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장 어린이들에게 배운 것
나보다 작은 존재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법
내게 태권도장은 평상시 어린이들과 일상적으로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는 몇 안 되는 공간 중 하나다. (2021.12.17)
반년 만에 태권도장을 다시 찾았다. 기껏 힘들게 적립해 둔 근육은 지난 반년 사이 모두 빠져나갔다. 몸은 사소한 동작에도 삐그덕 대고 다음 날이면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오늘 하루는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휴식의 유혹을 뿌리치고 또 도장에 출석하러 갔다. 태권도가 주는 어떤 활기가 이번 한 주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될 것을 아니까. 이렇게 간헐적으로, 하지만 꽤 오랜 시간을 꾸준히 태권도를 배우고 있다. 첫 회사를 다닌 지 1년 반 만에 체력이 바닥나 이대론 못 버티겠다 싶어 운동을 알아보게 되었는데, 그때 시작하게 된 것이 태권도였다. 태권도와의 첫 만남은 즐거웠고, 그곳에서 배우는 건 비단 태권도만이 아니었다.
대개 동네 태권도장은 방과 후 아이들의 남은 시간을 채워주고 체력을 비워주는 보육 시설의 역할을 겸하고 있기 마련이다. 내게 태권도장은 평상시 어린이들과 일상적으로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는 몇 안 되는 공간 중 하나다. 성인반 수업이 진행되는 저녁 시간에는 주로 중고등학생들이 있지만, 때로는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해 또 학원 시간에 맞추기 위해 저녁반에 출석한 꼬마 아이들과 함께할 때가 종종 있다.
어린이들은 다 큰 어른인 내가 자기들과 같이 태권도를 배우는 걸 대체로 신기해한다. 마주 보고 발차기 미트를 들어주거나 겨루기를 할 때면 어색해하며 쭈뼛쭈뼛 대곤 한다. 하지만 그들은 체력과 근력이 모두 부족한 낡은이인 내가 달리기를 하다 뒤쳐져도, 세트 운동을 마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도 재촉하는 법이 없다. 평소 어려워했던 발차기라도 성공할 때면 잘했다며 손뼉 치며 용기를 북돋아준다. 다 큰 어른을 챙겨주는 게 귀찮을 법도 한데, 그런 기색도 없이 끝까지 기다려주며 응원해주는 어린이들 앞에서 나는 조금 부끄럽지만 또 마음 한편이 든든해진다. 어린이들은 내게 태권도 선배이자 좋은 자세를 보고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사범님이기 때문이다.
앞차기, 돌려차기 자세만 배워도 재미있어 신이 나던 시기를 지나 어느덧 국기원 승단 심사를 보고 나름대로 검은띠도 땄다. 하지만 매번 오랜만에 도장을 찾는 나는 여전히 어설픈 발차기를 한다. 반면 내가 만난 어린이들은 모두 나보다 더 자연스럽고 힘 있는 동작을 선보이고, 돌개차기, 뒤후리기 같은 고난이도 발차기도 척척 해낸다. 내 역할은 그런 어린이들을 지켜보며 배우는 것이고, 어린이들은 그런 나를 조건 없이 환대해준다. 내가 그들과 같거나 다르거나, 발차기를 잘하거나 못하거나 관계없이 배우는 사람으로서 나는 그곳에 배제되지 않고 오롯이 어린이들과 함께 한 자리를 차지한다. 나는 과연 어린이들에게 같은 태도를 보여 왔을지 부끄러워지는 순간들이다.
어쩐지 뭉클해져서 현성이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어른이 되면서 신발 끈 묶는 일도 차차 쉬워질 거야.”
그러자 현성이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것도 맞는데, 지금도 묶을 수 있어요. 어른은 빨리 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거울을 보지 않았지만 분명히 나는 얼굴이 빨개졌을 것이다. 지금도 할 수는 있는데. 아까 현성이가 분명 ‘연습했다’고 했는데. 어린이는 나중에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도 할 수 있다. 시간이 걸릴 뿐이다.
어느덧 주변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친구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차별과 배제, 학대로 점철된 사회에서 어린이와 함께하는 법에 대해 더 가까이, 깊게 고민하게 된다. 어린이들은 망설임 없이 건네는 환대의 자세를 어른인 나는 배우고 익혀야만 한다. 어린이들은 미숙하고 미완성된 존재가 아니며, 어른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을 다시 배워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우리는 어린이라는 세계를 통해 다시 한번 성장하고, 끊임없이 성찰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 우선은 다시 태권도장을 열심히 다녀야지. 어린이들과 마주하며 나보다 작은 존재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법을,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작은 존재들을 지우지 않는 법을 익히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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