었다. 전해주려던 걸 잊고 있었는데 말이야, 어떤 모임이 네 시집으로 독서 모임을 진행했어. 모임장님이 나한테 허락을 구하시길래 그러시라고, 정말 좋은 생각이라고 너 대신 내가 허락했지. 좋은 시간을 보내셨던 모양이야. 어쩐지 J시인은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했고 그래서 그는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N시인은 눈을 반짝이며 모처럼 재미있는데요, 시인을 빼놓고 일사천리로 진행된 시 모임이라니, 하고 말했다.    

그가 가졌던 대부분의 모임과는 다르게 빠른 속도로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시 마감은 다들 어떻게 하시는지, 저만 울면서 마감하나요? 같은 이야기들이 이어지고 나자 그는 에세이를 쓸 건데…… 무엇을 써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하며 천천히 말하고 있었다. 앞으로 1년간 네덜란드에 머무르면서 그는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전거를 종종 탈 것이었고, 명상을 할 것이었고, 영상을 찍고, 도서관이나 어쨌든 책상이 있는 곳에 앉아 글을 쓸 테지만 이런 일상을 써도 괜찮은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똑같은 일을 다른 장소에서 하면 달라지는 것이 있는 것일까? 무언가 보이고 무언가 떠오른다면 그것은 분명 눈앞에 보이는 장소와 풍경 때문일 것일 텐데……. 그는 그 장소에 대한 반응으로서 그의 내면에 떠오를 이미지를 묘사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그의 희미한 생각들 중 그나마 명료한 것이었고 이런 얘기를 눈앞의 사람들에게도 꺼내 보고 싶었지만 타이밍을 놓친 것인지 두 시인은 어느새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우리가 기획을 세워줄 테니 제재 시인은 실행만 하세요, 하는 그들에게 그의 문제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 듯 했다. 본인 시집을 들고 가서 전국의 도서관에 꽂아두고 오는 거예요. 한국 책 코너가 있으면 좋고 한국 시 코너가 있으면 좋아하는 시집 옆에다 내 시집을 딱 꽂아두고 오는 거죠. 둘 중 누가 말하면 다른 누가 맞장구를 쳤는데, 그 가운데에서 그는 모처럼의 기분을 느끼며 그 말들을 모두 받아 적고 있었다. 가볍게 바람이 부는 느낌, 그 바람이 등 뒤를 밀어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느낌이었다. 그는 바람을 잘 타는 가벼운 종이처럼 스스로를 느끼며 그 위에 적혀진 자기만의 글들을 지웠다. 그러면 백지 위로 수많은 우연들이 힘들이지 않고 종이 위를 메울 것이었다. 정말 재미있지 않아요? 모임의 끝자락에 N시인이 말했고 J시인이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글 쓸 사람을 빼놓고 일사천리로 기획되는 에세이라니.

카페 밖을 나오자 바깥의 날씨는 그대로였다. 다만 해가 지기 전에 밖으로 나오니 마음까지 맑아지는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미래의 어느 순간 그는 핸드폰을 켜 이날의 메모를 다시 한번 훑어볼 것이었다.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영상을 보고 여전히 뭔가가 빠진 영상이라는 것을 확인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찍은 줄도 몰랐던 카페 한쪽 벽의 나무 진열장 사진을 볼 것이었다. 그 사진 속에는 눈으로만 보았을 때는 보이지 않던 빛이 어떤 각도의 우연으로 채워져 있었다.


2021년 12월 28일 

소파 위에서 깨어났을 때 이제재의 눈앞에는 직육면체의 거대한 디스플레이 구조물이 있었다. 30미터는 되어 보이는 구조물에서 선명한 화질로 브랜드 광고들이 재생되고 있었고, 그러다가도 잠깐 쉬어가는 시간처럼 소나무 숲의 영상이 재생되었다. 녹색의 소나무 숲이 바람에 흔들리다가 붉은 꽃나무로 변하기도 했고 낙엽을 매단 나무들이 되어 흔들리기도 했다. 실제 자연을 찍은 것이라기엔 어색하고 완전히 그래픽 같아 보이지도 않는 그 영상을 멍하니 보며 그는 인천공항 출국장의 한켠에 마련된 소파 블록들 위에 가만히 있었다. 어제 그는 타려던 밤 비행기를 놓쳐 공항에서 하룻밤을 보냈고 오늘 다시 밤 비행기로 출국할 것이었다. 그제 아침에 접질린 그의 오른쪽 발목에는 파스가 붙어있었는데 그 때문에 왼쪽 다리는 차갑고 오른쪽 다리는 뜨거웠다. 그 덕분인지 처음 겪는 공항에서의 상황이 전체적으로 비현실적인 꿈처럼 그에게 다가왔다. 

틸뷔르흐. 그가 가려는 곳은 네덜란드의 남부에 위치한 도시였고 같은 해 여름에도 그는 이곳에 방문해 한 달 반쯤 머무르며 시집 뒤편에 들어갈 에세이를 쓴 적이 있었다. 삼인칭 시점에서 쓰인 에세이는 무언가를 말하기보다는 보여주기에 적당한 글이어서 그는 공간과 공간 사이 반사되는 빛을 그 속에 담을 수 있었다. 어쩐지 지금 그는 네덜란드에서의 경험을 통해 에세이를 쓰는 것이 아니라 에세이를 통해 네덜란드를 경험할 것 같다는 예감 속에 있었다. 저번 여름과 같은 공간, 같은 일상. 과연 다른 글을 쓸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그의 앞에는 다시 소나무들이 나타나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소파 옆에 세워둔 캐리어 속에는 그의 시집이 열 권 들어있었고 영상 촬영에 적합한 카메라도 들어 있었다. 무엇이 달라지고 무엇이 그대로 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글라스드 아이즈
글라스드 아이즈
이제재 저
아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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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이제재(시인)

1993년 3월 4일생. 생년월일이 같은 아이를 두 번 만난 적 있다.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글라스드 아이즈』의 저자이다.

글라스드 아이즈

<이제재> 저9,000원(10%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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