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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책의 뒷면에 있는 사람들 (G. 이연실 편집자)

책읽아웃 - 김하나의 측면돌파 (195회) 『에세이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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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를 들어갔는데 제가 몰랐던 책의 뒷면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멋져 보이는 거예요. 다 알고 싶었어요. 다 친해지고 싶었고. 이들이 책에 갖는 마음들을 제가 갖고 싶었던 것 같아요. (2021.07.08)


에세이는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사람이 살아온 대로, 경험한 만큼 쓰이는 글이 에세이다. 삶이 불러 주는 이야기를 기억 속에서 숙성시켰다가 작가의 손이 자연스레 받아쓰는 글이 에세이다. 그러나 원고는 이렇게 붓 가는 대로, 살아온 대로 쓰일지라도, 에세이를 편집하는 사람은 결코 책의 꼴과 운명이 바람 부는 대로 흘러가게 두어서는 안 된다. 에세이 시장은 이를 테면 ‘진정성’의 전쟁터이다. 어느 에세이나 저자가 다 직접 해 본 이야기이고 유일한 경험담이며 간절한 인생 스토리이다. 이 전쟁통에서 불량품이 아닌 뇌관을 준비하고 재미와 감동이라는 도화선을 독자의 마음에 정확하게 연결해 불꽃을 터트리는 일은, 결국 편집자의 몫이다. 

이연실 작가의 책 『에세이 만드는 법』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이연실 편집자 편>

오늘 모신 분은 “좋은 에세이가 될 사람들을 부지런히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완성”하는 편집자입니다. 『부지런한 사랑』『라면을 끓이며』『김이나의 작사법』『걷는 사람, 하정우』『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이 책들이 다 이 분의 손을 거쳐 우리에게 왔습니다. 그리고 또 한 권의 탁월한 책을 탄생시키셨죠. 『에세이 만드는 법』을 쓰신 이연실 편집자 님입니다. 


김하나 : 첫 책입니다. 처음으로 편집자를 상대역으로 만나서 함께 일을 해보면서 새롭게 느낀 점이나 알게 되신 점 같은 건 뭐가 있을까요? 궁금합니다.

이연실 : 배운 게 굉장히 많은데요. 느낀 것도 많고. 일단은, 저자님들이 같이 일하면서 저한테 ‘편집자가 너무나 중요하다, 고맙다’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하셨는데, 제가 직접 쓰면서 보니까 ‘정말 편집자의 신뢰와 애정이 너무나 필요하고 중요하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사실 (이번 책을) 쓰면서 내용은 즐겁지만 되게 어려웠거든요. ‘너무 TMI가 아닌가, 내 자랑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저의 편집자님이 유유 출판사의 사공영 편집자님인데요. 중간에는 이 분을 향해서 쓴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실제로도 사공영 편집자님이 출근하시기 전에 한 편씩을 보낸다는 생각으로 항상 글을 보냈었던 것 같고요.

김하나 : 사공영 편집자님 출근 전에 글을 한 편씩 보낸다는 계획은 쭉 지켜졌나요?

이연실 : 사실은 안 지켜졌기 때문에(웃음), 사공형 편집자님이 중간중간에 마감일을 주시다가 나중에는 한 편씩 언제까지 보내라고... 그런데 나중에는 제가 몇 개월 동안 마감을 거의 안 지켰거든요. 그래도 죄송하다는 말씀은 쭉 드리다가 ‘이제 더 이상 죄송한 일을 만들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가지고 나중에는 정말로 ‘편집자님이 출근하시기 전에 뭐라도 보낸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김하나 : 글 모양은 돼서 가긴 했나요? (웃음)

이연실 : 네. 그리고 제가 편집자이기도 하지만 사공영 편집자님이 너무 탁월하신 게 제가 쓴 글보다 더 많은 피드백과 용기를 주실 때가 많았어요. 정말 너무 멋진 편지를 보내 주셔가지고 편집자님한테 글을 보내고 그 피드백을 들은 날은 너무 신나는 거예요. 그래서 일 끝나면 ‘내일 또 하나 보내드려야지’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고요. 사실 제가 편집자로 일할 때는 작가의 말에서 ‘편집자 누구누구에게 감사한다’ 이런 말을 항상 뺐거든요. 철저하게 뺐어요.

김하나 : 아, 그러면 이연실 편집자님이 편집하신 책에는 ‘이연실 편집자께 감사드린다’ 이런 말이 하나도 없군요.

이연실 : 네. 왜냐하면 저는 작가의 말이나 프롤로그, 에필로그 같은 건 꼭 필요한 말들만 독자들에게 전달됐으면 좋겠고, 제 이름은 판권에 있으니까 중복이라고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작가님의 마음은 제가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이것은 꼭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책이 나오고서 마지막 에필로그를 쓰는데 정말 생각나는 게 사공영 편집자님밖에 없더라고요. 판권에 있더라도 편집자님의 이름을 내 문장으로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정말로 쓰기도 했는데요. 그런 것도 좀 달라졌던 부분 같아요.

김하나 : 『에세이 만드는 법』에는 정말 잊을 수 없는 사공영 편집자님의 한 말씀이 있습니다. 명언이죠. 이연실 저자님이 ‘아, 제가 무슨 대작을 쓴다고 이렇게 끙끙 내고 있을까요’라고 했더니, 편집자님이 뭐라고 하셨죠?

이연실 : ‘이미 저에겐 대작입니다’라고 하셨었어요.

김하나 : 아니, 이보다 힘이 나는 말이 있겠습니까?

이연실 : 정말 그것이 농담 투가 아니었고, 그 말씀이 너무 감동적이더라고요. 편집자님도 제 책을 만드는 동안에 어려운 일들이 많았는데 제 글을 한 편씩을 받을 때마다 비타민 같았고 용기가 됐고 힘이 됐다는 얘기를 너무나 진심으로 해 주셔가지고, 제가 그 힘으로 완성을 했던 것 같아요.

김하나 : 이 책은 저에게도 대작입니다. 유유 출판사에서 ‘~하는 법’ 시리즈가 나오는데 저는 그 시리지를 늘 즐겁게 읽고 있지만, 이 책은 에세이를 만드는 법에 대한 너무나 훌륭한 실용서이기도 하지만 이 자체로 너무나 훌륭한 에세이이기도 해서 진짜 깜짝 놀랐어요. 이 책에 보면 이연실 저자님이 스스로에 대해서 말씀하신 부분이 있죠. 여러분, 15년 차 에세이 편집자가 에세이 만드는 법에 대해서 쓴 책의 첫 문장이 뭔지 아십니까. “사실 난 에세이가 싫었다.” (웃음) 이렇게 시작하면서 사실 나는 뼛속까지 문학도였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어렸을 때부터 문학을 좋아하셨나요?

이연실 : 네. 저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한 번도 빼놓지 않고 계속 문예반이었거든요. 그리고 초등학교 때부터 백일장 키드였고 소설만 썼었고. 예전에 소설 쓰는 분들 사이에서 ‘에세이는 잡문이어서 쓰면 에너지가 나간다’ 이런 얘기를 하시는 분들도 있었는데, 그렇게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김하나 : 그러면 습작을 많이 하셨나요?

이연실 : 열심히 했는데요. 대학교 와서는 국문과에 들어가서 소설 동아리에 있었는데, 그때는 등단을 하고 작가로 먹고 살아야 된다는 생각이 되게 강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더 신춘문예나 작가 공모에 (작품을) 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쓰는 것들이 마음에 안 들었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즐겁게 쓰지 않았더라고요.

김하나 : ‘이게 뭐야 돼야 된다’라는 생각에 너무 힘들게...

이연실 : 맞아요.

김하나 : 쓸 때 즐겁지 않았기 때문에 소설 쓰는 것은 좀 보류하고, 하지만 나는 뼛속까지 문학도이기 때문에 문학동네에 들어가셨습니다. 

이연실 : 네.

김하나 : 문학동네에서 소설 쪽의 편집자가 될 거라고 생각하셨는데 비소설 쪽으로 발령이 났어요. 그때 어떠셨어요?

이연실 : 그때 입사한 지 한 두 달도 안 됐을 거예요. 그것도 없던 팀이 새로 생기는 거였는데 이름이 ‘비소설 팀’이었고, 그때 정말 ‘아, 다른 데를 가야 되나’... 그런데 뭘 배운 것도 없이 나갈 수가 없잖아요.

김하나 : 그렇죠. 

이연실 : 그런데 사실 제가 ‘문학동네에 들어와서 소설을 열심히 만들겠다’라고 작정하고 입사를 했던 건또 거짓말이거든요.

김하나 : 아, 그래요?

이연실 : 보니까 출판사 초봉 중에 문학동네가 제일 많기에 ‘1년 연봉을 갖고 나는 튀겠다’라는 생각을 정말 했었어요. (웃음) 그리고 ‘1년 연봉을 모아서 (회사를) 나와서 다시 소설을 쓴다’라는 생각이었거든요. 

김하나 : 아, 처음에는요?

이연실 : 네, 정말 그 생각이었어요.

김하나 : 그러나 14년이 흘렀습니다. (웃음)

이연실 : (웃음) 맞아요. 그런데 놀랍게도 몇 주 안 지나서 연봉을 갖고 튀겠다는 생각이 싹 사라졌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문학동네를 들어갔는데 4층에 각자 이 책의 작은 부분에 매달리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디자이너는 쪽 번호 하나에 어떻게 예쁘게 보일까 (고민하고) 한 페이지를 어떻게 만들어 갈까 고심을 하고, 마케터들은 한 권 한 권 어떻게 팔아야 될까 계속 머리를 싸매고, 제가 몰랐던 책의 뒷면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멋져 보이는 거예요. 다 알고 싶었어요. 다 친해지고 싶었고. 이들이 책에 갖는 마음들을 제가 갖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책은 작가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나는 이 뒷면에 있는 사람들처럼 책의 뒷모습까지 다 알고 싶고 잘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김하나 : 이 말씀이 너무 좋네요. 책의 뒷면에 있는 사람들이 책의 아주 작은 부분을 놓고 고심하고 연구하고 노력하는 부분을 보면서 매력에 점점 빠져들게 된 거로군요.

이연실 : 네. 

김하나 : 다시 비소설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비소설 팀으로 갔을 때는 일단 탐탁치는 않으셨어요.

이연실 : 네, 사실 ‘입사하자마자 좌천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었고요. (웃음)

김하나 : (웃음) 사실 좌천을 할 만큼 뭔가를 하지도 못했는데.

이연실 : 맞아요. 전화 몇 통 받았는데 갑자기 다른 팀으로 가라고 하셔가지고... (웃음)

김하나 : (웃음) 그랬는데 선배님한테 생각이 바뀌는 한마디를 들으셨죠. 어떤 말씀이었죠?

이연실 : 그땐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제가 ‘문학 동네는 소설의 메인 아닌가요?’ 이랬어요. 그랬더니 지금도 계신 저희 오동규 실장님이 ‘비소설은 뭐든 다 할 수 있다, 네가 여기서 이걸 잘 만들어내면 나중에 네가 좋아하는 사람과 네가 좋아하는 글들이 다 책이 될 거다’라고 얘기를 하셨던 거예요. 그래서 ‘어? 내가 좋아하는 게 다 책이 된다고?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나가고 싶지도 않았고요. 문학동네라는 공간 자체는 너무 좋았고. 그런데 사실은 옮겨가면서도 ‘내가 여기에서 열심히 하면 나중에 소설을 만들겠지’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김하나 : 다시 한 번 이 말을 하게 되네요. 14년이 흘렀습니다.

이연실 : (웃음)

김하나 : 그 14년 동안 ‘이제 비소설 만드는 것의 재미에 대해서 좀 알았고 책도 좀 만들어 본 것 같아. 하지만 내가 만들고 싶은 건 소설이야. 소설로 옮겨가야지’ 이렇게 생각이 들지는 않으셨어요?

이연실 :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두 번째 책임편집을 하고서 비소설 만드는 재미에 금방 푹 빠졌던 것 같아요. 다양한 분들을 만나는 게 너무 좋았고요. 비소설 할 때는 문인 분들도 물론 있었지만 다른 분들도 있었고, 심지어 이런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신입이니까 사실은 대작이나 큰 작가님 책은 책임편집을 맡을 수가 없거든요. 오히려 누구도 그 책에 뭘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움직일 수 있는 것들이 있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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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만드는 법
에세이 만드는 법
이연실 저
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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