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형제자매들이 직접 쓴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
『‘나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비장애형제 자조모임 ‘나는’ 인터뷰
‘나는’은 내 장애인 형제가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한 모임이에요. 이 책이 더 많은 비장애형제가 만나 정서적 지지를 얻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진짜 ‘나’를 알아가는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 (2021.10.26)
『‘나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는 정신적 장애(발달장애와 정신장애)가 있는 형제를 둔 비장애형제 여섯 명이 쓴 소설 형식의 자전적 에세이다. 장애가정 안에서 비장애형제가 어떤 고민을 안고 어떻게 성장하는지, ‘장애인의 형제자매’로서 성인이 된 지금까지 어떤 혼란과 아픔을 겪었는지, 그동안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비장애형제의 깊은 속마음을 가감 없이 담았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 당사자나 장애자녀를 돌보는 부모의 고충에 대한 이야기는 들을수 있었어도, 장애인의 형제자매의 목소리는 들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 이유가 뭘까? 그래서 여섯 명의 비장애형제가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공개하기로 용기를 냈다.
장애인 당사자도, 부모도 아닌, 비장애형제가 직접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첫 책입니다. 자전적 에세이인데 소설 형식을 취한 이유가 있나요?
진설 : 비장애형제의 삶을 날 것 그대로 담되,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실명이 아닌 가명을 쓴 이유도 그래야 우리의 이야기가 부풀림이나 왜곡 없이 객관적으로 전달되고 쉽게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무엇보다도 이 책이 특별한 사람들의 고난을 전시한 책이 아니라 지극히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임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읽으면서 우리가 무심코 넘길 뿐, 많은 비장애형제가 어릴 때부터 가족 안에서 무거운 부담을 안고 살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진 : 어렸을 때부터 제게 동생은 동생보다는 아들에 가까운 존재였어요. 부모님도, 친척들도 저에게 누나의 역할 그 이상을 기대하셨죠. 예를 들면 초등학생 때 제가 스스로를 변호할 힘을 키우기도 전에, 부모님은 저에게 누군가 동생에게 시비를 걸 때 대처하는 법을 가르치셨어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동생을 온전히 저 혼자 돌봐야 한다고 계속 언급하시기도 하고요.
진설 : 비장애형제가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나만 행복해서는 안 된다’라는 죄책감이에요. 그 자체를 가족을 배신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죄악시 하는 경우가 많죠. 이 불합리한 죄책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요. 오직 다른 비장애형제만이 공감하고 도울 수 있더라고요. 그 짐을 대신 져주진 못해도 내려놓는 방법을 같이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 환경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누구누구의 형제자매로 규정되는 삶을 살게 되는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서영 : 미래를 고민하는 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어요. 목줄에 매인 개라고 표현하면 너무 잔인할까요? 목줄이 허용하는 안에서 자유롭게 나의 삶을 살다가도 일정 거리 이상으로 벗어나려고 하면 턱, 당겨지는 거죠. '잊었니? 너 비장애형제야.' 하면서요. 특히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그렇죠. 예를 들면 대학 진로, 혹은 직업을 선택할 때와 같은 순간이요. 단순히 '이건 아니지 않나'하는 생각보다도 죄책감과 무력감, 분노와 우울감이 동반돼요.
미정 : 제게 가장 힘들었던 건, 저를 제 인생의 주인공이 아닌 ‘누구누구의 동생'으로 규정하는 삶을 살도록 만든 게 바로 저 자신이라는 거예요. 제 생각, 감정, 취향대로 살면서 만들어진 ‘진짜 나’의 모습이 자의로든 타의로든 비대해진 ‘비장애형제인 나'에 짓눌려서 힘을 못 펼치는 거죠. 그래서 끊임없이 ‘진짜 나'로 살고 있는가에 대해 돌아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책 제목에 있는 ‘나는’은 정신적 장애를 가진 형제자매를 둔 20~30대 청년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기 위해 만든 모임의 이름입니다. 이 모임은 처음에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해수 : 2016년 초에 네 명의 비장애형제가 우연히 만났어요. 가볍게 이야기만 하자는 생각으로 만났는데, 첫 만남에서부터 누구에게도 한 적 없는 이야기가 술술 나오더라고요. 비장애형제로 살아온 시간을 온전히 이해받고 공감받는 자리가 처음이었거든요. 그때 비장애형제라는 게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정체성임을 깨달았어요. 그 만남 이후로 더 많은 비장애형제와 만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길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 여정의 끝에 도달하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요?
서영 : '온전한' 나와 비장애형제로서의 나의 양립이 아닐까 싶어요. 내가 아무리 부정하고 외면하고 도망친다고 해도 비장애형제라는 사실이나 그로 인해 힘들었던 시간이 없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비장애형제로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되, 그건 나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 어찌 보면 주도권 싸움과 비슷한 것 같아요. 비장애형제라는 정체성으로 점철된 나에게서 '온전한 나'를 끄집어내서 주도권을 되찾아오고자 하는 거죠.
소진 : 그동안은 '나'를 1순위로 정해왔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다른 비장애형제와 만나면서 내 결정에 부모님과 장애형제의 영향이 필요 이상으로 미친다는 걸 알았죠. 그 후로 나는 뭘 좋아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지 생각해보면서 '온전한 나'와 비장애형제로서의 '나'의 균형을 맞추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누구든 가족의 영향을 아예 받지 않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 사회에 비장애형제의 서사가 더 널리 퍼지기를 바라서 이 책을 썼다고 했는데,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라시나요?
태은 :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의 미래를 그려봤을 때, 비장애형제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둘 뿐이에요. 자신이 원하는 삶을 버리고 장애형제와 살거나, 장애형제를 버리고 죄책감을 가진 채 살거나. 하지만 둘 다 비장애형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아니에요. ‘나는’은 비장애형제가 자신의 삶을 지키면서도 가족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어나가려고 해요. 그러려면 먼저 비장애형제 스스로 어떻게 살아갈지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부모님을 비롯해 사회의 많은 분의 공감과 지지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해수 : 먼저 비장애형제에게는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부모님들께는 ‘나는’의 이야기가 조금 무겁고 아프게 들리더라도 이 책을 계기로 비장애자녀를 이해하고 비장애자녀와 좀 더 성숙한 관계를 맺게 되기를 바라고요. 일반 독자들께는 장애인과 장애 가정의 이웃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 비장애형제를 만나게 된다면 그저 고생이 많았겠구나, 하며 따스하게 손 잡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비장애형제 자조모임 ‘나는’ 누구에게도 쉽게 이해받을 수 없었던 비장애형제가 함께 모이면 깊은 공감을 통해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 안에 갇혀 있던 생각이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비장애형제 스스로 자신을 돕고자 만든 모임이다. 2016년부터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대나무숲 티타임’을 운영해왔다. 부모나 장애형제보다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며 온전한 나로서 살아가는 법을 발견하고,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 나가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도 우리 사회에 비장애형제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강연 등의 활동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으며, 장애가정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와 콘텐츠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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