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혜 “다른 삶의 가능성으로서의 여행”
『여행의 말들』 이다혜 작가 인터뷰
코로나19 시대, 지금 우리의 여행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경험을 선사하며 떠나든 떠나지 않든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의 바깥을 상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다. (2021.07.20)
『출근길의 주문』, 『내일을 위한 내 일』, 『코넌 도일』 등으로 독자를 활발하게 만나 온 에세이스트 이다혜가 여행에 대한 100개의 문장을 『여행의 말들』로 모았다. 책에서 길어 올린 단단한 문장과 그에 따른 단상을 통해 작가는 일상을 다시 발명하는 방법으로서의 여행을 제안한다. 또한 코로나19 시대, 지금 우리의 여행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경험을 선사하며 떠나든 떠나지 않든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의 바깥을 상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다.
2년만에 출간하시는 여행 책입니다. 여러모로 이전 책과는 사뭇 다른 기분으로 작업하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 글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에 2020년에 초고를 완성하고 1년이 지난 올해 초 다시 원고를 읽으니 여행에 대해 제가 갖고 있는 인식이 많이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행이 가능한 세계가 다시 올 일을 의심하지 않지만, 팬데믹과 기후위기에 대한 근심이 없이 여행의 즐거움만을 논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여행의 말들』 초고를 수정하면서는 팬데믹으로 인한 어려움과 우울함이 많이 담겼어요. 그 뒤 다시 원고를 검토하면서는 이 책이 여행에 대한 책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기대와 현실을 적절히 조율하고자 애썼습니다. 여행을 (실제로 떠나지 못하는 시기에조차) 계획하는 일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다는 점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고요.
윤가은 감독님과 진행한 북토크에서 ‘이다혜라는 섬이 있어서 그 안에 많은 글 쓰는 노예들을 가둬 두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나누셨던 게 기억에 남아요. 오랫동안 커리어를 쌓아 오신 회사원이신데, 끊임없이 책을 쓰시는 데다 이런저런 활동까지 활발히 하고 계신 지금의 행보에 여행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쉬지 않고 일을 하고, 돈을 쓰지 않고 모으기만 할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요. 저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지만 그 꾸준함이 가장 어렵다는 생각을 늘 하고 지냅니다. 쉬지 않고는 일을 할 수 없고, 돈을 쓰지 않으면 모으는 일도 어려워요. 후자를 잘 하기 위해 전자를 하는 사람입니다. 좋아하는 경험에 시간과 돈을 밀도 있게 씁니다. 가능하면 일은 잊어버리고 눈앞에 있는 것들을 경험하는데 집중하고요. 『여행의 말들』에도 적었습니다만, 잘 쉬고 나면 정말로 일을 하고 싶어집니다. 재미있는 기획도 그때 떠오르고요.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추억도 여행을 다니며 얻었습니다. 이런 일이 제게는 살아 있다는 체험이고, 잘 살기 위해서 일을 합니다.
100개의 문장을 모으는 작업이 녹록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문장을 모을 때 세운 기준도 궁금합니다.
여행에 대한 문장은 100개로 부족해요. 글을 쓰는 사람 중에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주 많거든요. 『여행의 말들』을 위해 100개보다 훨씬 많은 문장을 모았고 그 중에 추린 셈이 되었는데, 가장 우선하게는 문장 자체가 읽는 분들께 다양한 생각 거리를 던져줬으면 했습니다. 그래서 그 문장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생각과 제 생각을 비교해볼 수 있도록요. 그 다음으로는 제가 존경하는 한국 작가분들의 글을 가능한 한 많이 소개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문장’이 담긴 각각의 ‘책’으로 읽으시는 분들의 독서가 뻗어나갔으면 하는 마음으로요.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여행을 떠올리면 따라오는 씁쓸함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지금 작가님께서는 여행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2020년 초반에 근심했던 것보다는 괜찮게 지내고 있습니다만, 역시 여행은 여행으로만 가능한 즐거움을 준다는 사실 역시 절감하고 있습니다. 『여행의 말들』을 쓰며 여러 번 생각한 것은, 제가 돈을 벌어 여행을 다닐 수 있게 되기 전과 팬데믹 이후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 뒤, 그러니까 여행을 마음대로 하지 못할 때 책을 통해 여행하는 것과 유사한 자유를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머리가 쉬게 할 것, 머리가 상상하게 할 것, 머리가 일과 관계없는 경험에 부지런을 떨게 할 것. 그래도 어서 직접 여행을 다닐 수 있게 되었으면 합니다.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왼편에 문장이 조금 낯설게 올라가 있어요. 기존 ‘말들 시리즈’와도 달리 들어간 디자인인데 처음 보고 어떠셨나요?
인용된 문장이 세로쓰기로 되어 있습니다. 『여행의 말들』 디자인을 맡은 이기준 디자이너가 유유출판사의 ‘말들 시리즈’에 색다른 느낌을 더해주었다는 인상을 받아 무척 즐겁게 봤습니다. 세로쓰기를 도입해서 편집디자인을 해 보면, 쉼표의 모양을 비롯한 다양한 문장부호, 약물기호의 사용과 관련해 혼란이 생깁니다. 심지어 가로쓰기처럼 왼쪽부터 읽는 사람들도 많고요. 글을 읽는 순서에 혼동이 없게 문장을 시작하는 지점이 점점 낮아지는 구성으로 디자인해서 보기 편하다고 생각했는데요. 반쯤은 건물에 붙은 세로 간판 읽는 기분이기도 했어요. 제 친구는 인용구가 전부 시처럼 느껴진다고 하더라고요. 시리즈인 책에서 최소한의 원칙에 해당하는 공통점을 견고하게 묶어두고 다른 부분을 자유롭게 만들어가는 것도, 시리즈가 오래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언젠가 김포공항에 하릴없이 앉아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고 쓰신 부분이 인상 깊어요. 지금도 여행을 떠나고 싶은데 여의치 않을 때 작가님이 하시는 일들이 따로 있나요?
『여행의 말들』을 쓰면서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이 자주 저를 괴롭혔는데요. 그럴 때 가장 자주 한 일은 여행 사진 다시보기였어요. 그동안은 여행 다녀오고 다음 여행까지 일만 하고 돌아볼 시간이 충분치 않았는데, 『여행의 말들』을 쓰면서는 모든 사진을 하나씩 열어보게 되더라고요. 머리를 비우고 싶은 기분에 여행을 가고 싶다면 약속이나 미팅을 다녀오는 길에 버스를 타고 서울 시내를 멀리 돌아 집까지 올 때도 있습니다. 여행 다닐 때 자주 듣던 음악이나 팟캐스트를 들으면서요. 그럴 때면 집이 아니라 다른 어딘가로 이동하는 기분이 듭니다.
그간 많은 책들을 추천해 주셨어요. 『여행의 말들』에 추천사를 다신다면 어떻게 달아 주실 수 있을까요?
여행은 비일상의 일상이다. 낯선 것들 사이에 있는 나 자신을 감각하고, 평소의 내가 아닌 나로 살아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매 순간 스스로에게 묻고,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으로 인한 즐거움과 실망을 감당하며, 외로움을 버텨보고 일행에 짜증내보는, 돈과 시간을 쓰는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 일상에서는 가능한 (잘 벼린) 습관처럼 살고자 하는 사람도, 『여행의 말들』의 글과 함께라면 여행과 더불어 나 자신을 갱신하는 즐거움에 다가갈 수 있다.
*이다혜 작가. 해가 갈수록 아침이 똑바로 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만 큰 변화 없이 살고 있다. 아직은 회사원. 주요 활동 분야는 글쓰기와 말하기다. 「한겨레」 공채 입사. 주간 영화전문지 「씨네21」, 주간 생활정보지 「세븐데이즈」, 월간 장르문화전문지 「판타스틱」의 편집, 취재기자를 거쳐 현재 「씨네21」에서 팀원 없는 편집팀장으로 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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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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