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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에서 무덤까지 : 온앤오프와 황현의 파트너십

온앤오프 미니앨범 6집 <Goosebum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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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발생한 프로듀싱 팀 모노트리 소속의 작곡가 황현과 온앤오프 인연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을까. (2021.12.08)

출처: WM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의 힘이 강한 시대가 있었다. 한국 대중음악계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도 지금도 프로듀서라는 호칭, 정의, 역할 모두를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극히 드문 것 같지만 어쨌든, 그런 시대가 있었다. 특정 프로듀서를 중심으로 모인 이들을 일컬어 흔히 ‘사단’이라고 불렀다. 70년대에는 사이키델릭이라는 묵직한 무지개 빛 망토를 두른 신중현 사단이, 80년대에는 희뿌연 안개 저 너머에서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는 조동진 사단이 활약했다. 90년대는 발라드는 김형석, 댄스에서는 김창환 사단이 압도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들의 손이 닿은 작품만 모아도 한국 대중음악 역사의 큰 줄기가 만들어 지겠지만, 프로듀서에 대한 인상은 여전히 희미했다. 미치기 일보직전의 천재 음악가, 음악밖에 모르는 소수민족의 우두머리, 백지수표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일급 작곡가, 타고난 전략가이자 사업가. 이 모두가 프로듀서이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

21세기 들어 한국의 프로듀서 개념은 더욱 희미해졌다. 흥행성을 갖춘 단일 음악가의 힘이 강해졌고, 기획사 주도형 아이돌 그룹이 주류를 장악하며 보통 '제작책임자(Executive producer)' 역할을 하는 기획사 대표를 프로듀서라 부르는 오류도 종종 생겼다. 정규 앨범이 네 다섯 곡을 담은 미니앨범으로, 싱글 단위로 점차 쪼개지며 프로듀서가 설 곳은 더욱 애매해져 갔다. 잘 키운 열 자식보다 대박을 타고난 자식 하나가 더 중요해진 시대, 잘 만든 곡을 요령 있게 수급해오는 A&R 부서의 힘이 커졌다. 또 누군가는 음악만큼 비주얼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실제로 수려한 이미지나 영상, 파워풀한 퍼포먼스 등으로 음악의 빈 공간을 작품들이 속속 등장했다. 옳고 그름의 판단이 아닌, 그저 그런 시대의 자연스러운 도래였다.

그 가운데 문득 자연 발생한 프로듀싱 팀 모노트리 소속의 작곡가 황현과 온앤오프 인연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느 각도에서 봐도 시대의 흐름 외곽에 놓여 있는 이들의 만남은 2017년 8월 첫 미니 앨범 <ON/OFF>라는 결실을 낳았다. 이후 온앤오프는 단 한 번도 한눈을 팔지 않은 채 오로지 황현과의 작업만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상업적 성공이 뒷받침한 교류일까 실눈을 뜨는 이도 있겠지만, 터놓고 말해 이들의 랑데부가 그 동안 대단한 부와 명예를 거둔 것도 아니다. 데뷔 전부터 연습생이었던 멤버들과 만나 함께 음악 작업을 하는 등 열과 성을 다한 건 사실이지만, 어제 오늘이 다른 비정한 케이팝 시장에서 상업적, 대중적 성공은 좀처럼 거두기 쉽지 않은 것이었다. 해외 팝 트렌드를 정확히 조준한 다국적 창작자들의 송캠프산 노래가 쏟아지는 와중에 서정적인 멜로디를 중심으로 한 딴딴한 사운드를 특징으로 하는 황현의 프로듀싱은 확실히 ‘요즘 유행’은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출처: 모노트리 유튜브

그런 와중에 ‘사랑하게 될 거야(We Must Love)’가 터졌다. 터졌다고 하기엔 다소 소박할 수 있지만, 2019년의 초입 발매된 세 번째 미니 앨범 타이틀 곡이었던 이 곡은, 활동 당시보다 오히려 시간이 지난 뒤 케이팝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고 ‘숨겨진 케이팝 명곡’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반짝이는 멜로디와 ‘슬픔에 관한 면역력은 내가 더 세’ 같은 지나칠 정도로 비장한 노랫말의 묘한 조화가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했다. 여기에 2020년 방영한 엠넷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로드 투 킹덤’을 통해 요즘 세상에서 참 드물어진 이들의 오랜 파트너십이 관심을 갖는 이들이 늘어났다. 데뷔 이후 단 한 번도 떨어져본 적이 없는 황현과 온앤오프는 이 프로그램을 위한 작업에도 당연하게 힘을 합쳤다. ‘사랑하게 될 거야’를 셀프 커버한 ‘The 사랑하게 될 거야’, 비의 원곡을 온앤오프와 황현만의 방식으로 소화한 ‘It's Raining’, 방송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한 온앤오프만의 웅장함을 녹여낸 신곡 ‘신세계(New World)’까지. 이들의 호흡은 요즘 케이팝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순정한 만남으로 적지 않은 이들의 지지와 뜻밖의 부러움을 샀다. 외국인 멤버를 제외한 멤버 5인의 동반 입대를 앞두고 새롭게 발표한 당분간의 마지막 앨범 <Goosebumps>에서도 이들은 여전히 손을 잡고 있다. 종종 너무 순정만화 같다거나 사춘기 청소년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 온앤오프 음악의 넘치는 감수성이 현실의 관계로 느슨히 이어진다. 단순히 한 그룹과 음악 프로듀서의 합뿐만이 아닌,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요지경 케이팝 세상 속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내기 위한 충직한 파트너십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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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 등 각종 온·오프라인 매체에 기고하고 있으며 KBS, TBS, EBS, 네이버 NOW 등의 미디어에서 음악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네이버 온스테이지와 EBS 스페이스공감 기획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TBS FM 포크음악 전문방송 <함춘호의 포크송> 메인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한마디로 음악 좋아하고요, 시키는 일 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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