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가 체질
쓰는 용기, 읽는 마음에 대하여
벽을 부수고 천장을 깨고 나를 내보이는 것, 그런 단단한 용기를 마주할 때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 그러면서도 깊이 동경하게 되는 마음. 쓰면서 부딪히는 곤란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 (2021.08.13)
쓰는 일은 즐겁고 또 괴롭다. 라고 첫 문장을 쓰면서 ‘쓰다’의 다른 의미들이 떠올라 사전을 찾아보니, 글을 작성하는 일 외에도 우리는 머리를 쓰고 모자를 쓰고 약은 입에 쓰고, 주된 몇 가지 용법만 보아도 ‘쓰다’는 재미있는 말이고 또 한편으로 씁쓸한 것 같다. 이 이야기는 그중에서도 글을 쓰는 일에 대한 것, 자꾸 털어놓게 되는 쓰는 일에 대한 생각, 그중에서도 쓰는 마음에 대한 것이다.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무언가를 생산해내는 행위가 주는 만족감이나, 훈련으로 티끌만큼이라도 내가 나아지는 걸 실감하는 쾌감이 좋은데, 생각이 막히고 손이 정지하는 순간의 답답함과, 쓰면 쓸수록 나아지기는 하지만 한계를 너무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는 점이 불편하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최근에 읽은 소설의 다수는, 다수의 인물은 문장들 사이에서 절실하게 외친다.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지른다. 그것은 때로 종이 위의 외침으로 터져 나오고 때로는 그 안에서조차 발화하지 못하고 그들의 가슴에 응어리진다.
한 아이돌 팬의 이야기를 그린 『최애, 타오르다』는 결국 무엇을 애착하는 것으로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모두의 현실로 읽힌다. 화자도 그의 가족도 친구도 ‘최애’까지도 누군가에게 어딘가에서 온전한 내가 되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눈으로 만든 사람』의 인물들은 마음 한구석에 사라지지 않는, 사라질 리 없는 상처를 안고 있다. 그 상처는 깨진 유리창 사이로 드러나기도 녹아버린 눈사람처럼 고요하게 모습을 바꾸며 제 자리를 지키기도 한다.
이 밖에도 최근 몇 달 몇 년 사이에 만난, 불안하고 위태로운 인물들이 오래 기억에 남는데 유독 그런 이야기가 많이 쓰이는 것인지 무의식 중에 본능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자꾸 찾아 읽는 것인지 그런 인물에게만 특히 마음이 쓰이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거기에 내가 범접하기 힘든 영역의 용기가 있음을 실감한다는 것. 책을 보며 마음이 쿵 내려앉는 경험을 하면서 그것의 시작이 되었을 일과 말과 마음 들을 가늠해보면 아득해질 때가 있다.
최애를 둘러싼 모든 것이 나를 불러 일깨운다. 포기하고 놓아버린 무언가, 평소에는 생활을 위해 내버려 둔 무언가, 눌려 찌부러진 무언가를 최애가 끄집어낸다. 그래서 최애를 해석하고 최애를 알려고 했다. 그 존재를 생생하게 느낌으로써 나는 나 자신의 존재를 느끼려고 했다. 최애의 약동하는 영혼이 사랑스러웠다. 필사적으로 쫓으려고 춤추는 내 영혼이 사랑스러웠다. 외쳐, 외쳐, 최애가 온몸으로 말을 건다. 나는 외친다. 소용돌이치던 무언가가 갑자기 풀려나 주변 모든 것을 쓰러뜨리는 것처럼, 성가신 내 목숨의 무게를 통째로 짓뭉개려는 것처럼 외친다.
_우사미 린, 『최애, 타오르다』, 117쪽
수미는 알고 있었을까. 누구누구의 맘도 아닌, 무슨 무슨 샘도 아닌, 딱 떨어지는 ‘선생님’이 되어야 할 때, ‘지도사’라는 정식 호칭으로 서 있어야 할 때, 내가 나의 무엇을 보이지 않게 하는지. ‘선생님’으로 생존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깨끗하고 멀쩡하게, 주부로서의 노동만을 선별해서 지워버리는지. 하지만 ‘선생님’인 그 순간에도 내가 알아서 감춰버린 그 노동에 얼마나 실시간으로 잠식당하고 있는지. 어떻게 얼굴이 지워진 채로 다른 여자에게 다른 여자가 되어가는지. 나로 서 있기 위한 최소한의 힘을 기르기 위해 어떻게 또다시, 계속 다시, 매일 다시, 내 노동을 지우고, 지운 것에 먹히고, 먹혀가는 채로 지우면서, 편하게 사는 여자들 중 하나가 되는지. 왜 나는 나의 어떤 부분을 지워야만 내 실력을 신뢰받을 수 있다고 믿게 되었는지.
_최은미, 『눈으로 만든 사람』, 742쪽
그러니까 쓰기가 괴롭고 또 즐거운 가장 큰 이유는 여기에 있는 듯하다. 벽을 부수고 천장을 깨고 나를 내보이는 것, 그런 단단한 용기를 마주할 때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 그러면서도 깊이 동경하게 되는 마음. 쓰면서 부딪히는 곤란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 그것을 점점 더 선명하게 깨달으면서 그렇게 쓰인 책들을 읽으면서, 그렇지 않은 것에서는 결코 느끼지 못한 감정들을 체감하면서 자꾸 홀랑 마음을 빼앗겨버리니까. 아무래도 역시 영영 진짜 쓰는 사람은 되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다행히 독자가 체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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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고르고 사고 팝니다. 아직은 ‘역시’ 보다는 ‘정말?’을 많이 듣고 싶은데 이번 생에는 글렀습니다. 그것대로의 좋은 점을 찾으며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