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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은의 엉뚱한 장면] 투쟁이 소용없다고 말하지 말라 - <우리가 사랑이라 믿는 것>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 믿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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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영화와도 상관없이, 이 시는 내내 극장을 나서고 싶어 안절부절못하던 나의 시끄러운 마음을 다잡아 잠시나마 스크린에 붙들었다. (2022.03.10)


남다은의 엉뚱한 장면 : 작품의 완성도 혹은 작품 전체에 대한 감상과는 무관하게 특정 장면이 엉뚱하게 말을 걸어올 때가 있다. 그 순간은 대개 영화의 큰 줄기에서 벗어난 지엽적인 장면이 관람자의 사적인 경험을 건드릴 때 일어나는 것 같다. 영화의 맥락에 구애받지 않은 채, 한 장면에서 시작된 단상을 자유롭게 뻗어가 보려고 한다.


솔직히 마감이 아니었다면, 극장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때면 몰라도 어제 같은 날은 정말 그랬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이 시작하자마자 상영시간 내내 잡생각과 싸우게 되리라 직감했다. 어두운 극장 안은 한적하고 따뜻했지만, 한구석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는 행위가 이상하게도 불안하고 불편해서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 상태가 유독 한가롭고 한심하게 느껴졌기 때문일까. 작품 내용과 무관한 현실의 현재성이 영화의 시간으로 빠져드는 길을 자꾸만 가로막았다. 몇 번이나 좌석을 옮겨 앉아봐도 소용없었다. 울창한 숲을 초토화해버린 화마와 잿더미 이미지, 폭격을 피해 지하 대피소에 모여있는 아이들 영상, 악취 경쟁에 몰두하는 유력 대선 후보의 얼굴들. 여전히 미친 듯이 진행 중이며 그 끝을 알기도 어려운 현실의 추악한 단면들이 영화 장면에 뒤죽박죽 엉켜버렸다.

현실의 비극적 실재 앞에서 영화라는 오락의 무용함이나 무력함을 주장하려는 건 물론 아니다. 안전한 극장 안에서 평온함을 누리면서 마치 세상의 아픔을 다 껴안은 듯 알량한 도덕심이나 정의감을 내세우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세상의 소음과 차단된 극장 안에서야 비로소 그간 현실이 안긴 스트레스와 뒤틀린 심사를 새삼 확인하며 당황스러웠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더욱이 이 영화는 그런 불난 심사를 잠재우긴커녕 오히려 거기 잔잔히 기름을 부으며 갑갑함을 배가하는 것만 같았다. 

결혼 생활 29년 차, 에드워드(빌 나이)는 아내 그레이스(아네트 베닝)에게 이별을 요구한다. 그는 그레이스의 욕망에 부응하고자 지난 29년을 버텨왔지만, 더이상 그럴 수 없으며 새로운 파트너가 생겼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레이스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선언을 도무지 믿지 못한다. 지난밤에도 남편의 반응에 만족하지 못해 행패를 부렸으면서도 그레이스는 마치 행복한 결혼 생활에 불현듯 날벼락이 떨어진 것처럼 현실을 부정한다. 집에 홀로 남겨진 뒤에도 그는 이별의 공모자가 아닌 일방적으로 상처 입은 피해자 위치에서 한없이 가련한 얼굴로 남편과 아들에게 집요하게, 공격적으로 징징댄다. 

극장 안 관객들은 그 투정을 정당하게, 조금은 귀엽게 여기는 것 같았지만(그레이스가 억지를 부리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종종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자존심만 앙상하게 남은 채 자존감은 사라진 그의 모습이 답답하고 힘들었다. 위선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남편도, 아들도, 심지어 도입부 장면을 본 관객도 감지한 부부관계의 심각한 균열을 왜 혼자만 모른 척하는 걸까. 그레이스는 돌아올 리 없는 남편을 기다리며 ‘사랑’ 운운하지만, 정작 자신이 지키고 싶은 게 무엇인지, 잃은 게 무엇인지 알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그의 집요한 칭얼댐은 처음에는 의아하다가 뒤로 갈수록 징그럽고 무서워진다. 조금 나아지는 듯하다가 매번 더 심술궂게 제자리로 돌아오는 그의 상태는 후반부 한 장면에서 정점을 찍는다. 

에드워드와 새 파트너 안젤라(샐리 로저스)의 평온한 집을 바라보던 카메라가 미끄러지듯 현관 쪽으로 다가서자 문이 열린다. 그 문을 열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선 이는 경악스럽게도 그레이스다. 그레이스는 에드워드의 물건을 전해주러 왔다고 태연하게 핑계를 대지만, 이건 거의 스토커 수준의 행동 아닌가. 그때 안젤라가 모습을 드러내고 세 사람이 마주한다. 그레이스가 웃는 얼굴로 비아냥대자, 안젤라는 차분히 날카롭게 대꾸한다. “그때는 세 사람이 불행했다면, 지금은 그중 한 명만 불행하네요.” 그레이스는 불행을 뒤집어쓴 채 아무 말도 덧붙이지 못하고 집을 나온다. 그레이스에게는 가혹한 말이겠지만, 그 순간 나는 연민이 아니라 얼마간 통쾌함을 느꼈다. 진작 끝나버린 관계를 인정하고 제발, 이제 정신 좀 차리라고!



이 장면을 지나 영화는 그레이스가 도입부에서 몰두하던 시선집을 다시 등장시킨다. 그는 아들의 도움을 받아 키워드를 선택하면 그와 관련된 시가 나오는 온라인 시선집을 완성한다. 영화가 이 대목에서 선택한 키워드는 ‘희망’이다. 이어 그레이스의 목소리로 시 한 편이 낭송되기 시작한다. 1840년대에 작성된 이 시의 제목은 무려 “투쟁이 소용없는 짓이라 말하지 말라”(아서 휴 클러프)다. 아마도 영화는 그레이스를 불행과 맞서 싸운 존재로 부각하기 위해 이 시를 동원했겠지만, 투지로 당당한 시의 제목과 내용은 그레이스의 지난 행동들에 투영하기에 다소 뜬금없거나 과분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레이스와 상관없이, 어쩌면 영화와도 상관없이, 이 시는 내내 극장을 나서고 싶어 안절부절못하던 나의 시끄러운 마음을 다잡아 잠시나마 스크린에 붙들었다. 정신이 번쩍 났다고 할까,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고 할까. 극장을 떠나기 전, 이 시를 만나 그래도 다행이었다. 

“투쟁이 소용없다고 말하지 말라/ 노력과 상처가 부질없으며/ 적은 약해지지도, 패배하지도 않으며/ 세상은 그대로일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중략)/ 피로에 지친 파도들이 헛되이 부서지며/ 여기에서는 한 치의 땅도 얻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저만치 뒤, 개울과 작은 만으로는/ 바다가 소리 없이 밀려들고 있지 않은가/ 햇살이 새벽녘에 찾아들 때/ 동쪽 창으로 스며드는 게 아니다/ 앞쪽에서 태양이 느릿하게 느릿하게 떠오르지만/ 보라, 서쪽 대지도 환해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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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남다은(영화평론가, 매거진 필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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