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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리저렉션> 리부트의 파란약을 삼키다

18년만에 돌아온 매트릭스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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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들은, 인공지능(A.I.)들은 인간에게 매트릭스를 진짜 현실로 받아들이게끔 더욱 복잡하고 교묘한 수준으로 성능을 향상했다. (2021.12.23)

※ 영화 관람을 방해할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매트릭스: 리저렉션>의 한 장면

그리고, 신은 세상은 창조했고, 파괴와 복원을 반복했다. 이후 신을 대리한 인간은 혁명으로 시대의 진보를 이끌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성세대가 된 변화의 주체는 유리한 체제를 만들어 기득권을 옹호했다. 그 과정에서 지능을 획득한 시스템은 체제를 방패 삼아 권력자를 위한 세계를 만들었다. 현실을 가장한 기계 세계, 즉 매트릭스에서 다수의 인간은 선택의 개념을 망각한 채 주어진 길만 맹목적으로 따르며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전락했다. 

소수의 인간만이 매트릭스의 지배 개념에 의심을 품었다. 이들은 기존 질서의 옹호냐, 새로운 혁명이냐, 선택을 위한 자유 의지의 시험대에 섰다. 네오(키아누 리브스)와 같은 이는 기계, 시스템, 압제로부터의 인간 해방을 이끌겠다며 빨간약을 삼켜 ‘리셋’을 향한 험난한 길에 들어섰다. 절대자의 운명을 받아들여 모든 난관을 이겨낸 네오는 인간과 기계 세계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성공한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2021년 현재, 네오, 아니 토마스 앤더슨은 게임 개발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그는 이 세계의 기득권자다. 사실 토마스는 그 자신이 네오였다는 과거를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버전 업한 매트릭스는 네오가 주축이 되었던 혁명의 역사를 게임의 서사로 둔갑 시켜 그의 능력을 무력화한 지 오래다. 그의 여파로 무기력증과 우울증에 빠진 토마스 앞에 진짜 세계 ‘아이오’에서 온 벅스(제시카 헨윅)가 잊힌 그의 기억을 깨우려 한다.

‘벅스 Bugs’라는 이름은 <매트릭스>(1999)에서 트리니티가 토마스에게 전송했던 ‘토끼를 따라가라’는 메시지를 떠올리게 한다. 애니메이션 <루니와 툰> 시리즈의 토끼 캐릭터로 유명한 ‘벅스 버니’를 떠올리게 하는, 시스템의 오류 ‘버그’를 의미하는 이름으로부터 팬들은 <매트릭스: 리저렉션>(이하 ‘<매트릭스 4>’)이 <매트릭스: 리로디드>, <매트릭스: 레볼루션>(이상 2003)를 잇는 4부의 개념보다 <매트릭스>의 리부트라는 인상을 받는다.    

여기서 리부트는 개정했다는 의미에 가깝다. 벅스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기계의 감시를 피해 지하에 건설한 인류 도시 아이오는 매트릭스 삼부작 ‘시온 Zion’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그처럼 <매트릭스 4>는 전개 면에서 <매트릭스>를 그대로 따르되 ‘절대자 탄생’의 주제를 ‘시스템 밖으로의 초월’로 재프로그래밍(?)하여 디테일한 부분의 수정을 가한다.

이전 삼부작에서 네오가 리셋한 세상도 20년 가까이 지나면서 다시 기계에 의해 인간의 생각이 지배당하는 매트릭스로 돌아갔다. 달라졌다면 스마트폰과 게임과 메타버스와 같은 현실과 가상의 개념이 깨진 세계가 되었다. 기계들은, 인공지능(A.I.)들은 인간에게 매트릭스를 진짜 현실로 받아들이게끔 더욱 복잡하고 교묘한 수준으로 성능을 향상했다.

매트릭스에 종속된 삶과 저항하는 삶 사이에 고민했던 토마스는 이제 자신의 삶이 물리적 구성 개념인지, 정신적 구성 개념인지 알지 못해 혼란하다. 정신 상담사(닐 패트릭 해리스)를 찾아 고민을 털어놓지만, 생생한 게임을 개발하던 중에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해 생긴 질환이라며 쓸데없는 조언만 늘어놓는다. 그러면서 처방하는 파란 알약, 애널리스트로 불리는 이 상담사는 네오가 될 토마스의 자유의지를 억압하려는 매트릭스의 일종의 패치이었다.


영화 <매트릭스: 리저렉션> 공식 포스터

0과 1로 이뤄진 매트릭스는 양자택일만 가능한 이분법의 세계다. 인간과 기계, 시스템의 안과 밖, 굴복과 거역, 토마스와 스미스(조나단 그로프)까지. 매트릭스 삼부작이 이 중 하나를 선택하는 절대자의 서사였다면 <매트릭스 4>는 양자 합일의 상태로 나아가는 내용이다. 네오로의 자각이 중요했던 예전의 토마스는 이제 ‘더 원 The One’의 운명을 넘어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와 사랑으로 하나 되어 새로운 리셋의 여정을 향해 날아오른다.

전설의 ‘부활 Resurrection’이 반갑긴 해도 <매트릭스>와 유사한 이미지의 결말은 그 이상의 성취로 나아가지 못한다. 대신 <매트릭스 4>의 속편 제작을 위한 포석이 아닌지 강한 심증이 든다. 이번 영화의 모피어스(야히아 압둘 마틴 2세)는 토마스의 기억을 깨우려고 이런 얘기를 한다. 

“끝없이 반복되는 삶에 갇혀 있지.” 

<매트릭스 4>를 연출한 라나 워쇼스키는 메시지와 모순되는 리부트의 파란약을 삼켜 전작의 역사를 되풀이하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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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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