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서화로 떠나는 파리 예술기행
『시화기행』 김병종 저자 인터뷰
아침에 일어나 그날의 작업을 생각하며 가슴이 두근대곤 합니다. 그 설렘과 열망 때문에 끝없이 그리고 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2022.01.14)
인문정신과 예술혼이 씨줄과 날줄로 아름답게 수놓인 예술기행 『화첩기행』 이후 약 7년 만에 김병종 화백이 『시화기행』으로 돌아왔다. 『화첩기행』이 국내 예인들의 자취를 글과 그림으로 풀어갔다면 ‘김병종의 시화기행’은 그간 써온 시와 함께 유럽 등지로 장소를 옮겨가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단지 예술가들의 흔적만 살피는 게 아니라 그들이 재능을 키워간 도시에도 초점을 맞춰 공간과 예술가의 유기성을 김병종 화백만의 섬세한 사유로 전한다. 파리를 시작으로 로마, 뉴욕, 더블린 등을 누빌 예정인 『시화기행』 연작을 통해 김병종 화백의 전방위적 예술가로서의 면모뿐 아니라 시서화의 조화로 한층 풍성해진 예술기행을 함께하는 안복(眼福)을 누릴 수 있다.
『시화기행 1: 파리, 고요한 황홀』에서는 로댕, 피카소, 로트레크, 발자크, 카뮈, 귀스타브 모로, 에디트 피아프, 로베르 두아노, 생텍쥐페리 등 장르와 시대를 불문하고 프랑스 파리에서 예술가로서 역량을 키워간 30여 명의 예술가들의 흔적을 좇는다. 벨에포크 시대를 중심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파리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예술가들의 궤적을 퍼즐처럼 맞춰가면서 왜 파리가 예술 도시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살핀다. 문학사, 철학사,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 경계를 넘나들며 교류했던 파리 곳곳을 김병종 화백과 함께 거닐다보면 파리의 은성한 불빛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해진다.
『화첩기행』 이후 정말 오랜만에 예술 기행을 시작하셨는데요, 『시화기행』은 시와 그림, 산문이 어우러진 구성이 돋보였습니다. ‘글 쓰는 화가’로도 유명하신데 꾸준히 글을 쓰시는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겐 그야말로 그림은 밥, 글은 반찬입니다. 이 두 가지가 거의 육화(肉化)되어 이제는 둘이 아니라 하나로 느껴집니다. 일란성쌍생아처럼 그림 그리고 글 쓰는 행위가 제 안에서 하나로 통합되는 것입니다.
가끔 그림은 풀어놓는 일, 그림은 모으고 쪼는 일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풀어놓기만 하다 보면 일종의 지적 허기 같은 것이 찾아와서 이럴 때면 쓰는 행위로 충족시킵니다. 일종의 끝없는 갈증과 그리움 같은 것이 저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고요.
글과 그림 두 가지 작품활동을 병행하다 보면 정말 24시간이 부족하실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루를 보내시는지, 지치지 않고 예술활동을 이어가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일은 사람을 지치게 할 수 있지만 놀이는 여간 해서는 지치는 법이 없지요. 지금 길이 40미터와 27미터짜리 대형 벽화에 매달려 있는데 가끔 이 기다란 하얀 화면이 제 놀이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침에 일어나 그날의 작업을 생각하며 가슴이 두근대곤 합니다. 그 설렘과 열망 때문에 끝없이 그리고 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이번 『시화기행 1』에서는 로댕, 피카소, 로트레크, 발자크 등등 파리에서 예술가로서 성장한 여러 예술가의 이야기를 다루셨는데요, 소개된 예술가 중에서 특히 마음이 가는 예술가가 있다면 누구일까요?
꼭 집어 누구 한 사람보다도 다양한 예술과 군(群)을 품어낸 프랑스적 분위기가 부럽습니다. 이를테면 세잔은 파리에서 실패하고 낙향한 사람이지만 그의 삐뚜름한 그림 세계에 프랑스 사람들은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고 재해석해 조명했습니다. 그런 예술 애호적 분위기가 있었기에 작은 도시 파리가 세계 미술의 수도로 불릴 만큼 풍성한 예술적 아우라를 뿜어냈을 겁니다. 저는 그 점이 참 부럽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떠나기 힘든 시절인데요, 책에서 "다녀도 다녀도 파리만큼은 아직 배고프다. 돌아서면 다시 그곳이 그립다"라고 말씀하신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언젠가 다시 여행이 자유로워지면 파리에서 꼭 가봐야 할 장소를 꼽아주신다면 어디일까요? 선생님이 파리를 방문할 때 꼭 방문하는 곳은 어디일지 궁금합니다.
제가 다니며 보고 느끼고 감탄한 곳들을 곁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로 들려드리고 싶어서 책을 쓰게 됩니다. 이번 책도 마찬가지인데 그중에서도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가 떠오릅니다. 파리 벨에포크 시대의 현장 중 하나였던 그곳은 이제 석양 속에 소슬한 집 한 채로 서 있지만 여전히 그곳에서 예술가들의 에스프리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귀스타브 모로 박물관도 한 화가의 생애가 손에 잡힐 듯 느껴지는 곳이라 좋았습니다. 한적한 주택가에 있어서 드문드문 사람들이 찾아올 뿐이지만 그래서 더 마음이 갑니다. 로댕의 조수이자 연인이었던 '카미유 클로델'의 옛집에서는 한 불운한 여성 예술가의 생애를 반추하게 되어서 좋았고요.
이번 책에서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반추하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갈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는 말씀도 여러 번 나오고요. 지금도 왕성하게 작품 활동중이신데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신지요?
열다섯 살에 처음 남쪽 소도시의 한 다방을 빌려 개인전을 열었고, 그해에 인쇄소에서 자작시들을 찍어 시집 비슷한 것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형태의 삶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못 나간 기분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지금도, 앞으로도 이런 창작의 삶이 계속되리라는 것이죠. 한 가지 감사한 일은 제가 뒷심이 좀 강한 스타일이라는 점입니다. 삼사십 년 전에 비해 지금도 결코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작업 양이 뒤지지 않습니다. 질(質)은 모르겠지만요. (웃음)
국내 예술가 위주로 다뤘던 『화첩기행』과 달리 이번 책은 해외 예술가에 대해, 그리고 그들이 거닌 예술 도시 파리에 대해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앞으로 시리즈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지 기대가 되는데요, 앞으로 『시화기행』에서 어떤 지역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문화일보에 ‘시화기행’ 연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 연재가 백 회를 넘어가고 있는데 지구를 한 바퀴 돌아 250회쯤에서 끝날 것 같고 그러면 총 다섯 권쯤 분량의 책으로 묶일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 영국, 아일랜드 기행이 순차적으로 이어질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시화기행』 중 시만 따로 뽑아 여행시집으로 묶어보기를 권하는 분들이 있어 완간이 되면 다시 시만 발췌해서 순수하게 세계 문화예술 기행 시집으로 펴낼 생각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분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책의 시대는 갔다고들 말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꾸준히 책 읽는 이들이 있고 그 독자들의 힘으로 저처럼 글 쓰는 이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 수가 점점 불어나서 다시 한 번 1970~80년대 같은 문예 열풍이 불면 좋겠습니다.
*김병종 1953년에 태어나 서울대 미대와 동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서울, 파리, 시카고, 브뤼셀, 도쿄, 바젤 등지에서 수십 차례 개인전을 가졌으며, 국제 아트페어와 광주 비엔날레, 베이징 비엔날레, 인디아 트리엔날레 등에 참여해왔다.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미술기자상, 선미술상, 대한민국 기독교미술상, 안견미술문화대상 등을 수상했고,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았다. 대영박물관과 온타리오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내외 저명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으며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에도 초기작 〈바보 예수〉부터 근작인 〈풍죽〉 〈송화분분〉까지 다수의 작품이 상설전시되고 있다. 중국 시진핑 주석의 국빈 방문 때는 그의 작품이 증정되기도 했다. |
추천기사
관련태그: 채널예스, 예스24, 7문7답, 파리, 프랑스파리, 김병종, 화첩기행, 시화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