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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특집] 코로나 시대의 일기

<월간 채널예스> 2022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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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시대에 쓴 일기에는 더 많은 상처와 안부가 있다. 지나온 코로나 시대의 오늘을 기록한 두 권의 일기와 읽기를 더 이상 미루지 않기를 권하는 몇 권에 대하여. (2022.01.17)


황정은의 『일기』는 파주로 이사한 후의 일상으로 시작한다. 호수 둘레를 빠르면 46분, 보통은 52분, 생각할 것이 많은 날에는 1시간 1분에 걸쳐 3㎞쯤 걷거나 달린 뒤 다시 1㎞를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매일. 적절하게 달궈진 몸으로 시행하는 데드리프트 90개, 스쿼트 60개, 플랭크 3분에 푸시업 약간. 마음을 흔드는 사건도 없이, 어제와 같고도 소상한 오늘의 일상을 읽으며 안온함을 대리 경험하고 나의 안녕을 확인한다. 그러나 일기는 이윽고 불안에 잠식당한다. 

때는 바야흐로, 안락한 일상의 버블 바깥이 온통 위험한 시기였다. 황정은의 첫 산문집이자 유일하게 공개된 그녀의 일기는 창밖으로 경의중앙선이 보이는 책상 앞에서 쓰였다. 코로나 첫해인 2020년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을 만드는 데” 힘쓰며 보내고 이듬해인 2021년에 쓴 일기가 종종 공개된다. ‘처음 만나는 황정은의 일상’이라는 점만으로도 읽고 싶고, 산문이라는 형식에서 발현되는 문장의 아름다움도 가슴을 징징 울리지만, 오늘의 생각을 오늘 기록한 글만이 담을 수 있는 현재성은 일기의 쓸모를 새삼 일깨운다. 배달 김밥으로 버텨온 확진자의 동선과 “근데 왜 우한폐렴을 굳이 코로 나라고 불러?”라는 말에 함축된 혐오와(「일기」) 그럼에도 촛불시위로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이 경험한 ‘고강도’ 고양감이 ‘우애’로 변모해 ‘서로를 향한 배려와 책임, 그리고 돌봄이라는 더 부드러운 형식으로 실현’되고 있는 사랑의 현실과 그러므로 “단념하지 않고 생각을 계속하는 일과 사랑을 계속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말하는 문장들은(「일년」) 때로는 잔혹하고 때로는 애틋하지만 그 모든 것이 ‘오늘’이었다. 

『일기』가 기억하는 오늘은 코로나 시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특히 여섯 번째 챕터 「목포행木浦行」은 기억할 오늘을 무겁게 기록했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어떻게 지내십니까’를 물었던 후회의 기억을 가슴에 인화(印花)한 작가의 일기가, 그 마음이 그곳에 있다. 혹은 특별한 기억이 아니어도 일기가 된다. 천둥이 좀체 멈추지 않은 어느 밤은 이러한 문장으 로 기억됐다. “믿어 의심치 않겠다는 믿음 말고, 희구하며 그쪽으로 움직이려는 믿음이 아직 내게 있다. 다시 말해 사랑이 내게 있으니. 사는 동안엔 내가 그것을 잃지 않기를. 천둥 사이에 빌고.” (「고사리를 말리려고」) 비록 빌어먹을 코로나 시대라도, “사랑이 내게 있으니”.



『우한일기』는 좀 더 적극적인 코로나 시대의 기록이다. 중국 정부가 우한을 봉쇄한 지 4일째인 2020년 1월 25일 시작한 이 일기는 76일간의 봉쇄 기간 중 60일 동안 매일 쓴 것이다.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에 연재됐으나 수없이 삭제 ‘당한’ 일기는 댓글 릴레이를 통해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봉쇄가 해제된 2020년 4월 8일 영문판이 출간됐으며 체코, 프랑스, 러시아, 일본, 베트남을 비롯한 15개국에서 책이 나왔지만 중국에서는 끝내 출판되지 못했다. 

작가 팡팡은 1955년생으로 난징에서 태어나 줄곧 우한에서 성장했다. 많은 작품에서 도시 하층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 ‘중국 신사실주의 대표 작가’로 불리며, 2010년에는 중국 최고 권위의 루쉰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는 코로나로 피해 당사자가 되어 본 것, 들은 것, 겪은 것을 증언했다. 중국의 문호 옌롄커는 『우한일기』를 읽고 “코로나19의 가장 자세한 문학적 기록이 될 것이고, 이번 역병재난에 대한 기억의 화석이 될 것이다”라고 추천사를 썼다. 팡팡 작가는 일기 연재 이후 중국의 국수주의 댓글부 대로부터 ‘배신자’로 불리고, 이 책의 한국어판 편집자 이연실(문학동네)의 전언에 의하면 외신들의 인터뷰 요청에도 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적 증언이 『우한일기』의 전부는 아니다. 봉쇄된 도시에서 작가는 더욱 자주 사람에게 위로를 받는다. 

“골목마다 환경미화원만이 외로이 길을 쓸고 있었다. 행인이 적어서 길이 지저분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빈틈없이 청소를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큰 위안을 받았고, 마음도 많이 안정되었다.”   _(「바이러스는 인류 공동의 적이다」) 

그리고 코로나로 일상을 멈추지 않았다면 지나쳤을 작은 일에서 희망을 본다. 

“환기하려고 창문을 열었다가 단지에 까치 몇 마리가 날아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까치들은 문 앞에 있는 녹나무와 목련나무 위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그중 한 마리가 우리 집 입구로 들어와 돌절구 안에 있는 물을 마셨다. 보고 있자니 마음이 기뻤다. 무슨 좋은 일이 있으려나?”  

_(3월 20일X봉쇄 58일 차 「내가 당신들을 무서워하는지 두고 보자!」) 

재난의 틈바구니에서 희망을 찾은 날의 기록은 인류가 재난 속에서도 일기를 놓지 않는 이유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코로나는 많은 변화를 촉구했다. 공존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자는 것도 그중 하나다.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동물들에 관하여』에는 ‘어느 수의사가 기록한 85일간의 도살장 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표현하지 못할 고통을 견뎌내지만 아무도 싸워주지 않는 동물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스웨덴 국립식품청 수의직 공무원에 지원한 저자(리나 구스타브손)의 기록에는 감정이 거의 적혀 있지 않다. 그러나 매 문장, 심지어 행간을 읽을 때마저 먹먹하다. 그리고 우리에게 할 일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만일 돼지가 의식이 있다는 낌새가 보이면 녀석의 반사행동을 점검해서 볼트총으로 기절시켜야 한다.”(25쪽)를 읽고 최소한의 도축 윤리를 고민하지 않을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믿고 싶다). 『아흔 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코로나로부터 30년도 더 전인 1987년부터 2018 년까지 쓴 일기 151편을 묶은 책이다. 앞서 소개한 『우한일기』와 요조X임경선의 교환일기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의 편집자 이연실이 추천한 이 책의 저자는 출간 당시 97세였던 이옥남 할머니다. 짧은 추천사에 일기를 읽는 기쁨이 잘 드러나 있다. 코로나 시대를 건너며 더욱 선명해진 행복의 진짜 얼굴도. 

“할머니는 도라지 판 돈으로 노트를 사서 30년 동안 일기를 써왔습니다. 무엇이 되고자 하는 욕심도 없이, 이 글로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랑 하려는 그 어떤 허영도 없이, 산골의 나날들을 농사짓듯이, 나물 캐듯이 차곡차곡 쌓아갔습니다. 그 선하고 순한 마음과 하루하루에 그저 감탄하게 됩니다.”

 이옥남 할머니는 “글씨를 이쁘게 써볼까 싶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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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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