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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파우더 밀크셰이크> 여성 킬러들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
세 여성 전사의 유쾌한 복수
여성이 킬러로 나서는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남성이 중심에 서는 킬러물과 다른 지점이 존재한다. (2021.09.09)
처음엔 음식 프로그램의 인기에 무임승차(?)해 밀크셰이크의 세계를 탐구하는 음료 영화인 줄 알았다.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를 연출한 나봇 파푸샤도의 이름도 생소해서 전혀 관심 밖의 영화였다. 나봇 파푸샤도의 2013년 작품 <늑대들>이 쿠엔틴 타란티노로부터 ‘올해 최고의 영화’라는 찬사를 받았다는 기사를 접하고는 <건파우더 밀크세이크>가 다시 보였다.
샘(카렌 길런)은 ‘회사’라는 조직에 속한 킬러다. 조직의 남자들이 벌인 일의 뒤처리를 맡아 신뢰를 얻었다. 샘이 조직에 들어온 데에는 엄마의 영향이 크다. 엄마 스칼렛(레나 헤디)은 15년 전 지금의 샘처럼 조직의 명령을 따르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렇게 엄마의 뒤를 이어 킬러가 되었다. 근데 임무 중 회사의 최대 라이벌 수장의 아들을 죽이면서 조직 내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전락한다.
완전히 눈 밖에 난 건 회삿돈을 횡령한 회계사로부터 돈을 찾아오는 데 실패해서다. 원래는 돈 가방을 찾았지만, 회계사의 딸을 보호하려다가 그만 돈을 허공에 날리고 말았다. 그때부터 샘은 회사로부터 쫓기는 몸이 되었다. 거기에 회계사의 딸 에밀리(클로이 콜먼)와 함께 움직이는 처지라 신속한 피신이 쉽지 않다. 아니나 달라, 은신처의 호텔 방으로 몸을 숨기려는 데 뒤통수로 총구가 다가온다. 이제 끝이구나 싶어 돌아보니, 엄마 스칼렛이다.
타란티노가 서부극의 세르지오 레오네, 홍콩 무협의 이소룡, 프랑스 범죄물의 장 가뱅, 장 폴 벨몽도(며칠 전에 사망했다!) 등의 영화를 보고 감독이 된 세대라면 나봇 파푸샤도는 타란티노(와 <올드보이> 박찬욱과 <드라이브> 니콜라스 윈딩 레픈 등)에 영향받은 연출자다. 총격전을 핏빛으로 유희하고 귀에 쏙 감기는 배경 음악으로 관객의 감정이입을 끌어내며 좋아하는 감독과 영화의 특정 설정과 장면을 오마주하거나 새롭게 연출하는 식이다.
그중 나봇 파푸샤도가 타란티노에게 이식받은 유전자를 자기식으로 흥미롭게 변주한 설정은 ‘정치적 올바름’이다. 여성이 킬러로 나서는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남성이 중심에 서는 킬러물과 다른 지점이 존재한다. 샘이 회사의 남자들에 맞서 어린 에밀리와 함께하는 설정은 ‘찬바라’로 불리는 일본 사무라이 영화의 전설 <아들을 동반한 검객>(1972)의 영향이 강하게 감지된다.
<1917>(2019)의 샘 멘더스 또한, <아들을 동반한 검객>을 할리우드 버전으로 해석해 톰 행크스와 주드 로, 폴 뉴먼을 캐스팅하여 <로드 투 퍼디션>(2020)을 만들기도 했다. 다른 점은, <아들을 동반한 검객> <로드 두 퍼디션>의 아들이 보호받는 개념이라면 <건파우더 밀크셰이크>의 에밀리는 팔에 감각을 잃은 샘을 대신하여 총을 손에 쥐여주고 운전을 대신하는 등 동반자에 가깝다.
남성 킬러물이 배신과 복수와 의리와 같은 상명하복의 정서로 편을 갈라 서로 파괴하는 이야기로 극을 끌고 간다면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화해와 용서와 연대를 통해 함께 사는 세상의 가치를 실현한다. 그 과정에서 샘을 비롯해 여성 전사들에게 나가떨어지는 남자 조직원의 수가 상당하지만,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회사의 골칫거리가 되자 가차 없이 쫓아내는 남성 지배 시스템의 교정과 그에 순응하는 남성들을 향한 교화의 의미가 강하다.
아들을 죽인 복수를 하겠다고 샘과 마주한 라이벌 조직의 수장은 설교조로 이런 얘기를 한다. “난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사람이야. 첫째 딸이 태어났을 때 기뻤지. 집안 곳곳을 분홍으로 칠했어. 유니콘과 사탕을 깔아놓고 살았어.”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남자 치고 정말 여자를 이해하는 사람이 극소수인 것처럼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교화와 교정의 가능성이 제로인 남자들만 응징을 가한다.
타란티노가 <킬빌> 시리즈의 여성 전사들, 백인 폭력의 역사를 바로잡는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3)의 흑인 총잡이와 같은 캐릭터를 앞세워 백인 남성에 기울어진 사회 시스템을 영화 속에서 뒤집어엎었다. 나봇 파푸샤도 또한, <건파우더 밀크셰이크>에서 엄마 스칼렛과 샘과 어린 에밀리를 일종의 대체 가족으로 꾸려 남성 권력을 하나하나 해체해가는 여정으로 세계관을 확실히 한다.
차세대 타란티노로 주목받는 나봇 파푸샤도는 <건파우더 밀크셰이크>의 선전으로 속편 제작을 이미 확정하고 극 중 여성 전사들과 새로운 여정을 준비 중이다. 샘과 동료들의 ‘화약 Gunpowder’ 일발장전에 되먹지 못한 남성들이 ‘하얗게 갈려 Milkshake’ 공석이 된 영화 속 세상은 다양성의 가치를 향해 변화하는 현실의 사회상을 소환하여 채운다.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그렇기 때문에 좀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다음 챕터로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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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