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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한 사람이 눈치 보고 주눅 드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디지털 장의사, 잊(히)고 싶은 기억을 지웁니다』 김호진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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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들은 전혀 모르겠지만 피해자들은 절대 씻을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갑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버릴 수 있는데 나 몰라라 일관하는 가해자들을 보면 울화가 치밀 때가 정말 많아요. (2021.11.17)

김호진 저자

우리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쓰면서 각종 SNS를 비롯해 다양한 디지털 공간에 수많은 흔적을 남긴다. 그런데 무심코 남겼던 기록들이 내 발목을 잡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순간적인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했던 말과 보내버린 사진이 내 뒤를 졸졸 쫓아다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에 대한 글과 사진, 영상 등이 퍼지고, 심지어 성적인 도구나 개그 소재로 활용되기까지 한다. 그렇게 잊(히)고 싶은데 도저히 잊(히)지 못하는 기억들이 있다. 그런 기억들을 지워주고 망각의 세상으로 보내는 일을 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물하는 일을 하는 국내 1호 디지털 장의사 김호진 대표. 14년 동안 디지털 장의사로 활동해오며 겪었던 생생한 이야기들과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조언을 차곡차곡 정리해 『디지털 장의사, 잊(히)고 싶은 기억을 지웁니다』라는 책으로 엮었다. “인터넷은 진화의 흐름을 거슬러 기억이라는 저주를 걸었다. 이제 인간 본연의 능력인 망각을 디지털 세상에 전해줄 때다. 우리는 다시, 잊혀야만 한다.” 일거수일투족이 낱낱이 기록되고 남는 시대, 저자의 말은 우리에게 묵직한 울림을 준다.



국내 1호 디지털 장의사로 14년째 활동하시면서 각종 방송 출연과 인터뷰 등을 통해 ‘디지털 장의사’라는 직업을 대중에 널리 알리고 계시고 책까지 출간하게 되셨는데요. 책을 출간하신 간단한 소감 부탁드립니다.

처음 이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지금 하는 사업이 잘되고 있는데 부러 접을 이유가 뭐냐”, “하던 일이나 잘해라” 하며 많이들 말렸습니다. 애정 섞인 우려와 반대를 무릅쓰고 어렵게 시작했는데,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하고 경쟁 업체에 기술을 빼앗기고 의뢰인들이 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잠수를 타버리는 등 이런저런 고생도 참 많았죠. 그럴 때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이런 고생을 사서 하나’, ‘원래 하던 일을 다시 할까’ 하는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의뢰인의 변화된 삶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보람이 워낙 컸고, 앞으로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에 뜻을 굽힐 수 없었습니다. 여러 고비를 넘기고 나서 이렇게 책까지 내게 되니 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 

이 책에서는 지난 14년 동안 디지털 장의사로 활동하며 경험하고 생각했던 것들을 담담하게 풀어냈습니다. 인터넷의 편리함과 유익함과 재미는 이미 다들 아실 테니 그 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썼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지워지지 않는 흔적들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나, 내 가족, 친구, 지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항시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원래 글 쓰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문장이 다소 어설프고 단조롭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잊히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책에서 디지털 기록을 삭제해달라고 연락하는 10대 청소년들이 한 해에만 3000여 명이 된다는 이야기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청소년들은 주로 어떤 이유로 찾아오나요? 그런 일을 미리 막기 위해서 평소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저도 10대 시절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행동을 몇 차례 해본 적이 있습니다.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일들이 그때는 왜 그리 궁금했는지…. 사람 마음이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고, 그걸 하고 나면 괜히 스릴을 느끼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요즘 청소년들도 아마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예요. 다만 제가 어릴 때는 선생님과 부모님의 눈을 피해 크고 작은 일탈 행위를 하는 것이 매우 쉽지 않았습니다. 제약도 많았고 체벌도 강했죠. 

하지만 요즘은 커다란 위험이나 처벌을 감수하지 않아도, 어른들의 눈을 굳이 피하지 않아도 저지를 수 있는 일탈 행위가 넘쳐 납니다. 저희 회사를 찾아온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깜짝 놀랄 때가 정말, 아니 생각보다 훨씬 많아요. 허위 사실 유포나 악성댓글 문제로 찾아오는 경우는 애교 수준이에요. 지인 능욕, 사이버 불링, 몸캠 피싱, 불법 촬영, 보복성 음란물 등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커다란 일탈에 휘말린 청소년들이 아주 많습니다. 어른들이 저지를 수 있는 웬만한 범죄는 다 해당된다고 봐도 될 정도예요. 그렇다고 원격 수업이 당연한 요즘 같은 시국에 무조건 인터넷 사용 금지, 휴대폰 사용 불가, 이렇게 통제할 수도 없고, 24시간 아이를 쫓아다니며 감시할 수도 없지요. 

아이들이 네트워크를 올바르게 쓸 수 있도록 휴대폰을 쥐여주는 그 순간부터 계속 주의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맞는 성교육, 네트워크 매너 교육이 절실합니다. 모르는 사람과 성적인 대화나 영상을 주고받으면 안 된다, 타인의 개인정보를 유출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면 안 된다, 동의 없이 타인의 사진을 몰래 찍으면 안 된다, 타인이 동의했다고 해도 남들에게 보여주기 어려운 사진이나 영상은 찍으면 안 된다… 이런 이야기를 수시로 해서 스스로 경각심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저런 영상이나 사진을 남기게 됐다면 혼자 전전긍긍하지 말고 부모님이나 믿을 만한 주변 어른들과 상의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해줘야 합니다.

불법 사진이나 영상 등 다양한 디지털 기록으로 고통받는 10대 청소년들에게 무료로 삭제 작업을 진행해주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취지로 이런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저희 회사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까지는 무료로 모니터링 및 삭제 업무를 해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의협심이 강한 건 아니고, 딸 같은 아이들이 찾아와서 “부모님에게 말하면 안 된다. 부모님에게 알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일주일에 3만 원씩 용돈을 받는데 일주일에 1만 원씩 갚으면 안 되겠냐” 하며 사정사정하는데 그 돈을 어떻게 받습니까. 호기심에 휩쓸렸거나 반항심에 일탈 행위를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두 번 다시 이런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리지 않도록 단속을 하고 특히 불법 촬영물을 찍거나 타인을 비방한 경우에는 각서를 받고 사회봉사 20시간 확인증을 가져오는 조건으로 삭제를 해줍니다.

개인이 아무리 조심한다고 한들, 사진이나 영상 합성 등 피해 가기 힘든 디지털 범죄가 점점 많아지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실제로 이런 피해를 당했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가해자에게 연락을 받은 피해자는 대개 가해자의 요구대로 움직입니다. 뭐든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하면 게시물을 지워줄 거라 믿고 말이죠. 하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가해자들은 더 많은 돈을 요구하거나 더 수위 높은 영상 또는 사진을 요구하다가 더 이상 아무것도 안 나오겠다 싶을 때 게시물을 유포해 피해자들을 낭떠러지로 밀어버립니다. 그들의 목적은 처음부터 끝까지 돈이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가해자에게 측은지심 같은 것이 있으리라고는 애당초 바라지 마세요.

가해자에게서 협박 연락을 받으면 바로 관련 기관이나 저희 같은 디지털 장의사 업체에 연락해서 도움을 받는 편이 좋습니다. 가끔 스스로 어떻게든 해결해보겠다고 하는 분들이 계신데, 게시물이 어디에 올라와 있는지, 얼마나 올라와 있는지 일일이 찾기도 어렵고 혼자서 전전긍긍하다가 오히려 골든아워를 놓칠 수 있습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빨리 삭제를 하고 가해자를 잡는 것이 현명한 방법입니다.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가해자에게 협박 전화나 메시지를 받아도 절대 주눅 들 필요가 없습니다. 잘못한 쪽이 주눅 들고 눈치를 보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부모가 아이의 초상권을 침해하는 문제, 즉 셰어런팅 이슈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지적이었습니다. 실제로 아이의 사진이나 영상을 SNS에 공개하는 경우가 꽤 있는데, 앞으로 큰 사회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셰어런팅 문제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추세인가요? 셰어런팅을 피하기 위해 부모들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해외에서는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사례가 왕왕 있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국내에서 소송까지 간 사례는 없고 부모가 SNS에 올린 게시물 때문에 저희 회사를 찾아오는 아이들은 가끔 있습니다. 개인정보와 사생활에 민감한 시대이니 앞으로 큰 사회문제가 될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자식이 성장하는 모습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기억하고픈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문제가 될 만한 게시물은 가급적 올리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얼마 전에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데 배우 정상훈 씨가 세 아이에게 “방송에 네 얼굴이 나갈 수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니? 괜찮니?” 하고 물어보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평소 좋아하는 배우였는데 그 장면에 더욱 호감이 갔습니다. 이처럼 아이가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사진이나 영상을 엄마나 아빠 친구들에게 보여줘도 괜찮겠니?” 하고 물어보고 아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다양한 디지털 기록이 무한히 쌓이고 있는 만큼, ‘디지털 장의사’라는 직업이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지리라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이 직업을 선택하려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저희 회사에 지원하는 분들에게 이 직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지원 동기가 무엇인지 물으면 대개 인터넷만 사용할 수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라서 집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지원했다고들 대답합니다. 물론 특별한 전문 지식 없이도 할 수 있고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일은 맞습니다만 심리적 압박감이 유난히 심한 일이라 정신력과 체력이 좋아야 한다는 말씀도 꼭 드리고 싶습니다. 불법 영상이나 사진을 하루 종일 보고 가해자들을 상대하려면 웬만큼 정신력과 체력이 강하지 않으면 힘들거든요. 인터넷 활용 능력이 일정 수준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건 당연한 이야기고, 부정 게시물과 긍정 게시물을 구별하기 위해 텍스트의 행간을 읽는 능력, 적절하게 삭제 요청을 할 수 있는 글쓰기 실력도 갖추고 있으면 좋습니다.

『디지털 장의사, 잊(히)고 싶은 기억을 지웁니다』에서 “인터넷은 진화의 흐름을 거슬러 기억이라는 저주를 걸었다”라고 하시며 ‘잊힐 권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워지지 않는 기록이 누군가에게 평생의 족쇄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뼈아팠고요. 사람들이 ‘잊힐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가해자들은 전혀 모르겠지만 피해자들은 절대 씻을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갑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버릴 수 있는데 나 몰라라 일관하는 가해자들을 보면 울화가 치밀 때가 정말 많아요. 이렇게 네트워크가 발달한 사회일수록 철저한 윤리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되도록 어릴 때, 휴대폰이나 인터넷을 접하기 전부터 이런 교육이 이루어져야 해요. 그리고 법적 처벌 또한 지금보다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 김호진

국내 디지털 장의사 1호이자 온라인 평판 관리 업체 ‘산타크루즈컴퍼니’ 대표. 어린 시절 배우를 꿈꿨고 서울예술대학교에서 연극을 전공한 뒤 모델 캐스팅 디렉터로 15년간 일했다. 그러다 2008년 한 어린이 모델에게 악성댓글이 쏟아진 사건이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 아이에게 예전 같은 일상을 되돌려주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 악성댓글과 게시물을 삭제하는 일에 직접 나섰다. 그 경험을 계기로 국내에서는 이름조차 낯설었던 ‘디지털 장의사’ 일을 최초로 시작하게 되었다. 2013년 연예인과 기업 등을 상대로 악성댓글과 게시물을 삭제하는 업무를 위주로 특허를 획득하고 사업자 등록을 했으며, 그 이후 본격적으로 온라인 평판 관리 사업을 운영해오고 있다. 2020년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직업의 세계’ 편에 출연하는 등 디지털 장의사가 하는 일과 그 의미를 널리 알리는 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치는 중이다. 이 일을 계속해 나가는 원동력이 정직성과 선한 마음, 그리고 피해자의 고통을 고스란히 전달받으며 생겨난 엄격한 원칙이라 믿는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지금도 ‘잊(히)고 싶은 기억’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항상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디지털 장의사, 잊(히)고 싶은 기억을 지웁니다
디지털 장의사, 잊(히)고 싶은 기억을 지웁니다
김호진 저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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