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맨스 특집] 창비 최지수 X 신나라, 언니들이 보내는 행운
<월간 채널예스> 2021년 11월호
여전히 곁에 있는 언니들에게 고마웠어요. 언니들이 있어서 덜 헤맸고, 덜 부끄럽게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2021.11.09)
창비의 뉴스레터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는 곧 모든 여자의 행운의 편지가 될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여자가 동시대 여성들에게 이 편지를 전달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2021년 6월 29일, 우리는 SNS를 통해 난데없이 ‘행운의 편지’를 받게 된다. 수신인이 처음 발견하게 되는 특이사항은 ‘이 편지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로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 세계를 돌며 받는 이에게 행운을 준다는 점에서 이 편지는 행운의 편지다. 창비의 뉴스레터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는 ‘누적 조회수 20만 SNS 화제의 뉴스레터’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게 숱한 화제를 뿌리며 연재됐고 인기리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이제 여자들은 동명의 책을 돌려 읽으며 여자에게서 여자로 무한한 다정함과 깨끗한 존경을 전파한다. 창비의 최지수 편집자가 이 편지를 여자들에게 보내기로 결심한 이유는 TV에 나온 정세랑 작가의 말 때문이었다. “천 년 전, 이천 년 전의 여성 작가들을 생각하면 이상하게 마음속에서 ‘언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그 흐름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마치 릴레이 같다고 하셨어요. 순간, ‘릴레이’라는 단어가 훅 들어왔어요.” 신나라 디자이너는 그 감각의 바통을 이어받아 섬세한 유니버스를 그렸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우주가 떠올랐어요.” 여기에 첫 주자인 정세랑 작가가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언니들의 연결망”이라는 문장을 보태면서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는 원조가 가진 한계를 지운 진정한 행운의 편지가 되었다.
만든 이가 궁금해지는 프로젝트였어요.
최지수(이하 ‘최’) : 창비 인문교양팀에서 10년째 일하고 있어요. 그동안 『선량한 차별주의자』, 『혼자를 기르는 법』,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등을 만들었고요. 페미니즘 도서를 많이 했어요.
신나라(이하 ‘신’) : 창비 홍보디자인팀 소속이에요. 도서 작업은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가 처음이고요. 뉴스레터가 대박 난 덕분에 지수 씨가 저랑 모험을 했죠.(웃음)
여자들의 연대를 다양한 목소리로 말한다는 것, 구독 서비스로 받아보는 편지…. 여러 면에서 동시대적인 시도였어요. 한편으로는 흔한 소재에 대한 우려도 했을 것 같아요.
최 : 맞아요, 출판계에서 ‘언니’가 신선한 소재는 아니에요. 그럼에도 정세랑 작가가 <방구석 1열>에서 했던 말들이 SNS에서 회자되는 것을 보면서 오랜 시간 전에 산 사람과 내가 연결돼 있다는 감각, 어떤 일을 이어서 하고 있다는 감각에 많은 사람이 공감한다는 걸 확인했어요. 여기에 ‘행운의 편지’의 특수성이 덧붙으면서 힘을 받은 것 같아요.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언니들의 연결망’이라는 정세랑 작가의 문장도 점화에 도움이 됐고요. 『피프티 피플』에 이런 문장이 나와요. “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어떻게든 한껏 멀리. 소 선생은 시작선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세대와 우리의 중간 세대가 던져서 그 돌이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주워 던지고 있는 겁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작가가 멋진 정의를 내려준 거죠.
언니라는 존재의 어떤 점이 기획에 확신을 준 걸까요?
최 : ‘언니’라는 말에서 연대감이나 보호받는 기분, 믿고 따를 수 있는 존재를 느끼잖아요. 그 말은 생물학적 나이와는 무관해요. 비록 저 멀리 할리우드에 있을지라도 ‘저 언니 너무 멋있다’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죠. 언니는 우리 여자들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하나의 정서 같아요.
정세랑, 이랑, 문보영, 김겨울, 니키 리, 김정연, 유진목, 오지은…. 일부만 읽어도 기대감이 차오르는 리스트예요.
최 : 다행히 정세랑 작가가 흔쾌히 응해주셨고요. 이후 여러 차례 위기가 있었어요. 애초의 계획처럼 릴레이로 이어갈 수 없겠다는 판단이 선 후부터는 하루에 열 통, 스무 통씩 섭외 메일을 썼어요. 모든 거절이 ‘완전한 거절’이 아니었다는 건 꼭 말하고 싶어요. 거절한 작가들도, 수락한 작가들도 여러 이름들을 지목하셨어요. 진짜 행운의 편지가 된 거죠.
덕분에 또 다른 행운이 찾아온 것 같네요. 다양한 언니들이 나와서 좋았거든요. 국적도, 시대도, 세대도, 관계도, 하는 말도.
최 : 기획 단계에서 ‘시스터후드만 이야기하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많았어요. 쓸데없는 걱정이었죠. 주디 버틀러를 불러들인 편지(이반지하)나 여성 작가들의 투쟁에 대한 편지(정희진)를 받았을 때는 정말 짜릿했어요. 저는 ‘언니’라는 키워드만 드렸는데 여아 낙태 이야기(유진목), 설리 씨와 구하라 씨 이야기(손수현), 보여지는 몸이 아니라 기능하는 몸 이야기(김혼비)가 날아왔어요.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면서 이런 정서를, 이런 마음을 공유하고 있었구나, 편지를 열어볼 때마다 전율했던 것 같아요.
시각 요소에도 ‘여자 이야기’의 클리셰가 없어요. 검은색을 전면에 배치하고, 광활한 우주 위에 이 편지들을 펼쳤죠.
신 : 기획 의도를 듣고 BTS의 노래 ‘소우주’ 가사가 떠올랐어요. ‘한 사람에 하나의 역사/한 사람에 하나의 별/70억 개의 빛으로 빛나는/70억 가지의 world.’ 여기에 그치지 않고 ‘연결’을 시도했어요. 우리는 각자 하나의 별이지만 서로 연결되어 우주를 이루는 존재이니까요. 그렇게 나온 게 이어지는 카드 뉴스예요. 따로도 읽히지만 가로로 넘기며 읽다 보면 하나로 이어진 우주를 만나게 돼요. 그때 만든 이미지가 레터의 메인 이미지가 됐어요.
언니단 결정으로 작가들과 구독자뿐 아니라 구독자와 구독자 간의 연대감을 조성했어요. 초판에 언니단원들의 이름이 실리기도 했고요.
최 : 창비의 고독단과 자매지간이죠.(웃음) 구독자들에게 애칭을 지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했고요. 개인적으로는 디자이너와 서로를 응원했던 프로젝트라는 점에서도 뜻깊어요. 저도 구독 서비스 기획은 처음이었고, 디자이너는 도서가 처음이었는데, 서로가 있어서 즐겁게 할 수 있었어요. 특히 굿즈 키트는 나라 선배가 주도해줬죠.
신 : 레터가 큰 성원을 받아서 신이 났거든요. 그래서 팬 아트 하듯이 이미지를 모아서 포스터를 만들었는데, 지수 씨가 그걸 보고 굿즈를 떠올린 거예요. 그렇다면 저도 망설일 수 없죠.
이 프로젝트 전과 후, 언니에 대한 감정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최 :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는 ‘서로에게 언니가 되어주자’는 이야기예요. 이런 연대감이 계속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신 : 스무 통의 편지가 다 좋았지만, 오지은 작가 편지를 읽으며 유난히 울컥했어요. 아마 제가 과장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어느새 언니가 되어버린 나와 당신’, 세상의 김과장들에게 보낸 편지라서. 읽고 나서 내 곁에 있었던, 혹은 여전히 곁에 있는 언니들에게 고마웠어요. 언니들이 있어서 덜 헤맸고, 덜 부끄럽게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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