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반짝이는 순간을 찾는 사람 (G. 이서수 소설가)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241회) 『헬프 미 시스터』
저도 거의 평생을 가난했는데 제가 가까이에서 본 사람들은, 그 안에서 반짝이는 어떤 따뜻한 순간들도 있었어요. 그 사람들이 저에게 보여주는 그런 모습들을 제가 더 많이 기억을 하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2022.03.24)
“이 세상의 모든 가족들이 불행한 미래를 함께 방어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안녕하세요, 소설 쓰는 황정은입니다. 오늘은 이서수 작가님의 소설 『헬프 미 시스터』의 ‘작가의 말’로 <야심한책>을 열었습니다.
‘헬프 미 시스터’는 구직자도 의뢰인도 모두 여성인 플랫폼 앱입니다. 이 플랫폼을 통해서 이를 구하려는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비활성화’인데요. 의뢰를 10% 이상 거절하거나 평점이 낮을 때 구직자의 계정은 비활성화 되고 플랫폼을 더는 이용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이 플랫폼을 이용하는 구직자는 늘 수락 가능한 상태로 대기를 하는데요. 피곤하고도 가혹한 근로 조건이지만 이 플랫폼을 통해 노동하는 60대 여성인 ‘여숙’ 씨는 자기가 하는 일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을 수락 가능한 상태. 이것은 구직의 마음가짐이라기보다는 관계를 대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고 『헬프 미 시스터』는 이런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은 사람들을 보여주는 다정한 소설입니다.
오늘은 이 소설을 쓴 작가를 만나보겠습니다. <황정은의 야심한책>, 시작합니다.
오늘 모신 손님은 “현실을 외면한 이야기는 앞으로도 쓰지 않을 것이고, 지금도 쓰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소설가입니다. 장편소설 『헬프 미 시스터』를 쓰신 이서수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황정은 : 제가 두어 달 전에 <채널예스>하고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만나고 싶은 작가는 누구냐’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때 ‘이서수 작가님의 단편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한 적이 있거든요. 작가님의 이번 신작이 준비 중이라는 걸 모르고 한 대답이라서, 뵈려면 1년은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오늘 이렇게 뜻밖에 이르게 만나게 돼서 너무 기쁘고 반갑고 그리고 떨립니다.
이서수 : (웃음) 저도 떨려요. 저도 그 얘기를 전해 듣고 제가 어떻게 프린트라도 해서 소설집을 손으로 꿰매서 만들어서 보내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황정은 : 2021년 여름에 「미조의 시대」와 관련된 인터뷰에서 “‘꿈, 가난, 노동, 가족, 여성, 연대’의 범위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뻗어나간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다”고 답하셨어요. 이번 『헬프 미 시스터』가 그 소설일까요?
이서수 : 사실 『헬프 미 시스터』는 「미조의 시대」보다 훨씬 전에 쓴 소설이에요. 그래서 순서로 보면 『헬프 미 시스터』가 훨씬 앞이고, 그걸 쓰고 나서 제가 약간 변화를 겪고 나서 쓴 게 「미조의 시대」예요.
황정은 : 네, 어떤 변화였을까요?
이서수 : 『헬프 미 시스터』에 보면 되게 다양한 인물이 나오잖아요. 성별도 다양하고 연령대도 다양한데, 소설을 쓰고 나서 여성 인물한테 좀 집중을 하게 됐어요. 여성 인물들 얘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깊게 들어가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나온 게 「미조의 시대」예요.
황정은 : 어머니와 미조가 주 인물이죠.
이서수 : 네, 집을 구하러 다니는.
황정은 : (「미조의 시대」는) 작가님이 전셋집을 구하러 다닌 경험 때문에 쓰기 시작한 소설이라고도 하셨어요. 전셋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절망했고, 그 마음을 평범한 푸념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기에 소설로 썼다고도 하셨더라고요. 작가님한테는 소설 쓰기란 어떤 작업인지 궁금했습니다.
이서수 : 제가 상처를 받으면 그거를 잘 풀지를 못하는 성격인 것 같아요. 그걸 마음속에 계속 남겨두고 계속 곱씹고. 어렸을 때부터 계속 그런 성격을 갖고 있었는데 어른이 돼서도 고쳐지지가 않는 거예요. 그런데 소설을 쓰면 제가 상처를 받았던 일들을 재현을 하면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을 하더라고요. 그렇게 소설을 쓰기 시작을 했던 것 같아요. 제가 겪었던 일을 다시 해석을 해보고 그 인물을 통해서 ‘내가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만 했던 것을 인물의 행동으로 보여주기도 하면서 어느 순간에는 좀 치유가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소설 쓰기를 놓지를 못하겠는 거예요.
황정은 : 네, 공감이 많이 됩니다. 저한테도 글쓰기가 그런 면이 있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젯거리들을 좀 거리를 두고 뭔가로 다룰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 같아요. 글쓰기에 그런 면이 분명히 있죠.
이서수 : 네.
황정은 : 소설을 쓸 때 경험 속에서 소재를 찾는 편이라고도 하셨어요. 이번 『헬프 미 시스터』에서는 어땠나요?
이서수 : 제가 코로나가 오기 전에 플랫폼 노동을 했었거든요. 그때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쓴 소설이에요.
황정은 : 택배기사 일을 하신 건가요?
이서수 : 네, 자차 배송 일을 했었어요. 택배 물건을 위탁 받아서 차로 배송하는 일을 했었는데 그때 느낀 경험들이 소설 속에 많이 들어가 있어요.
황정은 : 택배기사 일을 하셨다는 이력을 보고 그 경험이 이 소설에 많이 인용이 되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차 배송이라는 노동의 형태가 궁금해요. 어떤 일인가요?
이서수 : 일단 앱으로 신청을 해요. 내가 배송을 나갈 수 있는 상태가 되면 앱으로 신청을 하면은 물건을 배정을 받을 수가 있거든요. 그러면 자기가 갖고 있는 차를 몰고 나가서 거기서 물건을 받아서 차에 싣고 각 배송지로 물건을 배달하면 되는 일이에요. 생각보다 좀 단순해요.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육체 노동이니까 몸이 좀 힘들죠.
황정은 : 『헬프 미 시스터』는 직업도 돈도 없는 여섯 사람이 한 집에 모여 사는 상황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수경, 우재, 준후, 지후, 여숙 씨, 양천식, 그리고 은지와 보라까지 다양한 사람이 등장하는데요. 저는 이 소설을 읽는 동안에 이 다양한 사람 모두의 처지에 두루 공감을 할 수가 있었어요. 작가님이 이 사람들을 정말 열심히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작가님은 이 많은 인물들 중에서 누구를 생각할 때 가장 좋았나요?
이서수 : 좋았다는 의미가...
황정은 : 음.. 신나서 썼던 인물?
이서수 : 양천식 씨요. 저는 양천식 씨가 굉장히 낙천적인 인물로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그 인물을 쓸 때가 가장 신났고. 가장 공감이 되면서도 가장 힘들었던 건 주인공 수경이었어요.
황정은 : 소설을 읽는 동안에 저는 가난을 계속 생각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모두 가난하거나 상처가 있는 사람들인데 무기력한 사람이 없어요. 예를 들어서 수경이라는 인물은 스스로 일어서고 또 상처를 지닌 채로 어떻게든 걸어가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힘이 어디서 생기는지 저는 궁금했어요.
이서수 :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 바라는 게 많고 클수록 여유가 없고 사람이 좀 팍팍해지는 것 같아요. 바라는 게 거의 없고 작을수록 여유로운 태도가 좀 나오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너무 번듯하지가 않아요. 가진 게 너무 없어요.
황정은 : 그렇죠.
이서수 : 회사를 다니는 사람도 없으니까 동료하고 대화할 일도 별로 없고, 친구들을 만나도 오히려 박탈감만 느끼는 거예요. 오히려 가족하고 대화를 할 때 통한다고 느끼는 거죠. 가족한테서 동질감을 느끼는 거예요. 저는 가진 게 너무 없으니까는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자기랑 비슷한 가족에게서 위안을 가장 많이 느끼는 거죠.
황정은 : 이 사람들이 가난한데도 서로를 향해 여전히 가지고 있는 관심이라는 게 대단히 인상적이었거든요. 가난하면 그 가난이 ‘우리가 다 같이 가난해’라는 생각보다는 ‘내가 이렇게 가난해’라는 생각에 빠지기 쉽고, 그러다 보면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한테도 관심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그렇게 하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가지고 있는 관심으로 서로를 보호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미조의 시대」에도 그런 게 있어요. 제가 그래서 그 단편을 좋아하는데. 미조가 고된 노동을 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어머니가 시를 썼다고 얘기를 하잖아요. 하루 종일 시를 썼다고. 그런데 미조가 현실의 고민 때문에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읽어보라고 말을 한단 말이에요. 제가 그 순간을 너무너무 좋아해요.
이서수 : 가난한 사람들이 좀 무기력하고 술과 도박에 잘 빠질 것 같고 거칠 것 같고,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편견들이 있잖아요. 저도 거의 평생을 가난했는데 제가 가까이에서 본 사람들은, 그런 모습도 물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안에서 반짝이는 어떤 따뜻한 순간들도 있었어요. 그 사람들이 저에게 보여주는 그런 모습들을 제가 더 많이 기억을 하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소설을 쓸 때도 그 사람들의 안 좋은 면을 쓸 수도 있죠. 실제 그게 현실에 더 가까울 수도 있고. 그런데 그러면서 일단 쓰는 제가 너무 힘들어요. 저는 그걸 다시 또 재현을 해서 다시 경험을 하는 거거든요. 어떻게 보면 제가 무의식적으로 그걸 피하려고 좀 노력을 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러니까 소설 속에서 저도 구원을 찾는 거죠.
황정은 : 저는 그렇게 반짝이는 순간들을 발견하는 것도 일종의 능력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되게 유지하기 힘든 능력인데.
이서수 :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아가려면 그걸 찾아야 돼요. 그걸 찾지 않으면 살기가 힘드니까. 저는 어릴 때부터 그걸 찾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황정은 : 다행입니다. 그걸 찾는 분이라서 또 이런 소설을 써주시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서수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구제, 빈티지 혹은 구원」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당신의 4분 33초』로 제6회 황산벌청년문학상을, 단편소설 「미조의 시대」로 제22회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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