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작가] 박상영×장류진, 장편소설 쓰기의 기쁨과 슬픔
<월간 채널예스> 2021년 12월호
첫 장편소설을 독자와 공유한 박상영·장류진 작가에게 2021년은 ‘박상영이라는 장르’의 시작이면서 ‘장류진이 장류진했다’는 평가를 단단하게 빌드업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2021.12.13)
첫 장편소설을 독자와 공유한 박상영·장류진 작가에게 2021년은 ‘박상영이라는 장르’의 시작이면서 ‘장류진이 장류진했다’는 평가를 단단하게 빌드업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올해의 박상영’, ‘올해의 장류진’으로 호명되어 나오셨으니 ‘올해’를 키워드로 몇 가지 묻고 싶어요. 일단 ‘올해의 문장’을 꼽으신다면요?
장류진 : “아무도 아시아인만큼 아시아를 사랑할 수 없다.” 정세랑 작가님의 책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가 이 문장에서 제목을 끌어온 건데 이상하게 마음에 확 와닿았어요.
박상영 : “우리 1차원의 세계에서 머무르자.” 올해가 저한테는 『1차원이 되고 싶어』를 쓰고 만든 해로 기록될 텐데, 단순하게 생각하고 쓰는 일에만 집중하려고 했고, 그런 욕망을 투영한 문장이라고 생각해요.
‘올해의 남의 작품’도 궁금합니다.
박상영 : 윤성희 작가님의 단편 「날마다 만우절」. 중노년 여성의 삶을 다룬 작품인데, 문장마다 인생이 묻어나는 느낌이에요. ‘단편의 맛’이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장 역시 정세랑 작가님의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그동안 여행 에세이는 뭔가 특별한 곳에 특별한 방식으로 다녀와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평범한 관광도시를 여행했는데도 의미와 재미를 모두 담아내고, 더 이상 여행을 가지 않겠다는 결말도 좋았어요. 비유하면, 정세랑 월드의 백스테이지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올해의 나’를 한 단어로 말씀하신다면요?
박상영 : 소설가.
장류진 : 장편작가.
방금 장편작가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달까지 가자』, 『1차원이 되고 싶어』는 두 작가님의 첫 장편소설입니다. 서로에게 첫 장편을 완성한 수고에 대한 덕담을 건네신다면요?
박상영 : 사실 온라인 연재를 할 때 얼마나 썼는지 체크도 하면서 이미 많이 건넸어요.(웃음) 항상 장류진 작가의 생산성이 부러웠는데, 적절한 분량으로 제 시기에 적절한 작품을 썼다, 장류진만 쓸 수 있는 작품을 썼다고 생각해요.
장류진 : 장편을 쓰는 동안 의지를 많이 했는데, 일단 힘이 되어주셔서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어요. 이미 전한 얘기인데, 이 소설이 여기 이렇게 새로이 반짝이며 존재한다는 사실이 너무 좋다고 했어요. 새로움이야말로 예술의 긍정적 가치라고 생각하는데, 새로운 게 추가될수록 그 분야가 넓어지는 거잖아요. 아마 제가 작가 중에서 제일 먼저 감상문을 보냈을 걸요?
박상영 : 맞아요. 쓰는 동안 한국 문학에 꼭 필요한 작품이라는 얘기를 해줘서 너무 좋았어요. 세상에 없는 어떤 걸 하나 얹는다는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해줬거든요.
『1차원이 되고 싶어』는 《주간 문학동네》, 『달까지 가자』는 《문학3》, 《스위치》에서 독자들의 반응을 먼저 맛봤습니다. 댓글은 안 달리지만, 책으로 묶이기 전에 피드백을 확인하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장류진 : 제 경우 웹에 올리기 전에 경장편 분량의 초고가 있긴 했지만 다시 쓰는 과정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양도 더 늘어났고요. 원고도 1·2·3부로 나눠서 미리 보내면 업데이트 일정에 맞춰 올린 거라 라이브로 연재한 건 아니고요. 그래서 연재 원고를 매주 맞춰 보내는 박상영 작가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독자 피드백이 빠른 건 신선했어요. 누가 읽을까 싶었는데, 은근히 읽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박상영 : 장류진 작가가 『달까지 가자』를 연재할 때 소재가 신기하다는 SNS 반응이 많았던 걸로 기억해요. 『일의 기쁨과 슬픔』도 그랬지만 웹콘텐츠로서의 경쟁력을 갖춘 작가구나 생각해요.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월급 대신 포인트를 주는 설정도 재미있었고요. 제 경우는 온라인에 공개할 때쯤 100매 정도를 쓴 상태였어요. 장편이라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임했는데, 피드백을 검색하면 별생각 없이 쓴 문장에도 토를 달고 되게 딥하게 읽어주시더라고요. 격렬한 공감의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처음 받았는데, 굉장히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달까지 가자』에는 ‘신기한 소재’라는 SNS 반응이 있었던 가상화폐가 등장합니다. 이더리움을 소재로 은상, 다해, 지송이라는 흙수저 3인방의 욕망 롤러코스터 탑승기를 쓰게 된 모티프는 어떻게 떠올린 건가요?
장류진 : 첫 모티프는 장편을 쓰자는 제의에 어떤 소재를 쓸까 고민하다 떠올린 이미지였어요. 여러 씨앗 같은 소재가 몸속에 있을 텐데, 일확천금을 손에 쥔 친구들이 오픈카를 타고 달리는 장면이 떠올랐어요. 성별은 명확치 않은데, 모두 여자라면 어떨까 싶었고요. 그런 다음 발상의 가지가 뻗어나간 건데, 2017년 가상화폐 1차 붐이 일었을 때 뉴스나 시사 프로에서 많이 다루던 장면에 관심이 갔고, 거기에 반응하는 사람들 모습이 뇌리에 강하게 남았어요. 소설 속 인물들이 가상화폐를 처음 접하는 시점에 이미 비트코인 한 개가 100만 원이 넘었기 때문에 비싸게 느껴질 것 같아서 이더리움을 선택했고요. 솔직히 “비트코인을 하자는 거야?”, “넌 내가 그렇게 뻔한 소리를 할 것 같니?”라는 대사를 넣고 싶어서 그런 것도 있어요.
『1차원이 되고 싶어』의 주인공은 전작 『대도시의 사랑법』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소년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2002년이라는 시간과 D시 수성구라는 공간에서 벌어진 ‘퀴어 청춘 세밀화’를 쓰기로 작정한 계기가 있다면요?
박상영 : 어떤 작가든 근원을 찾아가는 10대 이야기는 한 번쯤 꿈꾸는 얘기일 거예요. 제 경우도 등단 전부터 쓰고 싶은 얘기였고요. 대부분 한국인이 비슷하겠지만, 저 역시 10대 시절이 워낙 트라우마틱한 시대라 나름대로 해석하고 싶었거든요. 꼭 장편이라기보다는 단지 쓰고 싶다는 마음이 컸는데, 연재 제의를 받고 이제는 쓸 때가 되지 않았나 싶었어요. 개인적 차원의 공포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것도 있고, 작가적 측면에서는 장편에서만 쓸 수 있는 기교나 플롯을 제대로 구현해보자는 큰 욕심도 있었어요. 이전까지는 단편을 모을 때의 가벼운 마음, 맘에 안 들면 몇 장 날리면 그만이지 하는 심리적 안정감이 있었는데, 장편은 500매를 쓰고 날릴 수도 없으니 감정도 딥하고 매순간 도전하는 마음이었어요.
첫 장편 쓰기에 임하면서 작가로서 가장 공들인 지점은 어떤 걸까요?
박상영 : 분량? 내용이 길어져서 책이 무거워질 것 같아 제일 걱정이었어요. 이게 왜 안 끝나지 하면서.(웃음) 단편 쓰기에 들이는 수고와 차이는 없지만, 첫 조판 과정에서 500쪽 가까이 나오니까 심적으로 힘들더라고요.
장류진 : 가독성도 좋고 이야기에도 빠져 들어가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지 않을까요?(웃음) 저는 모든 과정에 공을 들였지만 결말을 달달하게 하는 것에 제일 공을 들였어요. 세속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주인공들을 벌주는 결말을 피하고 설탕에 굴리고 싶었거든요. 설탕이 몸에 안 좋다곤 하지만, 그래도 달달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박상영 : 그것도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주인공을 굴레에 빠뜨리는 것도 전형적이니까요.(웃음)
모든 장면, 모든 인물이 그러길 원하시겠지만, 작가로서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공감했으면 하는 장면 혹은 인물이 있다면요?
장류진 : 이 장편은 가상화폐, 한탕, 일확천금이라는 욕망의 스펙트럼에 반응하는 인물과 장면들을 펼쳐서 보여주는 게 목적이었어요.
박상영 : 일종의 사회학적 시선인가요?
장류진 : 아, 그러네요!(웃음) 그런 이유로 저는 독자들이 어떤 인물 하나에만 공감하길 바라지는 않아요.
박상영 : 저 역시 인물 모두를 깊이 사랑하며 쓴 거라 누군가에게 더 공감하길 바라진 않아요. 다만 기분에 따라 공감하는 인물이 달라지긴 하는데, 오늘 기분에는 ‘태리’라는 캐릭터가 떠오르네요. 다른 인물들에겐 구원의 방편을 만들어줬다는 작가로서의 면죄부가 있지만, ‘태리’는 외롭게 만들어놓은 것 같아 제일 마음이 쓰여요. 작품을 쓰면서도 가장 힘든 게 불행을 다루는 거였어요.
첫 장편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장편소설 쓰기의 기쁨과 슬픔’에 해당할 개인적 장면이 있을까요?
장류진 : 작품에 등장하지만 실제 가상화폐 그래프에 따라 내용을 전개하다 보니, 장편을 쓰는 내내 엑셀 시트를 만들어야 했어요. 매수일, 매도일 등 날짜마다 다 찍어서 1년치를 만들었거든요. 사이트 찾아가서 가격 확인하고, 인물마다 투자 시트지를 만들어서 숫자를 맞추느라 엄청 힘들었어요.
박상영 : 플롯을 짤 때가 정말 재미있었어요. 물론 머리는 깨지는 줄 알았지만.(웃음) 이 사람이 언제 이 진실을 알게 될까 하면서 플롯을 맞추는 기쁨과 슬픔이 있더라고요. 작품에 등장하는 실제 사물과 공간, 개인적 경험을 고증하느라 고생도 많았고요. 하지만 그걸 맞추면서 오는 쾌감이 꽤 컸어요.
데뷔 이후의 행보, 문학상 수상, 작품의 확장성(영화, 연극, 해외 진출 등) 면에서 두 분 모두 ‘스타 작가’의 반열입니다. 작품의 어떤 점이 동시대, 동세대 독자의 지지를 끌어낸다고 생각하시나요?
박상영 : 와, 어렵네요. 어떻게 답하지?(웃음)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작가들이 손 든다고 시켜주는 것도 아니고, 상 주세요, 알아주세요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정리하면, 제 경우는 좀 더 서사성에 관심 있는 작가인 것 같아요. 캐릭터성도 그렇고. 그런 이유로 다른 장르로의 변환도 용이하고요. 문학 자장에서도 다양한 작품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독자들 역시 비슷한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작가가 사랑받고 있는 것 같고요. 데뷔한 지 5년 됐는데, 등단하기 전보다 신인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는 분위기라는 게 느껴져요. 그만큼 독자들이 새로운 걸 많이 찾아나섰기 때문 아닐까요?
흥미롭게도 두 장편의 추천사를 정세랑 작가님이 썼어요. “장류진이 쓰는 소설은 장류진만 쓸 수 있다”, “『1차원이 되고 싶어』는 박상영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들을 바꿀 것이다”
장류진 : 정세랑 작가님 얘기는 고유함이 있다는 칭찬 아닌가 싶어요. 장류진의 고유성. 사실 그게 뭔지는 저 역시 잘 모르지만, 소설의 바이브라는 게 있다면, 전체적으로 다 읽었을 때 제 소설에 그런 분위기가 있다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박상영 : 많은 작가가 그렇지만 기억에 남는 작품을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이번 작품을 쓰면서 잘 쓴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좀 더 소설의 본질에 가까운 소설로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나 고민도 많았고요. 문학적 요소를 갖추려고 노력도 많이 하고요. 정세랑 작가님 말씀은 그런 것 같아요. 웃긴 말투를 구사하는 애가 많은 변화를 모색하고 있구나.(웃음)
두 작가님의 2022년을 미리 열어본다면, 어떤 계획 혹은 목표가 있을까요?
장류진 : 경장편을 쓸 예정입니다. 또 근대 작가로 분류되는 선배 작가들의 단편을 변주하는 시리즈에도 참여할 것 같아요. 출간은 내후년이 될 수도 있지만요.
박상영 : 우선 2020년대의 현실을 다룬 작품집을 묶을 것 같아요. 시점이 멀어지면 독자도 멀게 느낄 터라 속도를 내는 중이에요. 에세이 쓰는 걸 좋아하는데, 고통 대신 재미만 살려서 웹플랫폼에 연재할 예정이고요. 제주도에 머무르면서 SNS에 올리는 내용을 보고 제의가 왔거든요. 『1차원이 되고 싶어』를 내고 에너지를 정말 많이 받았는데, 앞으로 재미있는 작품 많이 쓰고 작가 생활을 열심히 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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