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십대와 호흡하는 제주 4.3 이야기
『4월, 그 비밀들』 문부일 작가 인터뷰
‘왜 지금 다시 그 이야기를 해야 할까?’ 생각하게 됩니다. 일상에서 접하는 폭력의 무서움을 깨닫고 있어야, 제주 4.3 같은 사회적인 폭력도 예민하게 인식해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습니다. (2022.04.04)
『4월, 그 비밀들』은 오늘의 십대와 호흡하는 제주 4.3 이야기이다. 제주 4.3, 그날의 국가폭력과 오늘의 학교폭력이 어우러져 인간의 폭력성과 인간의 아름다움을 담은 작품이다. 추리식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에는 제주의 자연, 언어, 풍습 등 제주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제주에서 나고 자란 작가의 경험이 녹아든 탓이리라. 작품에 대한 이야기들이 궁금해 문부일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과거의 역사를 오늘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또 요즘 심각한 학교폭력과 함께 아우른 게 참신했습니다. 이렇게 설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요즘 청소년들이 제주 4.3에 더 공감하도록 오늘의 이야기에 집중했습니다. 4.3을 1948년 배경으로만 그리면 독자들은 과거의 일로만 기억할 수 있으니까요. 역사는 그 시대를 넘어서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으니, 지금 시선에서 제주 4.3을 바라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역사적 소재를 글감으로 선택할 때에는 ‘왜 지금 다시 그 이야기를 해야 할까?’ 문제의식을 생각하게 됩니다. 4.3 같은 국가폭력, 제노사이드도 있지만 우리 곁에서 자주 발생하는 학교폭력, 성범죄, 회사 내의 갑질, 왕따 등도 심각해 피해자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일상에서 접하는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깨닫고 있어야 제주 4.3 같은 사회적인 폭력의 문제도 예민하게 인식해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습니다.
4.3을 소재로 글을 쓰려면 준비 과정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자료 조사를 하셨나요? 이 소설을 읽고 제주 4.3을 더 알고 싶은 청소년들에게 권하고 싶은 자료가 있을까요?
제주 4.3 관련 자료를 읽으면서 제가 얼마나 부족한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반성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좀 더 공부해야겠다고 다짐도 했습니다. 제주4·3평화재단 공식 자료, 제주CBS 시사매거진 <제주 4.3 흔적에서 교훈으로> 시리즈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제주 4.3을 다루는 소설에서 4.3의 배경을 너무 길게 설명하면 이야기의 흐름이 끊기고, 르포나 역사책처럼 보일 수 있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역사적 배경을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 독자들이 제주 4.3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테니 공식 자료를 바탕으로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하고, 어르신들의 대화를 통해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하려고 했습니다. 제주 4.3을 더 알고 싶은 독자들은 제주4·3평화재단 홈페이지에 있는 자료집 <4.3이 뭐우꽈?>를 읽어 보면 좋겠습니다. ‘뭐우꽈?’는 뭐예요?라는 뜻의 제주어입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 중에서 특히 마음이 쓰이는 인물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모든 인물이 소중하지만, 펜션 할머니가 어떻게 자신의 권리를 찾을지 궁금합니다. 4.3때,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안타까운 인물입니다. 더 큰 문제는 작은아버지 호적에 올라서 아버지와 법적으로는 부녀 관계가 아닙니다. 그래서 4.3 유족으로 인정도 받지 못하고 있지요. 어머니와도 법적으로는 모녀 관계가 아니죠. 평생 4.3의 아픔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인물입니다. 청소년 독자는 소설 속에 등장하니 허구의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작품 속의 펜션 할머니 같은 분들이 제주에 꽤 많이 계십니다. 할머니가 아버지와 법적으로 부녀 사이라고 당당하게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할머니의 성격을 보면 반드시 해내리라 기대합니다. 희망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역사는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역사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요?
학교에서 역사를 배울 때, 정치적 사건이나 인물의 업적에 집중해 암기하느라 역사는 지루하다는 오해가 생겼습니다. 역사는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3요소를 흔히 인물, 사건, 배경이라고 하는데 역사적 인물을 주인공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 인물의 사연, 성장 배경, 성격에 집중하다 보면 역사가 드라마, 영화, 소설처럼 흥미진진해집니다. 또한 그 지점에서 그 인물과 자신의 접점을 찾으며 더 몰입하고 자신의 삶도 돌아볼 수 있습니다. 물론 역사를 배워야 하는 까닭도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순신 장군은 상당히 예민한 성격이라 늘 불면증에 시달렸고, 건강이 안 좋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밤에 일기를 쓰곤 했는데 이런 성격을 알고 있다면 이순신 장군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4.3이라는 역사를 들려줘야 하기에 그렇겠지만, 이 작품이 좋은 건 청소년 소설에서는 만나기 힘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등장해서 좋더라고요. 청소년과 노인들이 맺는 컬래버와 대립도 재밌으면서 코끝 찡했고요. 선생님의 동화 『사투리 회화의 달인』에서도 멋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오지요. 이 작품에서도 그렇고 제주를 배경으로 할 때 노인들, 특히 할머니가 등장하고 큰 역할을 하시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 할머니는 어떤 존재이고 어떤 영향을 주셨나요?
과거 제주 여성들은 자연 환경, 사회적 상황 속에서 강하게 살아야 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제주는 땅이 척박하고 태풍의 길목에 있어서 농사가 어려웠습니다. 해안 마을에 사는 여성들은 바다에서 물질을 해서 전복, 소라 등을 채취해 생계를 이어 나가기도 했습니다.
4.3 당시 청년, 중년의 남성들이 많이 사망해 여성의 역할이 더 중요했습니다. 4.3 이후 좌절하지 않고 폐허로 변한 마을로 돌아와 집을 짓고 마을을 재건한 제주도 어르신들께 고개를 숙입니다.
제주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제주 여성, 할머니들의 강인함을 곁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아흔이 가까운 연세에도 제주어로 ‘오몽(움직이다)’해질 때까지 밭에 가서 일을 하며 돈을 벌어서 경제적 독립을 지키는 제주 여성들. 예전에 자녀가 결혼하면 부모를 모시고 살아야 효도라고 생각할 때, 제주도 할머니들은 자녀한테 절대로 의존하지 않고 당당하게 혼자 살았습니다. 물론 지금은 사회가 바뀌어서 자녀가 부모를 모시고 사는 대가족이 줄어들고 있는데, 제주도 여성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주체적으로 살아갔죠. 수십 년 앞서간 트렌드 세터들입니다. 그런 모습을 제 작품에 담고 싶었습니다.
청소년들과 글쓰기 수업도 하고, 강연도 나가면서 꾸준히 소통하고 계신데요, 청소년들에게 해 주고 싶거나 이 책을 보는 독자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들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언론에 폭력 피해자들의 아픔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주변에 폭력 피해자가 있다면 반드시 도움을 줘야 합니다. 이 소설에서 마준이가 학교에서 구타를 당할 때, 규완이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마준이는 지금도 학교 폭력 피해를 당할 수 있을 겁니다. 또, 운동부 친구가 선배한테 폭행을 당할 때 규완이가 학교나 경찰에 알렸다면 그 친구는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개인주의의 시대가 되었지만 서로 돕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저부터 반성하고 더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어떤 소재의 글을 쓰실 계획인가요?
어린 시절부터 역사와 사회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자연스럽게 제 글에 세상의 풍경을 담고 있습니다. 사실이나 진실 전달에만 집중하면 문학적인 부분을 놓칠 수 있습니다. 경계해야 할 지점입니다. 문학적으로 밀도가 있게 그려야 할 텐데, 노력을 많이 해야겠죠.
예전에는 ‘무엇을’을 쓸 것인가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쓸 것인가를 더 고민하고자 합니다. 분발해서 역량을 키워야겠습니다.
*문부일 제주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정치와 사회를 공부했다.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었으며, 이후 MBC창작동화 대상, 대산창작기금을 받았다. 동화 『사투리 회화의 달인』, 청소년 소설 『알바 염탐러』, 『굿바이 내비』, 『WELCOME, 나의 불량파출소』, 『불량과 모범 사이』, 청소년 교양도서 『역사 인터뷰, 그분이 알고 싶다』, 『10대를 위한 나의 첫 소설 쓰기 수업』 등을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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