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선량함, 그 지속가능성에 대한 뇌과학자의 질문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 김학진 저자 인터뷰
모든 사람에게 선량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나를 돌볼 여유가 줄어들 때, 그리고 다정한 타인에 대한 나의 관심과 집착이 커져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한 혐오가 커질 때, 이 마음이 과연 내 신체가 요구하는 목표와 부합하는지를 점검하는 것이 바로 ‘감정 알아차림’입니다. (2022.02.18)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개정증보판)』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이번에 개정증보판을 내게 된 소감이 어떠신가요?
이 책은 그동안 이타성과 인정 욕구 간의 관계에 대해 희미하게 가지고 있던 제 생각을 훨씬 더 선명하게 그릴 수 있도록 해주었고 이로 인해 제가 세상을 보는 방식에도 많은 영향을 준 책이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책에 대한 애착도 커졌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아쉬운 부분들도 더 눈에 잘 띄었는데 보완할 기회를 준 갈매나무와 관심 가져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초판을 낼 때만큼은 아니겠지만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고 그들의 평가를 마주하는 일은 그 평가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뇌에 큰 불균형을 유발하는 사건입니다. 아마도 5년 전처럼 다시 균형점을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해 한동안 많은 노력을 해야만 하겠지만 이 모든 과정이 제가 좀 더 성숙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의 개정증보판이 나오면서 기존의 부제 ‘뇌과학, 착한 사람의 본심을 말하다’에서 ‘인간의 선량함, 그 지속가능성에 대한 과학적 질문’이라는 새로운 부제목이 붙었는데요. 이 부제를 통해 작가님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인간이 가진 대부분의 특성은 유전과 환경, 모두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런데 ‘이기적인 유전자’와 같이 인간의 이타성이 진화를 통해 나타나는 과정을 설명한 책은 있지만, 이타성의 발달과정을 보여주는 책은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이타성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화 과정뿐 아니라 발달과정까지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 목적에는 뇌과학이 더 적합할 수 있습니다.
이타적인 행동을 한 번 하기는 쉽지만 오랜 기간 유지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지속가능한 이타성은 삶의 목적과 일치할 때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발달과정에서 이타성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변화해가는지 이해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이타성을 상상하고 실현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 생각했고, 이 생각을 부제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이타주의를 ‘스스로를 갈고 닦아 만든 성품’이라고 보는 일반적인 시각과 다르게, 이 책에서는 이타적이고 친사회적인 선택이 오히려 직관적이고 충동적인 기제로 이뤄진다는 분석을 소개하셨는데요. 도덕성과 이타성의 가치가 생존과 번식이라는 궁극적 욕구에서 비롯된다는 논리에 충격을 받았다는 독자님도 있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제 생각이나 글을 접한 뒤에 불편함이나 불쾌함을 보인 분들도 간혹 계셨습니다. 왜 이타적인 사람의 숨은 의도를 굳이 분석하려고 하는지 묻는 분들도 계셨었고, 일말의 보상도 바라지 않는 순수한 이타성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기억납니다. 사실 제 생각을 처음 들었던 제 주변 사람 중에는, ‘인정 욕구’라는 표현 대신 ‘사랑의 욕구’라는 좀 더 순화된 표현을 쓸 수는 없는지 걱정하며 물어본 사람도 있었습니다.
나의 생존과 번식이라는 목적을 기준으로 볼 때, 타인의 인정 욕구는 나에게 해가 되고 타인의 이타성은 나에게 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대상을 나에게 이롭거나 그렇지 않은 기준으로 구분하도록 설계된 뇌는, ‘인정 욕구는 나쁘고 이타성은 좋다’라는, 너무나 단순하지만 명확하고 견고한 편견을 일생에 걸쳐 학습하고 뇌 속에 각인시켜 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편견은 타인의 행동은 물론, 나 자신의 생각과 행동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단단한 편견을 깨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이 둘 간의 강한 연결성을 보여주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만약 인정 욕구를 다정함이나 사랑의 욕구로 순화시켜 표현했다면 기대하기 힘든 효과라 생각합니다.
상식에 기반하여 서로 소통하는 일상의 삶 속에서, 심지어 전통적인 심리학 연구에서조차도 소통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인간의 언어입니다. 소통이라는 목적을 위해 세상을 단순화하고 추상화해 개발된 언어는 필연적으로 제한성을 가지게 되고, 따라서 이런 언어를 기반으로 한 심리학 연구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뇌과학은 그동안 언어로 정의되고 소통되던 심리적 개념을 뇌라고 하는 물리적인 매개물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뇌라고 하는 새로운 언어를 통해 마주하는 인간 본성의 본모습은 그동안 우리를 제약해온 편견들을 걷어 내고 나 자신과는 물론, 타인과 더 건강한 관계를 맺도록 해주리라 믿습니다.
혐오와 차별이 범람하는 요즘, ‘다정함’과 ‘선량함’과 인간의 본성의 연관성을 다룬 책에 더욱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냉혹해진 현실을 바꿀 방법을 찾아 대중의 관심이 모인 게 아닐까 싶은데요. 인정 욕구라는 이기적 동기에서 시작된 이타심이 어떻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수 있을까요? 또 그렇게 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요?
언제나 타인에게 다정하고 선량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고 내 주변 사람도 나에게 다정하길 갈망하는 욕구는 그 자체로 인간을 규정하는 본성과도 같으며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하는 가장 큰 특성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이러한 욕구는 항상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집단에서 벗어나 소외감을 느끼는 정도가 커질수록 인간관계에서의 다정함과 선량함을 갈구하는 욕구는 더 커지게 됩니다. 아마도 최근에 이러한 인간의 친사회적 특성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이유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되면서 사람들이 느끼는 소외감이나 외로움이 커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인 점은 이 긍정적인 가치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집착은 또 다른 차별과 혐오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리학적 원리는 자연스럽게 무질서를 향하는 물리적 법칙에 저항하여 항상성이라는 질서를 만들고 군집을 이루어 그 안에서도 촘촘한 위계적 질서를 만들어 공고히 하려는 생명현상과 유사합니다. 뭉치려는 힘과 흩어지려는 힘 간에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개인주의자와 집단주의자는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이기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 둘 다 집단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구성원들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때 집단의 균형은 깨지고 지속가능성은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손쉽고 효과적인 방법은 ‘감정 알아차리기’입니다. 불편한 감정은 신체와 뇌 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음을 알리는 신호로, 신체를 이롭게 하기 위한 나의 선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모든 사람에게 선량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나를 돌볼 여유가 줄어들 때, 그리고 다정한 타인에 대한 나의 관심과 집착이 커져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한 혐오가 커질 때, 이 마음이 과연 내 신체가 요구하는 목표와 부합하는지를 점검하는 것이 바로 ‘감정 알아차림’입니다. 이 방법을 통해 나에게 더 이로운 선택은 무엇인지 고민할 여유를 갖게 됩니다. 이때 나에게 가장 이기적인 선택은 내가 속한 사회를 위한 가장 이타적인 선택과 다르지 않을 수 있으며, 오히려 지속가능한 이타적인 선택일 수 있습니다.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개정증보판)』가 독자들에게 어떤 책으로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타인을 위한 선의는 그 자체로 옳다고 믿었던 독자분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책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불편함을 느낄 때마다 떠오르는 책이 되었으면 합니다. 어쩌면 이 불편함은 지금까지 의심해본 적 없던 나의 선의가 사실 나에게 혹은 타인에게 해가 될 수도 있음을 알려주는, 신체로부터 오는 중요한 신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불편한 감정을 더 섬세히 들여다볼 여유를 얻게 되길, 그 결과로 얻게 되는 균형 잡힌 건강한 기운이 자연스럽게 내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확산될 수 있길 바랍니다.
혹시 다음 책에 대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최근 저희 연구실에서는 자존감에 관한 연구들을 진행해왔습니다. 자존감에 대한 많은 기존 연구들이 연구자마다 다른 자존감의 정의를 가지고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자존감에 대한 좀 더 과학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자존감의 근간을 이루는 자기(self)의 생물학적 기원에 대해서도 관심이 커졌습니다.
현재 저는 나와 내가 아닌 것들을 처음 구분하여 자기(self)라는 개념이 형성되는 과정을 생물학적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책을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집필 중입니다. 이 책에서는 자기를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한 뇌와 신체의 협업이 어떻게 자존감을 탄생시키고 우리의 행동을 조절하거나 제약하는지를 뇌과학적으로 재해석해 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님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들려주세요.
개정증보판에 대해 제가 기대한 이상으로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여주셔서 놀라기도 했고 반가웠습니다. 좋게 봐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리고 조만간 다음 책으로 또 인사드릴 기회가 오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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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함’은 노력일까, 충동일까? 인간 이타성을 탐구하는 뇌과학자의 새로운 해석 칭찬에 중독된 뇌에서 빠져나와 스스로 성찰하고 행동하는 이타주의자가 되기까지 21세기 뇌과학의 가장 중요한 질문인 ‘인간의 사회성’에 정면 도전하며, 이타주의의 확장 가능성을 탐색한 뇌과학자의 분투가 여기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