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고양이처럼, 보드랍게 어루만지는 청소년 소설
『3모둠의 용의자들』 하유지 작가 인터뷰
얼핏 모순되어 보이는 두 성향이 소설 속에서는 어떻게든 손을 잡고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아요. 곤란하고 안타까운 상황을 그리면서도 등장인물들이 그 상황을 씩씩하고 즐겁게 헤쳐 나가기를 바라거든요. (2022.03.29)
소설집 『독고의 꼬리』를 통해 리얼리티부터 판타지까지, 청소년 소설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제시했던 작가 하유지. 한여름 소나기처럼 청량한 아이들의 성장기를 펼쳐 보였던 그가, 이번 청소년 장편 『3모둠의 용의자들』에서 추리소설의 재미와 성장소설의 감동을 맛깔나게 버무려 선보인다.
작가는 “여러분이 자기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가 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청소년 독자들이 이 소설을 통해 자아 발견과 자존감 회복의 기회를 맞이하고, 주변과 소통하며 더불어 성장하길 응원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1년 만에 다시 뜨인돌출판 청소년 문학선 ‘비바비보’ 작품으로 돌아와 주셨네요. 정말 반갑습니다! 간단한 본인 소개와 함께,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를 들려주세요.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소설 쓰는 하유지입니다. 지난해 뜨인돌에서 『독고의 꼬리』로 인사를 드렸는데 올해 『3모둠의 용의자들』로 다시 찾아뵙게 되어 무척 설렙니다. 이번 작품을 쓰게 된 계기라면… 엉뚱한 채팅방에 메시지를 잘못 올려서 등줄기가 찌릿하도록 당황해 본 경험이 다들 있지 않나 싶어요. ‘마음속 이야기를 공개된 채팅방에 잘못 올렸는데 그걸 본 누군가가 충격을 받는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하는 발상에서 이 이야기는 시작되었습니다. 뒤이어 ‘난 누구랑 같은 반 되기 싫다’란 구체적인 메시지 내용이 떠올랐고요. 그다음에는 자존심은 센데 자존감은 좀 낮은 은율이, 은율이의 옆집 이웃이자 옆 반 친구인 호수, 엘라, 그리고 3모둠의 용의자들이 차례대로 저를 찾아왔답니다.
별 준비 없이 읽다가 어느새 쫀쫀한 수사망 속으로 빨려 들고 있음을 깨닫고는 살짝 놀랐습니다. 추리물로서 이 작품의 인물 설정이나 플롯 등을 구상하시는 데 꽤 많은 공이 들었을 거 같아요. 구상 과정에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쫀쫀한 수사망’이라니 과찬이세요. 쑥스럽지만 구상 과정을 말씀드려 보면, ‘난 누구랑은 같은 반 되기 싫다’란 메시지 내용과 그 ‘누구’에 해당하는 은율이, 은율이의 절친인 호수는 비교적 금방 떠올랐어요. 그런데 그 뒤로는 고민이 많았지요. 3모둠의 용의자들을 어떤 캐릭터로 채울지 이리저리 생각해 보아야 했고요, 가장 큰 어려움을 안긴 부분은 역시 ‘그래서 범인은 누구인가?’ 하는 문제였죠! 용의자들 각각의 사연과 고민을 짚어 주면서도 그 안에서 은율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함께 보여 주고 싶었어요. 용의자들 한 명, 한 명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했지요. 특히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지는 부분은 여러 번 다시 쓰고 고쳐 썼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완성한 이야기가 『3모둠의 용의자들』이란 책으로 태어나 독자 여러분 곁으로 다가가게 되었어요.
주인공인 은율이는 외모 콤플렉스에다가 외톨이 신세까지 겹쳐서 더욱 괴로운 학교생활을 하고 있네요. 다른 인물들도 각각 나름의 고민에 빠져 있고요. 작품 속에 묘사된 인물들의 고민 중 작가님이 비슷하게 경험해 본 사례가 있으신가요? 있다면,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저는 제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결국 저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삶과 생활과 생각과 느낌, 경험과 실패와 희망이 여러 방울로 나뉘어 이야기에 스며들지요. 특히 주인공은 보통 저와 깊이 연관되어 있어요. 저는 은율이처럼 자존감이 좀 약해요. 오랜 시간 저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 힘들어하며 살아왔지요. 그런데 언제인가부터는 ‘나를 괴롭히지 말고 다독여 주자’ 하고 저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제 자신이 미워질 때면 드넓은 우주를 생각한답니다.
우주 안에서 살펴보면 저는 먼지 한 톨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작디작은 존재이지요. 하지만 그 작은 존재가 이제껏 얼마나 많은 기쁨과 행복을 누렸는지 떠올려 보면 삶과 세상을 긍정하게 돼요. 물론 제가 누린 기쁨은 봄날의 햇볕이나 비스킷을 곁들인 커피 한 잔, 고양이의 보드라움과 같이 작고도 여린 것들이에요. 그렇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은 작은 존재에 깃들어 있다고 하잖아요? 여러분도 자신이 싫고 미운 날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럴 때면 여러분 안과 옆의 작은 행복에 마음을 기울여 보는 것이 어떨까요?
작가님 작품들에는 뭐랄까, 가뭇한 페이소스를 어떻게든 비집고 나오는 밝음 같은 게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품 속 상황이 자못 심각해서 그걸 맞닥뜨린 인물은 당연히 그 안에서 바동거리는데, 그 곤란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는 은근 유쾌함이 느껴지고 심지어 킥킥 웃음이 터지는 순간들도 있고요. 작품을 읽어 낸 독자 역시 마지막에 우울함보다는 흐뭇함을 머금고 책장을 덮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혹시 독자가 이런 감정을 느끼기를 의도하여 작품을 쓰시나요, 아니면 자연스럽게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는 건가요?
저는 좋게 말하면 감성이 풍부하고 나쁘게(정확하게) 말하자면 매사에 청승을 떠는 편입니다. 별것도 아닌 일에 고민하고 걱정하고 슬퍼하지요. 그러면서도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을 사랑하고 아껴요. 얼핏 모순되어 보이는 두 성향이 소설 속에서는 어떻게든 손을 잡고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아요. 곤란하고 안타까운 상황을 그리면서도 등장인물들이 그 상황을 씩씩하고 즐겁게 헤쳐 나가기를 바라거든요. 따라서 ‘의도하고’와 ‘자연스럽게’의 비율은 양념 반 프라이드 반처럼 반반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3모둠의 용의자들』은 추리물의 성격을 채용한 작품이어서 참 흥미로웠습니다. 한 해 전 발표하신 소설집 『독고의 꼬리』의 표제작 「독고의 꼬리」에서는 판타지적 설정을 실험해 보셨는데요, 혹시 앞으로 좀 더 본격적인 SF나 판타지 등 장르소설을 써 볼 계획도 있으신가요?
안 그래도 요즘 SF와 판타지 분야에 부쩍 매력과 흥미를 느끼고 있답니다. 판타지 느낌의 단편을 한 편 쓰기도 했고, SF 소설도 구상하고 있어요. 언젠가는 「독고의 꼬리」의 세계관을 좀 더 확장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 작품의 인물인 독고와 해나가 아직도 제 마음속을 서성거리고 있거든요. 저는 SF와 판타지뿐만 아니라 역사, 스릴러 등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열심히 읽고 쓸 테니 앞으로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모둠의 용의자들』은 분명 청소년 소설인데 20~30대가 읽어도 딱히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소년기에 누구든 겪었을 여러 가지 고민이 작품 속에 다양하게 펼쳐져서 더욱 공감을 자아낼 것 같아요. 원래 성인 소설로 데뷔하셨으니 어른을 위한 작품도 다시 펴내실 텐데요, 이런 청소년기의 트라우마 같은 걸 소재로 한 작품을 쓰시게 될까요?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든 청소년기의 인물을 등장시키는 경우가 많을 것 같아요. 10대 중후반의 인물이 제 안의 목소리와 가장 가깝게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10대의 마음과 고민을 담아낸 청소년 소설, 10대에서 20대까지 아우르는 영어덜트 소설, 가장 숨 가쁘고 바쁜 삶을 살아가는 3040의 애환을 다룬 소설, 노년기의 삶을 그린 소설... 다양하게 많이 써 보고 싶습니다. 어떤 주제, 내용으로든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에 덧붙여 성인 독자를 위한 집필 계획을 귀띔해 드린다면, 조만간 ‘커피’를 소재로 한 소설을 한번 써 볼까 하는 중이랍니다.
인터뷰 내내 재미난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을 더 알아 가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아요. 마무리 인사와 함께, 작가로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나 독자께 전하고픈 이야기 등을 말씀해 주세요.
『3모둠의 용의자들』에 관한 제 이야기를 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질문에 답하면서, 이 책을 어떤 분들이 읽어 주실지 기대하는 마음이 새록새록 더 커졌어요. 앞으로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이야기, 지치고 쓸쓸한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따뜻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저는 계획 짜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요, 요즘은 써 보고 싶은 소설 목록을 작성하며 꿈을 뭉게구름처럼 뭉게뭉게 키우고 있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꿈과 희망을 지니고 살아간다는 건 나 자신을 다정하게 어루만지는 일 같아요. 따뜻하고 재미있는 소설로 여러분의 마음에 가닿기 위해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하유지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고, 여러 지역으로 이사를 다니다가 현재 정착한 곳은 인천이다. 탄수화물과 고양이, 각종 형태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쓰며 즐겁게 살고 싶다. 2016년 한국경제 신춘문예에 장편소설 『집 떠나 집』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담담하고 유머러스한 어조, 일상적 소재, 착하고 소소한 인물과 사건들로 이루어진 ‘생계밀착형’ 멜로드라마를 쓰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등단작 이외 장편소설 『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 소설집 『독고의 꼬리』 등이 있다. 함께 지은 책으로는 『앙상블』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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