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궂은 인터뷰] 그래, 내 멋대로 읽어보겠어 - 『평균의 마음』
<월간 채널예스> 2022년 2월호 - 이수은 작가의 『평균의 마음』
‘평균의 마음’은 ‘위대하지도 않은 보통의 사람이 위대한 걸작을 읽고 이렇게나 감동할 수 있는 이유를 탐구해 보자’는 의도로 지은 제목이다. (2022.01.28)
책 정보를 꼼꼼히 읽지 않고 이 책을 집은 독자라면 저자 소개글을 읽다가 숨이 가빠질지 모른다. "조화와 우아가 나에게 가장 모자라는 덕목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로 시작하는 글. 일단 이 문장부터 반하고 들어간다. 『평균의 마음』은 전작 『실례지만, 이 책이 시급합니다』로 독서계에 반가운 실례를 저지른 이수은 작가의 고전 독서 에세이다. 편집자, 번역가로 일한 저자는 ‘이런 책 있으면 좋겠다’고 출판 기획안을 썼지만 필자를 찾지 못하고 스스로 책을 쓰게 됐다.
출판사를 그만두고 작가로 전업한 것인가?
아니다. 운영하던 출판사는 그만뒀다기보다 망한 쪽에 가깝고, 작가로 전업은 한 적이 없다. 그냥, 망해가는 출판사에 종일 혼자 있다 보니 적적해서 옛날 책들 좀 뒤적거리고, 그러다 또 혼자 과몰입해서 캬~ 이 좋은 걸 나만 보긴 아까우니까, 이러면서 책까지 쓰게 됐을 뿐. 작가를 직업으로 삼을 만큼의 책임감이나 열망을 가질 자신이 없다.
글발이 엄청나던데 지나친 겸손이다.
나는 겸손한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원래 글 쓰는 걸 좋아”한 적은 더더욱 없고. 책을 쓰겠다는 생각 자체를 한 지가 몇 년 안 됐다. 다만, 내가 어느 정도 ‘훈련된 문장’을 구사한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니까 그게 다 내가 읽은 책들에서 온 걸 거다. 내가 읽어본 정말 좋은 글들은 그 내부의 엄청난 에너지로 심신을 후려치기 때문에 글이 어떻다 하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글쓰기에 있어 나의 한계는 극명하지만, 사실은 글을 잘 쓰고 싶지도 않다. 왜냐하면 그렇게 잘 쓰지 못하리라는 걸 이미 알기 때문이다.
『평균의 마음』이라는 제목, 자꾸 곱씹게 되더라.
책을 쓰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는데, 내가 제목을 먼저 정하고 글을 쓰는 타입이었다. 흘러 넘치듯이 글이 나오는 천부적 작가가 아니고, 꼭 써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제목과 콘셉트가 확정돼야 글을 시작할 수 있다. ‘평균의 마음’은 ‘위대하지도 않은 보통의 사람이 위대한 걸작을 읽고 이렇게나 감동할 수 있는 이유를 탐구해 보자’는 의도로 지은 제목이다.
스스로를 은둔형 덕후, 아주 괴팍한 족속, 취미와 특기가 의심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고전을 읽었기 때문에 스스로와 타인을 이해하는 인간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앗, 그런 건 비밀이었는데, 고전 얘기만 계속하면 지루하다고 뭐라 할까 봐, 이 말 저 말 늘어놓다 말실수를 한 거 같다. 고전을 읽고서 새사람이 될 만큼 유연하진 못하고, 탁월한 작품들에 스스로를 비춰 보다 자아의 각성에 이른 것 같긴 하다. 이토록 각양각색으로 빤한 인간 종족이라니! 이렇게 생겨먹은 나 자신, 식상해서 다행이다, 이렇게.
20여년간 편집자로 일했고 2014년에 스윙밴드 출판사를 열었다. 전직 출판사 대표의 저자 마케팅, 기대해도 되나?
얼마나 홍보에 재주가 없었으면 출판사가 망했겠나. 젠장. 저자의 적극적인 활동이 판매에 가장 효과적이라는데. 책 내준 출판사들에 도움이 되지 못해 송구하다. 그래도 SNS에다 셀프 디스하고 자폭하는 저자보단 아무것도 안 하는 저자가 차라리 나은가 보다. 뭐라도 해보라고 시키지도 않는다.
역시 현명하다. 『평균의 마음』을 읽은 독자의 반응 중, 선호하는 것은? 1. 와! 이 책 짱 재미! 작가 님 글 짱 잘 써! 2. 아, 나도 고전을 읽어야겠어!
3번을 추가하겠다. 3. 그래, 나도 이제 내 멋대로 읽어보겠어.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언제나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자가 단지 책에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돌아갈 때, 나 또한 대부분의 시간을 독자로 보내는 한 사람으로서, 응원의 야광봉을 격하게 흔들어 드리고 싶다.
그래도 고전은 너무 지루해서 못 읽겠다고 말하는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한 권의 책은?
단 한 권의 책이라니, 너무하다. 2500년에 걸쳐 쌓여온 기나긴 고전의 목록에서 감히 한 권의 필독서를 꼽을 주제가 못 될뿐더러, 취향의 망망대해에 흩뿌리는 소금 한 꼬집 같은 추천의 말로 누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개인적으로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발자크를 같이 읽는 독서 모임을 해보면 어떨까, 가끔 생각만 한다.(막상 하자고 하면, 무덤까지 같이 가잔 소리처럼 들릴까 봐 무섭다)
*이수은 조화와 우아가 나에게 가장 모자라는 덕목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언제부터 알았는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일찌감치 알았다. 비록 황금비율의 신체는 타고나지 못했더라도, 언행을 삼가고 마음 씀씀이를 바르게 하여 품격 있는 인간이 되고자 정진할 수도 있겠건만, 바로 그 말투와 행동거지가,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이 내 뜻대로 조절이 안 됐다. 일희와 일비의 극렬한 파동운동 속에서 매사가 너무 좋거나 너무 싫어서 도대체 중간이라는 게 없었다. 양철통 같은 마음과 그 안에 담긴 모난 자갈들 같은 생각이 나를 이루는 요체라는 인식은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했다. 그래서 고전을 읽으며 깊은 감동을 느꼈다. 그걸 쓴 사람들과 그들이 그려낸 인물들이 모두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마음으로 저마다 자기 시대를 힘껏 살다 갔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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