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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 톱스타 황정민이 납치됐다!
황정민 주연의 리얼리티 액션 스릴러
<인질>의 포스터 홍보 문구는 ‘살기 위한 극한의 탈주가 시작된다.’이다. 여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질>의 흥행 레이스가 시작됐다. (2021.08.12)
배우 ‘황정민’이 인질로 잡혔다. 실제 상황이다. <인질>은 ‘서울 한복판에서 톱스타가 인질로 사로잡혔다’는 콘셉트의 오락 영화다. 이 영화에서 황정민은 황정민 본인을 연기했다. 취재진이 모인 자리에서 신작 제작 발표회를 하고 가족들이 모두 여행을 떠난 집으로 돌아가던 중 괴한들에게 납치당한다. 잠시 정신을 잃고 눈을 떠보니 으슥한 창고 같은 곳에서 의자에 손과 발이 결박되어 꼼짝 못 하는 신세다.
나, 인질 된 거야? 설마, 명색이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배우인데, 이거 몰래카메라지? 웃어넘기려는데 다섯 명의 괴한 중 2인자로 보이는 이가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 현실을 자각하게 한다. 당장에 내일 잡힌 인터뷰를 줄줄이 펑크 내면 황정민이 실종된 걸 알고 매스컴이 난리가 날 터. 모를 리 없는 괴한들이 이런 일을 저지른 거 보면 단단히 미쳤다.
오랜 팬이라면서 궂은일을 떠안은 괴한 중 한 명이 <신세계>(2012)의 황정민이 연기한 정청의 시그니처 대사 ‘드루와, 드루와’를 해달라며 분위기 파악 못하고 말을 걸어온다. 잘 구슬리면 풀려 날 수도 있을 것 같아 황정민은 요구를 들어주면서 회유하려 한다. 의도를 눈치챘는지, 인질범의 리더가 감정 없는 눈빛과 자비 없는 목소리로 대화를 끊는다. “황정민 씨, 억울해요?” 황정민은 억울하고 자시고 할 거 없이 요구 조건을 빌미로 빠져나갈 생각뿐이다.
파격적인 설정과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줄 수 있는 특별한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호응한 황정민의 참여로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 <인질>의 성패는 신선한 콘셉트 이상의 만듦새에 달려 있다. 배우 황정민이 연기한 대표 캐릭터들과 실제 황정민이 지닌 인간적인 면모를 허구의 영화 속에 얼마나 절묘하게 반영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할지의 여부가 영화의 완성도는 물론 재미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인질>의 각본과 연출은 설정이 가진 가능성을 깊이 파고들어 전에 본 적 없는 작품으로 완성하기보다 배우의 인지도에 기대 안전하게 풀어간다는 인상이다. <존 말코비치 되기>(1999)처럼 제목에서부터 ‘황정민’의 이름을 넣어 이 영화가 가진 정체성을 노골적으로 표현해도 좋았을 텐데 지금의 ‘인질’은 무미건조하다. 굳이 황정민이 아니라 다른 배우를 대입해도 모두 맞춤할 듯 특징이 없어 보인다.
황정민이라서 가능한 이 영화의 특수성은 “드루와, 드루와” 같은 명대사를 다시 한번 재현하는 것 외에 <베테랑>(2016)의 서도철과 <부당거래>(2010)의 최철기 두 광역수사대 형사의 이름을 언급하여 전화 통화 하는 상대방이 극 중 황정민이 처한 납치 상황을 유추할 수 있게 하는 정도다. 이런 수준이면 비슷한 역할을 맡았거나 많은 이가 기억할 만한 대사를 보유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 배우 누구를 캐스팅했더라도 적용 가능한 설정인 셈이다.
배우는 잠시 논외로 하고 장르만 놓고 봤을 때 <인질>은 제한된 공간에서 납치범과 인질이 펼치는 탈주극의 B급 영화다. 배우의 인지도보다 쫓고 쫓기는 탈출 과정의 서스펜스가 핵심인 이 장르는 성수기보다는 비수기 시장에서 더 큰 관심을 받고, 부가판권 시장에서 더 큰 수익을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인질>은 장르의 성격을 그대로 가져오되 톱스타 황정민의 캐스팅으로 영화의 몸집을 불렸다. 영화 내적으로 충분히 설득되지 않더라도 황정민의 캐스팅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황정민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20) <공작>(2018) <베테랑> 등 여름 개봉 영화에서 여러 차례 흥행을 견인했다. 황정민의 <인질> 캐스팅은 배우를 향한 관객의 호감도와 이를 수치로 뒷받침하는 흥행을 배경으로 한다. 여기에 배우 자체를 콘셉트로 하여 한 줄로 요약 가능한 작품을 구상하면 시즌을 노리는 ‘기획 영화’가 된다. <인질>의 포스터 홍보 문구는 ‘살기 위한 극한의 탈주가 시작된다.’이다. 여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질>의 흥행 레이스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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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