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혜 “‘집밥’이라는 순도 높은 사랑”
에세이 『부엌의 탄생』
내가 지은 밥을 먹고 누군가가 힘을 낸다는 것. 이건 남의 손을 빌려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형태의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2022.02.25)
패션지 에디터로 10년을 일했을 무렵, 불현듯 경상남도 하동으로 이주했다. 치열한 도시를 떠나 한적한 시골살이를 시작한 김자혜 저자는 치킨집과 16km, 편의점과 19km 떨어진 외딴집에 살면서 비로소 깨닫는다. 세끼 밥을 짓는 게 얼마나 고된 그림자 노동이었는지. 밥상을 차리는 건 누군가를 먹여 살리는 일. 지난 5년 사이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줄 아는 사람’이 된 그가 부엌에서 얻은 가장 큰 배움은 사랑이다.
하동 생활을 정리하고 2년 전 다시 서울에 오셨죠. 책을 쓸 때와 달리 밥상에 변화가 있겠어요.
시골에서처럼 매일 밥을 차려 먹지는 못하고요. 사 먹거나 시켜 먹을 때도 많아요. 그래도 하나 바뀐 건, 영양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하동에 살기 전에는 식사 메뉴가 주로 라볶이 피자, 치킨, 햄버거 등이었거든요. 요즘은 사 먹더라도 되도록 건강한 음식을 선택하려고 노력하죠. 특히 아침을 챙겨 먹는 습관은 여전히 잘 지키고 있어요. 아무리 바빠도 사과 깎고, 베이커리 생지를 구워서 먹어요.
아침을 꼭 챙기는 이유가 있으세요?
예전에는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때우곤 했는데, 하동에 살면서 느긋하게 일어나 아침 식사를 차려놓고 천천히 먹는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 요즘은 아침에 먹을 메뉴가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 왠지 위안을 주더라고요. ‘바빠서 잘 챙겨먹지 못하지만, 그래도 완전히 망가진 건 아니야!’ 이런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웃음).
“내가 부엌으로 내던져진 건 시골로 이사한 뒤의 일이었다.(9쪽)”고 했어요. 시골 생활에 적응하는 데 가장 높은 허들이 식사였다고요.
도시에서는 생활의 사이클이 단순했어요. 매일 일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하루를 보내며 살았어요. 그 속에서 식사는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로만 느껴졌죠. 그런데 시골에서는 끼니를 챙기는 게 정말 중요한 일과가 되더라고요. 살면서 그런 무력감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그동안은 무언가를 성취하며 살았고, 원하는 바가 좌절되어도 방향을 바꿀 수 있었는데 끼니를 챙기는 일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는데 잘할 자신이 없고 도무지 피할 수도 없으니까요.
어떤 종류의 무력감이었나요?
재난영화를 보면 사람들이 길가에 있는 차를 훔쳐 타고 도망가서 목숨을 구하잖아요. 운전면허가 없을 때는 그런 장면을 보고 ‘나는 저기서 죽을 수밖에 없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웃음). 이와 비슷한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 밥을 해 먹는다는 게 생존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하동에 내려가서 처음 깨달았죠. 그래도 자발적으로 이런 기회가 주어졌다는 게 좋았어요. 보통은 유학, 독립, 출산 같은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식사를 만들어 먹는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 책을 계약하고 나서 밥을 더 열심히 해 먹었죠.
음식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아버지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매일 가족의 식사를 만들던 어머니의 이야기로 책이 마무리되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던 것 같아요. 30대 중반이 되었는데도 혼자서 밥을 차려먹을 줄 모르는 나를 보며 맨 처음 아빠가 생각났고, 그렇게 끼니를 스스로 챙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엄마가 자주 떠올랐거든요. ‘밥 차려먹기 기능’의 부재가 사람을 얼마나 한심하고 무력하게 만드는지 알고 나니 주변의 수많은 아빠들이 보이더라고요. 책이 나오고 나서 아빠한테 “너무 한심한 사람으로 그려놔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사실인데 뭐, 괜찮아.”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엄마가 차려주시던 밥상은 어떤 모습이었어요?
매 끼니 밑반찬을 일일이 접시에 담아서 밥을 차려주셨어요. 반찬통이 그대로 식탁에 올라온 적이 한 번도 없었죠. 냉장고는 늘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고, 반찬통마다 무엇이 담겼는지 적은 견출지가 붙어있었어요. 집에 모밀판, 돌솥 등이 식구 수만큼 있었고요. 정성스럽게 밥을 차려주시는 엄마였죠.
부엌일을 직접 해봐야 깨달을 수 있는 노하우들에 공감이 갔어요. ‘냉장고와 팬트리를 관리하기 위한 메모법’이나 ‘시금치는 끓는 물에 넣어 휘휘 젓고 바로 건질 것’같은 팁이요(웃음).
여전히 능숙하게 잘하지는 못해요. 특히 식재료 관리는 너무 어렵죠. 어떤 식재료를 어떻게 활용할지 시간을 많이 들여서 생각하고, 꾸준히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사실 출간을 앞두고 마음이 불편했어요. 책을 낸 이상 밥을 잘 해 먹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드는데,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한편으로는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걱정도 되었고요. 사실 저는 그렇게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웃음).
작가님이 제일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음… 자주 만들어 먹는 건 닭볶음탕, 찜닭, 파스타예요. 제일 못하는 건 생선조림과 나물무침!
혼자 살거나, 바쁜 맞벌이 부부의 경우에는 밥을 직접 만들어 먹는 게 일종의 낭비처럼 느껴지기도 할 거예요. 그럼에도 끼니를 스스로 챙기는 기쁨이 있다면요.
내가 나와 내 식구를 먹일 때 느낄 수 있는 기쁨은 직접 체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내가 지은 밥을 먹고 누군가가 힘을 낸다는 것. 이건 남의 손을 빌려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형태의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새로운 사랑인 거죠. 엄마들이 ‘내 새끼 밥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고 하잖아요. 저는 아이가 없지만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요. 이 마음은 밥을 사 먹으면서는 결코 알 수 없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진한 색의 사랑 표현(185쪽)”인 거네요.
맞아요. 예전에는 엄마가 밥 먹는 저를 왜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지 몰랐거든요. 이제 그 눈빛의 의미를 알아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 걸 볼 때 오는 충만한 기쁨이 있더라고요.
서울로 돌아온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하동이 너무 멀었어요. 부모님이 점점 나이 들어가는 게 눈에 보이고, 저희 부부를 무척 그리워하셨거든요. 어느 순간부터 불효하고 있다는 느낌,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지역사회에 잘 어우러지지 못했어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긴 했지만, 지역에서 삶이 확장되지 않으니 생활을 지속하기가 어렵더라고요.
“미래의 트렌드를 예측하던 과거의 내가 오늘 먹은 과일의 씨앗을 틔워 미래의 나무로 가꾸는 사람이 된 것은 순전히 이 집의 공로다.(90쪽)”라고 하셨어요. 여전히 패션지를 만들지만, 일을 대하는 태도는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과거에는 ‘이거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정말 열심히 몰두해서 일했죠. 여전히 그렇긴 하지만, 전에 없던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래, 이거 아니어도 괜찮아’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요. 아마 가난해졌던 경험 때문인 것 같아요. 시골에 있으면서 ‘한 달에 100만 원만 가지고도 충분히 살 수 있구나’라는 걸 경험했거든요. 덕분에 외부의 타격에도 전처럼 큰 상처를 입지 않아요. 꼭 이 일이 아니어도, 이 방향이 아니어도 충분히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체감했으니까요.
처음 밥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을 때 도움을 받은 콘텐츠가 있나요? 책을 읽고 요리에 관심을 가지는 독자들을 위해 추천해 주세요.
‘샤민 노스랏’의 『소금 지방 산 열』을 여러 번 읽었어요. 음식을 만들고, 먹는 걸 굉장히 사랑하는 저자가 쓴 책인데 단순한 레시피북이 아니라 요리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꿔주죠. 식재료에 열을 가하고, 음식을 만들면서 재료의 물성이 변하는 메커니즘에 대해 쉽게 설명하고, 음식을 대하는 태도를 생각하게 해요. 꼭 요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읽어보면 좋을 거예요. 같은 제목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도 있는데 저는 책이 훨씬 흥미로웠어요.
음식을 만들면서 “으스대지도 의기소침해지지도 않기 위해 세운 두 가지 원칙(180쪽)” 중 하나가 ‘SNS에 음식 사진 올리지 않기’였어요. 이유가 무엇인가요?
사진을 올리기 위해 음식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사진이 예쁘게 나올 메뉴를 선택하게 되고, 때로는 남편이 만든 것도 내가 만든 것처럼 올리게 되잖아요(웃음). 물론 잘 지키지 못하고 사진을 올리는 날도 있지만, 적어도 보여주기 위한 밥상을 차리지는 말자고 생각해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갓 결혼한 후배들이 종종 “선배, 매일 뭐 해 먹고 살아요? 저녁에 뭐 먹어요?” 같은 질문을 하더라고요. 요리는 가끔 이벤트로만 해봤지, 매 끼니를 직접 만들어 본 적은 별로 없는 분들이 분명 많으실 텐데요. 아무 것도 못하던 제가 밥을 차려 먹게 된 사람이 된 모습을 통해서 한번 용기를 내보셨으면 좋겠어요.
오늘 저녁은 뭘 먹을 예정이에요?
냉동실에 대패삼겹살이랑 주꾸미가 있어요. 콩나물 데쳐서 주꾸미 삼겹살 해먹으려고요(웃음).
*김자혜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에서 의류학을 전공, 졸업 후 <엘르>, <코스모폴리탄> 등 패션 매거진의 패션 에디터로 일했다. 시골살이를 시작하며 『조금은 달라도 충분히 행복하게』를 썼고, 밥을 스스로 지어 먹기 시작하며 이 책을 썼다. 요즘은 남몰래 초보운전 일기를 쓰고 있으니, 어쩌면 시작하는 마음에 관해 쓰기를 좋아하는 것인지도. 도시로 돌아와 <W Korea> 콘텐츠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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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민 노스랏> 저/<웬디 맥노튼>,<황의정> 그림/<제효영> 역/25,200원(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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