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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원의 반딧불 의원] HIV 감염인을 대하는 법

‘오승원의 반딧불 의원’ 시즌2 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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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슬머리 남자는 같은 건물 1층에 있는 다정 호프 사장이었다. 김희정 씨의 시선이 뒤편에 선 청년을 향했다. 검정색 긴 앞치마를 두른 청년의 왼쪽 손에 흰색 수건이 감겨 있었다. (2021.09.06)

언스플래쉬 


당신의 손길이 내게 닿았을 때


“간호사님 이 친구 좀 얼른 봐주세요.”

대기실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걸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목소리의 주인은 곱슬머리가 살짝 벗겨지기 시작한 중년 남성이었다. 그와 함께 들어온 것은 20대로 보이는 마른 체형의 청년이었다. 곱슬머리 남자가 성큼성큼 데스크로 다가섰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무슨 일인가요?”

“우리 가게에서 일하는 친구인데, 잔을 씻다가 깨졌나 봅니다. 손을 베었어요.”

곱슬머리 남자는 같은 건물 1층에 있는 다정호프 사장이었다. 김희정 씨의 시선이 뒤편에 선 청년을 향했다. 검정색 긴 앞치마를 두른 청년의 왼쪽 손에 흰색 수건이 감겨 있었다.

“상처가 큰가요?”

“몰라요. 피가 철철 나는데, 이 친구는 수건으로 꽁꽁 싸매고 보여주려 하지도 않으니. 피는 멎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냥 두면 안될 것 같아 데리고 왔어요. 괜찮다고 하는데 그건 아니지.”

“저 정말 괜찮아요. 사장님.”

청년이 벌개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을지는 봐야 알겠죠. 우선 상처부터 확인할게요.”

처치실로 안내하는 그녀를 청년이 마지못한 표정으로 따라갔다. 뒤에서 중년 남성이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 상황에도 허예진 얼굴로 피 묻은 바닥을 물로 청소를 하고 있더라고요. 주방 바닥에 그깟 피 좀 묻은 게 뭐 문제라고.”

처치실 의자에 앉은 청년이 손에 감긴 수건을 조심스럽게 풀자 상처가 드러났다. 엄지와 검지 사이 위치에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의 상처였다. 벌어진 상처에서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상처가 꽤 깊네요. 출혈은 거의 멎었지만 봉합은 필요하겠어요. 원장님께서 보셔야 하니 조금 기다리세요.”

오래 지나지 않아 그녀가 가운을 입은 의사와 함께 처치실로 돌아왔다. 의사가 상처를 살펴보는 동안 김희정 씨는 숙련된 손길로 장갑과 봉합 도구 세트를 준비했다. 세트를 펼치자 소독된 방포와 포셉, 가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청년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상처를 꼭 꿰매야 하나요?”

“봉합을 하지 않으면 상처가 낫질 않고 이차 감염이 생길 수도 있어요. 다행히 신경은 다치지 않았으니 봉합하고 상처 관리 잘 하면 문제 없을 겁니다.” 

의사가 대답했다. 청년의 눈빛에 동요가 떠올랐다. 

“치료 전에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제가 가지고 있는 병이 있습니다.”

그는 곧바로 말을 잇지 않았다. 망설이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에이치아이브이에요.” 

짧은 침묵이 흘렀다. 놀란 얼굴의 김희정 씨와 달리 의사의 표정은 담담했다. 청년과 의사의 시선이 잠깐 마주쳤다. 청년이 시선을 낮춘 뒤에도 의사의 시선은 그의 얼굴에 머물렀다. 

“치료는 받고 있어요?”

“대학병원에 다닌지 2년 정도 되었습니다. 약도 매일 먹고 있고요. 최근 1년간은 씨디포 수치도 정상이었어요. 1달 전 검사는 천이 넘었습니다. 담당 선생님이 건강한 사람보다 더 높은 수치라고 하더군요. ” 

“약을 잘 드시고 계신다니 다행이네요. 상처도 봉합만 잘 하면 문제없이 나을 겁니다.” 

그가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의사를 바라보았다. 

“치료를…… 해 주실 건가요?”

의사는 대답 대신 양쪽 손에 장갑을 끼었다. 간이침대 위에 누운 환자의 손 위에 소독된 방포가 덮이고 흰 조명이 핏기 없는 손을 비추었다. 의사가 상처 부위를 소독한 뒤 주사기를 들었다.

“마취 주사예요. 잠깐 뻐근하고 나면 감각이 없어질 겁니다.”

그가 국소 마취제를 주사하고 봉합을 시작했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니들 홀더 손잡이가 부딪히는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들렸다. 침묵을 먼저 깬 건 환자의 갈라진 목소리였다.

“작년에 교통 사고로 집에서 가까운 응급실에 갔었어요. 응급실 담당 의사가 먹고 있는 약이 있는지 묻길래 사실대로 대답했죠. 1시간이 넘게 침대에 누워만 있다가 치료도 못 받고 그냥 나왔어요. 감염 환자를 볼 수 있는 의사와 장비가 없어 치료를 할 수 없다고, 제가 다니는 종합병원으로 가라고 하더라구요. 감염과 교통 사고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요. 나오기 전에 간호사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응급실 소독과 청소를 다시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상의를 하더군요.”

“마음이 많이 안 좋았겠네요.”

가위로 봉합 매듭을 자르던 김희정 씨가 가라앉은 말투로 말했다. 청년이 그녀를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마스크를 쓴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맑은 눈빛이라고 그녀가 생각했다. 

“슬펐죠. 모멸감이 들기도 하고. 하지만 결국 항의도 못하고 나왔어요.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치료를 시작한 이후로는 한동안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때 다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럴 거면 그냥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아니, 어차피 사고라도 나면 치료도 못 받고 그냥 죽게 되겠지. 그런데 나중에 보니 저만 그런 일을 당한 건 아니었어요. 환자 모임에서 듣기론 수술하려고 입원했다가 감염 사실을 알린 뒤 그냥 퇴원을 당한 분도 있었으니까요. 제 경우는 양반인 셈이죠. 몸이 아픈 것보다 그런 상황에서 느끼는 고통이 훨씬 더 큰 것 같아요. 저 같은 감염자는 치과 치료는 생각지도 못해요.”

“화가 나진 않아요?”

“화날 때도 있죠. 그런데 한편으론 이해가 되기도 해요. 저는 집에 있을 때도 밥을 혼자 먹어요. 식구들과 같이 먹으면 엄마가 제가 먹을 음식은 모두 다른 그릇에 담고 제 그릇은 설거지도 따로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턴 제가 오히려 불편해서 따로 먹게 되더라고요. 함께 생활을 하거나 음식을 먹는다고 옮는 병이 아니라는 걸 엄마도 아시는데요. 괜찮다고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혹시나 하는 막연한 불안감은 어쩔 수 없는 거죠. 그건 이성으로 완전히 해결이 안되는 것 같아요. 가족도 그런데 병원에서야 오죽하겠어요.”


언스플래쉬

봉합이 끝나가고 있었다. 흉하게 벌어졌던 상처가 얌전히 입을 다문 뒤 거즈와 붕대 아래로 사라졌다. 붕대를 감는 의사에게 청년이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이수현 선생님.”

의사의 손길이 잠깐 멈췄다. 처치 도중에 환자에게 이름이 불리는 건 익숙한 일은 아니었다.

“가운의 성함을 봤어요. 사실 작년 교통사고 이후론 처음이에요. 제가 다니는 대학병원 외에 다른 병원 진료를 받은 건.”

“영광이네요. 이틀 뒤에 소독하러 다시 와요. 상처에 물 닿지 않게 조심하고요.”

장갑을 벗은 그가 환자의 어깨를 두드린 뒤 처치실을 나갔다. 몇 분 뒤 김희정 씨가 진료실 문을 노크했다. 

“환자는 갔지요? 수고하셨어요. 희정 씨.”

“다정호프 사장님이 감사하다고 몇 번씩 인사를 하고 가셨어요. 수고는 원장님이 하셨는데 인사는 제가 더 받았네요. 그런데 따로 처치대 소독을 하거나 청소를 더 할 필요는 없을까요?” 

조심스러운 말투였다. 

“아뇨. HIV 환자라고 감염 관리 원칙이 특별히 다르진 않아요. 더군다나 치료를 잘 받는 환자라면. 평소대로 정리해주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저도 잘 모르고 있었어요. 그러고 보면 저희 같은 의료인들부터 좀더 배워야 할 것 같아요.”

“예전 제가 수련을 받을 때는 HIV 포지티브 환자의 차트엔 빨간 딱지가 붙어 있었어요. 빨간 딱지를 침대나 식판에 달기도 했구요. 나아지긴 했지만 지금도 비슷한 일이 없진 않을 거예요.”

“눈에 보이는 딱지는 없앴지만 보이지 않는 딱지는 남아있는 거네요. 병에 대해 정확한 지식이 있다면 저 환자도 괜한 상처를 받지 않았을 텐데요.”

우리 주변엔 얼마나 많은 붉은 딱지가 있는 걸까. 김희정 씨는 생각했다. 장애를 가진 환자도, 조현병과 같은 정신 질환을 가진 환자도 비슷한 딱지를 붙이고 살아간다. 감염병 환자가 그 대상이 되는 것도 흔한 일이다. 그들은 잘못된 처신으로 다른 사람을 오염시키는 존재가 되고, 그 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한다. 남아있는 딱지들은 앞으로도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얼마 전 읽은 신문 기사를 떠올렸다. 메르스와 코로나에 걸렸다가 무사히 나았지만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편견 때문에 우울증을 겪었던 이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지식은 중요하죠. 하지만…… 그것만으로 문제가 다 해결될 순 없을 거예요.”

창 밖으로 빗줄기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맺히는 유리창을 응시하던 그가 갑작스레 질문을 던졌다. 

“제가 아프리카에서 왜 돌아왔는지 아세요?”

김희정 씨는 그에게 받은 마지막 메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몇 개월 정도일거라 생각했던 그의 부재는 일 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는 종종 메일을 보냈다. 그가 있는 곳은 한동안은 남수단이었고, 언젠가부턴 콩고였다. 어떤 메일에선 일주일 내내 비가 내렸고, 어떤 메일에선 사십 도가 넘는 날씨의 가뭄이 계속되었다. 그녀는 다음 소식이 올 때까지 이전에 받은 메일을 반복해 열고 읽으며 기도를 했다. 건강히 돌아오게 해 달라고. 매번 그가 돌아오는 날을 상상했지만 마지막 메일을 받기 전까지 그렇게 갑작스러울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귀국을 하게 되었다는 짧은 소식만 담긴 마지막 메일에는 그 이유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일했던 곳은 에스와티니였어요. 아프리카 대륙 남쪽의 조그만 나라죠. 일 년에 두세 달을 빼고는 더위와 흙먼지로 가득한 곳이에요. HIV 감염률이 가장 높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국민 네 명 중 한 명이 감염자일 정도였죠. 제가 머물렀던 마을은 그 중에서도 심각했고, 아이들의 감염률은 어른보다 높았어요. 감염과 영양실조가 겹쳐서 돌도 되기 전에 죽는 아이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진료소 근처 마을에서 가끔 마주치던 아이가 있었어요. 일곱 살이었지만 너무 작고 말라서 기껏해야 네댓 살 정도밖에 안되어 보이던 아이였는데, 태어날 때 HIV에 감염되었고 죽을 고비도 몇 번 넘겼다고 합니다. 진료도 종종 받아왔고 의료진을 잘 따르기도 해서 직원들이 예뻐해 주었죠.”

빗줄기가 강해졌다. 소나기인 듯 했다. 반쯤 열린 창 틈으로 흙먼지 냄새가 풍겼다. 

“어느 날 저녁 강가에 산책을 나갔을 때였어요. 한바탕 비가 온 뒤라 날씨가 서늘했습니다. 오랜만의 선선한 바람, 풀 냄새와 습기를 머금은 공기, 강에서 멱을 감는 아이들. 모든 게 귀한 선물처럼 느껴지는, 그런 평화로운 순간이었죠. 한참 생각에 빠져 있었나 봐요. 아이들 몇몇이 가까이 다가온 걸 모를 정도로. 갑자기 누군가가 제 다리를 끌어안았습니다. 그 아이였어요.”

그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타이핑을 치는 것처럼 가볍게 무릎을 두들겼다. 그녀는 그것이 긴장을 했을 때 떨리는 손가락을 진정시키기 위해 시작된 오랜 습관임을 잘 알고 있었다.

“저는 깜짝 놀라 아이 손을 세게 뿌리쳤어요. 무의식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선 제가 더 당황했던 것 같아요. 제 손길에 넘어진 아이는 놀라지도, 울지도 않았어요. 그저 저를 바라보기만 했죠. 제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마치 다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무언가 설명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제가 그 나라 말을 알았다 해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목소리가 메말라 있었다. 그가 입술을 축인 뒤 지그시 아랫입술을 물었다. 

“진료실에선 HIV감염자라 해도 특별히 달리 대하진 않았어요. 지식은 충분했습니다. 그렇게 전염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어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제가 그들을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걸요. 그걸 감추고 있던 이성은 제가 만들어 둔 적당한 거리 밖에서만 작동을 하는 유약하고 위태로운 것이었어요. 갑자기 아이의 손길이 제게 닿았을 때, 그래서 그 거리가 무너졌을 때 제 밑바닥에 감춰져 있던 것들이 드러났던 거죠. 그 날 밤 숙소에 돌아와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탄 건 1주일 뒤였어요.”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바람을 타고 들어온 빗줄기가 바닥을 적셨다. 김희정 씨가 창문을 닫았다.

“커피가 생각나네요. 내리려는데, 원장님도 한 잔 드실래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생각했다.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그래야 손을 내밀고 다른 이의 손을 잡을 수도 있을 테니까. 우리는 모두 유약하고 위태로운 존재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타인과 서로 맞닿을 수 있기에 삶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감염병 앞에서 모두가 불확실한 미래 앞에 선 지금이야말로 진정 그래야 할 때가 아닐까.

그녀가 진료실을 나올 때까지 그는 어둠이 짙게 깔린 창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오래도록 그렇게 서 있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HIV 감염인과 에이즈 환자는 다르다. 감염인은 HIV에 감염되어 체내에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에이즈(후천성 면역 결핍 증후군) 환자는 HIV 감염인 중 CD4 T 세포의 수치가 200/㎕ 미만으로 감소되었거나 기회 감염증 등 AIDS 관련 증상이 나타난 사람을 의미한다. 2000년대 이전에는 HIV 감염이 곧 에이즈로 사망할 것이란 선고와 같이 여겨졌지만, 치료법이 발전하면서 꾸준히 약을 복용하는 HIV 감염인의 경우 비감염인과 비슷한 기대 여명을 보이는 시대가 되었다. 불치병으로 여겨지던 에이즈가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치료하고 관리할 수 있는 만성 질환의 하나가 된 것이다. 

전파 경로는 성관계, 오염된 주사기의 공동 사용, 오염된 혈액 제제 수혈, 모자 감염 등이다. 국내에서 주된 경로는 역시 성관계이며, 한 번의 성관계로 전염이 될 확률은 0.1% 미만이다. 예방을 위해선 역시 콘돔의 사용이 중요하다. 항레트로바이러스제를 이용한 치료는 바이러스의 전염을 차단하는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2017년에 발표된 대규모 임상연구 결과, 꾸준한 치료로 혈액에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으면 감염인이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성관계를 해도 타인에게 바이러스를 전염시키지 않는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를 근거로 유엔에이즈기구(UNAIDS)에서는 약을 잘 복용하여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는 HIV 감염인은 성 접촉을 통한 감염력이 없다고 선언하였고, 미국과 영국 등 많은 국가에서 해당 선언문을 채택하고 있다.

1985년 첫 국내 HIV 감염인이 확인된 이후 한국에서는 만 삼천 명 가량이 HIV 감염인으로 살아 가고 있다. 삼십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면서 HIV 감염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가 있었다. 함께 음식을 먹거나 일상 생활을 하는 것만으론 전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어느정도 알려져 있다. 침, 땀, 눈물 등의 체액이 묻는 것, 함께 수영을 하거나 목욕을 하는 것 역시 문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IV에 대한 인식에는 부족함이 많으며 감염인에 대한 차별 역시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의학적 지식에 근거한 판단이 아니라 무지에서 나온 편견이 대부분이지만, 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진료를 제공해야 할 의료기관에서의 차별 사례도 드물지 않다. 입원이나 수술을 거부하거나, 치료 시 감염 예방을 이유로 별도의 기구나 공간을 사용하는 경우가 흔한 예이다. 2020년에는 HIV 감염인이 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이 잘려 병원을 찾았지만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지 못해 열 두 시간을 헤매는 사건이 있었다.

질병관리청에서는 지난 해 HIV 감염인 진료를 위한 의료기관 안내 자료*를 발간한 바 있다. 이 자료에서는 모든 의료 환경에서 특정 질병을 기준으로 감염 관리를 달리 적용할 필요는 없으며, 환자의 감염 상태와 상관없이 ‘표준 주의 원칙’을 준수하도록 권고한다. 표준 주의 원칙이란 혈액 매개 질환 노출 예방을 위한 일반적인 감염 관리 원칙을 말한다. HIV 감염인이라 해도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원칙 외에 다른 특별한 조치는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의료진이 아닌 사람까지 HIV 감염인을 인식할 수 있는 표식을 붙이거나, 의료 기기를 개별 지급하고 식판의 색깔을 구분하는 등의 사례는 의학적 근거가 없는 차별이라고 판단하였다. 참고로 국내에서 의료 행위 중 HIV 감염인으로부터 의료인에게 전파가 일어난 사례는 없다.

* 질병관리청. HIV 감염인 진료를 위한 의료기관 길라잡이. 2020.12.

AIDS 운동을 상징하는 붉은 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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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승원(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가정의학과 교수)

가정의학과 의사입니다. 만성 질환 예방과 건강 증진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환자를 만나고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에세이 <반딧불 의원>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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