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지하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한 권은 외롭습니다”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이반지하 작가 인터뷰
제 입장에서 이 이야기들은 ‘폭발적으로’ 쏟아지지 않았습니다. 이것들은 항상 제 안에 있었던 이야기들이고, 다만 듣는 이가 없었기에 갇혀 있었던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2021.08.04)
최근에야 퀴어문학이 주목받고 퀴어들의 인권이 가까스로 논해지는 이 한국 사회에서 무려 2004년부터 무대를 해왔던 퀴어 퍼포먼스 아티스트 ‘이반지하’. 괴상한 이름과 무대의상은 영락없이 B급 인디 감성으로 똘똘 뭉친 인물 같지만, 사실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현대미술가이자 국내외 영화제에 작품을 상영하고 초청받은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동시에 〈우리 가족 LGBT〉 〈나는 이반 그녀는 일반〉 등 충격적인 가사로 ‘퀴어들의 전설’로 손꼽히는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 동시에 ‘일반’ 사람들이 “너 뭐야, 홍석천이야?”라고 물으면, 할말은 더 있지만 차마 못하겠다는 듯 안타까운 뉘앙스로 “응…… 그런 거야” 하고 맞받아쳐주라 조언하는 천재적인 재담꾼이다.
첫 책인데, 368쪽의 두툼한 볼륨이어서 놀랐습니다. 집필 기간도 상당히 빨랐고, 문학동네 편집부에서 제작비와 정가 절감을 위해 덜어낼 원고가 없는지 살펴보았지만, 도저히 뺄 원고가 없어서 368쪽 그대로 내게 되었다는 편집후기를 들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폭발적으로 쏟아낼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인가요?
제 입장에서 이 이야기들은 ‘폭발적으로’ 쏟아지지 않았습니다. 이것들은 항상 제 안에 있었던 이야기들이고, 다만 듣는 이가 없었기에 갇혀 있었던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겨우 이 정도로 다 쏟아냈다고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놓친 시간은 훨씬 더 길며, 따라잡아야 할 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습니다.
물론 세상 누구나가 갇힌 이야기를 악착같이 책 한 권으로 풀어낼 수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말씀대로 저에게도 ‘동력’이 필요했을 텐데요. 결국 그 중심은 한 가지인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이 계약과 기회를 날려버린다는 선택지가 애초에 없었습니다. 저의 지난 경험상 제 능력에 걸맞은 기회는 잘 찾아오지 않았고, 그런 기회는 쉽게 취소되거나 방해받아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계약을 맺은 순간, 이것을 빠른 시간 내에 상대가 절대로 철회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내야만 한다는 혼자만의 미션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책이 나온 지 일주일 남짓 되었는데 SNS에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의 후기와 인증샷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글쓰는 작가로 데뷔한 소감은 어떠신가요? 또 가장 기억에 남는 후기가 있었다면 말씀해주세요.
글 작가로 데뷔했다는 느낌보다 제 작품이 큰 유통과 관객을 만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새로운 형태와 시간성을 가진 전시를 하는 느낌이랄까요. SNS 후기를 보면서는 제가 좋다고 생각한 걸 남들도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 낯설고 기쁘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이 책으로 인해 대중이 저를 친근하게 느낄까봐 매우 저어되기도 합니다.
후기 중에는 책 제목과 저자를 정확히 언급하지 않고 본문 내용을 찍어 자신의 영달에 사용한 애들도 있어 기가 막힙니다. 가장 기분 좋고 직관적인 후기는 ‘단숨에 그 자리에서 다 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책 한 권을 다 못 읽을 때가 많아서, 그 말이 ‘내가 괜찮은 것을 생산했다’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본인을 ‘유머리스트’로 명명하신 것이 인상적입니다. 이반지하의 유머는 자기나 남을 깎아내리지 않으면서, 세상에 교묘하게 펀치를 날리는 힘이 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라는 제목으로 강연하신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요. 이반지하 작가님은 정말 왜 이렇게 웃긴 건가요?
저는 모두를 깎지 않기 위한 안전한 유머를 추구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다만 유약하고 예민한 대중님들이 놀라실까봐 적당히 퉁쳐 드리는 맞춤 기술을 갖추게 된 존재일 뿐입니다. 웃지 마세요. 주름 생긴다고 합니다.
책을 읽기 전 ‘이반지하’라는 인물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직설적이다, 대담하다, 웃기다, 특이하다라는 단어였는데, 책에서는 생존자이자 노동자, 생활인으로서의 이반지하 등 다채로운 표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검열이나 폭력을 견뎌낸 기억들도 인상적인데요. 20대의 이반지하에게 지금 돌아가서 무언가 얘기해줄 수 있다면 어떤 얘기를 해주시고 싶으신가요?
기본적으로 20대의 이반지하에게는 말을 걸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하지만 굳이 본전도 못 찾을 한마디를 해야 한다면, ‘포기하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목과 표지가 강렬합니다. 사실 ‘퀴어’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에세이일지라도 제목이나 표지에서 ‘퀴어’라는 단어를 전면적으로 드러낸 에세이는 드물었는데요. 이렇게 과감한 표지와 제목으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것은 참으로 우리 문학동네 친구를 포함한 이 세상에게 많은 것을 넘겨준 결정이었습니다. 제가 제 삶을 어느 정도 포기했고, 그에 따라 많은 것을 감당하기로 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영원히 ‘그것’으로 못박혀 살고자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책을 내는 과정에서 이 제목과 표지가 무슨 의미인지 아는지, 앞으로의 내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지 등을 묻기도 했지만, 마음에 드는 답을 듣지 못할 거라는 예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모르면 용감하다고들 하지요. 그래서 저는 또다시 굽어살피는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허락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래, 어디 한번 맘대로 날뛰어봐라 같은 마음이었달까요. 이 사회와 시대에 살고 있는 이상 이보다 더 나은 제목이 나에게 오리라는 기대 자체가 욕심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열화될 준비를 했고, 문학과 세상에게 기꺼이 속아주기로 한 것입니다. 문학이라는 미명하에 대 사회 퀴어라는 사지로 내몰려, 이토록 홀로그램으로 당신들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결제, 하시겠습니까?
표지에 있어서는, 글쎄요, 각종 무지개에 치를 떨었던 지난 세월에 대한 업보가 이 표지로 돌아오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퀴어들만 신나게 한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린이들도 무지개를 좋아한다고 듣긴 했습니다. 좋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애는 생존자야. 애초에 질 생각이 없어. 생존자 조심해라.” 첫 글에 나오는 문장이죠. 이반지하 작가님이 살아가면서 기필코 지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런 유형의 사람이나 개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기필코 휘말리고 싶지 않습니다. 존나 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를 읽었거나 읽을 독자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하신다면.
책도 살아 있다는 얘기 들어 보셨습니까? 핵가족화로 인해 1가정 1자녀가 흔해진 요즘이지만, 책 만큼은 혼자여서는 안 된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이왕 살 거라면 한 권보다는 두 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권도 나쁘지 않습니다.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과거 책이 귀했던 시절의 매캐한 관념에 빠져, 좋아하는 책을 반드시 딱 한 권만 사야 한다는 생각에서만큼은 벗어나자 이 말입니다. 책도 외로움을 탄다고 합니다. 하물며 사람도 그러한데, 연약한 종이 하나하나가 모여 무리를 이루고 있는 책은 뭐 오죽하겠습니까. 애초에 왜 모여서 겹붙여지기를 택했겠습니까.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한 권은 외롭습니다. 그리고 그 한 권은 자기와 닮은 무엇을 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천편일률적인 공장의 인쇄 시스템 속에서도 사람의 손과 손을 거쳐 유통이란 것이 일어납니다. 그 과정에서 한 권 한 권의 책들이 각각 다른 에너지와 외견을 갖도록 변형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 이거 그냥 최소 두 권 이상 사시라고 말씀 전하고 싶어요. 뭐 나 하나 잘되자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당신이 산 바로 그 책이 외로울까봐 하는 이야기입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비대면 현대사회에서 외로움 느껴보지 않은 이, 그 어디 있습니까. 그 끔찍한 고통을 나의 책에게도 되물림하시겠습니까.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심장이 뛰는 곳으로 달려가십쇼.
*이반지하 (김소윤) ‘이반지하’는 2004년 활동을 시작한 퀴어 퍼포먼스 아티스트로서 지금까지 페미니스트, 레즈비언, 퀴어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농담들을 작업의 소재로 삼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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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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