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혁 "우리는 질문을 잘 못해요"
『오늘 딱 하루만 잘 살아 볼까?』
저는 “원래 그래”라는 말을 싫어해요. 그러는 순간 감각이 둔화되면서 창의적인 세포들을 죽여가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그 감각을 일깨우자는 의도를 담은 거예요. (2022.01.13)
사람들은 왜 소설가를 창의적이라고 여길까. 소설가 김중혁은 자신이 종종 받아온 이 질문, “창의력을 어떻게 키울 수 있나요?”에 대해 고민하다 자신이 지금껏 해온 방법을 정리해 책으로 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만든 『오늘 딱 하루만 잘 살아 볼까?』는 그러므로 소설가 김중혁의 첫 번째 자기계발서인 셈. ‘책을 찢어서 벽에 붙이자’, ‘무생물에게 이름을 지어 주자’, ‘날마다 하늘 사진을 찍어 보자’ 등 일상을 색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방법 100가지를 소개한 작가는 “작가 생활을 하던 20년 동안 혼자 놀았던 방식을 거의 그대로 다 가져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어떻게든 맨 땅에서 무언가를 지어냈기 때문에요. 이런 과정들을 모아서 질문하시는 분들께 보여드리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어요.”라는 소설가 김중혁. 그러니까 이 책은 나를 질문하는 방법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이 계단이었으면 좋겠어요. 책을 딛고 조금 새로운 곳으로 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요. 계단도 일정한 계단이 아니고요. 어떤 단은 높고, 어떤 단은 낮아서 미리 짐작하기 어려운 계단을 상상했어요. 한 발 한 발 높이를 가늠하고 발을 내딛는 그런 계단 같은 책이길 바라요.”
책의 뒷표지는 물론 책의 입구에도 ‘이 책을 사용하는 방법’을 소개해 두었어요. 독자에게 아주 구체적인 지침을 주고 시작하는 책이에요.
왜냐하면 이 책은 자기계발서니까요. 한동안 자기계발서를 많이 봤어요. 무슨 내용이 있는지 궁금하더라고요. 너무 재밌게 봤고, 동시에 이런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창의력에 관심이 많아서 그에 대한 걸 써보면 어떨까 싶었죠. 제 생각에 창의력이란 매일 새로워지면서 재미있게 무언가를 도모하는 것 같거든요. 일상에서 사소하거나 가벼운 창의력은 늘 올 수 있는데요. 많이들 그걸 놓치는 게 아닐까 생각했죠. 책에 소개한 것들은 제가 실제로 다 하고 있는 거예요. 해봤거나 지금도 하고 있는 일들이기 때문에 이걸 보여드리면 저라는 사람을 통해 창의력에 대한 걸 얘기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100가지 항목 모두 작가님께서 실제로 하던 것들이라고요?
책을 쓰기 위해서 새로 구상한 건 없어요. 마음 같아서는 365가지를 적어보고 싶었으나 능력의 한계로 그렇게 하진 못했고요.(웃음) 다만 여기 소개한 100가지를 반드시 100일에 걸쳐 하나씩 다 해보라는 얘기는 아니거든요. 이 중 각자에게 맞는 것도, 안 맞는 것도 있을 텐데요. 맞는 게 있다면 그것을 삶의 루틴으로 만들어볼 수도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때문에 작가의 말 대신 굳이 책 사용하는 방법을 넣게 됐죠.
새삼 자기계발서를 읽어보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작가적 호기심 같은 건데요. ‘내가 이쪽은 빼먹었네’ 생각했어요. 얕고 넓은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찾아보니까 정말 유명하다는 책들 중에도 안 본 책이 꽤 많더라고요. 그런 책에 또 무언가가 있겠다, 생각해서 보기 시작했어요.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라면 역시 ‘창의력’과 ‘새로움’일 텐데요. 이런 개념이 모든 개인들에게 중요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강의를 가면 “창의력을 어떻게 키울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아요. 아이를 창의적으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등의 질문을 많이 하시죠. 그럴 때 일단 드는 첫 번째 생각은 ‘내가 창의적인가?’였어요. 사람들이 소설가를 창의적으로 본다는 게 저는 신기했거든요. 그러면서 사람들은 소설 자체를 창의적인 과정으로 생각을 하는구나, 그러면 나도 할 말이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20년 동안 어떻게든 맨 땅에서 무언가를 지어냈기 때문에요. 이런 과정들을 모아서 질문하시는 분들께 보여드리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어요. 그 뒤, 책을 쓰면서부터는 정말 즐거운 일들이 많고 사소하게 놀랄 일들이 많은데 우리가 약간 둔해졌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요. 저는 “원래 그래”라는 말을 싫어해요. 그러는 순간 감각이 둔화되면서 창의적인 세포들을 죽여가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그 감각을 일깨우자는 의도를 담은 거예요.
한편 책을 읽기에 앞서 미리 목차를 읽지는 말라고도 하셨는데요.
사실 목차 자체를 빼고 싶었어요. 제가 구상했던 책의 활용법은 ‘오늘은 뭐 할까?’ 하고 아무 데나 펼쳐서 그날 걸리는 걸 해보는 것이었어요. 사람들이 책에 가지고 있는 버릇 중 하나가 목차를 보고 시작하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그렇게 읽으면 대체로 완독을 할 수가 없는 것 같고요. 그렇다면 이 책은 그냥 아무 표지나 펼쳐서 볼 수 있게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죠. 그래도 목차는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서 그나마 한눈에 잘 안 들어오도록 편집해서 실었어요. 창의력이라는 건 순차적으로 쌓이는 것이기도 한데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임무가 주어졌을 때 거기에 대처하는 방식, 한계에 부딪혔을 때 돌파하는 방식, 혹은 문제를 듣고 답을 내려고 머리를 쓰는 방식 같은 것이야말로 창의력에는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때문에 책을 목차대로 읽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따라하고 싶은 신선한 내용이 아주 많았어요. 그 중, 눈을 감고 지구본을 돌려서 손가락으로 찍었을 때 나오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보자고 한 부분은 요즘 시절에 특히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직접 가지 않아도 그곳의 음식, 음악, 책 등을 조사해보라고 했죠. 시선만 조금 달리하면 새롭게 일상을 볼 수 있고 그런 방식의 여행도 떠날 수 있는 거예요.
워낙 음악, 미술, 문학, 영화 같은 것들을 좋아하다 보니까 터득하게 된 여행법이에요. 예를 들어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나라에서 나온 영화를 보면 전에 보지 못했던 풍경이 영화 속에서 펼쳐지죠. 그 풍경을 제일 잘 아는 사람들이 만들었으니까요. 그걸 보는 것만으로 저는 여행 같거든요. 또 이미 다녀온 곳도 영화나 책으로 다시 보면 환기가 돼요. ‘맞아, 저기 저런 게 있었지, 저기를 돌면 뭐가 있지’ 떠올릴 수 있죠. 이것도 추억을 환기하는 좋은 방법이잖아요. 지금은 실제로 가봤느냐 안 가봤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곳을 내가 어떤 감각으로 느꼈는지가 더 중요해진 것 같고요. 그렇다면 영화도 굉장히 좋은 여행법일 수 있겠다, 싶어요.
영화뿐 아니라 그곳의 음식도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아졌죠. 유튜브를 봐도 되고, 요즘은 한국에서도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많으니까요.
유튜브를 아주 많이 보진 않는데요. 일단 자료 찾을 때 자주 보게 돼요. 현지 분위기를 알려면 다큐멘터리나 그쪽에서 찍은 영상을 보는 게 도움이 많이 되거든요. 또 하나가 요리법이죠. 영상으로 요리를 보여주기가 제일 쉽다고 생각했는지 유튜브를 보면 전 세계 요리법은 다 올라와 있는 것 같아요.(웃음) 언어를 몰라도 영상을 보면 어떤 식으로 조리하는지 알 수 있잖아요. 그걸 보면서 따라 해볼 수도 있고, 여행하듯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도 있을 거예요.
‘억지로 하는 일 목록’을 적어보자는 항목은 작가님께서 “추천한다”고 쓰셨거든요.
보통 해야 할 일의 목록을 많이 만들죠. 저도 그렇고요. 저는 목록 만드는 걸 되게 좋아해서 모든 것들을 목록으로 만들곤 하는데요. 특히 무엇을 하면 좋은 이유와 하지 않으면 좋은 이유, 이런 식으로 목록으로 비교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아요. 억지로 하는 일 목록 적어보기는 그렇게 나왔어요.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 절대 하면 안 될 것 같은 일과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일처럼 상반된 개념들을 가지고 목록 만드는 놀이를 한 적이 있는데요. 하다 보면 우선 재미도 있고요. 무엇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돼요. 목록을 쭉 보면 거기에 어떤 일관성 같은 게 보이거든요. 거기서 발견되는 것은 내가 몰랐던 나 자신일 수도 있고요. 그게 목록의 장점 같아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 나날이 변화하고 새로워지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말씀이군요.
그럴 것 같아요. 창의력의 핵심은 본인을 믿는 것 같거든요.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알아야만 거기서부터 뭐가 나오니까요. 그래서 책에 등장하는 항목들은 내가 누군지를 알도록 하는 질문들이 많아요. 이 질문들을 통해 ‘나는 이런 사람이었네’ 깨달으면 ‘이런 사람이었는데 왜 그동안 내가 잘할 수 있고 재미있어 하는 걸 안 했지?’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거예요.
맞아요, 이 책은 다양하게 질문하는 방법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해요.
제일 중요한 건 사실은 질문이죠. 사실 우리가 질문을 잘 못하잖아요. 인터뷰를 할 때도 상대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질문이 더 많아지거든요. 저도 그 때문에 질문하는 걸 정말 중요하게 생각을 했는데요. 질문을 잘하는 게 좋은 답변을 끌어낼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면 평소에도 질문을 잘하려고 노력을 해야 해요. 그런데 그 노력을 많이 안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질문을 잘하기 위해서 늘 한쪽을 비워두고 있어요. 제가 ‘노션’이라는 프로그램을 쓰는데요. 4단 페이지 구성을 해요. 그 중 오른쪽 맨 끝에는 영화를 보든, 책을 보든, 뭘 하든 간에 질문거리를 기록하는 공간으로 비워두죠. 질문을 하겠다고 생각하면 뭐든 약간은 다르게 보이거든요. 이렇듯 비워 두는 페이지에 질문거리를 채우는 것처럼 이 책을 통해서도 그런 질문거리를 찾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흥미로웠던 것 중에 1초씩 매일 영상 찍기가 있어요. 작가님은 이 작업을 8년째 하고 계시다고요?
따져보니 8년이 아니더라고요. 2012년부터 해왔으니까 올해로 11년 차가 됐어요. 매일 뭘 찍고 있는 거죠. 하루에 1초지만 그 1초를 품고 있는 상황, 주변의 느낌 같은 것들까지 다 기억이 나고요. 그래서 실은 1초보다 더 많은 시간을 저장하는 방법 같은 느낌이 들죠. 또 오늘의 1초를 정하기 위해서는 굉장한 심사숙고와 편집, 순위 경쟁이 필요해요.(웃음) 어떤 날은 너무 박빙일 때도 있고요. 어떤 날은 진짜 아무것도 없기도 해요. 심지어 사진밖에 찍은 게 없기도 하죠. 어쨌든 그렇게 만든 영상들을 가끔 보면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고, 계절의 변화도 보여서 재미있어요.
아주 귀한 나만의 데이터잖아요. 정말 멋진 아이디어 같아요.
이건 실제로 아이디어가 있는 거예요. 1초만 찍는 어플도 있고요. 영화에서도 잠깐 나온 적 있어요. 이런 문명의 이기를 활용해서 시간의 흐름을 제어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찾아보면 많으니까 꼭 해보세요.
책을 보면 소설이나 다른 콘텐츠 보다 영화 레퍼런스가 압도적으로 많이 등장해요. 그 점이 눈에 띄더라고요.
가장 쉬워서 그런 것 같아요. 설명하기도, 접근하기도 쉽죠. 책은 아무리 사전 설명을 해도 접근해서 감상하고 느끼기에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요. 그에 비해 영화는 즉각적이어서 쓰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책을 쓰는 입장이지만 꼭 책을 봐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유튜브나 영화 속에서도 느끼고, 얻을 수 있는 게 너무 많기 때문에 그래요. 어떤 면에서는 빨리 전달할 수 있는 건 훨씬 좋은 것 같고요. 예를 들어 『오만과 편견』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같은 건 영화로 먼저 보면 훨씬 쉬울 수도 있어요. 물론 때로는 반대일 수도 있지만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책에 영화를 좀 더 많이 언급한 것 같아요.
말씀을 들으니 생기는 궁금증인데요. 그렇다면 『오늘 딱 하루만 잘 살아 볼까?』에 담긴 이야기를 책이라는 형태로 내보인 것은 어떤 이유였나요? 책의 장단점이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아날로그 세대였기 때문에(웃음) 전자책으로 너무 재미있게 본 책은 꼭 종이책을 사더라고요. 종이책이라는 실물로 내 곁에 두고 여기에 뭔가를 해보는 게 너무 좋아요. 『오늘 딱 하루만 잘 살아 볼까?』에 한 이야기도 유튜브로 할 수도 있고, 매일 팟캐스트로 하나씩 소개할 수도 있겠지만 책이라는 베이스캠프가 있어야만 안정되는 느낌이 있었어요. 나아가 책에 뭔가 낙서도 했으면 좋겠고, 책을 한 장씩 찢어서 갖고 다니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책으로 내게 된 거죠.
‘책을 찢어서 벽에 붙이자’라고 한 항목도 떠오르네요. 전 못할 것 같아요. 상처 받았어요.(웃음)
<대화의 희열>에 같이 출연했던 신지혜 기자님도 책을 보시고 그 항목은 절대로 못 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그럼 내가 책을 한 권 더 선물할 테니까 찢어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책을 찢는 게 왜 그렇게 나쁠까요? 빅터 파파넥이라는 디자이너를 좋아하는데요. 저는 그분의 『인간을 위한 디자인』을 두 권 사서 한 권은 다 낱장으로 찢었어요. 찢은 책을 벽에 쫙 붙여놨거든요. 이렇게 붙여 두면 늘 책을 보는 느낌이 있어요. 그 느낌 때문에 정말 좋아하는 책 몇 권은 찢는 거죠. 『랩 걸』도 그렇게 했었고요. 특히 그림이나 사진이 예쁜 책들은 그렇게 하면 정말 좋아요. 책은 그렇게 써도 되지 않나 생각해요. 물성이 있으니까요. 물론 한 권을 더 사야 한다라는 조건은 있습니다.(웃음)
이 책은 글쓰기나 소설 쓰기의 팁도 주는데요. 그 중에서 “글을 쓰려면 지하 8층에 뭐가 살고 있는지 가 봐야 한다.(중략) 거기에서 맞닥뜨린 녀석에 대해서 글을 써야 한다”(162-163쪽)고 하셨거든요.
글쓰기를 하시는 분들은 아마 다 공감이 될 것 같은데요. 글을 쓰다 보면 좀 피하게 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이 얘기는 쓰지 말자, 이 얘기는 쓰면 내가 아플 것 같아, 하는 식으로 피하게 되는 게 있는데요. 실은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봐야만 글쓰기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계속 피하기보다는 한 번 내려가 봐야죠. 『무엇이든 쓰게 된다』를 썼던 것도 글쓰기가 위험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거든요. 글쓰기는 자신을 포장하기에 너무 좋은 도구여서 내가 아주 좋은 사람, 멋있는 사람, 쿨한 사람인 것처럼 하기가 좋아요. 그렇지만 포장하는 기술을 맛들이면 계속 포장만 하게 되겠죠. 그걸 유의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무엇이든 쓰게 된다』에서도 한 거고요. 같은 의미로 지하 8층을 써야 한다고 말한 거예요. 진짜 내 속마음, 잊고 있던 혹은 숨겨두려고 했던 감정들을 끄집어내는 것이 더 좋은 글쓰기 같거든요.
“나는 지금 시대에 가장 필요한 단어가 ‘잡(雜)’이라고 생각한다.”(183쪽)는 문장이 중요하게 읽히는데요. 다양한 것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 지금은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저를 변호하는 말이기도 한데요.(웃음) 이제 창의력이라는 건 많은 분들이 얘기하듯 연결시키는 게 보다 중요하고요. 이럴 때는 얕고 넓은 게 좁고 깊은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당연히 학문을 하시는 분들은 깊이 파서 끝을 봐야겠지만 어떤 것을 도구로 이용해서 나를 발전시키고 싶은 사람은 다양한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다양한 방면에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고, 이것도 알고 저것도 알고, 이것도 저것도 해봤던 감각을 가지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연결되는 지점이 생길 때가 있고요. 그런 의미에서 잡스럽다는 건 지금 시대에서는 아주 중요한 덕목 혹은 필요한 감각 같은 게 아닌가 싶어요. 최근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를 보면서도 느꼈는데요. 그 영화가 약간 한 편의 잡지처럼 만들어졌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영화도 이렇게 구성할 수 있구나, 싶었고요. 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관심사들을 계속 가지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펼쳐질 날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나의 중요한 가치로 ‘잡’을 생각한다면 매번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늘 좋은 선택만을 하지 않더라도 의미가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네요. 실패도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고요.
저는 지금까지 어떤 제안이 왔을 때, 아주 이상한 게 아니면 어쨌든 하려고 했어요. 그랬던 입장에서는 안 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하고 망하는 게 훨씬 나은 것 같아요. 하고 나면 뭐가 잘못됐는지 알 수 있지만 안 하고 생각만 하는 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잖아요. 예전에 오정희 선생님께서 “실패라고 해봤자 사소한 실패인데 뭐 그렇게 두려워하냐”는 식의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어요. 우리가 보통 인생을 걸고 뭘 한다고 하지만 사실 인생을 걸지는 않죠. 인생을 걸고 하는 일이 실제로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는 실패해도 어느 정도는 괜찮은 일을 하고 있고요. 그렇다면 그 실패가 큰 실패가 아니에요. 막상 현실에서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그런 성공과 실패는 없다고 생각해요.
*김중혁 2000년 <문학과사회>에 중편소설 「펭귄뉴스」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엇박자 D』로 김유정문학상을, 『1F/B1』으로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을, 『요요』로 이효석문학상을, 『가짜 팔로 하는 포옹』으로 동인문학상을, 『휴가 중인 시체』로 심훈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펭귄뉴스』, 『악기들의 도서관』, 『1F/B1 일층, 지하 일층』, 『가짜 팔로 하는 포옹』, 『좀비들』, 『미스터 모노레일』,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나는 농담이다』 『뭐라도 되겠지』, 『대책 없이 해피엔딩』(공저), 『모든 게 노래』, 『메이드 인 공장』, 『바디무빙』, 『무엇이든 쓰게 된다』,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공저), 『탐방서점』(공저), 『질문하는 책들』(공저) 등이 있다. 앤솔러지 『놀이터는 24시』에 「춤추는 건 잊지 마」를 수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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