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제로웨이스트, 에코프랜들리 라이프
책읽아웃 - 이혜민의 요즘산책 (240회) 『무해한 하루를 시작하는 너에게』
이 거대한 위기 앞에서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나 하나 해 봤자 소용 없지 않냐고 포기하기보다는 뭐라도 해봐야하지 않을까요? (2022.03.23)
“오늘의 기온은 최저 영하 35도, 최고 영상 39도가 되겠습니다.”라며 하루 일교차가 무려 70도 이상 차이가 난다는 2040년 날씨예보를 시뮬레이션하는 장면이 있었다. 큰 일교차와 잦은 재해성 기후로 농업은 힘들어지고, 당연히 농작물 가격은 대폭 상승하여 배추 한 포기에 50만 원, 양파 1kg에 45만 원일 것이라는 예측이 뒤를 이었다. 물부족 등급은 매우 나쁨으로 1일 물 공급량이 가구당 2리터이오니, 식수를 먼저 확보하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듣기만 해도 끔찍했다. 그저 나중의 일, 가까워봤자 다음 세대일 거라고 생각했던 문제가 지금 살던 대로 살면 10년 뒤부터 가속화되고, 20년 뒤면 닥칠 일이라니 두려워졌다.
이런 가상의 뉴스가 어쩐지 소름이 돋는 이유, 그건 바로 이게 SF 영화 속 한 장면이 아니라, 얼마 남지 않은 실제 우리 일상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점이겠죠. 1만 년이라는 지구의 오랜 역사 속에서 지구 온도는 4에서 5도가 변화했다고 해요. 자연스러운 변화였죠. 그런데 인간은 고작 100년 만에 지구의 온도를 1도나 올려버렸습니다. 우리는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을 저지른 걸까요? 해마다 심해지는 산불, 추위, 폭염, 그리고 지금 겪고 있는 전염병까지. 위기는 이미 우리 코앞까지 와 있고, 슬프게도 이 뉴스는 정말로 현실이 될지 모릅니다. 우리가 지금 이대로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면 말이죠.
그럼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 거대한 위기 앞에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나 하나 해 봤자 소용 없지 않냐고 포기하기보다는, 그래도 뭐라도 해봐야하지 않을까요? 언제나 그렇듯 큰 변화의 처음에는 작은 시작이 있었습니다.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되죠. 오늘은 그 작은 시작점이 될 방법으로, 제로웨이스트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게요.
요즘은 제법 날씨가 따뜻해졌어요. 진짜 봄이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냥 좋아하기엔 어딘가 찜찜해요. 제가 이 방송을 녹음 중인 지금 지구 반대편에서는 전쟁이 일어났고요. 코로나 확진자는 20만 명을 넘었습니다. 경북 울진에서 시작된 산불은 강원도까지 번지고 있다고 합니다. 동해안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어요. 이렇게 요즘 몇 년 새 부쩍 산불이 한 번 나면 더 크게 번지는 이유도 사실은 기후위기 때문이란 거 아셨나요? 몇 달 동안 꺼지지 않던 호주 산불 기억하시죠? 마찬가지로 기후변화로 건조함이 심각해져서 생긴 대자연의 경고라고 합니다. 그 외에도 해마다 추위와 폭염은 점점 심해지고 있죠.
이런 소식이 뉴스를 장식하는 요즘은 한 인간으로서 내 자신이 너무 작고 나약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무력감이 들기도 하죠.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런 어마어마한 위기를 만들어낸 것도 결국 인간이 한 일이잖아요. 반대로 말하면 이 위기를 해결하고 되돌리는 것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일 거란 생각도 듭니다. 의지만 있다면 말이죠.
물론 사회 구조적으로, 또 기업차원에서 바꿔야할 문제들도 수두룩하지만 우리는 또 우리의 자리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고요. 사실 그 중 하나는 요즘산책 첫 화에서 이미 소개해드린 적이 있어요. 바로 ‘비거니즘'입니다. 방송에서는 주로 동물권의 관점에서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 기후위기를 개인 단위에서 가장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채식이기도 합니다. 채식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는 요즘산책 1화와 2화에서 자세히 이야기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다시 듣기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고요.
오늘은 채식만큼이나 우리가 일상 속에서 당장 시도해볼 만한 일 두 번째로 ‘제로웨이스트'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제로웨이스트는 개개인이 일상생활에서 쓰레기 배출을 0(제로)에 가깝게 최소화하자는 취지의 캠페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완벽하게 0이 될 수는 없겠지만 0에 가깝게 탄소 발자국을 줄여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생활방식을 말해요. 불가피하게 발생되는 쓰레기를 줄이는 것을 시작으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이 사실 제로웨이스트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상 전반에서 실천이 가능하다는 뜻이죠. 뭐부터 하면 좋을까요?
오늘은 그 해답을 『무해한 하루를 시작하는 너에게』라는 책에서 찾아보려고 합니다. 이 책은 환경 이론서는 아니에요. 따지자면 실천서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어렵게 느껴지는 방법론이라기보다는 가벼운 에세이 형식으로 쓰였어요. 제가 추천해드리는 책이 늘 그렇듯, 이번 책도 아주 가벼운데요. 역시나 책의 표지와 내지 종이 모두 fsc인증을 받은 친환경 종이에 콩기름 인쇄를 했어요.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유독 느껴지는 종이 질감이 편안하더라고요. 심지어 페이지 수도 지금까지 소개한 책 중 가장 얇아요. 137페이지. 뭔가 책을 쓸 때도 불필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는 제로웨이스트 정신을 담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신지혜 님은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건강한 문화를 만듭니다'라는 모토로 친환경 라이프를 제안하는 웰니스 커뮤니티 ‘나투라 프로젝트'를 올해로 5년째 운영하고 있어요. 자연 속에서 요가를 하기도 하고 친환경 마켓을 열거나 플로깅을 하기도 하는 등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서로 건강한 정보를 나누고, 좋은 에너지와 영감을 받는 커뮤니티라고 해요. 이런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일상에서는 제로웨이스트와 비거니즘, 미니멀리즘 등 지속가능한 에코프랜들리 라이프를 지향하는 사람. 이렇게 들어서는 어쩐지 나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사는 사람일 것 같은 생각도 들 텐데요. 사실 그렇지도 않습니다. 지혜님의 또 다른 이력을 보면 생각이 달라지실 거에요.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명 코덕, 코스매틱 덕후, 그러니까 화장품 덕후의 길을 걸었던 이력이 있습니다. 화장품 블로그를 운영하기도 할 만큼 화장품을 좋아했고요. 쇼핑만이 나를 구원해준다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다고 해요. 그런 사람이 제로웨이스트, 에코프랜들리라니. 어떻게 이렇게 바뀔 수 있었을까, 그렇게 물욕이 있던 사람이 하는 제로웨이스트는 어떻게 하는 걸까 궁금해지지 않으신가요?
지혜님이 코덕의 길을 가게 된 건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예요. 어린 시절에는 분명 자연 속에서 지내는 걸 좋아하던 아이였는데 지독한 입시와 대학교, 직장을 거치면서 즉흥적인 욕구가 이끈 소비 생활로 일상이 가득 채워지게 되었죠. 멋 부리는 일이 나를 위하고 관리하는 것이라 믿었고, 알바로 번 첫 월급의 80%를 백화점 1층 화장품 코너에서 썼을 정도예요. 스물넷에 독립을 하고 나서는 관심사가 집안 살림 전체로 확장되어서 음식도, 생활용품도 가득가득 채워 놔야 안심이 되고 기분이 좋았다고 해요. 버는 족족 원하는 물건을 사며 행복하기도 했대요. 그만큼 지금의 제로웨이스트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경제적 어려움과 적성에 맞지 않는 일로 인한 스트레스, 이별, 우울증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오게 됐다고 해요. 패배감과 무기력함에 허덕이다 우연히 요가를 시작했고, 몸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해요. 당시의 변화에 대해 지혜님은 이렇게 이야기해요.
“소비하려고 버는 일, 나를 위하는 것보다 타인의 시선을 더 많이 의식하던 시간. 느끼지 못했던 나를 발견하고 가까워지며 내 시선은 비로소 나를 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혜님은 요가 철학을 공부하면서 자연을 해치지 않는 것들을 찾기 시작합니다. 처음 시도했던 게 코덕답게 ‘크루얼티 프리' 화장품을 찾아 쓰는 거였다고 해요. 그 다음이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사용 최소화하기. 그 다음은 채식 위주의 식생활과 탄소배출을 줄이는 생활방식으로 점점 관심이 넓어졌어요. 정보를 습득할수록 자연스럽게 내가 지켜가고자 하는 삶의 범위도 넓어졌고 환경뿐 아니라 내 마음, 내 몸, 금전적인 부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해요.
이런 과정을 읽으면서 저는 ‘원헬스'라는 개념이 생각났습니다. 인간과 동물과 환경 등 이 생태계의 건강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는 인식을 말해요. 내 주변의 생활방식을 자연에 해가 가지 않는 방식으로 바꾸니 결과적으로 나에게도 건강한 영향을 미친 거니까요. 지혜님은 그 이후부터 입는 것, 먹는 것, 담는 것 등 삶에서 취하는 모든 것에 있어서 다른 선택을 하게 됩니다.
환경을 살리기 위해 나를 희생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우리 존재는 모두 이어져 있잖아요. 사실 이런 활동들은 ‘북극곰 살리기’가 아니라 ‘인간 살리기’라는 걸 잊으면 안돼요. 이상 기후가 빙하를 녹게 하면 가뭄, 산불, 홍수, 태풍 등 자연재해가 우리 삶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잖아요. 이런 자연재해는 물가 상승, 전염병, 기근과 내전까지 이어지게 만들죠. 결국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활동 하나하나가 우리 자신을 살리기 위한 생존 방법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지혜님은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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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인터뷰 채널 '요즘 것들의 사생활'을 운영하며 『요즘 것들의 사생활 : 먹고사니즘』 등을 썼다. 나다운 삶의 선택지를 탐구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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