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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서로 다른 세계가 겹치는 순간에 대해”

『방금 떠나온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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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과학을 이용해 타인의 마음에 가까이 갈 수 있겠지만, 그것도 완전한 이해는 아니잖아요. 그러면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무슨 의미가 있을지 궁금했어요. (2021.11.05)


타인을 이해하거나 타인에게 이해받는 일에 실패해 본 사람은 안다. 나는 네가 될 수 없고, 너는 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도 자신밖에 될 수 없기에, 완전한 이해가 존재하지 않는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완전함을 향해 가는 과정이 이해의 전부는 아닐까.

『방금 떠나온 세계』는 이 물음에 대한 소설가 김초엽의 답이다. 다른 감각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는 일곱 편의 소설은 완전히 포개어질 수 없고, 공유될 수도 없는 무수한 세계가 홀로 우주 속을 떠돌다 다른 세계와 접촉하는 순간(322쪽)을 그린다. 끝내 닿지 못할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 알면서도 그곳으로 향하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는 불가해한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한다.



떠나거나, 남겨지거나, 떠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두 번째 단편집이에요. 예약 판매 하루 만에 베스트셀러가 됐는데 소감이 어떤가요?

후련해요. 첫 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하 『우빛속』)을 냈을 때는 ‘과연 이 책을 누가 읽을까’, ‘아무도 안 읽으면 어떡하나’하는 걱정이 있었거든요. 지금은 기다려주시는 독자님들이 있으니까 걱정보다는 책 하나를 마무리했다는 후련함, 빨리 다른 작품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더 커요.

첫 번째 장편 소설 『지구 끝의 온실』이 나온 지 오래되지 않았잖아요. 단편 소설집이 또 나온다고 해서 반가운 한편 놀랍기도 했어요. ‘이 생산성, 어떻게 가능한 걸까?’ 싶어서요. (웃음)

소설을 빨리 쓰는 편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어요. 그런데 제 일상을 돌아보면 다른 사람보다 더 부지런히 쓰는 것 같지는 않거든요. 다만 전업 작가니까 직장인 만큼은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런 생각을 가지고 글을 쓰다 보니까 책이 빨리 나오는 것 같아요. 책을 너무 많이 내서 독자분들이 지겨워하실까 봐 걱정하기도 했는데 좋아해 주셔서 다행이에요. (웃음)

표제작이 있는 『우빛속』과 달리 새로운 제목으로 단편을 묶었어요. 제목은 어떻게 나왔나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표제작으로 한 건 가장 좋은 작품이어서라기보다 제목이 주는 느낌이 좋았고, 단편 전체를 아우르는 제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이번에도 모든 단편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제목을 찾으려고 했는데 하나를 선택하기 어렵더라고요. 어떤 제목이 좋을까 고민하던 중에 편집자님이 여러 가지 후보를 제안하셨고, 그중 하나가 ‘방금 떠나온 세계’였어요.

‘방금 떠나온 세계’는 「인지 공간」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문장이기도 해요.

주인공이 자기가 전부라고 믿었던 세계를 떠나면서 그 세계를 돌아보는 장면에서 나오는 문장인데요. 제목이 주는 느낌도 좋고, 각 소설 속 주인공들이 어디론가 떠나거나 남겨지거나 떠나기를 기다리는 인물이라 단편집 제목으로도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어떤 세계를 떠나지만, 떠나온 세계를 잊지 않고 되돌아보는 마음을 잘 표현하는 제목인 것 같아요.

「마리의 춤」, 「숨그림자」의 제목은 책으로 묶으면서 달라졌어요. 이유가 있나요? 

「마리의 춤」은 예전에 ‘광장’이라는 제목으로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쓴 글이에요. ‘광장’도 나쁘지 않았지만, 조금 더 제 스타일에 맞게 하고 싶어서 ‘마리의 춤’으로 바꿨어요. 「숨그림자」의 원래 제목은 ‘브라운모션’이었는데요. 화학에 브라운 운동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그 개념을 차용한 제목이에요. 브라운 운동이 저한테는 익숙하지만, 독자분들한테는 낯설고 직관적이지 않을 것 같아서 ‘숨 그림자’로 수정했고요.

김원영 변호사와 함께 쓴 『사이보그가 되다』 집필 시기와 소설 쓰는 시기가 겹쳤다고요. 픽션과 논픽션을 오가는 일이 어려웠을 것 같기도 한데 어땠나요?

다행히 어렵지는 않았어요. 장편을 쓸 때는 소설 쓰기에만 몰입하는 시간이 꼭 필요한데 단편 쓸 때는 그렇지 않거든요. 실제로 『지구 끝의 온실』을 쓸 때는 다른 작업은 하지 않고 쓰는 데만 몰입한 시간이 있었는데 이번 소설집에 실린 단편 소설을 쓸 때는 그럴 수 없기도 했어요. 작가로서 일정 조정을 잘하지 못할 때 청탁받은 것들이 많아서 빨리 써야 했거든요. 

같은 시기에 글을 쓰면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시사인》에 <사이보그가 되다>를 연재할 때 「로라」, 「숨그림자」, 「인지 공간」을 썼는데요. 시사인에 연재할 때만 해도 문제의식만 있었어요. 엄청난 질문들을 던지지만, 명확하게 답할 수 없을 때였죠. 이런 상태가 「로라」, 「숨 그림자」, 「인지 공간」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소설에서도 질문을 던질 뿐 결론을 내리지 않거든요. 

칼럼을 책으로 묶는 과정에서는 어땠나요?

연재한 칼럼을 책으로 묶는 과정에서는 가급적 단편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논픽션 한 권을 쓸 때도 장편소설처럼 몰입하는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칼럼을 책으로 묶는 과정에서 공부를 많이 했고, 책으로 만들면서 문제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 정리됐는데요. 정리한 답을 가지고 소설을 고치진 않았어요. 



안 되는 걸 해보려고 하는 사람을 좋아해요

지금까지의 김초엽 소설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타인’, ‘이해’, ‘한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끝까지 이해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요. 타인을 이해하고 싶었지만, 크게 실패한 경험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어요. 언제 처음 이런 내용에 주목하게 됐나요? 

특별한 사건이나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어렸을 때부터 주요 관심사이기도 했고, 문학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됐어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완전한 이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알았거든요. 과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것도 있는데요. 과학을 공부하다 보면 내가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인간도 세계의 일부니까 인간에 대해서도 그렇게 접근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고요. 그런데 세계도, 타인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는 걸 깨달았죠.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문학과 과학에서 같은 원리를 발견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네요. 

전공은 아니었지만, 인지과학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이 물질적인 세계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 궁금했거든요. 첨단 과학을 이용해 타인의 마음에 가까이 갈 수도 있겠지만, 그조차도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소설을 쓰면서 나름대로 답을 내려보고 있는 것 같아요.

이에 대해 다른 인터뷰에서 ‘간접 경험’이라는 표현을 쓰셨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와, 어떻게 간접 경험만으로 이런 글을 쓰지?’하고요. (웃음)

감정이나 지나간 일을 곱씹는 편이 아니에요. 상처를 받아도 잘 잊어버리고요. 그래서 오히려 직접 경험한 일을 쓰는 게 더 힘들 것 같아요. (웃음)

감정과 물질세계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감정의 물성」을 쓰기도 하셨죠. 요즘 물성화하고 싶은 감정이 있다면요?

비슷한 질문을 가끔 받는데요. 사실 ‘감정이 물성이 나와도 나는 안 살 거야’라는 마음으로 「감정의 물성」을 썼어요. (웃음)

반전이네요. 이유가 있나요?

소설을 보면 감정의 물성에 호의적이지 않은 ‘정하’와 감정의 물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보현’이 등장하잖아요. 굳이 따지자면 저는 정하에 가까워요. 정하의 입장에서 보현과 같은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으로 쓴 소설이었기 때문에 감정의 물성이 나와도 사지 않을 것 같아요.

작가님의 이런 점이 흥미로워요. ‘우주여행 갈 수 있으면 가겠냐’는 독자 질문에 ‘안 간다, 지구 최고!’라고 답하신 것도 봤거든요. (웃음) 소설과 작가가 꼭 일치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소설의 배경이나 소재, 주제에 실제로는 큰 관심이 없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어요.

듣고 보니 정말 그렇네요. 저도 재밌다고 생각하는 지점이긴 해요. (웃음) 소설 속에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인물이 많이 나오니까 제 글만 보는 독자님들은 작가도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내가 그런 사람인가?’하고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어요. 그저 소설 속 인물을 관찰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고요. 다만 이해하고, 탐구하면서 안 되는 걸 해보려고 하는 사람들을 좋아해요. 제가 그런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런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안 되는 걸 되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그리는 것 같아요.

작가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 있어요. 원통 안의 소녀에 나오는 ‘노아’라는 이름은 「오래된 협약」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데요. 자주 쓰는 이유가 있나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요. 편하게 느끼는 이름들이 있어요. 어떤 국적을 갖다 붙여도 어울리는 무국적성이 있는 이름이에요. 노아도 있고, 한나도 자주 써요. 소설 속 인물을 완벽하게 구상하기 전에 이야기 속에 이런 인물을 던져 놓으면 유용하거든요. 개성 있는 이름보다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이름들을 좋아해요. 인물뿐만 아니라 제 소설의 배경도 국적이 흐릿할 때가 많고요.

「로라」에 장애나 결핍이 다양성, 개별성의 진보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두고 한 장애인 단체가 ‘장애를 낭만화’하고 있다면서 불쾌감을 표했다는 문장이 나와요. 실제로도 이런 주장에서조차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싶거든요. 육체적 통증같이 실재하는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작가님도 이 문제를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대목을 넣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해결할 수 없는 고통이 분명 존재하죠. 그런 고통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앞으로 나올 책에 고통에 관한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요. 가령 내가 사회적으로 차별받지 않고 모든 사람이 나를 이해한다고 해도 나의 내면 또는 몸의 고통은 있을 수 있잖아요. 모든 고통이 차별적인 것도 아니고요. 그렇기 때문에 양측 입장 모두 섬세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둘 중 하나만 존재한다고 말하지 않고, 둘 중 하나를 가리지 않으면서 고통의 당사자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에 주목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하나를 강조하다 보면 다른 하나가 희미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렇네요. 어쩌면 이 문제에 대해서도 한계를 인정하고 공부해 가는 것밖에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불가해한 타인이나 세계를 이해하려는 태도처럼요. 

사실 아직은 사회적인 차별이나 대상화, 타자화를 합리화하기 위해 고통을 이용할 때가 더 많다고 느껴요. 장애인들이나 아픈 사람들이 고통스럽지 않냐고, 그러니 그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기술을 개발하는 게 좋은 일이라고 단순화해서 말하죠. 고통을 이해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이면을 보면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고 생각해요.



첫 느낌, 첫 생각은 위험하다

「오래된 협약」은 편지 형식으로 진행돼요. 다른 방식으로 쓰인 유일한 소설이라 눈에 띄더라고요.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 글이었어요. 그렇게 할 수 있는 형식 중 하나가 편지거든요. 편지 형식의 글이라는 게 잘 쓰지 않으면 지루해지기 쉬워서 고민했는데 소설에 있는 종교적인 분위기와 편지 형식이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썼어요.

실제로 「오래된 협약」은 종교성이 짙어요. 읽으면서 혹시 종교적인 영향을 받으셨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지금은 종교가 없는데 어릴 때 교회에 다녔어요. 성경을 문화적 레퍼런스로 쓸 때가 있는데요. 사제나 수도원 이야기에는 확실히 어릴 때의 경험이 반영된 것 같아요. 신기한 게 종교를 가진 독자님들은 제 소설을 종교적으로 해석하기도 하더라고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이야기구나 싶었어요. 소설에서 느껴지는 경이감을 누군가는 종교로 해석하고 또 다른 사람은 자연에서 느끼는 경이감으로 받아들이더라고요.

소설을 쓸 때 ‘내가 가진 생각’과 ‘쓸 수 있는 생각’을 구분하려고 한다고요. 기준이 뭘까요? 

어떤 사회 이슈와 관련해서 누군가가 잘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 어떤 사람이나 문제의 양면성을 알기 전에는 쓰지 않으려고 해요. 첫 느낌이나 생각은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밀어내는 결과를 만들기 쉬우니까요. 주류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치열하게 고민해서 내어놓은 결과물이 아니면 편견을 따라갈 수밖에 없죠. 대신 내가 무언가를 쓰려고 했으면 그것에 대해서 많이 알아보고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지려고 하고요.

시, 에세이 같은 다른 장르의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나요?

시를 생각해 본 적은 없고요. 에세이는 이미 계약돼 있어요. 아마 내년에 두 권 정도 쓰지 않을까 싶은데요. 하나는 창작, 독서에 관한 에세이고 또 다른 하나는 SF 게임 에세이에요. 게임을 좋아하거든요.

왕성한 활동은 내년에도 계속되겠네요. (웃음) 곧 중편소설도 나온다고요. 

지금까지는 타인을 이해하는 일에 실패하더라도 이해하기를 멈추지 않고, 불완전한 이해 속에서 의미를 찾는 이야기를 썼잖아요. 앞으로 나올 중편 소설은 이해에 실패한 사람들이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예요. 동정과 연민, 존경을 동시에 받으면서 대상화되는 주인공이 다른 사람들과 비극의 장소로 여행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다크 투어리즘을 소재로 하는 소설인데 크리스마스 즈음에 나올 예정이에요.





*김초엽

소설가. 1993년생. 포스텍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생화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쓴 책으로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원통 안의 소녀』 등이 있고, 함께 지은 책 『사이보그가 되다』가 있고, 여러 앤솔러지에 참여했다. 2019년 오늘의 작가상, 2020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우주에 대해 상상하는 걸 좋아하지만 우주에 직접 가고 싶지는 않은 SF 작가. 환상적인 시공간을 여행하고 외계 행성을 탐사하는 이야기에 열광한다. 취미는 두 달마다 바뀌는데, 가장 오래가는 건 게임. 언젠가 집에 모든 종류의 게임 콘솔과 커다란 스크린이 구비된 게임방을 만들고, 스스로를 완전 격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방금 떠나온 세계
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저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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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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