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작가] 서이제, 시작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소설집 『0%를 향하여』
소설을 쓰게 된 것도 우연이었어요. 그런데 일단 해보니까 우연히 행복해졌거든요. 삶이 항상 인과에 의해 결정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런 삶을 닮은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2021.12.08)
가끔 내가 어떤 시간을 살고 있는지 종종 헷갈린다. 분명 디지털에 길들여졌는데, 여전히 80년대 대학가요제 무대를 보면 가슴이 뛰고 LP판에 이유 없는 향수를 느끼니 말이다. 그럴 때면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가 믿는 것처럼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을까? 알고 보면 시간은 시작과 결말이 명확한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뒤섞이고 겹쳐진 이상한 사건이 아닐까?
소설가 서이제도 어느 날 기묘한 시간을 떠올렸다. 미술관이었고, 필름은 조각조각 잘려 전시되고 있었다. 하나의 면이 되어 붙어 있는 필름을 보고,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하는 시간을 상상했다. 단순히 차곡차곡 쌓아 결말에 이르는 소설이 아니라, 시작도 끝도 없는 이야기가 쓰고 싶었다. 소설집 『0%를 향하여』의 시작이다.
인터뷰 내내 서이제는 ‘우연’에 대해 말했다. 소설을 쓰며 우연히 행복해졌고, 삶이란 우연으로 가득한 것 같다고. 그런 삶을 닮은 소설을 쓰고 싶다고. 그 말을 듣자 나 역시 믿고 싶어졌다. 소설의 페이지마다 담긴 수많은 우연들을,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우연한 만남들을. 앞으로도 어쩌면 현실은 우리에게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길 요구하겠지만, 서이제의 소설이 있는 한 우리는 자유로울 것이다. 자유롭게 뻗어가는 시간 속에서.
원래 영화를 공부하셨어요. 소설을 어떻게 쓰게 됐는지 궁금했어요.
학교 다닐 때, ‘좋은 이야기가 좋은 영화를 만든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좋은 이야기가 뭘까 하는 의문이 드는 거예요. 실제로 써보면 뭔가 알 수 있겠지 하면서, 졸업 무렵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의외로 너무 즐거운 거예요. 영화를 찍으면 돈도 잃고 친구도 잃고 감정도 잃는데(웃음) 소설은 실패해도 언제든 다시 쓸 수 있고, 돈도 안 들고. 이런 식이면 계속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90년대생인 작가님이 영화학과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예술영화관이 많았고 독립영화를 보는 문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요즘은 영화관도 문을 많이 닫았고, 이제 다들 넷플릭스, 왓챠 같은 OTT 서비스로 영화를 보죠.
입학할 때만 해도 필름으로 영화를 찍었어요. 술자리에서도 친구들끼리 영화가 디지털로 바뀔까, 아냐 필름은 사라지지 않아 하면서 토론도 많이 했고요. 그런데 휴학을 오래 하고 복학을 했는데 다 디지털로 바뀌어 있는 거예요. 당시에는 변화를 그냥 받아들였다가 나중에 영화제에서 오랜만에 필름 영화를 보게 됐어요. 아 이게 영화였지 싶은 거예요. 필름은 보관 상태에 따라 색감이 변하고 먼지도 들어가잖아요. 영화가 스토리만이 아니라 질감의 표현이라는 걸 다시 느꼈죠. 그 고민을 할 무렵에 「셀룰로이드 필름을 위한 선」을 썼어요.
「셀룰로이드 필름을 위한 선」은 시간이 뒤섞인 채로 배열된 소설이었어요. 필름을 새롭게 본 경험이 소설의 형식에도 영향을 줬나요?
늘 시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영화는 항상 러닝타임이 정해져 있는데 그게 싫었거든요.(웃음) 그 무렵 미술관에서 벽에 필름을 붙여 놓은 걸 봤는데, 시간이 시작과 끝이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면으로 존재할 수 있구나 싶더라고요. 사실, 우리가 콘텐츠를 즐기는 방식도 그래요. 바를 눌러서 시간을 왔다갔다 선택해서 볼 수 있잖아요. 그렇게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게 아니라 수용자에 의해서 여러 갈래로 활성화되는 것을 떠올렸어요.
독자는 어떤 순서로 읽어도 상관없는 거군요.
사실 제가 그래요. 영화는 결말부터 보고, 책 읽을 때도 일부러 마지막 페이지를 펴요.(웃음) 책은 종이가 겹겹이 쌓인 물건이잖아요. 소설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쌓아 올려서 결말에 이르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페이지를 펼쳐도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소설.
각 소설이 매번 다른 형식을 보여줘서 신기했어요. 이런 건 어떻게 만들지 싶을 정도로요.
형식이 정해지면 안에 들어갈 내용은 자연스럽게 떠올라요. 항상 형식이 주제라고 생각하고, 그게 제게 맞는 표현 방식 같아요. 왜 말을 할 때 속이 후련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잖아요. 저는 새로운 형식으로 쓸 때, 그런 후련함을 느껴요.
첫 소설 「미신」은 ‘모른다’로 끝나는 문장으로 어디까지 써나갈 수 있는지 실험한 결과물이라고요. 실제로 써보니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어려웠죠. 이렇게까지 몰라도 되나 싶고. 사실이란 없고 계속 문장을 뒤엎으니까 쓰는 저도 계속 헷갈리게 됐죠. ‘물’과 연관된 이미지를 집요하게 따라갔던 것 같아요. 쓰고 나니 후련했지만, 발표 직전에는 너무 떨리는 거예요.(웃음)
독자들의 반응이 두려웠나요?
그 때는 걱정이 됐는데, 어느 순간 믿게 된 것 같아요. 왠지 잘 읽어주실 것 같다는 믿음.
작가님 소설에 ‘청춘’이라는 수식어를 많이 붙이더라고요. 아무래도 우리가 스스로 ‘청춘’이란 말을 붙이는 건 좀 어색하죠.(웃음)
맞아요. ‘청춘’이란 말을 의식하고 쓴 적은 없었어요. 아무래도 ‘청춘’ 하면 외부에서 우리를 규정하는 느낌이 들잖아요. 소위 ‘밀레니얼 세대’가 고학력자인데 취업은 안 되고 어렵게 살아간다고 말하잖아요. 근데 그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희망도 없는 세대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다른 걸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어요. 주변에 예술을 하는 친구가 많은데, 어느 순간 내가 이 사람들과 있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큰 돈을 벌지 못하고 미래도 불안정하지만, 이 사람들 곁에 있으면 될 것 같다는 믿음이요.
저도 소설을 읽으면서 특별한 사건이 없더라도 인물들이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좋더라고요. 의미 없는 말만 계속하지만 그것도 교류니까요.
제 소설이 되게 비극적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늘 희망적이라고 생각하고 쓰거든요.(웃음) 절망적으로 보이는 세계 안에서도 다들 같이 있잖아요. 그게 유일한 희망 같고요. 혼자이지만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닌,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를 그리고 싶었어요.
「그룹사운드 전집에서 삭제된 곡」은 엄마 세대의 청춘을 다루죠.
한동안 유튜브에 올라온 80년대 대학가요제 영상을 많이 봤어요. 그런데 그 영상 속에 없는 사람들은 다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학을 다니지 않았거나, 지방에 있는 사람은 여기 나올 수 없었을 텐데. 그렇게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쓰고 싶었어요.
딸이 전생체험을 통해, 엄마의 청춘을 만난다는 설정도 독특했어요.
심심풀이로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고 전생체험을 해본 적이 있는데요. 너무 몰입해서 울면서 깨어난 거예요.(웃음) 그 경험을 떠올리면서, 엄마가 직접 이야기하는 방법 보다는 딸이 전생체험처럼 엄마의 삶을 훑고 돌아오는 방식을 택했어요. 왜 우리도 집에서 80년대 영상만 보고 있으면, 이 세상이 80년대로 변해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잖아요. 그렇게 시간이 뒤죽박죽 섞이고, 동시다발적으로 시간이 발생하는 일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SNS나 유튜브 같은 새로운 매체 환경이 소설에 적극적으로 드러나기도 해요. 기존 소설이 담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을 다룬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일상에서 스마트폰을 갖고 다니고 유튜브를 보는데, 그런 이야기가 없으면 어떻게 우리 삶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기술이 발달하면 인간의 감각도 바뀌잖아요. 카메라와 눈이 협력해서 주변 사물을 인식하고, 보정되고 수정된 이미지로서의 나를 보게 되고요. 그런 감각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려고 했어요. 왜 영원한 것만 소설에 담아야 하지 하는 의문도 있었어요. 30년 뒤에 펼쳐봤을 때, 소설에 인스타그램 이야기가 있으면 그것 또한 좋은 게 아닐까? 이걸 써도 될까 하는 망설임은 없었어요.
『0%를 향하여』는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한국 영화 100주년이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죠.
15년 정도 영화를 좋아해 왔는데 저도 뭔가를 기념하고 싶은 거예요. 힘든 시간에 나를 위로해 준 게 영화였는데, 정작 내가 영화를 위해 한 일이 있었나 싶었어요. 예전에 지인이 첫 책에 대한 계획이 있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때 독립영화에 대한 소설을 써서 마지막에 넣고 싶다고 대답했거든요. 그래서 20대의 마지막에 이 소설을 썼어요.
‘독립영화’ 하면 상업영화의 전 단계 정도로 많이들 생각하잖아요. 막연히 힘들겠다는 동정의 시선도 있고요.
‘독립영화’라는 말 자체가 텅 비어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독립영화계에서 유명해지면 다 메이저 상업영화계에 가잖아요. 결국 독립영화 판에 머무르는 사람이 없어요. 의미 있는 작업을 하더라도 관객을 모으지 못해서 사라지고요. 그래서 제가 느낀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어요. 너무 비극적인 것 아니냐는 평도 들었는데, 저는 반대로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나름의 즐거움과 숭고함이 있어요. 0%를 향하는 움직임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해석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동아리에서 영화를 찍던 친구들도 생각나고, 독립영화관을 찾던 추억도 떠올랐어요.
신기하게도 독자분들이 책을 읽고 독립영화에 대한 각자의 기억을 올려주시더라고요. 독립영화관에서 아내를 처음 만났던 사연이나, 작은 공연장에서 일했던 경험 같은 것들요. 그럴 때 소설 쓰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소설을 읽고 한 명이라도 독립영화관을 오랜만에 찾게 되면 성공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기억들이 모여서, 결국 소설이 끝나지 않고 무한하게 뻗어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시작과 끝이 정해진 게 아니라, 우연히 움직이는 사건들이 결국 작가님의 소설이 아닐까 싶었어요. ‘작가의 말’에서도 그런 자유가 느껴졌는데요. 마지막 문장이 인상적이었어요. “나는 이제, 우연과 협력한다”
소설을 쓰게 된 것도 우연이었어요. 그런데 일단 해보니까 우연히 행복해졌거든요. 삶이 항상 인과에 의해 결정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오히려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가 거짓이고, 나를 착각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아요. 사람은 우연히 불행해질 수도, 행복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왜 그런 경험 너무 좋잖아요. 오늘 기분이 울적해서 영화를 보러 갔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만난다거나, 길을 걸어가는데 때마침 불꽃놀이를 보게 된다거나. 모두 우연이 만들어낸 사건이잖아요. 그런 삶을 닮은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책은 누군가를 만나면서 각자의 운명을 가지게 된다”고 하셨어요. 독자들을 만나서 이 서사들은 계속 변화해나갈 것인데, 어떻게 읽어주었으면 하나요?
자유롭게 읽어줬으면 좋겠어요. 읽다가 멈춰도 좋고, 거꾸로 읽어도 좋고. 독자의 능동적인 선택이 많이 발현되는 책이 됐으면 해요. 한 권의 책을 읽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해요. 다음 장으로 넘어갈 때 종이에 공백이 있잖아요. 여기서 여기로 넘어갈 때, 이 사이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문득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릴 수도 있고, 앞과 뒤를 나름대로 연결할 수도 있겠죠. 그런 다양한 해석을 떠올리면, 소설 쓰는 게 너무 재밌어요. 늘 독자의 반응이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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