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개인주의자가 되어 표를 행사하자
『좌파와 우파의 개소리들』 이관호 저자 인터뷰
사실 이 책은 인문 분야 도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가벼운 정치’철학’ 도서거든요. 진보, 보수, 중도, 좌파, 우파, 자유, 평등, 사회주의, 공동체주의 등 추상적인 개념들을 현실 정치와 연결 지어서 다루고 있어요. (2021.11.09)
우리는 왜 대한민국 정치에 감동을 느끼지 못할까? 바로 우리나라 좌파, 우파 정치인들이 진보와 보수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실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는 근대의 개념일 뿐,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서는 새로운 정치 세력이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새로운 정치 세력의 형성을 위한 기본자세로 정치적 개인주의를 선언한다. 『좌파와 우파의 개소리들』은 좌파도, 우파도 싫은 국민에게 새로운 정치 신념의 방향을 제시한다.
작가님과 책 소개 부탁드립니다.
동양철학으로 학위를 받은 연구자로 현재 대학의 교양교육기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또 NPO(Non Profit Organization) 인문학카페의 설립자로 8년 동안 ‘고독(古讀)클럽’을 운영하면서 인문고전읽기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SNS 문화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소통에 목말라한다는 걸 발견해 다양한 시민토론회를 조성해왔습니다. 올해 서울시에서 주최한 ‘시민토론회 100인 100색’이 대표적입니다. 『좌파와 우파의 개소리들』은 현재 무당파, 중도층으로 분류되는 국민이 전체 유권자의 30% 이상임에도 그들을 사회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사람들로 치부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서입니다.
진영 논리를 강요하는 정치 현실을 참다못해 이 책을 쓰게 되셨다고요. 집필을 결심하신 계기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주시겠어요?
몇 년 전부터 인문 에세이를 쓰고 싶어 향후 집필 목록을 작성해본 적이 있습니다. 사회정치 분야의 타이틀도 하나 있었어요. 그런데 2022년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정치권의 ‘개소리’들이 더 크게 들리면서 순서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아마도 저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정치 분야 도서를 이번에 쓰기로 한 거죠.
사실 이 책은 인문 분야 도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가벼운 정치’철학’ 도서거든요. 진보, 보수, 중도, 좌파, 우파, 자유, 평등, 사회주의, 공동체주의 등 추상적인 개념들을 현실 정치와 연결 지어서 다루고 있어요. 다수의 정치인, 평론가, 유권자들이 위 개념들을 오용하는 현실에 목소리를 내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정치 세력의 형성을 위한 자세로 ‘정치적 개인주의’를 강조하셨습니다. ‘정치적 개인주의’란 무엇인가요?
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고객과 약속을 잡기 위해 선택지를 좁혀서 묻곤 합니다. 이를테면 “다음 주 화요일과 목요일 중 언제가 좋으세요?”라고 묻죠. 그러면 고객은 수동적으로 화요일과 목요일 중에서 하나를 고르려고 합니다. 사실 고객은 다른 요일에 만날 수도 있고 안 만나도 괜찮은데 말이죠. 급한 사람은 고객이 아니니까요.
유권자에게 부여된 선택지도 이와 비슷합니다. 좌파니 우파니, 진보니 보수니 하는 두 개의 선택지만 내미니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게 됩니다. 직업정치인들에게는 급한 문제겠지만 유권자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유권자로서 개인주의를 표방한다는 건, 이를테면 내년 대선의 투표장에 가서 ‘휘둘리지 않고’ 한 표를 행사하겠다는 주체성을 갖는 자세를 말합니다. ‘저 악의 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서’ 또는 ‘정권 교체를 위해서’라는 기준으로 행사한 한 표는 집단주의, 전체주의 사고방식에 의한 투표 행위에 불과합니다. 어차피 대의민주주의라는 게 시스템에 의해서 돌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개인주의자들의 한 표 한 표가 모일 때 가장 이상적인 선거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거대한 양당 체제 위주로 돌아가고 있는 한국 정치에서 ‘중도’ 세력이 결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책 차례에는 ‘중도는 없다’라는 소제목이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 중도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좌파도 싫어하고 우파도 싫어한다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습니다. 좌도 우도 싫다며 뒷담화를 함께할 수는 있지만 한 세력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한국의 제3지대가 유의미한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고 늘 좌파와 우파의 웃음거리가 되어왔죠.
새로운 세력이 결집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진보, 보수라는 용어를 버려야 합니다. 그 말을 사용하면서 ‘새 정치’를 이야기하면 결국 다시 프레임에 갇힙니다. 좌우 프레임을 완전히 벗어나서 새로운 가치를 기준으로 삼고 아래에서부터의 토론을 통해 정책을 개발해나가야 합니다. 가치를 찾기 어려우면 시대의 흐름을 ‘축’으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을 디지털시대, AI시대라고 부르잖아요? ‘디지털’, ‘AI’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모시킬지 예견하면서 정치?경제?사회?문화 다방면의 정책을 개발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유권자들이 모여 토론을 해야 합니다. 이때 미래 세대인 2030이 주축이 되면 더욱 좋습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김동연은 물론 향후 출현할 제3지대의 리더들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아래에서부터의 토론을 소홀히 하면 결국 창업주 개인의 취향에 따라 정책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고 1인 정당은 곧 소멸하게 될 것입니다. 제3지대 정당이 생존을 위해 당장 시작해야 할 일은 정책 개발을 위한 시민토론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진보, 진정한 보수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요?
에필로그에 적었습니다. 이 책은 무당파를 권유하는 건 아니라고요. 다만, 스스로를 진보주의자, 보수주의자라고 규정하더라도 ‘거기에 빠져버리면’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이 경고한 바대로 알코올중독자 같은 모습이 됩니다. 개소리를 하게 되죠.
진정한 진보와 보수가 되는 길은, 지금 통용되는 진보와 보수가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프레임이라는 걸 인식하는 것입니다. 프레임에 빠지지만 않으면 훌륭한 진보주의자, 보수주의자가 될 수 있습니다. 개소리를 하지 않을 테니까요. 가장 좋은 길은, 개인주의자가 되어서 구체적인 사안별로 자신의 성향을 확인해가는 것입니다. 아마 자신에게 진보적 성향과 보수적 성향이 혼재되어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최근 많은 여론조사 결과에서 '지지 후보가 없다' 또는 ‘후보 지지를 유보함’을 선택한 비율이 20%를 넘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그만큼 현 상황에 피로감을 느끼는 국민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정치에 대한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말에서 정치의 어원은 ‘police’입니다. 우리가 police에서 사는 이상, 온갖 종류의 힐링과 자기계발을 추구한다고 해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환경은 오직 정치를 통해서만 변모될 수 있습니다. 정치적 개인주의는 결코 정치적 무관심이나 회의주의가 아닙니다. 희망적인 정치를 위해 이 책에서 제시하는 하나의 태도입니다. 그리고 희망적인 정치를 위해 어떤 진영에 속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습니다.
유권자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길 바랍니다.
저와 같은 유권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이 책을 썼습니다. 정치인과 언론인, 그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우리가 너무 관심을 쏟지 말자는 것입니다. 우리 먹고살기도 바쁘니까요. 다만 투표장에서 ‘온전히 홀로 개인주의자가 되어 표를 행사하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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