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욱, 당신의 전화기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
『사람입니다, 고객님』
저는 콜센터 노동이 감정노동자가 아니라 디지털 정보를 다루는 ‘필수 노동자’라고 생각해요. 특히 지금처럼 국가적인 재난이 일어났을 때, 이 역할은 더 중요해지죠. (2022.03.04)
“나는 정말로 지고 싶지 않았다.” 콜센터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김관욱 교수가 자주 떠올린 말이다. 그러나 가까이 들여다본 현장은 늘 지는 일의 연속이었다. 화장실에 갈 틈도 없이 밀려드는 전화와 비인간적인 실적 경쟁. 왜 우리는 일을 하며 몸과 마음을 다쳐야 할까? 『사람입니다, 고객님』은 콜센터 노동을 통해, 일하는 모든 이들의 질문에 답하려는 고군분투의 기록이다.
아직도 기억나요. 코로나19 초기에 콜센터에서 대규모 감염이 발생했죠.
이미 “이러다 큰일나지” 하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어요. 결국 내부 환경은 개선되지 않는데 상담사분들만 집단 감염의 원인으로 낙인 찍혔죠. 사실 이전 메르스 사태 때 경험했거든요. 방역 정책이 발표되면 콜센터에 전화가 빗발치는데 상담사분들은 충분한 교육도 못 받고 투입돼요. 마스크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요. 이런 상황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빨리 콜센터 관련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에는 의사로 근무하셨죠. 이력이 독특했어요. 의사로 일하다가 인류학을 공부하게 되셨다고요.
병원 근무가 끝나면 콜센터 상담사분들을 찾아가서 밤늦게까지 인터뷰를 하는 게 일상이었죠. 인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군의관 시절이었어요. 군 병원에서 금연 관련 교육과 상담을 했거든요. 부대 내에 흡연자가 굉장히 많아서 병사들이 왜 흡연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지 늘 궁금했죠. 그런데 문제를 파헤치다 보니까 결국 문화에 원인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침 의사이자 인류학자인 폴 파머에 대해 쓴 『작은 변화를 위한 아름다운 선택』을 읽고는 큰 감동을 받았어요. 내가 하려는 연구가 바로 이거구나 싶어서 인류학 대학원에 가게 됐죠.
‘왜 유독 콜센터 상담사들은 담배를 많이 피울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하셨다고요.
보통 여성 흡연율이 6~7% 정도인데, 콜센터 상담사분들은 40%에 이르거든요. 이 정도면 개인이 아니라 직업에 원인이 있는 거예요. 도대체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궁금했어요.
무작정 구로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가서 콜센터 사무실을 찾아 헤매셨어요.
진짜 막막했죠.(웃음) 의사 신분일 때는 쉬웠어요. 보건소를 통해서 금연 상담을 하면서 상담사분들을 만날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연구자로서는 접근조차 어려운 거예요. 콜센터는 개인정보 유출 문제도 있어서 외부인을 최대한 막으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연구 대상자를 모집하는 전단지를 만들어서 붙이고 다녔어요. 콜센터 업체 리스트를 얻어서 무작정 찾아가기도 하고 온라인 사이트에 올리기도 하고요. 회사 담당자에게 혼도 많이 났죠. 그 작업만 3~4개월 걸렸어요.
상담사분들을 만나면서 사연도 많이 들으셨죠. 특히 ‘하은씨’를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만나는 듯했다고요.
처음 하은씨를 만났을 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카페를 여러 번 바꿔가며 종일 이야기했던 기억이 나요. “오랜만에 사람을 만난 것 같다.”고 하면서 인생을 다 말해주셨죠. 출근길을 함께 걸으면서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콜센터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보여주셨어요. 그 분은 정말 상담 일에서 보람을 얻다 보니 실적이 좋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도 서로를 경쟁시키는 환경 안에서 상처를 많이 받으셨죠. 그나마 규칙적인 생활을 철저히 지키고, 특정 시간과 금요일 밤에 술과 담배를 허락하면서 버텨온 거예요.
그 앞에서 차마 금연을 권하지 못했다고 하셨어요.
의사로서는 담배를 끊으라고 해야 하겠지만, 사연을 들으니 쉽게 말할 수 없겠더라고요. 하은씨는 하루 일과를 정해놓고 특정 시간에만 담배를 피웠어요. 맥주와 담배가 금요일 밤의 루틴이었던 거죠. 규칙적인 스케줄을 따르는 게 곧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고, 그게 깨지면 자신의 삶이 무너질 것 같다고 했어요. 담배 자체가 아니라, 정해진 일상의 규칙이 중요했던 거예요. 하은씨를 만나고 흡연에 대한 생각이 많이 깨졌어요. 중독 문제를 개인의 삶에서 이해하게 된 거죠. 흡연이 그분에게는 중요한 삶의 이정표였으니까요.
보통 콜센터 하면 ‘감정노동’을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감정노동’으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고요.
‘감정노동’이라고 하면, 단순히 고객만 폭언을 멈추면 해결될 문제처럼 보이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상담사분들은 친절한 응대뿐만 아니라, 정보를 빠르게 숙지해서 고객에게 제공하고 그것을 정리하는 일까지 상당히 숙련된 노동을 해요. 그런데도 낮은 임금을 받고 끊임없이 실적을 경쟁시키는 구조에서 하루에 수백 통의 전화를 받아요. 아파도 쉬지 못하는 시스템 속에서 일하는 거죠. 결국 고객과 상담사가 아니라, 산업 구조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끊임없이 실적을 강요하는 문화. 낯설지 않네요.
한국이 유독 성장주의가 강하잖아요. 저도 의사로 근무할 때, 끊임없이 수술과 논문 실적을 증명해야 했거든요. 플랫폼 노동자도 콜 수와 별점으로 평가받고요. 그런 경쟁과 통제를 가장 앞장서서 하는 곳이 콜센터예요. 전자 모니터링으로 화장실 가는 것도 초 단위로 통제하고, 상담사간 실적을 비교하고 순위를 매겨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앞으로 모든 영역에서 콜센터 같은 환경이 나타날 수 있어요.
일하는 환경이 상담사의 몸에도 드러난다고요.
한 상담사분의 표현이 잊히지 않아요. 자기 몸이 꼭 ‘불판 위의 마른 오징어’ 같다고 하더라고요. 불판에 오징어를 구우면 딱딱하게 말려서 안 펴지잖아요. 상담사분들의 몸도 그렇게 굳어지는 거예요. 본인 잘못이 아니어도 항변을 못하고 계속 고개를 숙여야 하고,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못 가고요. 그게 반복되면 스스로 몸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리게 돼요. 실제로 상담사분들이 다 허리 디스크를 앓고,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을 갖고 있어요. 해로운 것을 거부하는 게 인간의 본능인데 그 능력을 잃어버리는 거죠.
일이 정말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네요.
영국의 한 사회학자가 ‘건강’을 신체가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했어요. 하지만 우리가 일하는 환경을 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잖아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출근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도 갈 수밖에 없죠. 결국 그게 차곡차곡 쌓이면 병이 되고 책임은 개인이 오롯이 지게 되는 거예요.
일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몸을 바꿀 수 있을까요? 상담사분들의 ‘몸펴기 운동’에서 가능성을 보셨다고요.
노동조합에 갔는데, 상담사분들이 모여서 운동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솔직히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어요. 그런데 몸을 펴는 행위가 상담사분들한테는 큰 변화였던 거예요. 몸이 굽으면 자신감도 없어지고 관계도 두려워지는데, 당당하게 몸을 펴니 마음도 달라지는 거죠. 실제로 운동을 하면서 상담사분들이 마음을 열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상담사분들이 몸을 변화시키고 저항을 시작하는 장면이 감동적이었어요.
노동조합을 만드는 과정은 정말 쉽지 않았어요. 당장 실적을 못 채우면 밀려나는데 선뜻 나서기 어려웠던 거죠. 그런데 상담사 한 분이 나서서 주변을 설득하기 시작한 거예요.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은 상담사분들이 ‘적정 콜 받기’에 성공한 일이에요. 상담사끼리 경쟁을 시키니까 모두가 오늘 하루 몇 통만 받자고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거든요. 한 명만 빠져도 실패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결국 성공했어요. 그렇게 집단행동을 통해서 상담사분들이 누가 우리 편인지 서로 눈으로 알아보게 된 거예요. 우리도 당당하게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경험하면서 자신감을 회복해나간 거죠.
동시에 그런 연대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느껴졌어요.
사실 꿈 같은 이야기예요. 대부분의 상담사분들에게는 아직 남의 일처럼 들릴 수 있거든요. 정말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에 어떻게든 기록을 남기고 싶었어요.
앞으로 우리 사회에 콜센터 노동이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할까요?
저는 콜센터 노동이 감정노동자가 아니라 디지털 정보를 다루는 ‘필수 노동자’라고 생각해요. 특히 지금처럼 국가적인 재난이 일어났을 때, 이 역할은 더 중요해지죠.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그에 맞는 보상이 전혀 없어요.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다는 생각으로, 여성들을 저임금 고강도 노동으로 몰아넣는 거죠.
이제 감정노동자가 아니라 ‘콜키퍼’라고 부르자고 제안하셨어요.
콜센터 상담사가 중요한 정보를 최전선에서 제공하는 일을 하는 사람임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콜키퍼’라는 말에는 상담사의 현실도 담겨 있어요. 정작 진짜 담당자는 따로 있는데 중간에서 상담사만 고객의 불만을 막아왔잖아요. 이제는 가치를 인정해줄 때가 됐어요. 일하는 사람들이 더는 아프지 않도록 말이죠.
*김관욱 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이자 가정의학과 전문의. 의료인류학 전공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영국 더럼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을 지내고 서울대, 한양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강의했다. 오랫동안 흡연과 중독, 감정노동과 건강에 대해 연구해왔으며 최근 몸, 수행성, 정동, 배치, 리미널리티, 의례 등의 개념을 중심으로 과학적 입증 가능성 너머의 피해자들(콜센터 상담사, 이주노동자, 흡연자, 부랑인 시설 입소자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폴 파머, 세상을 고치는 의사가 되어 줘』 『흡연자가 가장 궁금한 것들』 『굿바이 니코틴홀릭』 『아프면 보이는 것들』(공저)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의 길』(공저) 『의료, 아시아의 근대성을 읽는 창』(공저)이 있고, 옮긴 책으로 『자본주의의 병적 징후들』(공역) 『보건과 문명』(공역)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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