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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언 칼럼] 초현실적 공포의 해부
<월간 채널예스> 2021년 11월호
미쓰다 신조는 마지막 순간 언제나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았던 어떤 조각, ‘그러나 여전히 우리에게는 모르는 것이 있다’라는 단서를 슬쩍 끼워 넣는다. (2021.11.08)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쇼와 시대의 언젠가, 어느 편벽한 첩첩산중의 작은 마을 가가구시촌에서는 흑과 백의 기운을 상징하는 가가치 집안과 가미구시 집안이 팽팽하게 양립한다. 이중 가가치 집안에서는 대대로 딸 쌍둥이가 태어나 각각 무녀와 혼령받이 역할을 맡아 산신님을 모시며 마을 사람들을 위한 기도와 축귀, 신탁을 행하는 특별한 조로 활동한다. 그 쌍둥이들은 모두 똑같이 사기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어느 날부터 마을에 끔찍한 사건이 연달아 발생한다. 열일곱 살 소녀 지요가 생령과 마주친 뒤 그에 씌었다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것을 필두로, 지요의 축귀 의식을 마치고 정화소의 강물에 주물을 떠내려 보내던 혼령받이 소녀 사기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쫓기고, 가가치 집안사람들이 차례로 죽어 나가기 시작한다.
그중 하나는 입에 빗을 문 채, 또 하나는 젓가락을 문 채, 또 다른 하나는 대나무 가지 고리를 문 채 모두 ‘허수아비님’, 즉 이 마을 사람들이 가장 떠받들고 또 두려워하는 신령한 산신의 복장 차림(삿갓과 도롱이 차림)으로 죽었다. 사기리는 혹시 이 모든 상황의 원인이 언니 사기리, 7년 전 무녀와 혼령받이로 다시 태어나는 모종의 의식을 치른 뒤 죽었던 언니 사기리(할머니인 무녀 사기리의 말에 따르면 언니 사기리는 ‘선택받은 자’로서 산신님 그 자체가 되었다고 한다)가 돌아왔기 때문일까 두려워한다. 기담을 좇아 가가구시촌까지 이른 환상소설가 도조 겐야는 이 불가해한 사건들의 한복판에 뛰어든다. 미쓰다 신조의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은 그렇게 시작한다.
일본의 각종 요괴와 기이한 현상에 얽힌 괴담들은 셀 수 없이 많고, 그것은 일본의 호러 및 판타지물에 어마어마하게 풍부한 토대를 제공하며 거대한 유니버스를 형성하고 있다. 혹시 그런 괴담이 미스터리와도 결합될 수 있을까? 하지만 ‘공포’라는 감정과 ‘이성과 합리’를 앞세우는 추리가 유연하게 공존할 수 있을까? 요코미조 세이시의 『팔묘촌』이나 『악마의 공놀이 노래』 같은 작품이 그 가능성을 희미하게 내비췄다면, 교고쿠 나쓰히코의 ‘교고쿠도’ 시리즈는 호러와 미스터리의 결합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을 단호하게 입증하며 미스터리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혔다.
교고쿠 나쓰히코는 『우부메의 여름』이라는 걸출한 작품을 통해 ‘20개월 동안 임신한 상태의 여자’라는 불가해한 현상에 뒤얽힌 살인 사건을 거침없는 민속학적 지식으로 면밀하게 논파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호러로 시작하지만 미스터리로 결론지을 수 있는, 두려움과 낯섦으로 시작하여 논리적인 설명과 해석이 가능해지는, 신비롭게만 보이던 죽음이 결국은 인간이 저지른 짓임을 확인시키는 과정 말이다. 호러와 미스터리로 따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호러 미스터리로 통합된 것이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서 미쓰다 신조가 그 뒤를 잇는 적자로 등장했다. 특히 그의 ‘도조 겐야’ 시리즈는 외부 세계와 단절되다시피 한 채 오랜 세월 자신들만의 관습과 믿음 체계를 구축해온 외딴 마을에서 벌어지는 불가사의한 상황을 다루는 호러 미스터리다.
다시 한번, 조금 더 길을 돌아가서 호러 미스터리의 또 다른 계보를 들춰본다면, 다카하시 도시오의 『호러국가 일본』에서 언급한 ‘시골 호러’를 살펴볼 수 있다. 다카하시 도시오는 반도 마사코의 『사국』을 비롯한 1990년대의 호러 소설들을 두고 “대도시뿐만 아니라 그 주변마저 버블 경제의 맹위에 시달린 직후, 도시에 염증을 느낀 주인공들이 시골로 흘러들어와서 시골에 퇴적된 방대한 기억과 전승의 미궁에 빠진 끝에 무시무시한 참극을 겪게 되는 내용”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1990년대의 ‘시골 호러’에는 요코미조 세이시가 1970년대에 새로운 인기를 얻기 시작했을 때와 미묘하게 달라진 지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2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시골은 도시로부터 더 멀어졌고, 그러면서 “근대라는 시대가 강요했던 사회적 참극의 갖가지 상흔”이 채집되는 공간으로 새롭게 등장한다. “지금까지 ‘현대’를 대신하는 ‘야만적 근대’는 시골을 내팽개치고 있고, 그로 인한 사회적 참극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시골’ 호러는 우리와 동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공포가 아니라, 이 시대가 지닌 잔혹성에 관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도 이런 계보에 속한다. 가가구시촌에서는 지형이 너무나 울퉁불퉁해 강물이 내 발밑이 아니라 지금 내가 걷는 길보다 위쪽에서 흐른다거나, 마을 곳곳에 똑같이 생긴 삿갓과 도롱이 차림의 허수아비님이 서 있어서 이곳이 그곳인지 헛갈릴 정도로 감각의 혼동이 발생한다. 도조 겐야는 가가구시촌의 갖가지 기이한 전설과 신앙 체계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이유에는 이 공간도 적잖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혼자 길을 다닐 수 없을 만큼 사위스러운 느낌이 있는 거지, 이 마을의 지형엔.” 여기선 복잡하게 얽힌 갈림길에서 사라진 사람이 지형을 이용해서 숨었다가 도망쳤다는 식의 합리적인 설명보다는, 가미카쿠시(신적인 존재에게 납치당함)를 당한 것이라고 믿게 되는 쪽이 더 자연스러워 보일 정도다. 지요가 마주쳤다고 주장하는 생령의 존재 역시, 지요의 신경쇠약 탓만을 하기에는 지나치게 생생한 디테일이 살아 있다. 사당 근처의 땅바닥에 닿을 듯한 위치에서 옆으로 쑤욱 내민 얼굴이라는 기묘한 이미지는 아무래도 인간의 장난치고는 너무나 과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조 겐야는 가미구시 집안의 셋째 아들 렌자부로와 주지 스님 도야마와 함께 공포를 희석하거나 제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일단 도야마는 전쟁이 끝나고 “민주주의 세상이 되면서 이런 촌에서도 예전 같은 봉건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면서 “봉건제하의 신분제도는 마귀가계 문제와 매우 비슷”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지금까지도 일본에서 완전히 없어지지 않은 부락 차별이 가가치 집안 같은 마귀가계(여기서 마귀는 “인간에게 빙의하는 정체불명의 존재 전체”를 일컫는 말이다)를 향한 마을 사람들의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마을의 계몽을 꿈꾸는 19살 소년 렌자부로는 죽은 사기리(언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기리는 선택된 것도, 그 결과 산신님이 된 것도 아냐. 그애는 살해된 거야.” 그 말을 믿지 못하는 혼령받이 사기리(동생)에게, 렌자부로는 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명예로운 애국의 길이며 그렇게 죽은 이들이 호국영령이 된다던 국가의 프로파간다를 다시금 일깨운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건 전쟁이 끝나고 다들 깨달았을 거 아냐? 그런데 가가구시촌에는, 가가치 가에는 아직도 그런 사고방식이 남아 있어. 그런 미신은 마을에서 한 발짝만 나가도 통하지 않아. 알겠어? 세간의 시선으론 사기리의 죽음이 어엿한 살인이라는 걸 먼저 이해해야 해.” 렌자부로는 공포와 외경심으로 유지되는 이 전통이, 신앙심을 떼어낸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때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 알고 있다. 인습이 형성될 당시에는 마을의 모두가 동의할 만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구성원들의 완고함과 편견을 접착제 삼아 오랜 세월 겹겹이 굳어지기 시작하면, 이후부터는 인습이 공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공포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납득시키려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 공포는 미스터리로 바뀐다. 이해할 수 없던 것이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재배열될 때, 두려움의 대상은 응시할 수 있고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무언가로 변한다. 그러나 미쓰다 신조는 마지막 순간 언제나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았던 어떤 조각, ‘그러나 여전히 우리에게는 모르는 것이 있다’라는 단서를 슬쩍 끼워 넣는다. 도조 겐야도 그런 말을 남기지 않았던가. “처음부터 생각해보지도 않고 괴이를 받아들이는 건 인간으로서 한심한 일이야. 그렇다고 인지를 뛰어넘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건 인간으로서 오만한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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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전문지 『미스테리아』 편집장. 『범죄소설』, 『문학소녀』 등을 썼고, 『코난 도일을 읽는 밤』, 『죽이는 책』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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