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 브랜딩 특집] 매일의 기록이 ‘나’라는 사실 - 이승희
『월간 채널예스』 2021년 9월호
이승희는 기록이라는 일상적 행위로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더 이상 “배달의민족 마케터 이승희입니다”로 스스로를 소개하지 않는다. (2021.09.14)
“막 하는 거요.” 가장 효율적인 기록의 기술을 물었을 때, 이승희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자기 손으로 판 인스타그램 계정 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개인 계정은 ‘숭(@2tnnd)’, 팔로워 수가 가장 많은 계정은 ‘영감노트(@ins.note)’다. 허물없는 사이에서 오가는 밥상머리 토크의 진가를 발견한 날 ‘주간음식’을 기획했고, 퇴사 후에도 여전히 들썩이는 엉덩이를 주저앉히기 위해 친구와 함께 ‘두낫띵클럽(@donotthingclub.seoul)’을 열었다. 최초의 본격적인 기록 저장고는 수첩이었으며, 온라인 플랫폼으로는 블로그가 처음이다. <이승희의 브런치> 주제는 ‘마케터의 기록’, 유튜브 채널명은 <이승희의 영감노트>다. 어떤 기획이든 비틀거나 꼬는 수고 따윈 개나 줘버리라는 마음으로 직관적으로 기획하고 던진다. 올여름, 초판 1년여 만에 리커버본을 출간한 『기록의 쓸모』 역시 가지런하지는 않다. 이승희의 텐션 그대로의 기록을 읽으면서 부지런히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 싶게 하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인스타그램 숭 계정을 타고 ‘포스트웍스(@post_works)’ 계정에 다녀왔어요. 새로운 일을 벌이고 있는 거죠?
마케팅 협동조합이에요. 퇴사 후 마케팅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절실히 느꼈어요. 그렇다고 반드시 회사에 소속돼 있어야 할 수 있는 걸까? 또 다른 일의 방식이 있지 않을까? 협동조합은 저희 나름의 결론이에요. 불균형을 해소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마케팅 정보가 의외로 폐쇄적이에요. 회사는 마케터에 대해 잘 모르고, 마케터는 어떻게 좋은 회사를 만나야 하는지 몰라요. 그러다 보니 좋은 서비스나 상품을 만드는 브랜드가 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요. 이 시장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으려고 해요.
역시나 기록으로 시작했더라고요. 조합원들 소개와 프로젝트 과정을 상세히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저희끼리 본딩(bonding)하는 시간이 필요해서 일을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요. 첫 프로젝트는 책 속 문장을 공유하는 스타트업과 함께해요. 마케팅 협동조합이지만 조합원 모두 책을 좋아하고 ‘기록’이 우리를 ‘연결’해준다고 믿는 사람들이거든요.
이승희는 브랜드일까요?
네, 저는 모든 사람이 하나의 브랜드라고 생각해요.
이승희라는 브랜드를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요?
‘기록자’요. 지승호 작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이라는 책에서 발견한 단어인데 단박에 마음에 들어 냉큼 가져왔어요. 전에는 “인스타그래머, 유튜버, 블로거입니다”라고 소개했는데, 그런 말들은 매체에 한정돼 있잖아요. 기록자는 매체에 묶이지 않고 행위에서 결과까지 전부 품는 말이라 좋아요.
‘오늘부터 퍼스널 브랜딩을 해야지’ 하고 기록을 시작한 건 아니잖아요.
저는 퍼스널 브랜딩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라고 생각해요. 마케팅할 때는 ‘타깃이 무슨 얘기를 듣고 싶어 할까?’를 먼저 생각하잖아요. MZ세대의 취향을 알아보고, 유행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알아봐요. 상품을 타깃에게 팔아야 하니까 그게 맞아요. 반면 브랜딩은 ‘나’를 보여주는 작업이에요. 그래서 퍼스널 브랜딩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타인을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해요. 타인이 좋아할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 내 생각을 말하라고요. 자기 생각을 계속 말하는 것, 그게 제가 생각하는 퍼스널 브랜딩이에요.
인스타그램 개인 계정 팔로워 수가 5만4000, 영감노트는 8만이 넘어요. 사랑받는 기록의 조건이 있을까요?
누군가를 따라 하는 콘텐츠는 내 가치를 담을 수 없는 것 같아요. 원작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결과밖에 안 되죠. 저는 영감노트에 별별 일을 다 기록하고 공유해요. 맛집 정보도 단골 소재예요. 저와 맛집 인플루언서의 차이는 기록의 내용일 거예요. 제 맛집 기록에는 제 생각이 담겨 있으니까요. 그것도 ‘계속’ 말이죠. 브랜딩에서 꾸준함은 정말 중요합니다!
기록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기록을 통해 일, 나아가 삶을 확장하는 모습이 멋졌어요. 퇴사 후 활발히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인스타그램 프로필 계정에 적힌 ‘두낫띵클럽’이라는 다섯 글자 때문인 걸로 알고 있어요.
맞아요. 제가 막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일단 던져요. 많이 던져두면 그중 하나가 씨앗이 돼서 나와 공감대가 맞는 사람들과 연결해주고, 그 방향으로 더 강하게 나갈 수 있게 밀어주는 것 같아요. 두낫띵클럽이라는 기록 덕분에 모빌스 그룹을 만났고, 그 만남이 여러 새로운 일들로 이어졌어요. 유튜브도 저에게는 영감노트와 버전만 다른 기록인데 ‘네이버 숍터뷰’로 이어졌고요.
제2, 제3의 영감노트의 탄생을 통해서도 ‘기록의 쓸모’를 목격할 수 있었죠.
영감노트는 아카이빙을 위한 계정이었어요. 확실히 인스타그램은 사진이나 영상을 스크랩해두기 좋은 플랫폼이니까요. 어느 날 인스타그램 스토리에서 누군가 “저도 영감노트 계정 만들었어요!” 샤우트-아웃(shout-out)한 걸 보고 기분 좋아서 리그램했는데, 그걸 시작으로 일주일 동안 300명 정도가 ‘나도 하도 있다’고 외친 거예요. 언젠가 이분들과 뭔가를 해보자 싶어 다 저장해뒀어요. ‘주간음식’도 ‘월간음식’, ‘일간음식’ 등 유사 콘텐츠가 많이 생긴 기획 중 하나예요. 뭔가 붐을 일으킬 때 기분이 좋아요. 혼자 하던 일이 캠페인이 된 것 같아서.
마지막 질문은 이승희의 안목을 빌리는 데 할애할게요. 힙한 브랜드와 힙하지 않은 브랜드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평범한 외모에 스타일이 특별하지 않더라도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멋있는 것 같아요. 방법은 글일 수도 있고, 활동일 수도 있고요. 나아지려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제일 멋없는 사람은 왕년에 내가 뭐 했는지에 취해서 제자리에 있는 사람인 것 같고요. 저는 제가 계속 “배달의민족 전 마케터 이승희입니다”라고 소개하게 될까 봐 너무 무서웠어요. 40대가 되면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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