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애 “완전히 충전할 수 있는 휴가 같은 그림책”
『휴가』 이명애 저자 인터뷰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자신을 충분히 충전할 시간이, 파란 그림자가 노랗게 변하는 시간이 주어지면 좋겠습니다. 잘 구워진 몸에서 고소한 빵 냄새가 날 때까지 (2021.07.22)
『휴가』는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2회 선정, BIB 황금패상, 나미 콩쿠르 은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예테보리 국제 도서전, 2021년 싱가포르 아시아 어린이 콘텐츠 축제 등 국제적 행사에 한국 대표 그림책 작가로 초청받는 이명애 작가의 신작 그림책.
이명애 작가는 2020년 『물개 할망』 출간 당시, 이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동안 머릿속에만 맴돌던 이야기가 몇몇 있는데 그것들을 끄집어내서 시각화하는 작업을 해보려고 한다.”고 답했다. 이번에 출간된 그림책 『휴가』는 이러한 계획이 구현된 결과물이다.
그림책 작업을 할 때 이야기보다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떠올린 장면이 무엇인지, 그 장면은 그대로 책에 실리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가장 먼저 떠올린 장면은 하늘이 붉게 물드는 노을 장면이었습니다. 이 책을 작업하면서 삼척의 갈남 마을에서 며칠간 휴가를 보냈는데, 집으로 돌아가기 전 바닷가에서 본 노을은 나를 충족시키는 에너지로, 뭔가로 채워지는 든든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그림책 시놉시스를 짤 때도 이 장면을 가장 먼저 시각화했고, 마지막까지 손에 쥐고 수정을 한 장면도 이 장면이었습니다. 제가 본 노을을 그대로 보여드리고 싶었지만, 자연 풍경을 평면으로, 그림으로 옮긴다는 게 무모하게 느껴질 정도로 압도적인 풍경이었어요.
『휴가』는 주제의식을 드러낸 전작들과 달리, 작가의 실제 경험과 감정선이 엿보이는 작품입니다. 이전과 결이 다른 작업을 시도한 배경이 있을까요?
『플라스틱 섬』 『10초』 『내일은 맑겠습니다』까지 전작들의 주제는 제가 일상에서 접하기 힘든 주제들이었습니다. 이 작품들을 만들 때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재미를 느꼈다면, 요즘은 주인공의 감정선이나 스토리를 따라가며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제가 가진 통에 커다란 이미지들을 주워 담는 방식으로 작업했다면 요즘은 그 그림들이 잘게 쪼개진 형태로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그 잘게 쪼개진 그림들이 연속성을 가지고 움직이고, 주인공이 좀 더 구체화된 언어로 제게 말을 걸어옵니다. 어떤 것이 더 좋은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는 이런 방식이 재미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이번 책의 더미에서는 주인공의 직업, 주인공이 처한 상황 등이 드러나는 프롤로그가 있었는데, 출간 작업을 진행하면서 이 부분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책에 드러나지 않더라도 캐릭터와 상황을 디테일하게 설정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더미 작업을 할 때는 가상의 세계 속에 내가 만든 주인공을 설계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가능한 떠오르는 모든 걸 시각화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야만 좀 더 명확한 공간이 설정되고, 거기에서 구체적이고 생생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책에는 드러나지 않더라도 주인공의 나이, 직업, 성격, 좋아하는 것, 휴가를 왜 왔는지, 몇 박 며칠을 온 건지, 온갖 디테일한 정보들을 떠올리고 메모하고 그려 봅니다. 출간되는 책에는 이런 설정들이 담긴 장면이 빠진다 할지라도, 본문의 어떤 장면에 이런 설정들이 조금씩 드러나게 됩니다. 작은 요소지만 작업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재미이기도 합니다.
『휴가』는 파랑에서 노랑으로 색채가 변화하는 방식으로, 일상의 긴장에서 벗어나 서서히 충전되는 과정을 시각화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작업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지점은?
일에 치여 지쳤을 때 제가 자주하는 말이 “투명해져서 없어질 것 같다”입니다. 내 안의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어 내 자신이 사라질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추운 겨울이면 그런 느낌이 심해지는데, 그럴 때마다 ‘여름이 있는 나라’로 떠났습니다.
이 책에서 열기가 식어 파랗게 변한 주인공이 떠나온 곳은 그림자마저 노란, 열기가 가득한 공간입니다. 전작들에서도 그림자가 노란색으로 그려질 때가 있었는데, 그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제가 생각하는 그림자는 노란색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릴 때는 ‘휴가’ 하면 의례적으로 바다나 물이 있는 곳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햇빛을 가득 받으면 내 몸보다 커진 커다란 그림자를 통해 어른이 된 듯한 충만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숙제 걱정도, 학교 갈 걱정도 없던 어린 시절 휴가지에서의 기억은, 따듯한 곳으로 가면 에너지가 채워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합니다. 그래서 온통 파란색이던 주인공이 그림자가 노랗게 될 때까지 햇빛 아래에서 실컷 충전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만들어지게 된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열기가 가득 찬 공간에서 충전되는 장면으로 ‘뜨거운 모래밭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장면’을 넣을지 말지를, 작업 후반부까지 고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장면 대신 현재의 장면(갈매기와 발자국만 있는 모래밭)으로 선택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처음에는 노란 모래밭에 누워 주인공이 완전히 충전되는 모습을 그렸는데, 최종적으로는 서서히 충전되는 과정을 선택했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찾은 계곡에서 충전이 시작되고, 이후 바닷물 속에 들어가서 절반 이상이 충전되고, 약간의 여운이 남는 노을 장면에서 95프로까지 충전된다는 마음으로 작업했습니다.
생각해보면 휴가지에서 ‘완충’이 되는 순간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항상 5프로 아쉬울 대 돌아왔고, 그 여백 때문에 다시 다음 여행을 기다리고 꿈꾸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낯선 곳으로 훌쩍 더나 휴가를 즐기기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휴가지에서는 어떤 모습인지, 가장 기억에 남거나 그리운 휴가지가 있다면 어떤 곳인지 궁금합니다.
여행을 많이 하는 편도 아니고, 주로 살고 있는 곳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생활을 주로 합니다. 더군다나 길치이기도 합니다 (웃음) 짧은 여행보다는 긴 기간 몰아서 쉬는 편이고, 복잡한 여행지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는 곳에 가서 헤매는 방식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여행 일정을 길게 잡는 이유는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저도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그렇고 장소도 낯을 가리는 편이라, 온전히 즐기고 맘을 터놓기까지 예열이 필요합니다.
이 책의 주인공도 휴가지에서 첫째 날, 둘째 날은 계속 주변을 탐색합니다. 숙소도 자기가 원래 살던 방과 비슷한 공간으로 예약을 했습니다. 큰 변화를 주저하는 거죠. 물에 당장 들어가 해수욕을 할 것도 아니면서, 일단 구명조끼를 빌려 입습니다. 휴가지의 사람들보다는 낯선 고양이에 마음을 먼저 열고, 인적이 드문 공간에서 긴장이 풀어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휴가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베트남의 ‘달랏’이라는 곳입니다. 원래 계획에는 없었던 곳인데 어떤 정보도 없이 급하게 머무르게 됐습니다. 그런데 미리 계획하고 동선을 짰던 휴가지보다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로는 어디로 갈지 장소만 정하고, 별 계획 없이 떠납니다.
책의 제목도 『휴가』이고 휴가철을 앞두고 출간되었지만 ‘여름 휴가’에 대한 이야기로만 읽히기에는 담긴 것이 많은 작품입니다.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이길 바라나요?
이 책을 읽고, 나는 방전되었을 때 어떤 방식으로 충전이 되는지, 자신의 루틴을 돌아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요즘은 휴가의 시기가 다양한 것처럼, 각기 다른 방식이 존재하겠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자신을 충분히 충전할 시간이, 파란 그림자가 노랗게 변하는 시간이 주어지면 좋겠습니다. 잘 구워진 몸에서 고소한 빵 냄새가 날 때까지…….
*이명애 작은 책상 위에서 소소한 이야기와 그림을 그리며 아이들과 더불어 그림으로 소통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2회 선정되었고 나미콩쿠르 은상, BIB 황금패상 등을 받았습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 『내일은 맑겠습니다』, 『10초』, 『플라스틱 섬』이 있고, 그린 책으로는 『팔씨름』, 『물개 할망』, 『시원탕 옆 기억사진관』, 『신통방통 홈쇼핑』 등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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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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