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는 왜 실패해도 주식 투자를 멈추지 못할까?
『개미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하는가?』 김수현 저자 인터뷰
주식이 필수가 되어가는 사회에서 주식을 개인의 문제로만 치환해 지나치게 불안이나 좌절감, 자기혐오에 매몰돼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기보단 구조적인 시각에서 이 문제를 한 번쯤 재맥락화 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21.10.20)
누군가는 돈을 얻고, 누군가는 돈을 잃는다. 투자 시장은 제로섬 게임이다. 그러나 투자에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만이 신화가 되어 온갖 곳을 떠돌며 사람들을 투자 시장으로 이끌었다. 돈을 잃은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지난해, SNS에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던 저자 김수현의 논문이 『개미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하는가?』로 출간되었다. 그동안 투자 성공 신화에 가려졌던 개인투자자의 실패에 주목한 이 책은 주식 필승법만을 얘기한 책들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띈다. 이 책은 개인투자자는 필패할 것이므로 투자를 하지 말라고 권하지 않는다. 투자에 관한 막연한 환상에서 깨어나기를, 개인투자자로서 더 냉철한 시각을 가질 수 있기를 돕는 책이다.
대학원 사이트에서 제공하고 있는 논문의 다운로드 수가 9월 기준 4만 7천 건을 넘어섰습니다. 석사 논문이 이렇게까지 화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석사 논문이 이렇게까지 화제가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작년 코로나19 시국 이후부터 우리나라 종합지수가 상승세에 있다보니 개인투자를 하시는 분들이 크게 늘고, 주식투자가 사회적인 이슈가 됐기 때문에 덩달아 제 논문도 화제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논문의 목차에서부터 “존버”, “문송”, “물타기”와 같은 날것 그대로의 현장 용어 그대로를 사용한 게 독자들에게 재밌게 와닿고 흥미를 불러일으킨 것 같고요. 그리고 투자의 성공이 아닌 실패라는, 누구나 알고 있고 공감하지만 지금까지 사회적 담론의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던 이면을 대놓고 이야기 한 점 역시 신선하게 느끼셨던 거 같아요.
투자 성공 신화만이 넘쳐나는 요즘, 투자 실패담을 다룬 논문을 책으로 엮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성공 신화에 휩쓸려 막연한 환상만을 갖고 투자 시장에 뛰어드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개미들을 위해 누군가는 꼭 했어야만 하는, 꼭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하게 된 작가님의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 역시 주식투자의 성공을 꿈꿨던 개미투자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주식과 금융에 능통한 아버지에게 투자를 배웠고 투자를 매개로 장래에 대한 희망을 품었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인류학을 공부하기 위해 사회과학대학에 진학한 뒤 금융사회의 구조에 대한 사회과학계의 체계적 비판을 접하고 혼란을 겪게 되었어요. 처음엔 주식성공으로 큰 부를 일궈서 자유롭게 사는 게 목표라는 저의 꿈을 딱 잘라 “불가능”이라고 말씀하신 교수님에 대한 반발심으로 개인투자자들이 어떤 꿈과 목표를 갖고, 어떤 전략을 세워서 어떻게 성공과 경제적 자유를 이루게 되는가를 논문을 통해 보이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지조사를 하면서 알게 된 개인투자자의 현실은 제가 예상하고 바라왔던 것과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연구의 방향을 성공에서 실패로 수정하게 되었어요. 특히 개인전업투자자의 공유 임대 사무실인 매매방에서 입실자들이 투자금을 크게 잃고 손실을 보는 과정에서도 돈을 빌려서 본전을 만회하기 위해 계속 투자를 하다가 결국 더 크게 실패하고 퇴실을 하게 되더라는 점에 착안해 그렇다면 이들은 왜 실패와 손실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 투자를 할까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연구를 설계하고, 논문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책으로 출간하자는 연락이 왔을 때는 저 역시 의구심이 많았습니다. 나는 투자의 성공이 아닌 실패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이 세상에 아무도 투자해서 실패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과연 내가 쓴 글을 사서 볼 사람이 있을까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한다’, ‘벌 수 있다’는 목소리로만 이루어진 지금 서적의 세계 안의 관점의 균형을 맞추는데 조금은 보탬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에 출간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경쟁 서적이 없다”는 출판사 편집자님의 말씀도 논문이 가진 새로움과 희소성이 어떤 이에게는 중요한 의미가 될 수 있겠다는 힘을 주었습니다.
논문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책이 굉장히 쉽게 읽혔습니다. 책으로 출간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이 따로 있으신가요?
논문은 기존의 학문적 배경에서 이 논문이 왜 새롭고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증명하기 위해 ‘이론적 배경’의 장을 할애해 선행연구를 검토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제 책의 경우 학술서가 아닌 대중서로 만들기로 했기 때문에 이 부분은 과감히 삭제하고, 해당 내용을 맨 마지막 부록에 경제인류학을 설명하는 좀 더 쉽고 짧은 글로 다시 써서 실었어요. 아울러 논문투 표현을 전부 수정했어요. 또 이론에 관한 부분은 줄이고, 좀 더 다양한 개인투자자의 사례와 그에 대한 제 생각을 추가했습니다.
그리고 논문을 책으로 출간하기로 결정한 시기가 작년 여름, 그러니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개인투자자 집단이 기존 4050 중장년층에서 2030 청년층까지 급격하게 확장된 때였어요. 그래서 청년들을 만나 새로 면담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투자하는 청년들의 계획과 실천, 생각과 소망에 대해 알아보는, 조금 긴 에필로그를 추가했습니다.
논문을 쓰기 전 인류학 교수님께 ‘주식과 해외선물투자로 100억을 벌어 편하게 사는 것’이 작가님의 꿈이라고 밝히셨는데요. 필패의 질서에 놓인 개미에 관한 논문을 쓰고난 후 작가님의 꿈이 혹시 변하였을까요?
네, 저는 그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책이 ‘주식투자를 하지 마라’ 혹은 ‘주식투자를 하면 실패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바는 오히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주식투자에 뛰어들게 될 수밖에 없고 손실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에 가깝습니다. 주식과 투자 그 자체가 문제라거나, 실패하는 개인투자자의 어리석음을 비판하려 했던 게 아니라 계속해서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고, 지금, 여기의 현실이 아닌 주식 시장 안에서 마주하고 상상하는 미래에 베팅해 희망을 구할 수밖에 없는 지금 우리 사회를 고찰하고자 했습니다. 개인투자자들이 필연적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는 실패라는 이면은 그런 논의를 전개하기 위한 주춧돌이자 시발점이었을 뿐, 결론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역시 주식투자를 계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다만 더는 주식을 통해 가슴 설레는 꿈을 꾸지 않을 뿐입니다. 꿈이 잘 꿔지지 않는데 아무래도 책을 쓰면서 하도 실패 사례를 많이 보고 들으며 호되게 정신교육을 받았기 때문인 거 같아요.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투자를 적극 권유하는 책들이 넘쳐났습니다. 기존의 5060 세대를 넘어 청년투자자까지, 투자만이 경제적 자유를 실현할 유일한 방안이 투자인 것처럼 사회가 온 세대를 부추기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일과 노동을 통해서는 ‘평범한 삶’을 사는 데 내지 ‘수저를 바꾸는데’ 필요한 기대이익을 벌기에 충분하지 않은 지금 우리 사회의 구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온 세대를 부추기는 게 효과적으로 통하는 데에는 그것에 목말라 있는 수요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사회와 기업은 누구보다 기민하고 발 빠르게 그런 수요를 반영하고요. 청년도, 직장인도, 은퇴한 중장년도 모두 꿈꾸는 삶의 모델이 있지만 그런 삶을 현실화하기엔 자신의 급여와 연봉이 턱없이 부족할뿐더러, 자신의 급여를 획기적으로 더 늘릴 수 없다는 냉정한 계산과 판단에 입각한 깊은 절망감이 사람들을 투자 시장으로 이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겉에서 보기엔 ‘당신이 일할 때도, 잠잘 때도 당신의 돈을 일하게 하라’는 금융가의 정언명령을 따르는 효율적이고 똑똑한 경제인간이라는 포장지를 입고 있지만요. 자신의 노동이 창출할 수 있는 결과값에 한계가 지워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선택에는 내려놓거나(또는 포기하거나), 자신의 자본도 함께 일하게 만드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후자의 일을 투자라고 부릅니다. 유한한 인간 존재와 달리 투자에는 드물지만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투자자는 바로 그 점에서 희망을 구합니다.
경제적 자유를 실현하려다가 역설적으로 투자 시장에 예속되고 마는 투자자들이 매우 많습니다. 로알매매방의 투자자들도 투자에 중독되지 않을 것을 강조하는데요. 작가님이 생각하실 때 자신의 삶과 투자자로서의 삶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가요?
참 어려운 질문인데요, 면담한 분들의 대답 몇 가지가 떠오릅니다. 주식을 산 후 투자 어플 지워버리기, 무조건 빚내지 않고 여유자금 내에서만 투자하기, 매매방에서 퇴근하고 난 후 집에서 컴퓨터 켜지 않기, 애초에 투자를 시작하지 않기 등 - 자신의 의지나 정신력보단 환경 설정의 힘을 더 신뢰하는 원칙들이었습니다.
투자에는 중독의 수레바퀴로 빠지기 너무도 쉬운 특성이 내재해 있고, 인간이 세운 원칙은 그 원칙이 참 지켜지기 어렵다는 방증이라는 점을 면담하면서 반복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삶과 투자자로서의 삶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최선은 그저 그런 어려움을 인정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요?
개인투자자에 관한 해석 중 그동안 간과되어 온 사회구조적 배경을 짚어준 의미있는 책입니다. 그동안 개미들의 투자 실패를 자신에게로만 돌렸을 개인투자자들에게 이 책이 어떻게 읽혔으면 좋겠는지 궁금합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바라보는 경험을 하실 수 있길 바랍니다. 투자라는 건 개인의 개인적인 욕망을 동기로 삼아 개인 내부의 내밀한 영역에서 이뤄지는 행위라 오로지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이해되기 쉬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투자가 잘못됐을 때도 자책과 좌절의 화살은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되고요. 그러나 투자를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우리의 본성은 주식이라는 행위에 그리 적합하지 않을뿐더러 손실은 투자를 하는 과정에 있어서 불가피한 경험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손실과 실패에 관한 이야기는 공적인 담론의 장에서 배제되고 있는 듯합니다. 점점 더 주식이 필수가 되어가는 사회에서 주식을 개인의 문제로만 치환해 지나치게 불안이나 좌절감, 자기혐오에 매몰돼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기보단 구조적인 시각에서 이 문제를 한 번쯤 재맥락화 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면 그런 지나친 부정의 감정에 빠졌을 때 거기서 빠져나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패에 대한 고민이 더 많아지는 사회가 되길 바라고 또 이 책이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수현 1994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재학 중 캐나다 오타와대학교 교환학생으로 파견되어 수강한 종교인류학 수업에 매료되어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2019년 「개인투자자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를 하는가? - 서울 매매방 개인전업투자자의 꿈과 금융시장 간파」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간호학과에 재학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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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하는가?』 (이하 ‘개미는 왜’)는 성공 신화로 가득한 개인투자자 서사에 균열을 내는 다른 목소리다. 인류학과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저자가 서울의 한 매매방에 입실, 그곳에서 만난 개인전업투자자들과의 심층 면담을 바탕으로 쓴 생생한 기록물이자 독창적인 보고서의 제목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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