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근 “안타까운 마음에 이 책을 썼다”
『20대 남자, 이대남은 지금 불편하다』 정여근 저자 인터뷰
기성세대인 작가의 시점에서 바라본 이대남의 고충을 가감없이 전하는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자. (2021.12.09)
최근 20대 남자를 뜻하는‘이대남’이라는 단어가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사회에서 별로 영향력이 없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도 않던 20대 남자들에게 이제야 비로소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이대남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다. 뉴스에 보도되는 이대남은 미래에 대한 고민 없이 알바로 삶을 연명하고 있는 나약한 집단으로, 때론 열등감에 사로잡혀 여성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범죄 집단으로 비치거나, 아니면 허세에 가득 차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그려지고 있다.
『20대 남자, 이대남은 지금 불편하다』는 세상의 편견 때문에 오늘날 설 자리를 찾지 못하는 이대남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책은 기성세대인 작가의 시점에서 바라본 이대남의 고충을 가감없이 전하는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자.
‘이대남(20대 남자)’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연말이면 무수하게 많은 책들이 미래를 예측하겠다면서 '트렌드'라는 제목을 달고 출간된다. 그 트렌드 속에 이대남은 없다. 대선을 앞두니 ‘보수다 진보다 제3지대다’라고 스스로를 칭하면서 기득권을 지닌 자들이 더 많은 기득권을 원하는 추태가 가관이다. 그 추태 속에 이대남은 없다. 이미 가진 자들, 앞으로 가질 자들 그 사이에서 이대남은 '아무것도 아닌 자'일 뿐이다.
고전 『오뒷세이아』에서 영웅 오뒷세우스는 자기 자신을 ‘outis’, 즉, ‘아무것도 아닌 자’로 지칭했는데 이렇게 한 목적은 단 하나, 살기 위해였다. 자기 동료를 머리부터 씹어 먹는 거인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이대남도 결심했다.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어 이대남을 마음대로 씹어 먹으려는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구해내기로.
타자를 위해 주는 척하며 실제로는 호박씨란 호박씨는 다 까고 있는, '내로남불' 진보, 기회가 왔음에도 '선제적 권력투쟁'으로 진흙탕 싸움을 하는 '꼴통' 보수, 거기에 이미 지나간 구닥다리 사회문제를 부여잡고 악다구니를 쓰는 기성세대들이 이대남을 지칭하는 말들, 즉 '경험이 없는', '아직은 미숙한' 심지어는 '잠재적 강간범'이라는 키워드의 굴레로부터 이대남은 벗어나고 싶다.
다행인 것은 이대남의 목소리가 이제 들린다는 것이다. 직장인으로서 후배로 이대남을 만나게 되면서 그리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불만에 귀기울이면서, 거기에 더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디에선가 분명히 오늘도 열심히 자기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이대남의 생각들을 찾아내면서 트렌드고, 대선이고 뭐고 2021년 대한민국의 온갖 문제가 집약되어 있는 이대남을 먼저 알아야 함을 깨닫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소외되고 힘든 이대남에게 기성세대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대신 사과하고 싶다. 40대, 50대 남자를 대신해서. 잘못했다. 미안하다. 앞으로 잘하겠다. 민주다, 보수다 하는 형이상학적 담론으로 이대남을 괴롭히지 않고, 이대남이 처한 현실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하는 어른들의 부족한 모습에 나도 한몫한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이대남에게 해주고 싶은 말 몇 가지만 들려주고 싶다.
‘영웅’(英雄) 아니어도 된다. 노력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단한 그 무엇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책임지려 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극히 ‘일부’ 여자들이 영웅의 ‘웅’이 ‘수컷 웅’인 게 기분 나쁘다고 말한다면 그냥 영웅 반납하라. 그리고 ‘영자(英雌)' 실컷 하라고 해라. (참고로 ‘암컷 자’라는 한자가 있다.‘雌’)
'남자가 왜 그래?'라는 말에 일일이 대답하지 말라. 대신 그 어디에라도 좋으니 신고해라. 언어적 성폭력으로. 데이트를 하는데 '남자니까 돈을 내야지?', 결혼을 할 시점에서 여자친구가 '남자가 집은 해와야지?' 등의 말도 마찬가지다. 관계를 끊고 모두 신고해라. 성희롱, 성폭력으로. 요지는 이것이다. 이대남이 아픔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지겨운 ‘남성다움’을 반납하고 ‘인간다움’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날을 기대하자.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책에 관심 갖는 독자들이 적어도 이것만은 이대남에 대해서 알아줬으면 하는 게 있다면요?
이 책에 관심을 갖아야 할 첫번째 독자는 40대, 50대의 남자들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그들이 과연 이런 책을 읽기나 할까. 읽는다고 또 깨달을 두뇌적 유연성이 있기나 할까. 하지만 대선 그리고 지방선거를 치뤄야 할 정치인은 이 책을 읽을 수도 있고 또 조금이나마 이해를 할 것 같아서 조언을 하자면 이런 얘기다. 이제 곧 대선 그리고 지방선거이다. 온 국민의 관심이 후보들에게 쏠릴 때다. 이대남의 표를 뭔가 구걸해서라도 얻고 싶다면, 말과 행동을 한 후에 그것이 잘못일 경우 절대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라고 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대남이 소름끼칠 정도로 싫어하는 말이 바로 '의도'라는 키워드임을 똑똑히 기억하길 바란다.
하나 더, 직장에 다니는 40대, 50대의 남자들에게 이대남의 불만 하나를 이야기해드리고 싶다. "(남자) 팀장님이 그러시더군요. '(이대남의 입사동기인 여자)OO 씨는 퇴근 후 필라테스도 하고, 독서 모임도 나가던데, 당신은 뭐해? 문화생활 좀 해라. 응?' OO 씨의 페이스북을 보니 여유롭고 문화적이라면서, 매번 술 마시고, 농구 하는 게시물만 올리는 저와 비교된다고 하더군요. ‘암바’를 걸어서 팔을 부러뜨리고 싶었습니다. ‘퇴근하는 나를 붙잡고 매일 술 마시자면서, 그렇게 접대부 취급한 게 누군데?’"
주변에 있는 이대남과 친해지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친해지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대남이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 안 해도 알지? 이심전심이잖아!" 그래놓고는 삼겹살에 소주한잔 하면서 풀자는 남자 팀장, 스파게티에 와인 한잔 하면서 대화하자는 여자 상사 모두 소위 '극혐'이다. 그래도 이대남과 친해지고 싶다고? 그렇다면 당신의 생각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할 때. 당신의 규칙과 다르게 살아가는 '타자'(他者)인 이대남의 얼굴에서 진심 가득한 긍정의 미소, 혹은 능동적인 깨달음의 끄덕임이 나올 때까지 설명하라. 그런 모습이 안 나온다고? 당신은 이대남과 한발 더 멀어졌다.
직장 안에서 혹은 사회에서 만난 이대남은 어떤 사람인가요?
직장 안에서 혹은 사회에서 만난 이대남의 두드러진 특징을 키워드 하나로 제시한다면 '중립기어'다. 그렇다. 이대남은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는다. 그런데 세상이 이런 이대남을 그냥 두지 않는다. "너는 내 편이야? 아니면 저쪽 편이야?"를 물어놓고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편을 갈라놓고는 '저쪽은 나쁜 인간들, 이쪽은 좋은 사람들'이라는 흑백논리를 만들어 갈등을 조장하고 분열을 일으키면서 거기로부터 시작되는 혐오의 부산물을 얻어내려 한다. 이대남을 우습게 여기는 처사다. 이대남, 이따위 치졸한 편가르기에 비웃음을 날리고 중립기어를 박을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극단에 치우치지 않으며 현실을 잘 살아낼 줄 아는 사람들이다.
세상의 편견과 오해 때문에 오늘날 설 자리를 잃은 20대 남자들의 성난 목소리를 실컷 대변해 주신다면요?
성역할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이대남도 육아와 가사일을 하고 싶다. 실제로 결혼 후에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들을 기르는, '전업주부'(專業主夫)가 꿈인 이대남이 예상외로 많았다. 하지만 사회적 편견이 그들의 꿈을 막고 있다. 그들의 꿈을 이루어줄 시대정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결혼시장은 여전히 조선시대를 갓 지난 시기와 다르지 않으니 암담하다. 온 국민의 두통거리인 주택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남자에게 있다. 사람 그 자체를 보는 것에 있어서조차 신랑이 신부보다 학력 혹은 소득이 낮으면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미개사회'의 특징은 여전하다. 답답한 일이다.
그리고 이대남의 성난 목소리를 대변해달라고 했는데, 말은 정확하게 하자. 이대남은 성이 났다기보다는 어이가 없을 뿐이다. 사실 성이 났다는 것은, 화를 낸다는 건, 상대방에 대해 그래도 원하는 게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기가 막혀서 원하는 게 없을 정도로 이대남은 어이가 없을 뿐이다. 잘못한 건 아무 것도 없는데 사회에 나오자마자부터 경험부족자, 역량열위자, 결혼할 준비 미흡자. 잠재적 강간범 따위로 불리니 말이다. 화낼 힘조차 없다. 그냥 막막할 뿐이다. 그러니 잘 모르면 그냥 좀 냅두면 어떨까. 지금은 섣부른 위로 이전에 침묵을 지키며 조용히 옆에서 바라봐 줄 때다.
이 책을 통해 이대남에 대해 말하고자 하시는 바는 무엇일까요?
이대남은 성별을 묻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그 성별을 묻지 않는 환경부터 만들어달라. 대학이든, 학교든, 그리고 군대든 모두. 왜 이렇게 엄살이냐고? 세상은 여전히 남자 거 아니냐고? 취업 쪽 예를 들어보겠다. 2021년 MBC 문화방송 기자의 남자 : 여자 성비, 2021년 교원 임용고시 남자 : 여자 성비, 2021년 판사 신규임용 남자 : 여자 성비를 확인해보라. 2021년 현재 20대의 경우 이미 '우성'은 여자고 '열성'이 남자다. 이 평범한 팩트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아무 말이나 내뱉는 인간이 더 이상 없기를 이대남은 바란다. 마무리하자. 고전 『오뒷세이아』에서 자기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자’로 지칭했던 오뒷세우스는 다시 마음 편하게 자신을 드러낼 그 날을 꿈꾸면서 온갖 죽을 고비를 넘겼고, 결국 자기 인생의 승리자가 되었다. 이대남도 언젠가 꼭 삶의 주인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각자 이름을 꼭 되찾기를 기원한다.
*정여근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산다. 강아지 세 마리를 키우는 게 낙이고, 응원하는 프로야구팀이 이겼을 때 와인 한 잔 마시고 자는 게 즐거움이다. 책을 통해서 세상을 재해석한 후 글을 쓰고 있다. 최근엔 대한민국 이십 대 남자들의 팍팍한 삶에 마음이 꽂혔다. 세상은 눈부시게 진보했지만 남녀 갈등은 여전히 2021년 대한민국의 화두다. 그 첨예한 갈등을 지켜보다 억울하고 소외된 이대남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그 어떤 시도도 없다는 게 의아했다. 그때부터 이대남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었다. 그리고 쉽지 않은 20대를 거쳐온 선배로서 그들도 언젠간 자기 삶의 주인공들이 되길 바라며 이 책을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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