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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율 “딱 내다버리고 싶은 가족이지만 괜찮아”

『어쩌다 가족』 김하율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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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보면 이해가 되고 인정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가족은 오래 보아야 하는 사이잖아요. 물처럼 담백한 관계가 오래 가지 않을까요. (2021.07.19)


자신의 아이를 구성하고 있는 피 중 자신의 것이 아닌 반쪽의 피를 경멸하는 시간은 아무리 바빠도 짬을 내어 꼭 할애하는 부모가 있다. 그러니 어느 쪽에서든 자식의 반쪽 피는 나쁜 피가 되었다. 그 반쪽의 나쁜 피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 정도의 피가 없는 셈 치고 살아야 한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늘 피가 모자라냐고? 아니, 그렇지 않다. 반쯤의 피가 없어 그들은 더 날렵하고 경쾌하다.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온 김하율 작가의 첫 소설집 『어쩌다 가족』이 폴앤니나에서 출간되었다. 보는 사람만 없다면 딱 내다 버리고 싶은 가족들이 속속 등장하지만 김하율의 소설은 읽는 내내 웃기고 이상하고 엉뚱하다. 심지어 귀여울 때도 있다. 가족이라는 절대 전제를 가볍게 뒤집고 새로운 결합을 이야기하는 김하율 작가의 명랑한 유머가 돋보이는 소설집이다. 



일곱 편의 단편을 모은 첫 소설집이에요. 누구나 ‘첫’에 대한 감회는 참 깊을 듯한데, 어떠셨어요?

등단작부터 시작해서 가장 최근 발표한 작품까지 들어가 있습니다. 독자 입장에서 보면 김하율이라는 한 작가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볼 수 있는 과정기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저 개인적으로는 한 시절마다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굉장히 뜻깊습니다. 그런 면에서 작가라는 직업이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가족’이라는 제법 묵직한 주제로 묶인 소설집이에요. 하지만 시종일관 웃음이 터지고, 황당하기도 하고, 엉뚱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이야기들이 많아요. 기존의 가족 소설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 들던걸요.

가족이야기를 쓰겠다, 라는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런데 무의식적으로 제 안에 어떤 화두랄까, 그런 게 있었던 거 같습니다. 누구나 가족으로부터 힘을 받고 가족 때문에 힘들잖아요. 저는 어릴 때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셨는데 가계 재정과 가족의 정서에 영향을 많이 줬어요. 부모님이 많이 다투셨죠. 그런 상황이 참 힘들고 지겨웠거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일종의 방어기제인데 그런 상황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하는 능력을 키우게 되더군요. 저들은 왜 저럴까. 왜 저렇게 소모적인 일을 하는 걸까. 그러다 보니 그게 상상이 되고 소설이 되고 그랬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두 분 캐릭터가 재밌어서 심각한 소설은 안되더라고요. 부모님께 감사해야 되겠네요. 지금은 사이가 좋으십니다.  

SF 작품도 있어요, 「마더메이킹」. 감정호르몬제를 생산하는 기업들이 일반화된 세상이죠. 성취감 호르몬제, 죄책감 호르몬제를 접종할 수 있고 급기야 모성을 강화하는 모성 호르몬제 ‘마더메이킹’을 생산하잖아요. 그 <마더메이킹> 호르몬제의 주성분이 정말 흥미로웠어요. 기가 막힐 정도로요.

감정을 물질화 시킨다면, 그리고 그걸 각 동식물에게서 추출해야 한다면 어떤 방식일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우선 모성 호르몬은 어떤 요소를 가지고 있을까를 고민했는데 그 무렵이 제가 아이를 낳고 2년이 넘어가던 시기예요. 제 안의 감정을 분석해 보면 되겠더라고요. 아이를 처음 만났을 당시, 설렘이 있었고 행복감과 기쁨, 벅참 등이 있었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그 이면의 감정도 분명 존재하더군요. 설렘에는 두려움이 존재했고 행복에는 외로움이, 기쁨에는 긴장감과 벅찬 순간에는 각성이 함께 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합쳐서 바로 ‘모성’이었어요. 굉장히 강력한 감정이라고 생각했죠. 어벤저스의 인피니티 스톤과 같은 파괴력이랄까요. 그래서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하는가 봅니다. 인피니티 스톤을 품고 있는 사람이니까요. 

『어쩌다 가족』은 모조리 가족 이야기지만 또 모조리 가족을 뒤집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혈연 대신 새로운 결합을 꿈꾼다고나 할까요? 하물며 뱀파이어와 청년의 이야기를 그린 「피도 눈물도 없이」조차 주인공 김모는 뱀파이어의 권속이 되려 하면서까지 새 결합을 결심하거든요. 작가님이 꿈꾸는 가족의 모습은 어떤 걸까요?

앞서 제 유년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그때부터 거리두기를 하는 습관이 생긴 거 같습니다. 너무 가까운 사이, 즉 가족들을 내 부모, 형제가 아닌 그냥 ‘인간’으로 보는 거죠. 그런 면에서 서영인 선생님께서 써주신 해설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가족을 인류애로서 사랑하기, 라는 점이요. 급소를 핀셋으로 콕 찌른 느낌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보면 이해가 되고 인정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가족은 오래 보아야 하는 사이잖아요. 물처럼 담백한 관계가 오래 가지 않을까요. 요즘은 남보다 못하다며 부모 자식끼리, 형제끼리 소송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물보다 진한 게 과연 좋기만 할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아끼는 작품이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작품일까요?

‘그녀의 이름을 보았다’ 입니다. 작가는 자기 내면을 파서 쓰는 사람들이기에 모든 작품에 자전적인 요소가 일부 들어가 있는데 이 작품도 그렇습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제 어머니를 비롯한 모든 어머니들께 드리는 이야기라도도 할 수 있겠네요. 조금 신파적이기도 한데요. ‘엄마’, 더 나아가서 ‘친정’이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 신파성을 배제하기는 좀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거리를 두기 위해 작품 내에서는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죠. 

기술적인 부분으로도 실험을 했던 작품이기도 해요. 주인공들을 극단적인 상황에 놓았을 때 어떻게 될까. 극단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고 그게 더 선명하게 보이더라고요. 극단의 순간, 인간은 결국 부모가 아닌 자기 자식을 선택해요. 고통스러운 선택이죠. 때로 이게 이기적인 유전자가 시키는 일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낭만적인 가족은 어디 있는 걸까, 까지 사고가 확장된다면 좀 허무해지죠.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소설을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왜 하필 그 시간? 그리고 정말 매일? 그게 가능한가요?

얼마 전 변산으로 휴가를 갔었는데 굉장히 멋진 숙소였거든요. 침대에 누우면 창밖으로 밀물과 썰물이 들고나는 게 보이는 곳이었어요. 새벽에 눈을 떴는데 4시 30분인 거예요. 그대로 일어나서 책상 앞에 앉았죠. 창밖으로 달빛에 반짝이는 물결이 보이고 너무나 고요했어요. 그대로 펜을 들어 글을 썼는데 그 분위기가 참 좋더군요. 아직 새벽이 오지 않은 밤이었고 나 혼자 깨어있다는 그 절대 시간의 고독이 참 좋았어요. 그 후부터 그 시간에 일어나 그 때 그 기분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애데릴라다 보니 시간을 쪼개서 써야 하는데 새벽의 그 시간이 1부 작업시간이고 낮 시간은 2부 작업시간인 셈이죠. 늘 4시 30분은 아니에요. 그냥 ‘새벽이 오기 전의 밤’이라는 상징적인 시간대입니다. 

몇 년 전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아르코창작기금을 받으셨어요. 장편소설이라 들었는데, 언제쯤 출간되나요? 예고편 살짝 부탁드려도 될까요?

<코스메로드>라는 작품인데 올해 하반기에 출간 예정입니다. 코스메로드는 명동의 가장 중심 거리인 명동 8길을 말합니다. 화장품 가게가 워낙 많아서 코스메로드라는 애칭이 붙었죠. 코스메로드의 화장품 가게 ‘페이스페이스’를 배경으로 한 마이너리티 청춘남녀의 일과 사랑의 성장담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수 있겠네요. 

제가 1년간 화장품 매장에서 일 한 경험을 토대로 쓴 소설인데요. 외국인 특수 상권이다 보니 조선족, 한족 직원들과 같이 일을 했는데 그들을 통해 조선족 100년사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중국과 한국을 오가는 삶 속에 애환과 비애들이 있더군요. 우리의 역사도 다르지 않죠. 

그리고 소위 말하는 지잡대 라고 불리는 지방대 출신 청년들의 진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3세대 조선족은 굉장한 엘리트들이에요. 기본적으로 3개국어를 하죠. 지방대를 나와도 실력 있는 친구들이 많고요. 화장품도 야무진 소비자들은 이젠 브랜드 안보고 전성분을 봅니다. 출신 성분이 아닌 그 사람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을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메세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김하율

초등학교 6학년 어느 새벽,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작가가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이야기꾼이 되기 위해 오늘도 쓴다. 「바통」으로 2013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았고, 2015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예작가에 선정되었다. 2018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아르코창작기금을 받았다. 「무서운 사람들」, 「불량소녀 변태기」, 「피도 눈물도 없이」, 「가족의 발견」, 「판다가 부러워」 등의 단편을 발표했고, 앤솔러지 『우리가 먼저 가볼게요』 작업에 참여했다. 소설집 『어쩌다 가족』을 써냈다. 모든 작가의 소망이 내게도 이루어지길 바란다. 마지막 순간까지 현역 작가로 살 수 있기를.



어쩌다 가족
어쩌다 가족
김하율 저
폴앤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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