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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정의 K열 19번] 마땅히 던져야 할 질문과 영화가 주는 재미 사이 - <모비우스>

다니엘 에스피노사의 <모비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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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비우스>를 보시면서 박쥐인간의 움벨트를 간접 경험해 보시기 바란다. 이런 상상력은 관객을 꽤 즐겁게 만든다. (2022.03.31)



손희정의 K열 19번 : 코로나와 OTT의 시대에도 극장에 대한 사랑은 계속된다. 극장에서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즐거움과 시시함이 있다고 믿는다. 'K열 19번'은 우리가 언젠가 한 번 쯤은 앉아보았을 좌석이다. 극장 개봉 영화를 소개하는 지면에 딱 어울리는 제목 아닌가.


1990년대 말, 마블 엔터테인먼트는 경영난을 해소하기 위해 자사 캐릭터의 영상화 판권을 시장에 내놓았다. 관심을 보였던 건 소니 픽처스. 마블은 스파이더맨 뿐만 아니라 아이언맨, 토르, 블랙팬서 등을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렸지만 소니는 오직 마블 최고의 인기 캐릭터였던 스파이더맨에게만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SSU)가 열린다. SSU는 샘스파(토비 맥과이어와 함께 샘 레이미 감독이 창조한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시작해서 이후 어스파(앤드류 가필드의 ‘어머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이어졌다.

소니에서 스파이더맨이 독자적인 세계를 꾸려나가고 있던 2000년대 말, 디즈니와 만난 마블이 <아이언맨>(2008)과 함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페이즈1을 연다. 이후 상황은 우리가 잘 아는 그대로다. 2010년대 초반, 우리는 종종 소니 스파이더맨을 놀리는 잔인한(?) 2차 창작물과 만나곤 했다. 그 작업들 속에서 스파이더맨은 어벤져스를 부러워하며 홀로 쓸쓸하게 거리를 배회하곤 했다. 2016년,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 MCU 스파이더맨이 등장했다. 소니와 디즈니의 협상이 성공한 덕분이었다. 톰 홀랜드의 피터 파커는 갑부 아이언맨의 충실한 ‘유사-아들’로 또 따른 경로를 따라 자기만의 ‘좋은 인간’을 그려냈다. 그리고 스파이더맨 영상화 판권을 둘러싼 티키타카의 역사는 결국 2021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토비-앤드류-톰의 ‘삼(三) 스파이더맨 대면’이라는 짜릿한 순간으로 귀결된다.

<노 웨이 홈>으로 MCU 스파이더맨이 최종장을 선보이면서, 스파이더맨 세계관의 안티히어로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SSU가 재시동을 걸고 있다. <베놈>(2018)과 <베놈2>(2021)가 길을 깔았고, 이제 <모비우스>(2020)가 개봉했다. 코로나 때문에 개봉이 2년이나 밀린 <모비우스>에 대한 반응은 ‘<베놈2>만큼이나 실망스럽다’와 ‘DC처럼 디즈니 마블과는 다른 어두운 세계관을 잘 다루고 있다’는 평가로 갈리는 중이다. 나에게 SSU는 굳이 디즈니 마블이나 DC와 비교해서 설명할 필요가 없는, 자기만의 개성을 가진 안티히어로의 세계다. 그리고 이 세계관의 중심에 서게 될 <모비우스>는 ‘불편한 질문’과 ‘보는 재미’가 공존하는 작품이었다.



질문: 마블의 히어로물이 질병과 장애를 상상하는 방식

희귀혈액병을 앓고 있는 천재 생화학자 마이클 모비우스(자레드 레토)는 평생 치료제 개발에 몰두해왔다. 그러던 중 흡혈박쥐와 인간의 DNA를 결합하면 혈액 응고를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하지만 이종 간의 DNA에 결합은 불법일 뿐만 아니라 위험하며, 돈도 많이 드는 실험이다. 모비우스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죽마고우 마일로(맷 스미스)에게 지원을 받아 실험을 강행하고, 결국 치료제 개발에 성공한다. 합성 혈청 덕에 모비우스는 ‘건강한’ 신체와 강력한 힘을 얻지만, 동시에 타인을 해치고자 하는 불온한 본능을 갖게 된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선 흡혈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마일로까지 혈청을 맞아버리고, 자신이 그토록 욕망하던 신체를 얻은 마일로는 흡혈의 폭주를 시작한다.

MCU건 SSU건, 마블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신체적 한계와 손상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슈퍼휴먼으로 거듭나곤 한다. 아이언맨, 캡틴 어메리카, 닥터 스트레인지 등이 그렇다. 이는 드라마틱한 신체의 변형과 함께 건강의 스펙타클을 전시하면서 관객들에게 쾌감을 준다. 이런 영화들에서 ‘건강함’은 오직 ‘건장함’의 다른 말이다. <모비우스> 역시 마찬가지다. 모비우스 박사의 창백하다 못해 푸르스름한 피부와 곧 깨질 것 같은 연약한 신체가 혈청 하나로 구리빛으로 물든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로 변신한다. 게다가 “계속 타인을 해치면서 나 자신의 ‘건강’을 유지할 것인가?”라는 윤리적 질문은 “흑화한 마일로와 대적한다”는 그럴듯한 윤리적 명분으로 간단하게 대체된다. 이는 영화에서 그려지는 신체의 변화만큼이나 이질감 없는 매끈한 변절이다. 그리고 이 매끈함이 과속 방지턱처럼 나의 스피디한 몰입을 방해했다. 히어로물에서 아픈 몸, 손상된 몸의 위치는 과연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 조혜영은 <아바타>나 MCU 같은 디지털 블록버스터가 “장애화된 신체를 대가로” 비장애의 관객성을 구성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이런 영화들에서 장애에서 비장애로의 이동은 “성장, 극복, 능력의 발전”으로 감각화되고, 신체 손상은 극복해야 할 장애로 구성된다. 이런 경향과 조금 다른 캐릭터는 <이터널스>(2021)의 마카리(로런 리들로프)다. 초음속으로 이동하는 그는 농인이며, 덕분에 초음속으로 움직일 때 발생하는 굉음으로부터 자유롭다. 마카리 캐릭터에서 청각 손실은 극복해야 할 ‘미완의 단계’로 다뤄지기 보다는 초능력의 일부로 그려진다. 


재미: 박쥐인간의 움벨트

물론 <모비우스>만의 재미도 분명하다. <모비우스>에서 선과 악의 경계를 오가는 예민한 과학자의 얼굴과 ‘반인반수의 신체’를 동시에 연기하는 자레도 레토만큼이나 인상적인 건 아무래도 영화가 박쥐인간의 움벨트를 형상화하는 방식이다. 말하자면 인간과 박쥐인간은 같은 시공간을 살고 있을 때에도 그 시공간을 인지적으로 다르게 구성한다. 생물학자 야콥 폰 윅스킬은 서로 다른 생명체가 공유하고 있는 객관적인 세계인 ‘벨트(welt)’와 그들이 자신의 지각을 바탕으로 구성한 주관적인 세계를 구분하기 위해서 ‘움벨트(umwelt)’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모비우스>를 보시면서 박쥐인간의 움벨트를 간접 경험해 보시기 바란다. 이런 상상력은 관객을 꽤 즐겁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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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손희정(문화평론가,『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저자)

문화평론가,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프로젝트38 연구원.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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