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다 호르몬 탓이다, 아니다 내 탓이다

화를 내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알고 있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이 굴레를 벗어날 방법은 완경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누군가 완경이 될 때쯤이면 지금 이 기분이 한 달에 한 번이 아니라 일 년이나 이 년 정도 지속될 수도 있다고 했다. (2022.04.01)

언스플래쉬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나', '저 사람은 나한테 왜 저럴까',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이런 고민이 시작되고, 오늘 하루가 너무 힘들어서 울면서 잠드는 밤이 되면 이제 곧 월경이 시작되겠구나 하고 알아차린다. 안다고 해서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그냥 알기만 한다. 오히려 이렇게 생각한 뒤 실제로 월경이 시작되면 내가 호르몬에 반응하는 일종의 기계 같다는 생각에 조금 더 괴롭다.

피부도 엉망이 된다. 늘 마스크를 쓰니까 세수만 간신히 한 채 돌아다니다 오랜만에 봤더니 충격이 더 컸다. 나도 모르는 사이 30년쯤 흐른 느낌이다. 뭐든 다 호르몬의 탓으로 돌리고 싶은데 이 정도면 호르몬 탓을 하는 내 개인적 문제가 아닐까.

사회적 문제인가 개인적 문제인가. 나는 명쾌하게 답을 내릴 수 없다. 어느 정도는 개인의 문제고 어느 정도는 사회의 문제다. 어느 정도는 몸이 아파서 그런 거고 어느 정도는 내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기분이 안 좋은 이유는, 어느 정도 호르몬 때문이고 어느 정도는 뉴스 때문이며 반쯤은 남 탓, 나머지는 내 탓이다. 이렇게 원인을 나누어보아도 기분이 나아지진 않고 거울속 나는 못생겼다.

어떻게 흩날리는 멘탈을 잡을 것인가. 호르몬과 과로의 태풍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직 옆에 있는 아무나, 무엇이든 붙잡고 날아가지 않게 용을 쓰는 방법밖에 없을까. 애꿎은 쇼핑과 화풀이를 끝나고 나면 폐허뿐이다.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내가 조종할 수 있는 인생의 요소가 별로 없음을 깨닫는다. 나는 살아온 대로 살아왔다. 작은 부분은 바뀌겠지만 큰 부분은 바뀌기 힘들다. 인정하고 나니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요새는 월경 전 증상으로 그렇게 눈물이 많아졌다. 첫눈에도 울고 낙엽에도 울고 장마에도 울고 꽃망울에도 운다. 웃자고 만든 영화와 울자고 만든 드라마를 차별하지 않고 틀어놓은 채로 대성통곡을 한다. 저번 주에는 서울에 몇 안 남은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가 집에 안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취객을 보고 웃었는데, 오늘 그 사람을 다시 보면 같이 부둥켜안고 울 것만 같다.  

시간이 흐르길 기다린다. 지나보고 나서야 좀 낫다. 그렇게까지 괴로워할 일은 아니었잖아?  그렇게까지는....? 그리고 삼 주 후에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이 글이 오히려 월경전증후군을 희화화하거나, 이래서 여자는 안된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다. 다분히 나만의 경험이며 모든 여성이 다 같은 경험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월경 전에 기뻐 날뛰는 사람은... 아주 적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정신과 몸은 분리되어 있고 몸의 상황과 상관없이 정신이 우선한다는 이분법적 사고로 보면 내 여성 호르몬은 나를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적이고 교화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나는 내 호르몬이고 내 뱃살이며 내 정신이다. 어떤 것도 나에게서 분리할 수 없다. 내 상황만 생각하고 남에게 패악을 부리라는 말이 아니다. 못난 부분도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인생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가 알게 되는 건, 인생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나서도 여전히 달라지는 게 없다는 사실이다. 인생은 여전히 그렇게 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것은 남의 잘못이 아니다. 내가 화를 내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알고 있다. 그냥 알기만 한다. 그래도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게 낫잖아? 

인생이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는 '왜'보다는 '어떻게'에 주로 집중해야 한다. 지금 가장 빨리 할 수 있는 긴급조치를 발동한다. 달콤한 걸 먹고, 부드러운 감촉의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최대한 누워 있는다. 삶이 불안하니까 피난 가는 사람처럼 내 삶을 작게 조각내서 한 조각씩 챙긴다. 그렇게 하고 나서도 잠이 들랑말랑 할라치면 다시 시작된다.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나, 저 사람은 나한테 왜 저럴까,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이 굴레를 벗어날 방법은 완경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누군가 완경이 될 때쯤이면 지금 이 기분이 한 달에 한 번이 아니라 일 년이나 이 년 정도 지속될 수도 있다고 했다. 진짜 너무하네. 

마감은 닥쳐 오고 나는 울면서 이 글을 쓴다. 다 호르몬 탓이다. 호르몬은 나다. 다 내 탓이다. 삼단 논법의 완성. 일주일 후면 나아져있겠지. 그러니까 SNS에 추가로 뭐 올릴 생각하지 말고 잠이나 자라.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오늘의 책

트럼프의 귀환, 위기인가? 기회인가?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거머쥔 트럼프. 글로벌 무역 질서를 뒤흔들 트럼프 2기 정부의 명암과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국제 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해 설명하는 박종훈 저자의 신간이다. 강경한 슈퍼 트럼프의 시대에 직면한 대한민국이 어떠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지 그 전략을 제시한다.

이래도 안 읽으실 건가요

텍스트 힙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독서가 우리 삶에 필요해서다. 일본 뇌과학계 권위자가 뇌과학으로 입증하는 독서 예찬론. 책을 읽으면 뇌가 깨어난다. 집중력이 높아지고 이해력이 상승하며 즐겁기까지 하다. 책의 장르는 상관 없다. 어떤 책이든 일단 읽으면 삶이 윤택해진다.

죽음을 부르는 저주받은 소설

출간 즉시 “새로운 대표작”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 관련 영상을 제작하려 하면 재앙을 몰고 다니는, 저주받은 소설 『밤이 끝나는 곳』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등장인물들이 함께 떠난 크루즈 여행 중 숨겨진 진실과 사라진 작가의 그림자가 서서히 밝혀진다.

우리 아이 영어 공부, 이렇게만 하세요!

영어교육 전문가이자 유튜브 <교집합 스튜디오> 멘토 권태형 소장의 첫 영어 자녀 교육서. 다년간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초등 영어 교육의 현실과 아이들의 다양한 학습 성향에 맞는 영어 학습법을 제시한다. 학부모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침과 실천 방안을 담았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